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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인 발자취를 찾아서 ②

연해주 초기 한인사회의 중심지 연추(延秋) 마을

깊고 기름진 검은 땅, 새로운 희망을 심은 터전이었건만

  • 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연해주 초기 한인사회의 중심지 연추(延秋)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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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구릉을 서둘러 내려와 추카노보 마을, 아니 과거의 ‘니즈네예 얀치헤’, 즉 하(下)연추로 향했다. 필자가 추카노보 마을을 처음으로 답사했던 것은 1년 전인 2001년 7월로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독립운동사 조사활동의 일환이었다.

추카노보는 크라스키노 서쪽 외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크라스키노로부터 1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자동차로는 약 10분 정도가 걸린다. 2001년 첫 번째 답사에서 필자는 마을 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추 마을이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추 마을은 ‘베르흐네 얀치헤’(상〔上〕연추), ‘니즈네예 얀치헤’(하〔下〕연추), ‘스레드네예 얀치헤’(중〔中〕연추)로 나눠져 있었고, 현재의 추카노보 마을이 그 중 ‘니즈네예 얀치헤’라는 것이다. 이번 답사의 가장 큰 목적은 이들 3개 연추 마을의 위치를 직접 답사하는 것이고, 아울러 ‘니즈네예 얀치헤’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일행은 먼저 추카노보 마을의 중심에 있는 촌소비에트(Selsoviet) 사무실을 찾았다. 촌장은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이름은 갈리나 표도로브나(Galina Pyodorvna)였다. 그녀로부터도 추카노보가 과거 ‘니즈네예 얀치헤’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추카노보로 들어오는 입구의 수하야 강가에 교회와 학교가 있었는데, 이곳을 ‘얀치헤’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또 북쪽으로 약 6km 떨어진 위치에 ‘스레드네예 얀치헤’가 있었으나 현재는 폐허 상태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스레드네예 얀치헤’를 말하면서 여러 차례 ‘카레이스키 사드(Koreiskii cad)’, 즉 ‘한인들의 정원’이라는 표현을 쓴 점이다. 한인들이 이 곳에 살구나무 등 과수나무들을 많이 심고 살았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스레드네예 얀치헤’로부터 다시 6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베르흐네 얀치헤’가 있으나, 그곳 또한 현재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촌장은 필자가 이들 세 연추 마을이 있었던 곳을 노트에 그려달라고 부탁하자 크라스키노에서 추카노보에 이르는 길, 추카노브카강과 세 연추 마을의 위치를 자세하게 그려주었다. 촌장은 장마로 인해 길이 허물어졌기 때문에 ‘스레드네예 얀치헤’와 ‘베르흐네 얀치헤’에 가려면 우리가 타고 온 미니버스로는 갈 수 없고 힘이 좋은 군용트럭을 타고 가야 한다면서 트럭 주인을 수소문해주었다.

트럭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일행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어느 집의 텃밭에서 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덮어놓은 나무판자를 들어내고 보니 과거 한인들이 사용하던 우물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집집마다 수돗물이 설치되기 이전까지 러시아 주민들은 한인들이 사용하던 우물에서 물을 떠다 사용했다고 한다.

촌소비에트 사무실로 다시 갔을 때, 촌장은 마을의 도서관 관장으로 있다가 은퇴한 그리첸코 나제즈다 야고로브나(Grichenko Nadezhda Iagorovna) 할머니를 소개했다. 그녀는 자기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었다며 과거 하연추 마을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연추 마을에는 러시아정교회 건물과 학교, 상점 등이 있었고, 교회에선 바라바쉬를 비롯하여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모여 예배를 봤다고 한다.

흔적도 희미한 공동묘지 터

대화 도중 촌장인 갈리나가 매우 귀중한 자료를 들고 나왔다. 1952년에 화가가 그린 두 장의 그림이었다. 세 개의 둥근 첨탑이 있는러시아정교회 전경을 그린 것이었는데 그림 아랫부분에 ‘니즈네예 얀치헤 마을’을 뜻하는 ‘s. “N” Ianchikhe’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는 ‘1870년에 세워졌다’고 쓰여져 있었다.

잠시 후 군용트럭이 도착했다. 일행은 연추 마을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나이 많은 노인 한 명과 함께 중연추 마을과 상연추 마을을 찾아 나섰다. 장마 직후라서 길이 매우 험했다. 촌장의 말대로 한 6km를 달린 후 차가 멈춰섰다. 길 한편으로 트럭 주인을 뒤따라 잡초덤불을 헤치며 들어가니 연자방아 아래맷돌 한 개가 나타났다. 맷돌 주변에는 붉은 벽돌과 기와조각들이 온전하거나 부서진 상태로 흩어져 있었고 가옥에 쓰인 것이 분명한, 불에 탄 목조 골조들도 눈에 띄었다. 중연추 한인마을의 유적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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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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