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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신분 세탁, 청부살인, 臟器 매매…불법 브로커 판치는 온라인 채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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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저희도 수요자를 만나기 어려웠고, 수요자 역시 저희 같은 조직을 만나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생긴 후 더 쉽게, 더 많은 수요자들과 만날 수 있어요. 사실 저희도 놀라워요. 위조 신분증을 원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00씨처럼 신용불량자가 된 20대도 있고, 사업에 실패한 중년남성에 범죄자들까지…. 하지만 우리는 만들어만 주면 되는 거니까 그 주민등록증이 어떻게 쓰일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착수금으로 100만원을 달라는 김씨에게 기자는 “생각해본 후 연락을 주겠다”며 자리를 떴다.

유명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위조 신분증을 매매한다는 글이 널려 있다. 이번에는 채팅사이트에 ‘주민등록증’이라는 방을 만들어놓고 기다리자 1시간 만에 20여명이 들어왔다. 온라인 브로커들이 부르는 가격은 20만원에서부터 8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또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로 만든 가짜 번호에 의뢰자의 사진을 입혀 만드는 조잡한 것에서 실제 존재하는 주민등록번호로 만드는 경우, 앞에서 언급했듯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귀화시키는 방식까지 위조 방법도 다양했다.

한 브로커는 “바지(주민등록증의 원래 소유자)가 직접 동사무소에서 재발급 받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의뢰하신 분과 얼굴이 비슷한 사람으로 골라 절묘하게 합성, 작업하죠. 저희는 바지만 150명 정도 보유하고 있어요. 현재도 회원을 모집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모든 연령대 주민증 위조가 가능할 겁니다”라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다.

주민등록번호 건당 1만원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채팅방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팔겠다는 이가 꽤 많다. 보통 1만원에 거래된다.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A양은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5명에게 팔았다고 했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만 말해주고 1만원씩 받는 걸요. 보통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팩스로 넣어달라고 해요. 또 몇몇 사람들은 특정 나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원하기도 하죠. 그래서 아는 언니의 주민등록증을 몰래 복사해 보내준 적도 있어요.”

이렇게 제공한 자신의 명의로 어떤 범죄가 일어난다 해도 이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현행 주민등록법 제21조는 타인의 주민등록증이나 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한 사람은 처벌하나 제공한 사람의 경우 채무이행의 확보 등의 수단으로 직접 제공한 것이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주민등록증이나 번호를 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유출됐는지 모르겠다고 발뺌하면 처벌할 방도가 없는 것. 그래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팔겠다는 사람이 늘고, 이 정보를 모아 되팔거나 이를 바탕으로 위조 신분증을 만드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월25일 인터넷에서 개인정보나 신분증을 거래한 사례가 공식적으로 처음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는 포털사이트에서 구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로 인터넷 신용카드를 충전해 물건을 샀다 되파는 형식으로 1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이모씨 등 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카페를 통해 주민등록번호와 신용카드번호 등 개인정보와 주민등록증 50여장과 운전면허증 20여장을 구입했다고 한다. 경찰에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런 식의 개인정보 및 신분증 거래는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양근원 계장은 “가장 돈이 되는 거래가 가장 활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금지 약물이나 포르노 등을 매매하거나 중간에서 알선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선 물건을 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개인정보나 신분증 등은 구하기가 쉽고 또 원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거래가 활발할 수밖에 없죠.”

문제는 이렇게 거래된 개인정보와 신분증이 범죄에 이용된다는 데 있다. 특히 범죄에서 필수품처럼 돼버린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타인명의의 휴대전화와 통장을 일컫는 말로 대다수 거래가 온라인 상에서 이뤄진다.

대포폰, 선불폰, 막폰

“선불폰+통장셋트(22만원)! 명의 필요 없는 선불폰입니다. 경인지역은 직거래하고요. 지방은 당일 고속버스로 보내 드립니다. 가격은 12만원부터입니다. 다음으로 통장입니다. 통장+카드=10만원, 통장+카드+텔레뱅킹=12만원입니다. 세트로 하시면 22만원에 드리겠습니다. 전화주세요.”

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선불폰’을 입력하자 무려 295건의 문서가 검색됐다. 내용은 앞의 인용문구와 대동소이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이라고 치면 ‘금칙어’에 걸려 검색이 안 되지만 비슷한 의미인 ‘선불폰’으로는 검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판매업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선불폰 명의는 하나에 1만원씩 주고 사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명의로 휴대전화가 개설됐는지도 몰라요. 별다른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1년 이상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제전화 많이 할 일 없으면 쓰고 버려야 하는 ‘막폰’보다 ‘선불폰’이 훨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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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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