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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 킬러’ 김기덕 감독

“이창동 감독이 만들면 ‘사회를 보는 시선’, 내가 만들면 ‘김기덕이 하는 짓’이래요”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국제영화제 킬러’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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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영화에서는 ‘날것’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 직접 만난 그도 그랬다. 그런데 이 냄새가 거칠지 않다. 오히려 찢긴 날개를 파닥이는 새처럼 나약한 느낌이다. 한국 영화계의 ‘야생마’에서 국제영화제를 휩쓰는 명감독으로 우뚝 섰지만 그는 아직 섭섭한 것도, 두려운 것도 많은 듯했다.
‘국제영화제 킬러’ 김기덕 감독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잇새로 짓눌려 새어나오는 쉰 목소리. 사랑하는 여인 선화에 대한 감정을 부정함으로써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더 큰 사랑을 표현한 ‘나쁜 남자’ 한기가 내뱉은 한마디다.

김기덕(金基德·44) 감독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나쁜 남자’ 이후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후 ‘파란대문’ ‘섬’ ‘실제상황’ ‘수취인불명’ 등을 만들었고 그때마다 여성비하, 지나친 잔혹성으로 찬반 논쟁을 일으켰던 ‘문제 감독’이지만, 이 영화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당시 SBS드라마 ‘피아노’를 통해 최고 인기 스타에 오른 조재현이 주연을 맡은 덕에 그의 영화 중에 가장 많은 관객(전국 75만명)을 동원하기도 했다.

사창가 포주가 자신을 경멸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든다는, 그 여대생이 결국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포주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을 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게 어떻단 말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 중 하나가 아닌가. 집창촌 성매매 여성과 포주 가운데 선화와 한기 같은 경우가 없지도 않을 터. 사랑하는 데 윤리라는 게 그렇게도 중요할까.

사랑하는 여인을 창녀로 만들어놓고 밀실에서 몸을 파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도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남자, 트럭을 몰고 다니며 여인에게 몸을 팔게 하고 그녀가 ‘일’할 동안 밖에서 망을 보는 남자, 일을 마친 여인과 함께 담배를 빼문 그 남자의 간절한 사랑에서 오히려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졌다.

이런 영화를 만든 김기덕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의 특이한 이력에도 눈길이 갔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학교 따윈 다니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고, 아버지를 피하느라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남자, 제대 후 프랑스로 떠나 3년간 그림을 그려주며 무위도식하다 귀국해 쓴 시나리오가 당선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한 남자, 제도권 밖에서 해마다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내는 남자,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에서 잇달아 감독상을 수상한 ‘대단한’ 남자. 이 남자를 한번 벗겨보고 싶었다.



“내가 앵무새입니까?”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9월12일 영화 ‘빈 집’으로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고 돌아오자 그를 찾는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식적인 섭외루트를 밟지 않고 직접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 안 합니다. 내가 앵무새입니까? 했던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모르겠어요. 또 인터뷰 하면 뭐합니까?날 영화감독으로 ‘존경’하진 못할망정 최소한의 ‘존중’도 하지 않는 사람이 취조하듯 거만하게 물어대고 기사도 자기들 마음대로 쓰는데…. 감독에 대해 기사를 쓰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냥 영화를 봐주세요.”

인터뷰 얘기를 꺼내자마자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바쁘다’는 건 핑계일 뿐 인터뷰를 안 하려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구나. 불신, 자존심, 피해의식 같은 거….

그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1시간쯤 후 그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운전중이라 전화를 급하게 끊어서 죄송해요. 지금 지방에 있는데, 서울 가서 전화 드릴게요.”

며칠 후 김 감독은 “별로 할 이야기도 없는데, 꼭 만나야겠냐”고 물어왔고 “그렇다”고 하자 “그럼 내일 보자”고 했다.

10월6일 2시 서울 인사동의 한 전통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야구모자와 티셔츠, 면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그런데 찻집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국내 출품작 선정과 관련된 것 같았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9월22일 심사위원회에서 ‘빈 집’을 아카데미영화제 출품작으로 결정했으나, 24일 ‘빈 집’이 국내에서 공식 개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출품작으로 발표했다. 이에 ‘빈 집’측이 이의를 제기하자 아카데미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출품자격 판단을 맡긴 끝에 10월4일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출품작으로 최종 확정했다.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빈 집’이 심사위원 5명의 만장일치로 출품작으로 결정됐다 이틀 만에 바뀐 거죠. 영진위가 아카데미에 보낸 공문을 보면 ‘태극기 휘날리며’를 출품작으로 결정한 영진위의 의견에 동의해달라는 내용도 있어요. 1000만명이 봐야만 좋은 영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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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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