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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와 맺은 불륜」에 대한 성찰

「기계와 맺은 불륜」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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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매개적이고 즉각적인, 접속이 아닌 접촉 관계는 오랫동안 이상적인 인간관계의 전형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난다. 여우는 왕자에게 제발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한다. ‘길들인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왕자에게 여우는 대답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그러고는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준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 이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너를 흘끔흘끔 곁눈질해 볼 거야.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다가 아무런 간격 없이 붙어 앉게 되면 길들이기는 완성된다. 이 완성의 단계, 이것이 비매개적 관계이다. 여기서 여우는 육성언어라는 미디어조차 거부한다(“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이런 이상적 인간관계는 여우의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기계에 의해 변형되고 있다. PC의 중요 기능을 포함하여 멀티미디어의 성격을 가진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미디어 기계’다. 이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미 기계가 끼여들어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게 아니라 기계와 더욱 밀착한다. 이런 상황은 사람과 사람이 기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인간과 기계가 원래 짝보다 더 가까운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불륜은 질투조차 유발하지 않는다. 기계가 개인화하면서 누구나 기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서로 차지하려는 질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 사이에 끼여든 기계의 불륜적 역할은 은폐되기 쉽다.

또한 기계와 맺은 불륜은 인간 사이에 여러 가지 공모(共謀)와 음모를 낳는다. 그래서 사회적 패륜을 유발한다. 이것도 기계와 함께 사는 인간 의식과 심성의 공진화 현상 가운데 하나다. 대표적 사건이 바로 지난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벌어진 ‘e-커닝’이다. 그런데 막상 전자 커닝을 조직한 당사자들은 그런 행위의 불륜(不倫)적 성격, 즉 비도덕성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의식하지 못한 것 같다. 전자 커닝의 네트워크적 성격이 이것에 연루된 사람의 수를 증폭시키고, 그들이 공유하는 ‘의식 공동체’의 윤리적 성격을 변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를 불륜의 매체로 삼은 이런 조직적 집단 행위는 개인적 양심의 성찰 가능성을 대폭 줄인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그 집단이 미디어 기계에 의해 다각적으로 링크되어 있다면, 이런 기술과 조직의 힘은 ‘자연스레’ 윤리적 성찰의 가능성을 가리기 쉽다. 기술은 일정한 인간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의식적 침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식자들은 “시험 관리의 강화 같은 제도적·법적 방지 체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그리스 폴리스, 조선시대 과거시험, 기성세대의 학창 시절에도 커닝이 있었는데…” 하면서 ‘역사의 반복 논리’를 내세워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인식들은 21세기 첨단 과학기술의 성과들이 빠른 속도로 일상화하고 대중화하는 시대를 따라잡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도덕적 차원-그것이 인간의 심성이고 인간의 행위인 이상-에서 역사는 반복해도, 문명적 차원에서 관찰하면 ‘새로운 기계’와 그들이 야기하는 ‘새로운 현상’은 참 많다. 시험이 있는 한 커닝이 없던 시대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미디어 기계를 이용한 e-커닝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역사는 일부 반복하지만, 상당수 새롭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인간의 ‘자기 수정’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교육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끼여들어 다차원적 불륜의 관계를 만드는 매개체로서 ‘미디어 기계’와 그것이 형성하는 ‘기계 문화’에 대한 교육 말이다. 오늘날 그런 문화를 가능하게 만든 과학-기술에 대한 교육 또한 폭넓은 대중의 수준에서 당연히 해야 한다.

‘과학-기술적 성과의 일상화’와 그에 따른 ‘미디어 기계 문화’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어린 시절부터 교육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윤리적 과제다. 이 과제를 평소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이행한다면, 미래 세대의 도덕적 성숙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다.

이제는 전통 철학에서 해온 인간과 인간 관계에 대한 윤리 교육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인간과 기계 관계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 좀더 나아가 ‘인간-기계-기계-인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현상들에 대해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상의 교육은 단순히 문명의 이기에 대한 사용법 교육도 아니고, 전통적 윤리 교육도 아니며, 보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 교육’인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라서, 문명적 발전을 하면서 스스로 교육의 필요조건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교육의 수용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다. 문명의 이기를 창조한다는 ‘원죄’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가르침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끊임없이 돌을 날라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자기 교육의 시시포스’가 아니겠는가.

신동아 200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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