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尹 永 寬<br>● 1951년 전북 남원 출생<br>● 서울대 외교학과, 동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br>●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br>●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안보통일분과 간사<br>● 저서 : ‘전환기 국제정치 경제와 한국’ ‘21세기 한국 정치경제 모델’
정권인수위에서 통일외교안보분과 간사를 맡아 새 정부 대외전략의 틀을 짜던 시절 그는 미국을 방문해서 한 말 때문에 한 차례 구설에 올랐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한이 붕괴할 경우 그냥 망하지 않고 무력충돌이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것보다는 전쟁 없는 핵 보유를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당시 새 정권의 대북정책 방향과 관련해 국내외 관계자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법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돌출 발언’은 더 이상 없었다. 대학교수 신분으로는 마음놓고 할 수 있는 말도 공직에 나가면 세심하게 가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것일까? 아무튼 그 일이 ‘예방주사’가 됐다면, 윤장관에겐 오히려 득이 된 셈이다.
윤장관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것은 6월11일 오후, 한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이틀 뒤였다. 언론에서는 하필이면 현충일에 일왕과 축배를 든 것을 비롯해 방일 외교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던 때였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추구한다”
-먼저 이번 방일 외교에 대한 평가로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정부 밖에서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애초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주변국 정상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와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앞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물론 한미, 미일 정상회담에서 표명된 기본 원칙을 확인했고,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간다는 원칙에도 합의했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가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유럽의 경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나 유럽연합(EU)을 통해 국가들간에 상당히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또 신뢰 분위기가 조성돼 있습니다. 동북아 질서, 동아시아 질서를 이처럼 한 걸음 앞서 나아가는 국제관계 질서로 발전시키자는 일종의 공동 비전을 우리가 제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사 문제입니다. 우리는 과거처럼 일본의 정치 지도자가 과거사와 관련해 어떤 표현을 썼느냐는 것을 놓고 이번 회담의 성패로 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접근법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제시한 미래지향적인 비전의 실천에 바람직한 역사인식은 무엇인가, 과거사를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하는가 하는 입장에서 접근했다는 겁니다. 물론 대통령이나 저나 일본에 대해 할 얘기는 다 했고, 우리 국민이 우려하는 점들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그밖에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항공편 개설, 비자면제 등 양국간 현안을 놓고 빠른 시일 내에 협력을 증대해 가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방일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고 한국의 새 리더십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합니다. 예컨대 대통령께서 일본 TBS 방송에 나가 일본 국민들과 직접 대화한 것은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정치학 교수 출신답게 ‘원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답변. 여기에 조금만 ‘살’을 갖다 붙이면 ‘한일관계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논문 제목을 붙여도 될 듯한 ‘정답’이다. 인터뷰를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 모두 아직 몸이 덜 풀어졌는지 모른다. 오늘의 ‘주제’인 북핵 문제는 잠시 뒤로 돌리고 다른 화제를 던져보자.
-앞에서 ‘동북아 중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는 거대한 비전으로 포장해 설명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허하게 느끼는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아시아라는 지역 특성상 유럽처럼 집단안전보장체제라든가 경제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과연 이 구상을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