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17일 미래재단과 미래재단연구원 공동 주관으로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뱅커스 클럽(bankers club)’에서 ‘386 반성과 모색’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 이 글은 이날 필자가 주제 발표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
1987년 6·10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는 신촌로터리. 6·10항쟁은 386세대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탄생 당시부터 정치적인 색깔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 용어가 ‘한겨레신문’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 1987년 양김(兩金)의 대통령후보 단일화 실패로 ‘군정 종식’과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요구가 좌절된 직후였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바로 그 중심에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던 386세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광범위하게 저항한 최초의 세대였다. 비록 내부적으로 저항의 이데올로기와 동기는 달랐지만, 이들은 사회 참여의 범위와 속도에서 이전 세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이들 세대 내부에서는 자부심을 담아, 그리고 선배 세대는 기대감을 담아 386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퍼뜨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386세대의 사회 참여가 본격화됨에 따라 점차 빛을 잃고 있다. 여기에는 ‘국민의 정부’의 출범이 한몫했다. 그 이전부터 386세대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진출이 잇달았지만, 국민의 정부 출범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개화(開花)하는 양상이었다. 수평적 정권 교체를 통한 민주주의 형식의 완성으로 이들 세대의 현실 참여를 가로막거나 주저하게 할 요소가 완전히 사라졌던 것이다.
여기에 국민의 정부는 386세대 내의 스타들을 ‘젊은 피’라는 명분으로 대거 수혈했다. 뒤이은 벤처 붐 당시 벤처 기업의 주역으로 등장한 이들도 386세대였다. 주류 기성세대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기 시작한 세대에게 자부심과 기대감을 상징하는 이 용어는 어딘가 모르게 잘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참여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점차 잊혀져가던 386이라는 용어가 부활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386세대가 이 정부의 주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와는 무관하게, 상당수 국민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정신적으로는 386세대의 일원이라거나, 참여정부의 실세는 386이라는 말들이 떠도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번 세미나를 위해 실시한 ‘386세대 의식 조사’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8.1%가 386세대가 참여정부의 정책과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보는 응답자도 18.3%나 됐다. 386세대에 비해 그 이전세대일수록, 그리고 한나라당 지지자일수록 386세대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다( 참조).
그렇다고 386세대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호의도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84.9%에 달하는 절대 다수가 386세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정적인 답은 15%에 불과했다.
세대별로 보면 386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 비해 이전 세대, 즉 40∼50대 이상 나이 먹은 세대의 호의도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부정적이라는 답은 21.7%에 그쳤다. 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한나라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긍정적이라는 응답자가 76%를 웃돌았다. 반면 부정적인 응답자는 24.3%였다( 참조).
<b>386세대 의식 여론조사<b/><br>목적 : 386세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알아보고자 함<br>방법 : 설문지를 이용한 전화조사<br>대상 : 서울 및 6대 광역시 거주 만18~59세 남녀<br>표본수 : 1000명<br>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서 ±3.1%<br>기간 : 2003년5/26~5/28<br>여론조사 기관 : embrain 정치여론조사팀
그러나 동시에 참여정부의 성패와 그 참여 결과에 따라서 이 세대 전체가 졸지에 세대적 지지 기반을 상실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386세대가 정작 사회의 주역이 돼야 할 시기보다 훨씬 앞서 시들어버리는 조기 노화(老化) 현상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386 측근’ ‘386 실세’ 등 386과 관련해 쓰이는 말 대부분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자부심과 기대감의 표현이었던 386이 경계심과 경멸의 표현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386세대의 성공과 한계, 그리고 그 요인들을 따져보기 전에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386세대는 과연 특별한가 하는 점이다. 386세대에 관한 각종 논의 자체가 386세대의 특권 의식의 발로라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기 때문이다. 주로 386 이전세대가 제기하는 이런 문제 의식으로 인해 정작 386세대에 관한 논의가 세대 안에서조차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86세대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권력과 자본의 속성 앞에서 특별한 세대란 없다. 정치권에 진출한 386세대들 역시 앞선 세대들이 걸었던 궤적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벤처 붐의 주역들 역시 경제 성장 초기의 기업가들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386세대가 아니라 386세대가 처한 환경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덕에 이 세대는 우리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도 빠르게 주류에 편입되거나 주류를 형성했다. 대학 졸업 후 20여 년이 채 안 돼 정치·경제·사회 권력을 분점한 규모와 속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세대는 5·16 이후의 군부 엘리트를 연상하게 할 정도다. 그렇다면 386세대를 둘러싼 특별한 환경은 어떤 것인가?
참여의 유혹으로 바뀐 저항의 유혹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출범이다. 문민정부에 대한 평가는 386세대 내부에서 현재도 엇갈리는 사안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출범을 계기로 민주주의의 형식이 완성됐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 정부의 출범은 그야말로 예기치 않았던 극적인 결과였다. 이는 35년간 계속돼온 비민주적인 통치와 고도 압축 성장의 폐해가 일거에 터져나온 정치와 경제 사회혼란에 대해 국민이 거부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그러나 여기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에 대거 참여했던 386세대가 거대 보수와 소수 진보라는 전통적 정치 지평을 변화시킨 점도 적잖이 작용했다.
정치적으로 동교동계라는 집단이 구심점이 돼 탄생한 국민의 정부 하에서 386세대는 약진을 거듭했다. 정치적 동질성과 이들 세대의 상품성을 확인한 정부와 집권 여당은 이들의 정치권 진출을 적극 유인했다. 그렇잖아도 새로운 주류의 저변 확대를 꾀하던 소수 정권은 새로운 인력 풀(pool)을 원하고 있었다. 당시 국민의 정부와 물리적으로 결합한 정치권 진출 세력 외에 저항의 수단으로 시민사회 단체로 진출한 386세대 역시 심리적으로는 국민의 정부와 결합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국민의 정부의 철학과 정책을 승계하는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두 번째 386세대의 성공 요인은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세대 교체 열풍이다. 이 바람은 단순히 정치권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어쩌면 이 바람은 연공 서열주의와 평생 고용제가 파괴되고 능력주의와 성과급이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한 경제 분야에서 발원했거나 더 거셌다고도 할 수 있다. 나이라는 제약 요소가 사라지고 난 후 30대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해야만 하는 미성숙한 세대가 아니었다.
벤처 열기 또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새로운 창업과 사업 시스템이 등장한 것과 아울러 새로운 유형의 사업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경험은 없었지만 젊었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앞뒤 안 재고 돈과 관심을 이들에게 쏟아붓게 만든 요소였다.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적어도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386세대 내부의 스타 시스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대는 저항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공식 조직과 지하 조직, 상층부와 하층부 등 다양한 구조를 운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구조의 최정점에는 소수의 핵심 인물들이 있었다. 총학생회나 삼민투, 그리고 전대협으로 대표되는 운동 조직의 지도부가 그들이었다. 노선과 성명을 통해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그들은 곧 386세대의 상징적 존재가 됐고, 정치권 러브콜의 표적이 됐다. 이들 가운데 공식 조직의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정치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지하 조직의 일원들은 보좌관과 비서관, 비공식 참모의 형태로 기성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 됐다. 일부 질시의 눈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386세대 대부분은 학생운동 과정에서 개인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그들에게 암묵적으로 대표성을 부여하고 인정하는 편이었다. 김민석 전 국회의원으로 상징되는 386세대의 스타들이 있었기에, 386세대는 실제 사회 참여 이상의 영향력과 호의적 평가를 누릴 수 있었다.
386 스타, 그 양날의 칼
국민의 정부 당시 분명해진 것처럼 스타들의 존재는 386세대에 행운이자 부담이었다. 이 스타 시스템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몇몇 386세대의 노선이나 언행을 386 전체의 것으로 확대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특히 386세대가 가장 먼저, 가장 공을 들여 진출했던 정치 분야에서 이런 폐해가 두드러졌다.
386 스타들이 연루된 추문이 잇달아 터졌다. 386 의원들이 중심이 되었던 광주 술판 사건과 허인회씨의 큰 절 사건을 비롯해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의 극우 발언 사건도 널리 회자됐다. 급기야 지난 대통령선거 와중에서 김민석 전 의원의 기회주의적 언행은 386세대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결정적으로 나빠지게 된 요인이 됐다.
국민들은 이런 일련의 추문을 몇몇 정치인에 국한시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이 속한 386세대 전반의 문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것은 애당초 소수의 학생 운동가그룹과 그들에게 세대의 명운(命運)을 맡긴 다수의 불안한 동거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 부작용은 너무도 컸다. 예를 들어 이번 여론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386세대의 정치 분야 진출을 386세대의 사회 참여 가운데 가장 나쁘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세대와 상관없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전체 응답자의 69.7%)였다( 참조).
386세대의 행태 가운데 다른 세대와 비교해 일관되게 다른 것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실제 그런 행태가 없을 수도 있다. 있다 하더라도 다른 세대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일 가능성도 있다.
이번 여론 조사에서는 일상적인 편가르기 및 적대감(24.1%), 지나친 정치 지향성(23.2%),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20.6%) 등이 부정적인 행태로 꼽혔다. 이 세대가 지나치게 사회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우려도 높았다(17.1%). 흥미로운 것은 이 응답에 관해서는 각 세대간 인식 차이가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386세대가 스스로 지나친 정치 지향성을 꼽았다면, 386 이전세대는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꼽았다. 반면 비교적 정치 성향이 덜한 386 이후세대는 편가르기와 적대감을 부정적인 행태로 꼽았다(참조).
386세대 자신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때, 정치 지향성과 연공서열 무시라는 행태는 386세대가 처한 환경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스테레오타입의 혐의가 짙은 것. 반면 일상적인 편가르기와 타 세대에 대한 적대감의 경우는 근거가 비교적 뚜렷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다른 세대들 사이에서 386세대는 독선적이며 피해의식이 강하다는 지적을 공공연히 받는 데다가, 그런 지적을 받을 만한 언행도 공공연히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 출범 당시 386 실세 가운데 한 명은 “386세대들은 내용 없는 권위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로 세대간 갈등을 부추긴 적도 있다.
이는 군사 독재 정권의 탄압을 집중적으로 받다가 갑자기 주류 사회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진보적인 의식과 보수적인 현실 사이의 괴리를 겪어온 386세대의 환경에 기인하는 바 크다. 또한 자신들끼리만 비밀스럽게 이데올로기(사회주의와 주체사상)와 저항 조직을 공유해오던 습성에서도 기인한다. 보수층과 보수 언론, 그리고 미국이 자신들을 옥죄려 하고 그런 만큼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쳐야 한다는 독선과 피해 의식은 한마디로 1980년대 진보 진영이 386세대에게 준 유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유연함 갖춰야
신당 논의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분열에서부터 참여정부의 개혁 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 더 나아가서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386세대는 첨예한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세대간의 갈등 역시 386세대 전후가 대척점이 될 정도다. 용어가 탄생하던 당시의 자부심과 기대감과는 달리, 현재 386세대는 국민 통합의 구심점이 아니라 갈등의 진원지가 돼버린 느낌이다. 이 점을 되돌리는 일이야말로 386세대의 역사적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386세대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쏠린 관심과 기대감이 일순간에 엄청난 실망감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386세대 내의 정치권 조기 진출 인사들의 구태에 국민들이 실망하기 시작했고, 참여정부 실세 그룹의 비리 사건으로 이런 실망감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만일 386세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대거 참여한 참여정부가 잘못되는 날에는 386세대 모두가 이 용어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 이전·이후세대들이 그들을 더욱 더 그 용어로 한데 묶어두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386세대는 좀더 유연해져야 한다. 이는 결코 상대적 진보성을 의식적으로 약화시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데올로기를 찾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현실에 적합한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군사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386세대는 상대적 약자·평등·분배·환경 등의 명분에 무조건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소수 비판자 입장에서는 좋은 무기일 수 있으나 주류 운영자 입장에서는 취약점일 수밖에 없다. 386세대들이 참여정부 초기의 국정 운영 시스템에 대거 참여하고 관여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 초기의 혼선과 혼란도 386세대의 이런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86세대가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다른 세대와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세대가 온전히 한 사회의 발전과 도약을 이룬 예는 거의 없다. 386세대 혼자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그것도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신기루에 불과하다.
셋째, 386세대는 보다 다양해져야 한다. 혹은 다양한 사고를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 진출 인사 몇몇으로 상징되는 386세대의 면모를 바꿔야 한다. 386세대는 단순히 정치권 진출 인사나 권력 분점 인사 몇몇으로 대변될 수는 없다. 더욱이 세대 정신이라는 관점에서도, 자신의 이해를 쫓았던 이들보다는 각자의 생업 현장으로 뛰어든 이들이 더욱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이 386세대 안팎에서 여러 갈래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업그레이드 혹은 다운그레이드
정치적으로 동질적이라는 것은 386세대의 최대 강점이었다. 언제든 상황 인식만 같이하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저항이 아니라 참여와 통합의 관점에서는 정치적인 동일성이 오히려 세대적 취약성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한 사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없는 세대는 결코 통합의 주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386세대 안에서 건전한 보수의 지평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세대 전반의 주류 편입으로 일각에서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적인 시각과 주장도 배척하지 말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386세대’라는 용어는 이제 곧 소멸하게 된다. 386세대의 전반부 세대가 이미 40대에 들어섰기 때문에 조만간 386이라는 용어는 486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386이 486이 된다고 해서, 이 세대도 컴퓨터 분야처럼 무조건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반성을 토대로 변신과 변화를 이뤄야 한다. 그것도 자아 도취에 빠지기 딱 좋은 참여정부가 명운을 다하기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명예 퇴진이라는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자기 점검은 건강해지는 길이고, 자기 수정은 승리자가 되는 방법이다. 그러나 자아 도취는 확실한 패자가 되는 방식이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가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작문 기사를 반성하며 온라인에 올린 사고(社告) 중 일부문구다. 이제 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386세대들이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