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호

논란 많은 미국의 소형 핵무기 개발

NPT체제 위협하는 오만과 일방주의가 문제

  • 입력2003-06-25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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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하기 어려운 지하 군사시설 공격용으로 핵 벙커버스터 ‘미니누크’ 개발에 나섰다. 이 소형핵무기에 대해 북한은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니누크는 북한 핵시설 정밀타격의 비밀병기가 될 것인가. 실현 가능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는 미니누크 개발의 속내를 알아본다.
    논란 많은 미국의 소형 핵무기 개발
    지난 5월21일 미 상원은 1994년 이후 5000t TNT 이하 위력을 갖는 소형 핵무기(이하 미니누크)의 연구개발을 금지해온 ‘스프랫-퍼스 수정안’을 폐기할 것을 결정했다. 같은 달 22일엔 미 하원도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생산을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로써 미국은 지난 10년간 스스로 금지해온 신형 핵무기 연구개발과 핵실험을 신속히 재개할 수 있게 되어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제 핵 비확산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또한 많은 지하 군사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벙커버스터용 미니누크(이하 핵 벙커버스터)의 잠정적 타깃으로 분류되는 북한은 미국의 미니누크 연구개발을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한 듯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미니누크 연구개발의 필요성은 지난해 1월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처음으로 공식 거론됐다. 북한, 이라크, 이란 등 7개국에 대해 유사시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한다고 건의한 이 보고서는, 다른 나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NPT 의무를 위반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핵전략 의도를 드러내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NPR이 역설하는 미니누크의 필요성은 두 가지다. 우선 대형 핵무기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해 실전에서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낮은 위력의 미니누크는 기존의 핵 억제력 차원을 떠나 상황에 따라 좀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터졌다 하면 인류의 운명을 위협할 수 있는 대형 핵무기 대신 부분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소형 핵무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두 번째 논리는 미니누크의 사용으로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할 수 없는 생화학무기 저장고 등 지하 깊은 곳의 콘크리트 시설물(HDBT)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지하 관통형 핵무기의 경우 주변지역에 방사능을 퍼뜨리지 않으면서 지하 군사시설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핵 벙커버스터 신화’의 허구성



    그러나 이러한 NPR의 주장은 두 가지 모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우선 소형 핵무기의 필요성에 대한 첫 번째 논거는 국제 핵 비확산체제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단순히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대국가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차원이 아니라, 핵무기와 관계없는 분쟁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NPT 체제를 약화시키고 세계의 안보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논거는 아예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핵 벙커버스터 운반체로 고려되고 있는 B61-11의 경우, 그 속에 담긴 핵 기폭장치가 물리적으로 파손되는 것을 피하려면 마른 지표면에서 약 6m 깊이 이상을 관통하기 어렵다. 물리학 이론에 입각해 살펴볼 때 콘크리트에 대한 관통력은 3m 길이 핵 벙커버스터의 경우 12m 내외가 최대치로 알려져 있다. 지하벙커가 대부분 콘크리트로 구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12m 이상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핵 벙커버스터는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무기다.

    또한 미국은 이미 이를 넘어서는 관통력을 가진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폭발력의 한계 때문에 지하 깊은 곳의 HDBT 파괴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미군은 현재 지하 15m 정도의 HDBT는 충분히 섬멸할 수 있는 강력하고 정확한 ‘재래식’ 벙커버스터를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걸프전 당시 미 공군이 사용한 레이저유도 GBU-28은 바그다드의 지하 9m 이하 HDBT를 파괴했다. GBU-28을 개량한 GPS유도 GBU-37의 경우, 성능은 GBU-28과 비슷하지만 정확도는 더욱 높아졌고 전천후 사용이 가능하다.

    설사 12m 이하의 깊은 지점까지 관통해 들어갈 수 있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론적으로 5000t TNT 위력의 핵폭발이 지표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지하 약 200m 이하에서 폭발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지표면에 방사능이 누출되는 것은 막기 어렵다. 한 예로 1960년대 미국 네바다에서 수행된 지하 55m에서의 2300t TNT 위력의 핵실험은 지표면에 약 120m 폭의 분화구를 남기고 방사능 낙진을 2.4km까지 날려보냈다.

    논란 많은 미국의 소형 핵무기 개발

    미 공군의 B2 폭격기가 핵 벙커버스터용 운반체로 검토되고 있는 B61-11을 알래스카 실험장에서 공중투하하고 있다(큰 그림).<br>재래식 벙커버스터인 레이저유도 GBU-28의 콘크리트 관통실험 모습(작은 그림)

    따라서 ‘주변 지역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특정 지하시설만을 소멸시킨다’는 핵 벙커버스터는 물리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허구’다. 오히려 이 무기가 투하되었을 경우 지표면 근처에서 폭발해 그로 인한 방사능 낙진이 주변지역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있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의 경우 1000t TNT 핵 벙커버스터의 폭발만으로도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 한다. 이쯤 되면 ‘필요에 따라 사용이 가능한 소형 핵무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생화학무기 지하저장시설을 목표로 할 경우, 핵 벙커버스터 투하로 방사능 낙진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를 주변지역으로 퍼뜨리는 이중의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가중될 피해에 대해 미국의 적잖은 핵무기 전문가들은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및 재야 핵 전문가들이 미니누크의 연구개발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내에서조차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미니누크에 대해 왜 부시 행정부는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가 미니누크 개발을 시도해온 일련의 과정과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 정부는 2004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에서 미니누크 개발의 이유로 ▲차세대 핵무기과학자 및 엔지니어의 훈련 ▲국제안전보장 환경이 변화하는 경우나 보유중인 핵무기에 예상치 못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할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핵무기 사업 재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보유중인 핵무기의 기술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미 SSP(Stockpile Stewardship Program)가 가동되고 있으므로, 미니누크 연구개발은 미국 내 핵무기 개발 연구진들의 ‘밥그릇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니누크 개발의 역사는 1991년 걸프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걸프전을 통해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인되자, 핵무기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무기의 필요성을 재강조하는 ‘리드 보고서’의 내용이 1991년 언론에 새나갔다. 전 공군장관 토머스 리드(Thomas C. Reed)의 책임 하에 작성된 이 보고서는 “잠재적 핵무기보유국이나 전제국가에 대처하기 위해 핵 파견군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핵무기 선제공격의 옵션을 유지하며 특히 생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핵무기로 보복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991년 가을에는 핵무기 연구로 유명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토머스 다울러(Thomas Dowler)와 조지프 하워드(Joseph Howard) 연구원이 소형 핵무기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전차나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1000t TNT 이하 위력의 미니누크를, 부수적 피해 없이 HDBT를 파괴하기 위해 1만t TNT 위력의 핵 벙커버스터를 사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존 스프랫(John Spratt)과 엘리자베스 퍼스(Elizabeth Furse) 의원이 1993년 저위력 핵무기의 연구개발을 금하는 법안을 제안하여 통과시켰다. 이것이 앞서 말한 ‘스프랫-퍼스 수정안’이다. 이로써 1994년부터 미국 내 관련 연구개발은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걸프전에서 기존 재래식 무기로는 이라크의 HDBT를 공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한 미국 정부는 1994년 통합전략군(STRATCOM)과 전투공군(ACC) 차원에서 HDBT 파괴용 무기개발의 필요성을 검토했다. 이후 미군은 벙커버스터용 무기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1997년 시작해 1999년에 완결한 비밀 연구 ‘사구(砂丘·Sand Dune)’이다. 이 연구결과는 한 NGO에 의해 공개됐는데, “이미 존재하는 것은 물론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재래식 무기도 모든 종류의 HDBT를 파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분석하고 HDBT 파괴용 핵무기, 즉 핵 벙커버스터의 개발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증가되는 예산, 살아남은 연구진들

    현재 미국이 핵 벙커버스터 개발을 위해 진행중인 프로그램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 국무부와 에너지부는 군사적 필요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신형 또는 개량형 핵무기 개념에 대한 검토와 평가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핵무기 설계를 위한 실행가능성 연구와 비용연구의 적절한 범위 및 옵션 선정기준을 정하기 위해 ‘공동핵계획그룹’을 설립해 HDBT 파괴에 관한 보고서를 2001년 10월 미 의회에 제출했다.

    미 국무부와 에너지부가 작성한 이 HDBT 보고서는 재래식 무기 또는 핵무기로 공격할 수 없는 HDBT를 파괴하기 위해 기존의 핵무기를 어떻게 개량할 것인가에 대한 초기단계 연구를 완료했고, 2003년까지 국무부와 에너지부에서 관련 연구예산이 편성될 수 있도록 적합한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종합검토를 진행중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밖에도 핵 벙커버스터를 비롯한 소형 핵무기의 필요성과 그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2000년 6월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핵무기연구부문 책임자 스티븐 영거(Stephen Younger)는 ‘21세기에 있어서의 핵무기’라는 보고서에서, 2001년 1월 국가공공정책연구소(NIPP)의 케이스 페인(Keith B. Payne) 등은 ‘미국 핵전력 및 군비관리의 원리와 요건’이라는 보고서에서, 2001년 3월 샌디아 국립연구소의 폴 로빈슨(Paul Robinson) 소장은 ‘21세기의 핵무기정책을 추구하며’라는 제목의 백서에서 각각 미니누크 역할의 중요성과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지적 자산이 점차 줄어듦에 따라, 국가 비상시에 핵무기를 재설계하는 작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미니누크의 연구개발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군 출신이거나 핵무기 관련 국립연구소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관련예산 확보와 사업유지를 통해 핵무기 개발인력들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방위정보센터(CDI)의 센터장인 브루스 블레어(Bruce G. Blair)는 지난 5월25일자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사적 이익을 위해 미니누크 개발을 주장하는 핵무기 개발 연구진들 때문에 미국 정부도 미니누크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냉전 이후 핵무기 자체의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위기에 처했던 관련 개발자들과 연구소들은 소형 핵무기 개발추진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 상하원이 지난 5월말 통과시킨 4005억달러 규모의 2004년도 국방예산안에는 이미 미니누크 연구예산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관련연구는 정부 사업으로 공식추진되게 된 것이다. 핵무기 연구개발사업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지난 3년간 미국의 관련 예산은 2002년 55억4000만달러, 2003년 59억5000만달러, 2004년 63억8000만달러로 계속 증가해왔다.

    미국이 북핵 개발 부추긴다?

    미니누크 개발결정에 얽혀 있는 미국 내 핵무기 개발그룹의 이해관계 못지않게 시선을 끄는 것은 이 결정이 갖는 국제정치학적 의미일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의 미니누크 개발은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추고, 핵무기보유국으로서 미국이 지켜야 하는 NPT 상의 의무를 저버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상 새로운 핵무기가 필요 없음을 절감해 신형 핵무기 개발과 핵실험 일시중지를 승인했다. 이러한 조치는 다른 핵무기 보유국들의 귀감이 되었고, 이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도 1998년 실험 이후 핵실험 중지에 동참하는 등 국제 핵 비확산체제 확립에 기여했다.

    그러나 2003년 ‘아들’ 부시 대통령은 자국을 위시해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기울여온 핵군축 노력과는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자신들이 명명한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핵무기 연구 및 핵실험을 재개해 핵능력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행보는, 다른 나라의 핵경쟁을 유발해 NPT 및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11년 전의 결정과는 정반대로 국제 핵 비확산체제에 손상을 주는 이기적인 핵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외부적으로는 북한, 이란 등 미국이 정한 소위 테러지원국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핵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방향이다. 미국이 구사하고 있는 이러한 핵전략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특히 한반도를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는 북핵 문제의 해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이러한 논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과연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명분이 있을까. 부시 행정부의 이율배반이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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