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정밀타격 대비책? 미사일 사거리 확대 따른 전술변화?
- 1940년대 생 소장파 군부실세로 등장
- ‘뜨는 별’ 이명수·김성규 대장, 최성수 상장
- 각급 부대 정치조직 축소·폐지로 전투인력 2~3만 강화
- 김정일, 군부 장악 자신감 얻은 듯
지난해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등 강력한 개혁·개방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북한은 군 내에서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개혁작업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구체화된 복무기간 단축과 이에 따른 대규모 감군조치(‘신동아’ 5월호 ‘북한 50만 감군설의 진상’ 기사 참조). 이러한 변화에는 인민군 소장파의 지속적인 득세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 장악력 강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 관계기관들의 분석이다.
한편 감군 등의 개혁조치와 맞물려 북한군의 조직과 부대배치 등에도 최근 가시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사일 전력의 일부 재배치와 인민군 내 정치부문 축소다. 이러한 변화 움직임이 당장 남북간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관계기관들은 해석하고 있지만, 일단 ‘변화’에 무게가 실린 북한군 내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변화 가운데 전술적인 의미가 가장 큰 것으로는 스커드미사일 전력의 위치변동을 들 수 있다. 인민군 66, 73, 85, 74 포병여단이 보유하고 있던 스커드미사일 전력 중 상당수가 후방으로 이동 배치됐다는 것. 지상에 노출되어 있어 위성으로 판독이 가능한 수십 기는 물론, 지하갱도에 보관되어 있는 수백 기 규모의 스커드미사일 또한 이번 이전배치에 포함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사일 위협 증가” VS “PAC-3 합리화”
이러한 조치는 언뜻 한반도 긴장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고 해석할 수 있지만 관계기관의 분석은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미사일 전력이 후방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의 사거리가 길어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스커드미사일이 설정하고 있는 잠정 타깃은 서울 및 전방지역의 주요 군사시설들이다. 미사일여단의 위치변경은 후방에서도 서울 공격을 자신할 수 있을 만큼의 유효 타격거리가 확보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는 미국의 핵시설 제한폭격에 대응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변에 제한폭격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휴전선 이북에 배치되어 있는 240mm 방사포, 170mm 자주포 등 장사정 포대와 미사일 등으로 수도권 및 전방지역을 공격할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측은 핵시설에 대한 제한폭격과 동시에 이 지역의 공격무기를 무력화시키는 사전공격을 시도할 것이다.
미사일전력이 후방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미국의 사전공격은 필요한 시간과 위험도가 증가했다는 것이 관계기관들의 분석이다. 또한 대부분의 스커드미사일이 지하갱도에 보관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이번 재배치는 북한의 지하군사시설 건설이 전방뿐 아니라 후방에도 상당부분 진척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유사시 즉각 스커드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는(관계기관들은 북한이 생산할 수 있는 스커드 미사일이 연간 100여 기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시설 및 장비도 이미 후방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미국의 신형 패트리어트미사일(PAC-3) 구매 계획을 공개하고 나선 것에는 이러한 북한측 전력배치의 변화가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은 지난 6월10일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자체 방어능력 확보가 시급하고, 이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MD(미사일방어체제)에 한국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동참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시민단체들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관련장비 구매를 서두르는 것에는, 유사시 사전타격이 어려워진 스커드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망을 서둘러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군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북한의 미사일전력 후방 재배치로 위협이 증가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
경남대 북한대학원의 함택영 교수는 “전방에 있었을 때도 우리측에서 포로 공격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고, 후방으로 옮겼다고 해서 전폭기를 이용한 야간 폭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재배치로 인해 사전공격이 어렵다는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미 결정돼 있는 PAC-3 도입을 합리화하기 위한 우리 정보기관의 ‘의도 섞인’ 해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북 정보기관들이 북한군의 변화와 관련해 가장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고위장성 인사다. 최근 일고 있는 변화 움직임의 뿌리는 군내 권력관계 재편과 세대교체에 있기 때문. 김정일 위원장의 실질적인 측근인 신진 소장파들이 핵심에 등장하면서 김위원장의 군 장악력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감군, 체제개편, 당·군 관계 재정립 등의 작업을 자신감 있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군 최고위급 인사조치의 핵심은 북한헌법이 최고주권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다. 원래는 당대회 결정사항이 더 중요했지만 1980년 이후 당대회를 개최하지 않아 최고인민회의가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핵심 군부 지도자들은 형식상의 인민선거를 거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임명된다. 원로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대의원을 선정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최고위급 지휘자들의 변동사항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한 바로미터다.
최근의 대의원선거는 지난 1998년 7월26일 실시된 제10기 선거. 이 자리에서 당정군 고위 간부들을 포함해 687명의 대의원이 선출됐다. 한편 오는 8월에는 제11기 대의원선거가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대의원대회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대의원에 임명된 군 고위관계자가 명단에서 사라지는 경우다. 2002년 3월27일 5차 전체회의에는 687명의 대의원 가운데 624명만이 출석했다. 올해 3월 열린 6차 전체회의에서는 아예 재적의원 숫자가 635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참석자는 574명에 불과했다.
당사자가 사망할 경우 대의원 숫자가 줄어 들지만 실각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결국 새로 대의원에 선출된 사람은 ‘신진세력’으로 볼 수 있고, 대의원이던 인물이 물러나면 숙청당해 유명무실한 후방부대 등으로 좌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 김일철 차수(인민군 장성계급은 ‘소장-중장-상장-대장-차수-원수’의 여섯 단계)의 경우 1982년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자리를 공고히 했고, 1990년 9기 대의원을 다시 역임한 직후 대장으로 진급했다.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자 총정치국장을 맡고 있는 조명록 차수는 1990년에 9기 대의원을 지낸 뒤 1998년 10기 대의원에 다시 한번 선출됐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주요 군 관계자들의 판도 변화는 그해 연말까지 연례 장성인사와 부대 재배치 등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고위관계자 변화상에 따라 예하 사단장 배치도 달라진다. 새로 등장한 고위관계자의 관심분야와 성향 등에 따라 부대기능과 배치도 영향을 받는다.
최근 몇 년간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군 관련 변화의 핵심포인트는 ‘소장파’의 대거 등장이다. 장관급 인사들의 신상에 변화가 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임명한 사단급, 군단급 인사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인민군에 동참한 신진세력이 대거 진출했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노장파로 분류되는 사람은 김일성과 함께 만주·연해주 등지에서 항일 유격활동을 한 이른바 ‘혁명 1세대’들이었다. 사망한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 등이 대표적인 경우. 빨치산 활동으로 군 경험을 시작한 까닭에 군사지식이 체계적이진 않지만,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강한 충성심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고령인 이들 1세대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까지 현역에 남아 있는 1세대는 호위사령관 리을설 원수와 인민보안상 백학림 차수 정도인 데다, 이들 또한 1990년대와는 달리 ‘상징적인 차원’에서 남아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유일한 인민군 원수(김정일 위원장은 ‘공화국’ 원수)인 리을설이 비록 호위사령부이기는 하지만 1개 군단급 부대를 맡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는 충분히 입증된다.
이후 한국전쟁, 특히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는가 여부가 노장파와 소장파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서열 1위인 조명록 총정치국장, 2위인 김영춘 총참모부장, 3위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현재 인민군을 이끌고 있는 인사들이 모두 ‘새로운 기준에 따른 노장파’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1930년대 생. 1980~90년대 소장파 그룹의 리더 역할을 하며 승승장구하다 1997년 갑작스럽게 과로로 사망했던 김광진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도 이 부류에 속한다.
북한군의 주요 인사들. 오른쪽부터 리을설 원수(호위사령관), 백학림 차수(인민보안상), 조명록 차수(총정치국장), 김영춘 차수(총참모장), 김일철 차수(인민무력부장), 이명수 대장(총참모부 작전국장)
엘리트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을 시작으로 구소련의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등 사회주의 동맹국들에 유학하거나 대사관 무관 등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전 세대에 비해 시각이 넓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노장파와 마찰을 불러일으켜 소장파들이 성장하는 데 제약이 되기도 했다. 이들 소장파는 대부분 김정일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한두 차례 좌천당했다가 복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군사전략에 있어서도 전 세대가 한반도만을 틀로 생각했던 데 비해 이들은 동북아 전체, 혹은 동남아까지 확장해 사고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전세대가 현대전·정규전에 대한 작전개념이 부족했던 반면, 이들은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았고 특히 해외공작, 심리전 등에 의욕을 갖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대외활동 가운데 군 중심 사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소장파들의 이러한 성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관계기관의 분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각종 대외 및 공작사업을 맡고 있는 총정치국 산하부서 장성들은 관심의 초점이다. 무기도입을 담당하는 25국의 조태복 소장, 대외사업국의 이상우 소장 등이 그들. 특히 우리측 관계기관에는 신상이 파악되지 않고 있는 5국과 15국 지휘관들도 소장파 그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오는 8월로 예정돼 있는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진급 등의 신분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향후 북한군의 공작수행 역량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우리측 관계기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소장파의 등장이 남북관계 개선이나 군축 등 평화무드 조성에 이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전세대에 비해 탄력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진보적’이나 ‘유화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 특히 대외사업에 강세를 두고 있는 점은 오히려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변동에 의해 향후 인민군의 체제나 전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하는 부분. 8월로 예정돼 있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대회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 대의원에 선출되는 군 관련 인사들의 면면이 핵심포인트. 이 대회에서 소장파 인사들이 대거 등장한다면, 현재의 인민군 개혁방안은 그대로 유지될 확률이 높다. 물론 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노장파들이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이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작업과 관련해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인민보안성 도로총국 정치위원 최성수 상장의 행보다. 인민보안성은 옛 사회안전부가 바뀐 부처로 우리의 옛 내무부와 기능이 흡사하다. 인민보안성 산하 병력은 10만명 규모로 인민군은 아니지만 국경경비 등을 맡고 있는 주요전력이다. 최상장도 인민군 소속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신진세력으로 최근 ‘뜨고 있는’ 인물이다.
이미 10기 대의원을 지내고 있는 최상장은 11기에도 대의원으로 재선임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특히 1998년에 상장으로 진급한 그가 오는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대장으로 승진한다면 북한 군부 내 개혁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관계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 육군의 전력구조
인민군에는 대대급 이상 부대마다 ‘정치부’가 따로 조직되어 있어 ‘당과 군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사단 이하 각급 부대에도 이 같은 변화는 유사하게 적용된 것으로 관계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대략 2만~3만명 규모의 병력이 새로 전투요원화 한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의 기무부대와 정훈관련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왔던 정치위원실은 군의 사상교육 및 이상징후 감시, 주요 지휘관의 동향 파악 등을 담당해왔다. 이러한 업무특성상 정치위원은 군단장 등 지휘자들을 견제하는 기능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보통 해당 부대 지휘관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인사가 임명되는데, 총정치국 등 관련 중앙부서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파악한 정보를 보고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더욱이 정치위원은 지휘관이 당 정책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릴 경우 이를 저지·시정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체제개편으로 이러한 업무는 대부분 중앙 총정치국에서 직접 수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가지 끝’까지 뻗어나가 있던 정치관련 스태프 조직을 중앙으로 일원화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총정치국은 편제상 인민무력부 산하에 있지만 사실상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 즉 하급부대 정치부 등을 총괄해 당의 군 통제를 책임지는 조직. 이러한 정치조직의 축소개편은, 당이 군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던 관계가 계속되는 ‘선군정치’ 기조 속에서 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북한군에서 그동안 정치관련 조직이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해 왔음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자 군 서열 1위인 조명록 차수가 총정치국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국가 군대에서는 정치 장교들의 파워가 강하지만, 북한의 경우 1950년대만 해도 강화와 축소를 반복하고 총정치국장 또한 민간인과 군이 번갈아 맡는 등 다소 불안정했다.
그랬던 당·군 관계가 당의 우위로 확실히 결정된 것은 1969년 1월 김일성이 민족보위상(1972년 인민무력부로 개칭) 김창봉, 대남총책 허봉학 등 이른바 ‘군부파’의 최고지도자들을 숙청하면서부터였다. 이 시기 총정치국장을 맡으며 당의 군 장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이었고, 그의 뒤를 이어 총정치국을 이끌어 온 것이 조명록 차수다.
이렇듯 사실상 인민군의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군내 엘리트 집합소’였던 총정치국 산하 조직이 축소되었다는 사실은, 계속돼온 당의 우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조명록 차수의 위상에 변화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쉽게 말해 한국군의 기무·보안관련 조직이 민주화 이후 대폭 축소되고 있는 것과 내용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부문 구조조정
이러한 체제개편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관계기관은 분석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단행된 감군조치에 따라 인민군이 활용할 수 있는 인력규모가 줄어들면서 직접적인 전투능력에 손상이 가지 않는 부분부터 ‘다운사이징’을 하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심각한 식량위기를 겪을 당시의 유아들이 군에 입대해야 하는 2010년경에는 병력자원이 급속도로 줄어든다. 때문에 사전에 이에 대비해 전투능력을 유지하면서 군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발언권을 갖고 있던 ‘혁명 1세대’ 노장파가 사라지고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성장해온 소장파가 자리를 잡으면서 김위원장의 군부장악 능력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1995년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인민군 6군단 사령부 정치위원, 예하 사단장 등의 군사 쿠데타 모의와 간첩행위가 적발되어 대대적으로 처형됐다는 이른바 ‘6군단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이래, 김위원장의 군부에 대한 지도력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정치조직 축소 및 재편은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를 일소할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각급 부대의 충성심에 대한 자신 없이 군부 동향을 민감하게 체크하는 정치관련 조직을 축소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위원장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공식활동의 60% 이상을 부대시찰 등 군 관련 행사에 할애해 왔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상당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김정일 체제가 북한군 내부에서는 굳건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