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지난해 7·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경제특구 지정 등을 통해 자본주의와의 ‘동거 실험’에 들어선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 1년을 맞아 북한의 경제실상과 개혁정책의 속셈을 알아본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뤄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북한식 개방·개혁 정책 추진을 예고했다.
한국은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적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했지만, 껄끄러운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때문에 답답할 뿐이다. 현재 진행중인 6·15 남북정상회담의 뒷거래에 대한 특검의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더욱 혼돈에 빠질 우려가 높다.
세계적인 반전 분위기에도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승리했고 미국의 다음 공격목표가 자국일 수 있다는 판단이 북한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핵무기 개발 위협을 통해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해 유리한 협상고지를 차지하려고 한 ‘벼랑 끝 전략(brinkmanship strategy)’이 오히려 북한에 역풍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보수동맹체제를 이전보다 더욱 견고하게 굳히고 있고, 이를 견제해주리라고 본 노무현 정권은 부시의 벽을 넘기는커녕 생존을 위해 미국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 물론 북한은 워낙 폐쇄된 사회라 변화가 일어나도 그 내막을 적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바깥세계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1990년대 식량부족과 대량아사를 통해 극명하게 표출된 북한의 경제위기가 낳은 ‘개혁과 개방’ 정책에 기인한다. 특히 2002년 7월1일 추진한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이미 북한에 사회경제적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시장경제로의 진전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계획경제로의 복귀를 목적으로 한 포석으로 해석할 것인가. 이에 대한 평가는 그간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개방·개혁 노선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기초할 때만 가능하다. 이 글의 잠정적인 가설은 북한이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를 통해 계획경제의 복구를 위한 시장적 요소를 도입했으나, 실제로는 자본주의와의 제한적 동거를 통해 주체사회주의의 실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폐 기능 강화, 임금·물가 현실화
2002년 7월1일 북한은 물가와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또 가격개혁을 단행해 국가지정 가격을 농민시장의 가격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조정했다. 이 조치로 인해 쌀값은 8전에서 44원으로 550배 인상됐고, 전반적인 물가도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인상됐다. 아울러 노동자들의 임금도 인상돼 그간 100~200원 하던 임금이 2000~6000원으로 올랐다. 이와 동시에 환율도 달러당 2.2원 수준이던 것을 150원 수준으로 높였다. 일부 배급제도 폐지했고, 국가가 제공했던 사회적 서비스도 쌀과 주택을 제외하고 대폭 축소했다.
임금과 물가를 동시 인상한 정책의 목표는 사회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되던 무상교육, 무상치료, 무상보험 등 가부장적 사회복지체제를 일정 정도 완화하고, 물가를 실제 시장가격에 상응하게 조정하려는 것이다. 이는 화폐의 기능을 강화해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겠다는 의도이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일한 만큼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자, 수요와 공급의 기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시장’을 도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조치는 세 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 국가 유통체계의 정상화다. 북한은 1994년 이후부터 식량과 물자의 공급 부족에 시달려 그 결과 정상적인 배급체계가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품은 국가 유통체계를 이탈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농민시장을 통해 공급되었다. 농민시장은 개인 텃밭이나 부업에서 나온 물건을 제한적으로 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일부 공산품까지 거래되는 등 사실상의 ‘자연시장’으로 기능했다. 이는 계획경제 체제인 북한 경제가 사실상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1998년 이후 국가체제를 재정비하고 계획경제체제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농민시장을 통제하고 정상적인 공급망을 복구시켜야만 했다.
둘째, 노동의욕의 상실과 직장이탈 등을 단속하고 동시에 ‘놀고 먹는 현상’, 즉 장사를 통해 불법적 수익을 올리는 비(非)사회주의적 행태를 타파하는 것이다. 1994년 이후 북한의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주는 적은 임금으로만 생활하기 어려워졌다. 또 공장이 자주 조업을 중단하자 부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불가피하게 ‘놀고 먹는 현상’이 나타났고 다시 공장조업 악화와 노동의욕 상실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셋째, 계층분리 현상의 방지이다. 1990년 초반 이래 지속된 경제 위기는 비사회주의적인 영리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만들어냈다. 전자가 주로 당 및 국가의 상층부, 유통이나 무역에 종사하는 계층 등이라면 후자는 사무원, 도시노동자, 열성당원 등이다. 당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사람 역시 후자에 속한다. 7·1조치는 전자에 대해서 더 이상 비사회주의적인 개인 부업이나 부정행위를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없게 하고, 후자에 대해서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7·1조치는 상층부 계층과 비사회주의적 영리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의미한다.
북한의 7·1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공급량의 확보이다. 국가 유통체계를 통해 정상적인 공급이 이루어지려면 수요에 상응하는 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경제상황에서 물자 공급량을 충분히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외부의 경제협력이나 교류, 지원 등이 요구된다.
다른 하나는 화폐개혁 같은 대책이다. 역설적이게도 작년의 경제개선 조치는 인플레이션을 통한 경제 정상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면서 고액권이 유통됐고, 주민들 수중에 사장되어 있는 외화(달러 혹은 엔)를 국가체계 안으로 흡수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두 가지 조건 이외에도 노동자, 농민에 대한 물질적 인센티브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기업 단위 생산량을 늘리는 기술혁신 등 제도적 개선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다 보니, 7·1조치는 지난 반년간 여러 부작용만 양산했다. 기술혁신과 물질적 인센티브는 제도적인 장치 없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또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가운데 생산 병목화로 인해 물자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됐다. 그로 인해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예전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도 생활필수품을 구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 의혹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들어오던 인도주의적 지원은 격감됐고, 미국의 중유공급마저 중단됨으로써 공장조업의 복구는 더욱 더뎌졌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기대했던 재정지원도 이뤄지지 않다보니 경제복구는 지연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부 국영상점은 물품 부족으로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작년 말 중국으로부터 무려 2억~3억달러에 해당하는 물자를 긴급 수입한 것으로 미뤄볼 때, 수요 공급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농민시장이 인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미 농민시장을 포함한 암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동구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이행할 당시의 비율과 거의 비슷하다.
이러한 암시장을 근절하지 않고는 경제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 바로 인플레이션을 통한 7·1조치의 배경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농민시장 양성화 없이 경제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습적 수령체제 유지가 목적
원래 북한은 동구식의 급진적 체제전환보다 중국식 정경분리에 의한 개방과 개혁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중국은 일당체제의 기반 위에서 경제개혁을 과감히 추진, 자본주의 세계경제 참여를 통해 연관 발전(associated development)에 성공했다. 비록 경제개혁이 정치적 다원화를 가져오더라도 일당독재를 통해 시장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기본 방침이라 하겠다.
그러나 세습적 수령체제를 겨냥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정경분리에 의한 점진적 경제개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경제개혁에 따르는 개방화와 다원화가 주체사상에 대한 전인민적 믿음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북한은 중국이 시도해온 경제특구 전략이야말로 세습적 수령체제를 지키는 동시에 물질적 진보를 확보할 수 있는 최선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의주, 개성, 금강산에 경제특구를 계획해왔다. 우선 2002년 9월에 신의주를 홍콩식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9월1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지정하고, 19일에는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함으로써 신의주를 외자유치를 위한 개발특구로 공식 발표했다. 기본법에 의하면 신의주는 무비자, 무관세, 사유재산권 보호 지역이다. 또 신의주에 입법, 행정, 사법권을 부여하고 향후 50년 동안 행정구의 법률제도가 변하지 않을 것임을 명시했다. 이어 9월24일에는 행정장관으로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중국계 사업가 양빈을 임명했다. 그러나 중국당국이 양빈을 비리혐의로 가택연금함으로써 애초의 계획은 무산됐다(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이자 노동당내 실세인 장성택이 양빈의 후임자로 임명됐다고 알려져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 기본법은 지난 1990년대 중국이 제정한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과 용어와 내용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에서, 홍콩형 ‘1국가 2체제’ 개발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1990년대 초반 시도했던 나진-선봉지구의 개방과는 다른 방식을 모색해왔는데, 홍콩, 상해 등 중국의 경험을 나름대로 연구해 신의주 경제특구를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이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상해를 둘러보고 왔다는 점, 상해 방문을 마치고 바로 신의주를 방문해 일련의 ‘신사고’ 정책을 지시했다는 점 등을 미루어볼 때, 북한은 홍콩식 운영과 상하이식 개발방식을 접목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신의주를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본과 기술의 중간 지점이자,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사회주의 북한경제의 완충지대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신의주는 중국시장을 배후로 두고 있으며 현재 북·중 국경무역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또 남북간 연결 공사가 진행중인 경의선의 연결 지점이다. 이와 더불어 신의주가 향후 경제특구로 지정될 가능성이 큰 남포 및 개성공업지구와 서해안 개발벨트를 이룬다는 점이 주목된다. 신의주 경제특구사업은 중국의 견제로 차질을 빚고 있지만, 북한의 개발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4변방 벨트’ 완성
북한의 경제특구 사업은 두 가지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의주같이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개성공업지구처럼 남북합작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개성공업지구는 남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과 경의선 연결구간에서 북측의 시작점이란 점에서 신의주와 성격을 달리한다. ‘개성공업지구법’은 2002년 11월2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채택되었고, 부지 개발과 이용권 등은 남측이 맡아 공사할 예정이다. 현대아산과 한국토지공사가 남측 사업자로 선정되었고, 북쪽에서는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사업자로 나섰다.
개성공단은 남북교류와 경제협력 사업이 제도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업지구법’은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과 달리 남측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남측의 사정과 남북경제협력을 고려한 조항이 많다. 무엇보다 외환거래 자유와 신용카드 사용, 통신수단의 자유로운 활용, 광고활동의 허용 등과 같이 남측 기업들을 배려한 조항들이 눈에 띈다. 공업지구 관리기관의 이사장을 남한측 인사가 맡도록 한 것이나, 그 구성원을 남쪽의 개발업자가 추천토록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개발업자는 하부구조 대상건설이 끝나는 자체로 공업기구개발 총계획에 따라 투자기업을 배치해야 한다’(18조)고 함으로써 서두르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신의주 경제특구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남측에서는 당시 김대중 정권의 임기 말이 다가오자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경협을 서둘러 제도적인 기반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북측의 의지로 읽힌다.
북한은 지난해 11월13일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제정한 데 이어 23일 금강산을 ‘금강산 관광지구’로 지정함으로써 또 하나의 특구를 만들었다. 금강산 관광지구는 독자적인 관할지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출입 자유와 전환성 화폐의 사용, 남측으로의 이동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육로 관광에 대비하고, 금강산 개발과 관련한 여러 가지 편의를 보장하고 있다.
이로써 북한은 1991년의 나진-선봉지구에 이어 신의주, 개성, 금강산을 특구로 지정함으로써 ‘4변방 벨트’를 경제특구 형식의 개발지구로 계획했다. 이는 내부의 자원만으로는 ‘경제강국’ 건설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남북간 경의선 및 동해선이 이어지고 나면 대륙횡단철도(TCR, TSR, TKR)와 연계되는 북한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북한의 이러한 개발방식은 동유럽의 급진적 체제전환의 경험과 성격을 달리하며, 동시에 중국이 진행해왔던 점(點)-선(線)-면(面) 형식의 개발방식과도 구분된다. 방식 차원에서는 중국형의 점진적 모델에 가깝지만, 신의주-개성-금강산 등으로 이어진 특구 지정 속도는 매우 급격했다. 특히 7·1조치는 그 파격성과 속도에 있어 충격요법(shock therapy)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특구는 이중 전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안으로는 계획체제의 복귀를, 밖으로는 자본과 기술을 위한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북한이 주장했던 ‘모기장식’ 개방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북한 인민들은 이미 농민시장에서 자본주의적 경제 생활을 터득하고 있다. 한 탈북자가 2001년 10월 함경북도 농민시장에서 몰래 찍은 농민시장의 모습.
이러한 북한의 선택은 일련의 정책상 변화의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북한은 1998년 ‘김일성 헌법’을 채택해 주석제를 폐지하면서 수익성, 이윤, 원가 등의 개념을 헌법에 등장시켰다. 농업부문에서는 분조관리제를 개선해 농민에게 일종의 물질적 인센티브를 허용했다. 북한은 이미 1996년에 분조관리제를 7~8명으로 축소하고, 친인척간에 구성되도록 했다. 또 생산량 할당 기준도 최근 3년간 평균수확고와 그 이전 10년간 평균수확고를 합해 이를 다시 평균한 수치를 적용해 부분적으로나마 현실화했다.
이에 더해 분조원이 생산 초과분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며 최근에는 분조 규모를 3~5명으로 더욱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분조관리제를 중국식 농업개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생산계획을 현실화하고 물질적 인센티브를 강화해 체제의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삼았다고 보는 게 옳다. 북한은 또 1998년부터 대규모 토지정리사업을 전개해 일대 농업혁신의 기반을 마련했다. 토지정리사업의 목적은 영농 기계화를 통한 국영농장으로의 전환에 있다. 7·1조치 이후 북한은 협동농민들에게 토지사용료를 징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로 북한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핵심 키워드 삼아 북한식 산업구조조정을 해왔다.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연합기업소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전문적이고 실리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폐지할 것은 폐지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했다.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는 연합기업소는 2001년 들어 모체기업과 전문기업을 중심으로 다시 재조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기업소의 재조직은 ‘실리’를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바꾸겠다는 북한의 의지로 보인다. 새로운 연합기업소는 내각의 성과위원회 산하에서 지도와 통제를 받게끔 되어 있다.
셋째로 ‘개건(rebuilding)’과 ‘개선(improvement)’으로 알려진 북한판 개혁개방의 추진이다. 개건이 주로 시설의 교체와 현대화, 기술혁신 등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면, 개선은 운영의 합리화, 과학화 등을 의미한다. 북한은 개건과 개선을 통해 ‘낡고 뒤떨어진 것’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교체하고, 과학기술을 통한 새로운 경제 건설을 추진하고자 한다. 개건과 개선에 이어 2001년 김정일의 비공식 중국 방문 이후에 나온 ‘신사고’는 북한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길에 들어설 것을 말해준다.
IT산업 중심으로 ‘단번 도약’
‘신사고’는 북한이 최근에 부쩍 강조하는 ‘실리’ ‘과학기술’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은 2000년 공동사설에 사상 중시, 총대 중시와 함께 과학기술 중시가 제시되고, 강성대국 건설의 3대 기둥으로서 과학기술을 자리매김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에 앞서 1999년에는 ‘과학기술자대회’를 개최하고 내각에 새로이 ‘전자공업성’을 설치했다. 이는 과학기술을 경제강국 건설의 키워드로 삼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다.
북한의 경제강국 건설 전략은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단번 도약’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IT, 첨단산업 등에 국가적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시장을 통한 분배적 효율성을 향상시키기보다는 기술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술적 효율성은 체제 유지의 부담을 적게 한다는 점에서 분배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보다 위험성이 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개건과 개선, 실리, 과학기술을 강조한다고 해도 내부의 자원과 기술의 한계 탓에 ‘도약형 발전’을 이룰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북한으로선 외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붕괴된 계획경제를 정상화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이는 2002년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됐는데, 그것이 바로 7·1조치와 경제특구 건설인 것이다.
7·1조치와 경제특구 건설은 한편으로는 시장요소를 수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적 판단의 결과다. 이미 북한은 무역성 산하에 ‘자본주의 제도연구원’을 수립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 대외무역 시장을 동남아시아 등 자본주의 국가군으로 확대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자본주의를 배우기 위해 연수생들을 호주, 캐나다, 유럽 등에 파견했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자본주의 경제학’ 과목을 개설했다. 최근 북한 문헌은 부쩍 ‘자본주의 국가들과 무역 및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이 없어지고 자본주의 나라와 거래하자면 외화가 필요하다’는 말 속에는 대외무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와, 이를 위해서 제품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현실적 절박함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1년 10월 김정일은 경제개선조치를 취하기 전, ‘강성대국 건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관리를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문헌을 통해, 국가계획위원회의 계획은 군수산업과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분야로 축소하고, 나머지는 기업과 지방에 대폭 이양할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발언은 북한의 내부 경제체제를 본격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결국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개혁체제를, 외부적으로는 개방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자본주의와의 제한적 동거’를 잠정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북한은 지구화된 자본주의 세계경제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궤도수정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주의와의 제한적 동거가 제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체제 변화해야 성공
7·1조치나 경제특구 건설을 통한 ‘도약발전’은 여러 문제점을 갖는다. 그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 여부가 가장 주목된다. 7·1조치와 경제특구 설치 이후 곧바로 터져나온 핵개발 파문과 미사일 문제,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 선언 등 미국과의 초강경 대치는 북한의 경제개혁 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은 일단 경의선 연결, 금강산 육로 관광, 동해선 연결, 개성 공단 착공 등 남한과의 경협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려고 하고 있다. 우선 남한과의 제도적인 경제협력 장치들을 마련함으로써 실리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북한이 ‘개방과 개혁’으로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외에도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그에 따른 배상금 문제를 풀어야 하고 남한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자본주의와의 제한적 동거를 결심한 이상,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와 기업경영, 국제무역 등을 학습하고 이를 내부경제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경제운영 및 관리능력 또한 키워야 할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은 ‘북한 불변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또 ‘북한 변화론자’들이 예견했던 속도를 뛰어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시작에 불과하지만, 필연적 과정인 북한의 경제개혁은 앞으로 더 많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시장경제와 시민사회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 중앙명령적 계획경제 아래에서 시장은 공식적으로 부정되어 왔다. 시장은 연대를 깨고 계급을 만들어내는 ‘나쁜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국가에 의한 물자공급체제는 자연적인 시장의 형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민들은 오래 지속된 경제위기에 처해 생존을 위해 물품을 암시장에서 사고 파는 요령을 배우게 됐다. 생필품에 대한 국가지정 가격체계가 무너지고 재화와 서비스가 농민시장을 포함하는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 북한에는 전에 볼 수 없던 상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제 돈벌이는 거의 모든 인민에게 번졌다. 이러한 ‘초급적 시장’의 발생은 도덕적 인센티브에 입각한 기존의 노동윤리와 노사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계획경제의 실패가 시장경제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북한의 사회단체들이 관변 조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는 차치하고, 주거와 여행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시민사회를 운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실 인민들은 ‘시민’이라기보다 ‘신민’에 가깝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인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저곳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공식적 배급체계가 무너진 마당에 북한 당국은 인민들의 이동과 이주를 단속하기 어려웠다. 중국에 있는 수많은 탈북자들이 웅변하듯, 인민들 사이의 왕래와 거래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이로 말미암아 외부세계와 접촉하게 된 북한 인민들이 북한체제와 외부세계를 비교분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서로 다른 생각들이 교환되는 ‘유아적 공론장’이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형성은 요원하지만, 공론장의 출현은 체제에 대한 비판과 모색이 이뤄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구사회주의 경험이 보여주듯 경제 재건과 개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수령사회주의체제의 유지를 위해 추구되는 북한 경제개혁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개방과 개혁정책은 시장과 공론장을 형성시켜 주민의 불만을 잠재적으로 키울 수밖에 없다.
분명 북한에는 시장경제와 시민사회의 맹아가 보인다. 그것이 경제위기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인 동시에, 경제개혁의 불가피한 결과란 사실이 흥미롭다. 이제 북한은 좋든 싫든 자본주의에 의한 물질적 토대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래는 밝지 않다. 왜냐하면 물적 토대 재건과 개선만을 위한 정치로는 경제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을 체제전환을 위한 물적 토대의 마련으로 생각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
그러나 현재의 수령적 세습체제 아래에서 체제전환을 향한 개방성과 유연성을 보이기는 거의 어렵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도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제한된 경제개혁을 통해 생존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수령체제의 변화 없는 경제지원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북한의 체제전환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반 경험과 달리 한반도라는 특수한 ‘분단 환경’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변화가 남한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 사이의 사회문화적 교류와 정치경제적 협력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의 복잡하고 상충적인 이해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 북한의 변화는 한반도 통일이란 미래의 거대한 전변(轉變)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좀더 냉철하게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