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김정일 후계 전망|수령론 존속 여부, 고영희 개인숭배 주목해야

  • 글: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sccheong@sejong.org

    입력2004-04-28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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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 2004년 4월호에 실린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어디까지 왔나’에서 통일정책연구소 이기동 연구위원은,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위원의 논문 등 신년공동사설을 분석해 후계구도를 관측한 시도에 대해 ‘설득력이 약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연구위원이 반론을 포함해 김정일 후계문제의 핵심쟁점과 현황을 재검토하는 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북한 관련 최고 관심사인 후계문제 분석이 깊이를 더할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정치적 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관심을 끌었던 주제는 주로 김정일 정권의 내구력이나 붕괴가능성, 당·군 또는 당·군·정 관계의 변화, 군사국가화 문제 등이었다. 반면 여러 가지 이유로 김정일의 후계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학계에서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몇 편의 글이 발표됨으로써 북한의 후계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몇 차례 글을 쓴 바 있는 필자로서는 매우 반가운 흐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정일 후계문제에 대한 논의수준은 시작단계에 놓여 있는 형편이고, 후계문제에 대해 여전히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월간조선’ 2004년 2월호에 실린 본인의 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통일정책연구소 이기동 연구위원의 글이 ‘신동아’ 4월호에 실렸다. 이에 따라 필자는 불가피하게 이에 대해 재반론을 하고 그러한 비판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 박사의 글에 대한 반박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먼저 북한의 후계문제에 관련된 제반 쟁점들을 정리함으로써 이 주제와 관련된 여러 ‘설(說)’ 중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것과 신뢰하기 어려운 것을 구별해내고자 한다. 또한 북한에서 후계자 결정과 관련된 준비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에 대한 판단을 제시할 것이다.

    [쟁점 1] 왜 지금 후계문제가 거론되나

    필자가 최근에 김정일의 후계문제 조기가시화 가능성을 지적했을 때 일부 연구자들은 ‘김 위원장이 아직 젊고 건강한데 후계문제에 대해 벌써부터 신경을 쓸 필요성이 있겠는가’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은 북한의 실제입장을 무시한 채 남한중심적 편견으로 후계문제를 바라보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후계자 지명의 시기와 관련하여, 북한은 이전부터 ‘임종 시기에 유언을 통해 자기의 계승자를 지명하거나 잘되는 경우 생전에 자기의 후계자를 지명하는 데 머무르고, 영도의 계승은 대체로 수령이 서거한 다음에 진행하는 방식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고 지적해 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혁명위업을 계승하는 지도부에 야심가, 음모가, 변절자들이 끼여들 틈을 주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혁명위업을 순결하게 정상적 궤도에서 이어나가기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기 위해서는 수령의 생존시에 후계자를 내세우고, ‘수령의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결국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더라도 북한 입장에서는 혁명의 미래를 위해 일정시점에서 후계자를 지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는 김정일의 나이가 만 62세로 비교적 젊다고 볼 수 있지만, 후계자를 지명한 후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에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지금 후계자를 결정한다고 해도 반드시 이르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환갑이 된 1972년에 북한에서 후계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그가 만 62세가 된 1974년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웠으므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미 김정일은 후계자를 결정해야 할 나이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김정일의 나이보다도 그의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는 김정철의 나이에 있다. 김정철은 현재 만 23세로 매우 젊기 때문에 그의 나이가 북한 내부에서 후계자 공식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는 가장 주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쟁점 2] 후계자는 꼭 김정일의 아들이어야 하나

    일부 연구자는 김정일이 그의 아들이 아닌 다른 인물 중에서 후계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 근거로 김정일이 “아들은 후계자로 불가(不可)하다”고 말했다는 중국측 인사의 발언을 들고 있다. 그런데 필자도 잘 알고 있는 이 중국 인사는 북한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다. 또한 3대에 걸친 부자간 권력승계를 김정일이 피할 것이라는 주장은 북한의 후계자론과 배치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북한은 ‘수령과 혈연관계에 있는 걸출한 인물이 후계자로 추대되는 경우 그것을 덮어놓고 ‘세습제’라고 악평하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은 ‘매우 비이성적이고 반역사적인 사고’라고 주장해 왔다. 또한 북한은 김정일의 가계가 ‘조선근대역사의 첫 시기부터 대를 이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워 온 가장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따라서 ‘절세의 백두산 위인가문’인 김정일 가계에서 태어난 자손은 후계자로 지명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 아들 이외의 다른 인물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연구자들은 대체로 김정일의 매제로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1부부장을 맡고 있는 장성택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과 장성택은 나이 차이가 네 살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갑자기 후계자를 지명해야 할 비상 상황이 오지 않는 한 그를 후계자로 지명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특히 ‘후계자 추대 문제 자체가 세대교체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으므로 김정일과 같은 세대인 장성택을 후계자로 내세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정치문화를 고려할 때 김정일이 다음 세대에서 후계자를 결정한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들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쟁점 3] 수령론은 폐기되었나

    북한에서 수령론과 수령의 후계자론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은 스스로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에서 수령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수행하는 데서 수령의 후계자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의 문헌들은 후계자를 ‘인민대중의 뇌수, 통일단결의 중심, 당과 혁명의 최고영도자’로서 수령의 지위를 이어나가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즉 수령의 후계자는 수령과 동일한 지위 및 역할을 보장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동 박사는 ‘신동아’ 4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수령론이 퇴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후계자론에 따르면 수령의 후계자는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을 완전하게 계승하도록 되어 있으나, 김정일 위원장 본인이 이미 수령의 완전한 계승자가 되기를 포기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또한 수령론은 이미 죽은 김일성 주석을 신격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그 용도가 제한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문헌자료와 발언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 북한의 주요 통치담론 중 하나인 강성대국론이 처음으로 제시된 1998년 8월22일자 ‘로동신문’ 정론은 ‘수령중심의 강성대국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 문헌에서는 아예 김정일에 대해 직접 ‘수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김정일민족관’이라는 책을 보면 ‘실로 우리 민족이 오늘 김정일 장군을 위대한 수령으로 높이 추앙하고 그 분을 따르는 것은 그 분께서 민족의 참다운 지도자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께서는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열렬한 복무정신을 지니신 참다운 민족적 수령인 것으로 하여 남북민중 모두의 한결같은 사랑과 풍모를 받고 계신다’(165쪽)고 주장하고 있다.

    수령론의 존속 여부가 후계문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것은 수령론과 후계자론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수령 승계는 단순히 직책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절대적 지위까지 승계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 계승의 포기는 곧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모두에게 최고지도자로서의 개인·절대권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과연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쟁점 4] ‘수뇌부’는 곧 김정일 하나인가

    필자는 당초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1970년대의 ‘당중앙’이라는 표현처럼 ‘수뇌부’라는 표현을 이중적 의미, 즉 일반적인 통칭으로서의 수뇌부라는 의미와 최고지도자 및 최고지도자의 후계자에 국한시켜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기동 박사는 2004년 1월22일자 ‘로동신문’ 정론을 근거로 당중앙과 혁명의 수뇌부가 같은 사람, 즉 김정일 위원장임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이는 ‘천만군민의 심장-혁명의 수뇌부는 김정일 동지이시다’라는 표현을 보면 확실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하나의 용어에 대해 항상 단 한 가지 의미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로동신문’ 정론에서는 ‘수뇌부’라는 표현이 김정일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였지만, 다른 날짜에 발행된 글에서는 복수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신년공동사설과 1월6일자 ‘로동신문’ 사설 등에서는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우리 혁명의 수뇌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만약 ‘혁명의 수뇌부’가 김정일만을 의미한다면 위의 문장은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우리 김정일’과 같은 표현이 되므로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로동신문’에 실린 사설과 정론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혁명의 수뇌부’는 좁은 의미에서는 김정일을 지칭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김정일을 핵심으로 한 조선로동당의 최고지도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수뇌부’를 넓은 의미에서 사용한다면 김정일의 후계자까지 포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북한에서 ‘수뇌부’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이 대내적으로는 군대에서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용어는 김정일과 고영희, 그리고 김정일의 후계자를 통틀어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필자는 북한이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를 강조한 것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이 처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복수의 의미를 가지는 ‘수뇌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 ‘유일적 영도’를 강조한 것은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그의 후계자에 의한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기동 박사는 북한문헌에서 ‘수령의 유일적 영도’와 ‘수령의 지도’, ‘후계자의 유일적 지도’와 ‘후계자의 영도’라는 표현은 나타나지만, ‘수령의 유일적 지도’ 또는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라는 표현은 발견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유일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는 반드시 영도와 지도를 엄격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으므로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라는 표현은 김정일만의 영도를 의미하는 것이지 김정일 및 그 후계자의 영도를 의미할 수는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1985년에 발간된 주체사상 총서 제9권 ‘령도체계’와 2000년에 발간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20 : 혁명위업계승문제의 빛나는 해결’은 모두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평양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2년에 발행된 ‘조선말대사전’ 1권에서는 ‘수뇌부’에 대해 ‘(국가나 정당 기타 조직체의) 최고지도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수뇌자’에 대해서는 ‘(국가나 어떤 기관 또는 정당, 기타 조직체의) 가장 책임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집단인 ‘수뇌부’와 개인인 ‘수뇌자’를 구별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에서 보면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라는 표현은 복수집단의 유일적 영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다면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가 아니라 ‘수뇌자의 유일적 영도’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쟁점 5] 고영희 개인숭배, 어디까지 진행됐나

    북한에서 후계자 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징후는 무엇보다도 김정일의 현재 부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가 특히 군대에서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일의 사실상 첫 부인인 성혜림이 사망한 직후인 2002년 여름부터 북한은 김정일의 현재 부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근거로 그동안 국내언론에서는 2002년 8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발간한 대외비 강연자료 ‘존경하는 어머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충신 중의 충신이시다’를 주로 거론했지만, 근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해 9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발간된 강연자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는 믿음의 정치로 력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 내고 언제나 승리만을 떨치시는 절세의 위인이시다’도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조하고 있다. 이 자료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선군혁명령도를 총대로 충직하게 받드는 길에서 대를 이어 누려 가는 수령복, 어머님복을 더욱 빛내여 나가야 한다’라는 구절로 끝을 맺고 있다.

    북한은 이밖에도 ‘어머님’을 숭앙하는 내용이 담긴 각종 강연 및 해설담화자료, ‘김정일 선군정치와 사상강군’ 등의 책자 등 고영희를 칭송하는 문헌을 상당수 발행했다. 비록 고영희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고영희를 칭송하는 노래들도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이렇듯 현재 고영희에 대한 숭배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 태어난 장남 김정남이 아니라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 태어난 김정철 또는 김정운이 ‘수령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쟁점 6] 김정철의 현재 지위는 무엇인가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의 현재 활동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그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사업하고 있다는 분석과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사업하고 있다는 분석으로 대별된다. 필자는 두 가지 분석 중 하나만 맞을 수도 있지만, 김정철이 두 곳 모두에서 일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김정철이 현재 당중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는 후계자 지명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김정일은 1964년 6월19일부터 당중앙위원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북한의 문헌들은 이 조치가 그를 당의 영도자로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일 본인도 1995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 앞에서 “내가 그 때 민청에 갔더라면 중앙당에서 당사업을 영도한 30년 역사를 가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웅심 깊은 의도를 지니시고 나를 키우셨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추어 볼 때 김정철이 당중앙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도 김정철을 당의 영도자로 키우고자 하는 김정일의 의도와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접근 가능한 북한관련 정보를 종합해 볼 때 김정일의 후계자는 이미 내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이 언제 공식화될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후계문제와 관련해 몇 가지 미스터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지난해 8월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처음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9월에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백세봉의 인적사항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국방위원회 위원은 대부분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겸임하고 있는데, 만약 백세봉이 김정철의 가명이라면 김정일 후계문제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척됐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지난 3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2차 회의의 주석단과 참석자 모습을 북한 방송에서 전혀 비춰주지 않았다는 사실. 이는 북한이 대외적으로 드러내기 꺼리는 인물이 회의에 참석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설령 북한이 아직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후계자를 결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2005년 당 창건 60주년 기념행사는 후계자 결정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 분명해 보이는 것은 김정일의 후계자 지명이 그다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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