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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빔 벤더스·페드로 알모도바르·라스 폰 트리에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 글: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장 뤽 고다르·빔 벤더스·페드로 알모도바르·라스 폰 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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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빔 벤더스·페드로 알모도바르·라스 폰 트리에

고다르(왼쪽)와 그의 대표작 ‘네 멋대로 해라’

단순하게 설명해보자. 전통 방식의 영화란 우선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최대한 감추려 한다. 그러나 고다르는 처음부터 전통적 스토리텔링에는 관심 없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탐구하고 또 그것을 작품 속에서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고다르는 영화 역사의 새 지평을 열게 된다. 고다르에 대한 비평서를 쓴 리처드 라우드라는 비평가는 고다르의 영화사적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다르 이전의 영화가 있고, 고다르 이후의 영화가 있다. 그 사이에 진보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건 분명한 일이다.”

고다르의 장편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59)는 영화사의 새 페이지가 시작됨을 알린 작품이다. 영화 주인공은 미셸 포와카르란 청년이다. 훔친 자동차를 타고 달리던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자 쏴 죽이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셸은 미국인 여대생 패트리샤와 함께 파리를 벗어날 생각을 한다. 그러나 패트리샤는 미셸을 경찰에 신고하고, 미셸은 경찰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렇게 스토리만 간략히 소개하면 ‘네 멋대로 해라’는 미국식 범죄영화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여기서 잠깐, 고다르와 그의 누벨 바그 동료들의 영화애에 대해 언급해보자. 이들은 공히 시네마테크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 그렇게 키운 열렬한 사랑을 영화비평 쓰기 혹은 영화 만들기로 전이시킨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발견해낸 것들 중에 흔히 ‘야만인’ 정도로 치부돼던 할리우드 감독들이 사실 꼭 그런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작업하면서도 영화 속에 자신만의 비전을 불어넣을 줄 아는 영화감독들을 찾아내 대가로서 흠모했다. 실제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들며 고다르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해온 ‘미국영화 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원적 사유 펼치는 영상 에세이스트



그러나 고다르의 기질,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제작 환경은 그가 ‘미국영화’를 만드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네 멋대로 해라’는 스토리 라인만 미국영화를 닮았을 뿐 할리우드적 기준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규칙은 다 무시하고 ‘제 멋대로’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인물들의 행위 동기는 명확지 않고 이야기는 본 궤도에서 벗어나 자주 곁길로 빠진다. 스타일 면에서도, 인위적인 세트,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삼각대, 인공조명 등을 거부함으로써 할리우드 영화의 그것을 거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점프 커트(jump cut; 쇼트와 쇼트의 연결을 이음매 없이 연결하는 편집 방식)의 활용은 큰 논란을 불러온 요소 중 하나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이는 영화제작에 대한 무지의 소치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실상 ‘네 멋대로 해라’에 쓰인 점프 커트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실존적 불안감과 충동적 분위기에 매우 잘 어울렸다. 게다가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는 연속 편집이라는 할리우드식 관행, 더 나아가 그를 사용한 미국영화의 위대한 감독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들을 뛰어넘으려는 예비적 몸짓으로 비치기도 한다.

‘네 멋대로 해라’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고다르의 초창기 영화들은 종종 스릴러(‘작은 병정’, 1960), 뮤지컬(‘여자는 여자다’, 1961), 전쟁영화(‘카라비니에’, 1963), SF(‘알파빌’, 1965) 같은 장르에 기대어 만들어졌지만 이는 전통적 의미에서 장르영화가 아니라 ‘고다르식(어찌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장르영화’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다르는 이들에서 전달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전달 구조 혹은 메커니즘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다르는 자신의 영화들을 통해 영화를 이루는 기본 요소인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실험하고 탐구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최상의 영화 기호학자라 불릴만하다. 한편으로 고다르는 펜 대신 카메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영상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는 현대 소비사회, 정치, 삶의 조건들,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자유로우면서도 근원적인 사유들로 가득하다. 그런 방식으로 그의 영화는 관객에게 진지한 탐구와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다.

고다르의 영화에는 결론 없는 질문이 가득하다. 관객은 그것과 능동적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고다르는 언젠가 “우리는 관객과 맞붙어 싸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은 곧 “우리는 고다르(의 영화)와 맞붙어 싸워야 한다”는 것이 된다. 고다르의 영화는 그렇게, ‘싸울’ 준비가 돼 있는 관객에게 수많은 근원적 질문과 가르침, 영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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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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