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사오정’과 ‘오륙도’라는 유행어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사오정은 45세 정년, 오륙도는 56세가 되어도 은퇴하지 않으면 도둑놈이라는 일종의 우스개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서글픈 현실을 반영한다. 일할 의욕도 있고 능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데도 40대에 밀려나야 하는 현실.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가 직장인들의 어깨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 살, 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젊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 이제 마흔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삶의 중요한 기로이자 위기로 다가온다.
‘사오정’과 ‘오륙도’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인기 저술가인 마쓰자와 시즈오는 ‘마흔의 의미’(나무생각)에서 움츠러든 40대를 위로한다. 20대는 생물학적으로는 분명한 성인이지만 심리적·사회적으론 미숙하고, 30대는 심리적 성인의 단계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삶을 발견해야 하는 미숙한 성인이다. 이에 비해 40대는 진정한 성인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안정된 나이인 데다 창조력 또한 절정에 도달해 있다는 것.
물론 마흔은 유혹의 나이, 어떤 의미에서는 제2의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무력감과 결핍감 때문에 좌절한 나머지 엉뚱한 벼랑으로 내닫는 사람도 있고, 불륜이나 도박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기면 창조적인 경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특히 예리한 직감을 발휘하는 유동적 지능이 높은 30대에 비해 40대 이후엔 경험을 활용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판단할 수 있는 결정화 지능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가지 분야만 보는 게 아니라 일, 가정, 건강상태, 인맥, 인간관계 등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바로 그것이 결정화 지능을 활용하여 진정한 성인이 되는 길이다. 예컨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가정생활이나 건강상태를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일에 투입해야 하는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고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40대에 맞는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부부의 자기실현욕구를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충고도 인상적이다.
마흔, 인생의 하프타임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40년을 산 사람이라면 최소한 향후 30년을 더 활동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인생계획을 짜라.” 물론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므로 인생계획도 제 나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리더십 네트워크 창립자 밥 버포드는 ‘40 또 다른 출발점’(북스넛)에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을 법한 후반부 인생계획의 원칙을 제시한다.
그는 우선 인생을 전반부와 하프타임, 후반부로 나누고, 마흔은 바로 하프타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하프타임은 전반전을 열심히 뛴 선수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후반전의 작전도 세우고, 각오도 새롭게 다지는 시간. 때문에 자신을 속박하는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쉴 수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으며, 다시 기운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멈춘 시간엔 뭘 해야 할까? 저자는 자신이 이미 능숙하게 해왔던 일이 무엇인지, 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해볼 것을 권한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알리는 호각을 스스로 불고 전반전 경기결과를 냉정히 분석해보라는 것이다.
저자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생 전반부가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기라면, 마흔 살을 전후한 하프타임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후반부를 계획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와 의미라는 말이 중요하다. 성공 중심의 삶에서 의미 중심의 삶으로, 즉 돈·지위·명성·권력의 축적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의 추구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라는 걸까? 물론 아니다. 자신이 일주일 동안 정확히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체크해본 뒤, 부질없다고 판단한 일들을 과감히 줄이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이것을 계획적 포기라고 말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인간 관계나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주안점을 둬왔는지 돌이켜보고 재조정하는 일이다. 업무상 맺은 인간관계에 뒀던 주안점을 가족과의 관계로 옮기는 것도 하나의 예다. 다양한 관계의 비중을 재조정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 가치 있다고 판단한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젊은 사람들을 눈여겨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바로 다음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잡지나 음악, 영화, TV 프로그램 등을 꾸준히 접하면서 나이별로 구분하는 관행이나 문화를 스스로 무너뜨리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생과 후반생은 다르다
앞에 소개한 두 책과는 달리 다분히 낭만적인 조언을 하는 책도 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만화 ‘시마 과장’의 작가 히로카네 겐시의 ‘중년이 행복해지는 여섯 가지 비결’(아카데미북)이다. 히로카네는 여생과 후반생은 다르다고 말한다. 여생이 억지로 사는 것이라면 후반생은 지금까지 욕망으로 올라온 길을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또 다른 인생이라는 것.
히로카네가 제시하는 여섯 가지 비결이란 다음과 같다. 큰 욕심이 아닌 작은 욕심을 부려라. 좋지 않은 과거는 깨끗이 잊어라. 즐거운 것은 진심으로 즐겨라. 방황하고 있다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라.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존재를 마음속에 두어라. 인생은 일장춘몽임을 깨달아라. 전체적으로 보면 더 이상 아등바등하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라는 충고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과 직장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은 대상을 찾아보라는 권유가 자못 달콤하다. 그 대상은 이성이든 자식이든 취미든 상관이 없다고 한다. 관건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온화하게 만들 수 있는 행복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 권을 책을 소개했는데 그 중 두 권이 일본 저자의 책이다. 비록 장기불황의 터널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른 일본이지만, 40대가 처한 상황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도 경기 침체의 암울한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지 않은가.
“목적 없이 늙는 것을 한탄하라”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도 일본의 인기 저술가 모리야 히로시의 ‘남자의 후반생’(푸른숲)이다. 저자는 중국 고전과 역사를 경영학 및 리더십 이론과 접목시킨 대중서들로 유명한 사람답게, 이 책에서도 중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 22명의 후반생을 들려준다.
돼지를 키우며 마흔이 넘어 공부를 시작해 예순이 넘어 승상이 된 공손홍, 역사서 편찬의 사명을 위해 죽음보다 더 치욕스럽다는 궁형(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을 택한 사마천, 동네 건달로 지내다 반란의 와중에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져 마침내 한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 유방, 젊은 시절 관리로 지내다 고향으로 내려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연명, 57세에 좌천됐지만 매일 100장의 기와를 지붕에 올리며 체력을 쌓고 재기에 성공한 동진시대의 명장 도간 등이 인상적이다. 그밖에 월나라 왕 구천의 신하로서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공을 세운 범려는 고위관료로서의 영예를 마다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가 장사꾼으로 변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명나라 관료 여신오가 저서 ‘신음어’에서 했다는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늙음을 한탄하기 이전에 목적 없이 늙어가는 것을 한탄해야 한다. 죽음이 찾아온다고 슬퍼하지 말고, 죽어서 이름이 잊혀질 것을 슬퍼해야 한다.” 히로시는 독자에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후반생의 성공과 행복을 꿈꾸라고 격려한다. 중국 역사 인물들의 행적을 더듬어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40대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조언하고 충고하는 책들이 전에 없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역시 출판은 사회문화 흐름을 여실히 반영하는가 보다. 책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책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일. 중요한 것은 책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길을 참고삼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40대를 위한 책들이 제시하는 여러 길들을 두루 살펴보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