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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MD 구축 최대 명분… 부시는 ‘악수’를 원치 않는다

美 대선과 MD, 그리고 한국의 딜레마

  • 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civil@peacekorea.org

北은 MD 구축 최대 명분… 부시는 ‘악수’를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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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가열되고 있는 MD 논란을 ‘강 건너 불 구경’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북쪽’을 MD의 최대 명분이자 1차 목표물로 규정하고 있고, ‘남쪽’은 MD 시스템의 최우선 배치지역이자 포섭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 문제는 MD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4년 전, 한반도를 중심에 놓고 벌어졌던 일련의 ‘MD 논쟁’을 다시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의회와 전문가그룹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과의 거래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라 우려하며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회고록 ‘마담 세크러테리(Madam Secretary)’(2003년)에서 이같이 밝힌 2000년 당시 미국 내 상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200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한 직후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방북은 무산되고 말았다. 올브라이트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북미관계가 개선될 경우 NMD 구축에 차질이 생길 것을 두려워한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NMD는 미국 본토로 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기 위한 것으로서, 부시 행정부는 이를 해외주둔 미군 및 동맹국 방어용인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와 통합해 미사일방어체제(MD)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부시의 MD 구축계획과 대북정책, 점차 가열되고 있는 미국의 대선을 2000년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위협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 진영에서는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촉구하면서 MD를 ‘대선용’이라고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복잡하기만 한 ‘북-미 대결’ 구도에 MD와 대선 변수가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한국정부가 북핵과 MD 사이의 긴장관계를 제대로 짚지 못하면 2000년 미국의 정권교체기 때 빚어졌던 오류가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반도 문제와 MD, 그리고 미국 대선이 모두 한반도의 안보를 둘러싸고 복잡한 함수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남-북-미 삼각관계를 되돌아볼 필요도 여기에서 나온다.



남북정상회담에 좌초한 MD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불과 13일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했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직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북한은 정말 위협적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최대의 명분으로 삼아 추진되었던 NMD에 직격탄을 날렸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NMD를 추진했던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만난 것이다.

‘스타워즈’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SDI)’이약 1000억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날리고, 소위 ‘악의 제국’이라 불렸던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 구상도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한 방이 미군 막사를 명중시켜 약 3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미사일 방어 구상은 미국 내에서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냉전의 해체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던 군산복합체들은 의회와 보수적 싱크탱크 등을 앞세워 미사일방어체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클린턴 행정부에 압박을 가했다. 특히 북미간의 제네바합의 체결 직후 실시된 미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클린턴 행정부를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이 같은 안보 공세에 직면한 클린턴 행정부는 우선 TMD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당시 상황은 왜 공화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제네바합의를 그토록 ‘증오’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을 제시해준다.

부시의 ‘마지막 이벤트’

한편 클린턴 행정부는 TMD를 추진하는 동안에도 이보다 사업 규모가 훨씬 큰 NMD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을 미사일로 공격할 나라가 있는 것인지, 괜히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새로운 군비경쟁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총알로 총알을 맞추는 것만큼 어렵다는 미사일 요격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수천 억달러를 이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등 다양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갈팡질팡하던 NMD 구상은 1998년 8월 들어 두 가지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하나는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는 3단계 로켓체(광명성 1호)를 쏘아올린 일이다. 이 사건들은 NMD 추진파들에게는 ‘광명’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에 클린턴 행정부는 ‘3년간의 실험평가를 통해 3년간 초기 NMD를 실전배치한다’는 이른바 ‘3+3 계획’을 발표했다. NMD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는 한반도 정세는 NMD가 탄탄대로를 걷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NMD의 가장 큰 명분, 즉 ‘북한 위협론’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갈팡질팡하던 클린턴 행정부는 ‘페리 프로세스’에 바탕을 둔 대북포용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대신 NMD 구축 여부는 차기 정권으로 넘겨버렸다. 남북정상회담 3개월 후이자 미국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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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civil@peace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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