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이 ‘태극기’ CG팀을 괴롭혔다. 극중 하이라이트인 두밀령 전투에서 전투기가 참호를 덮치며 폭발하는 신이 그것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코르셰어’라는 쌍발 전투기는 온전히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만들어야 했다. 당초 실사와 CG를 합성할 계획이었지만, 군(軍) 당국이 촬영 협조를 취소하는 바람에 100% CG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전투기 신은 ‘태극기’의 컴퓨터 그래픽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태극기’의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를 맡은 인사이트 비주얼의 강종익 실장은 “잘 봐줘서 한 60점 정도”라고 이 신의 완성도를 자평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 단계에서는 그래픽만으로 전투기의 역동적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리라는 뜻이다. 강 실장은 요즘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를 주인공으로 한 차기작 ‘청연’에서 ‘태극기’의 못다 푼 한을 풀고자 벼르고 있다.
영화 후반 작업의 ‘꽃’
영화의 후반작업은 촬영과정에서의 미비점을 보완해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이다. 그 동안 영화의 운명을 결정하는 후반작업에서 가장 중시됐던 것은 ‘편집’이었다. 편집이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영화 역사를 함께한 전통적 작업이라면, 최근 각광받고 있는 CG는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진 영화 후반작업의 꽃이라 할 수 있다.
CG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CG의 도입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 중반에 CG란 생계조차 보장하지 않는 가시밭길이었다. 조악한 장비와 많지 않은 전문인력, CG에 대한 터무니없는 편견 등 난제가 쌓여 있었다.
CG작업에는 촬영이나 조명, 미술 등 다른 팀들과의 공조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CG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이 무엇보다 큰 걸림돌이었다. 한 CG 전문가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CG팀을 창작부서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영화제작의 각 영역이 분업화되는 추세에서 CG가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CG는 기술적 핸디캡을 보완할 뿐 아니라, 영화 전체의 비주얼을 좌우할 만큼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영화는 여전히 할리우드의 거대한 물량에 비하면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할리우드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한국 영화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면 CG와 같은 기술파트를 반드시 발전시켜야한다.
강종익 실장은 “한국영화의 CG기술은 할리우드 수준의 70%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력은 결국 역사의 차이인데, 한국영화는 최대 2년 이상 뒤떨어져 있다. 장비의 수준 차이는 크지 않지만 인력, 기술, 자본 등 인프라가 취약하다”고 그 원인을 지적한다.
길게 봐야 10년 안팎인 한국영화의 CG 역사는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하지만 후반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CG에 대한 투자도 과감해지고 있다. ‘태극기’는 CG에만 1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쏟아부어 이 분야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촬영이나 조명, 미술 등 각 파트와의 긴밀한 공조 부족, 촉박한 작업시간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코미디, 멜로영화까지 영역 확장
영화 장르의 다양화와 테크놀로지의 진화는 수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잘린 목이나 팔, 피칠갑을 한 잔혹 영상을 창조하는 특수분장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공포나 스릴러 영화 덕분이다. 총격 신이나 폭파 장면에 필요한 특수효과, 와이어를 통한 액션이 가능해진 것 또한 액션 장르의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CG기술의 발전은 SF, 공포, 판타지 등 상상력의 지평을 확장하는 장르의 발전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