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향조(入鄕祖·그 지역에 처음 들어온 조상의 이름)가 어떻게 되는가, 불천위(不遷位·4대가 지나도 위패를 옮기지 않고 계속 모시는 제사)는 어떻게 되는가, 갈장(碣狀)은 누가 썼는가, 몇 대조 할아버지가 언제 과거에 합격했고, 어떤 상소문을 썼다가 파직되어, 어디로 유배를 갔는가, 유배를 갈 때 어떤 문집과 시를 남겼는가….”
“갈장은 누가 썼는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보학에 대한 지식을 은연중에 살폈다. A급인가, B급인가, 아니면 C급인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대화에 등장하는 용어 자체를 못 알아들으면 C급으로 판정한다. 예를 들면 ‘갈장’이라는 용어도 하나의 지뢰로 작용할 수 있다. “갈장을 누가 썼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면 ‘이 사람은 C급 정도구나!’ 하고 짐작한다. 그 다음부터는 대화의 수준을 확 내려버린다. ‘갈장’은 사대부가 죽은 뒤에 비석에 새기는 묘갈명(墓碣銘)과 그 사람의 평생 이력을 정리한 행장(行狀)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이러한 전문용어를 구사하면서 은연중에 상대방의 ‘보학적 교양’ 정도를 테스트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보학의 효력과 권위가 거의 사라졌다. 복고 취향의 골동품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기호(畿湖)지방보다는 상대적으로 영남지역에 아직도 보학에 대한 교양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남 가운데서도 특히 유교문화의 뿌리가 남아 있는 안동에는 보학의 유풍이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정부의 고관대작이 안동의 어느 종가를 방문했는데, 종손은 다과상을 차려낸 뒤 유림집안의 관례대로 보학에 관한 이야기로 점잖게 수인사(修人事)를 시작했다. 종손이 몇 마디 건네봤지만 그 고관대작은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듣지를 못했다. 10여 분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저히 대화가 안 된다고 판단한 그 종손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 어디 가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현재 벼슬은 고관대작이지만 보학을 모르는 사람과는 오래 이야기하기 싫다는 재야 선비의 의사표시였다. 아마도 그 고관대작은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보학을 중시하던 양반 집안의 후손으로서는 할 만한 처신이었다. 상대방의 벼슬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굽실거리지 않겠다는 기개이기도 했다. 이처럼 보학은 선비 집안의 후손이 지니는 남다른 자존심의 원천이다.
필자는 1980년대 후반 대학원을 다니면서 보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필자의 전공이 불교민속학이라 유교적인 보학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당시 우리나라 보학의 대가이던 송준호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흥미를 갖게 됐다. 송 교수의 지론은 보학을 알아야만 조선 사회의 속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특유의 문중(門中)이 형성되고, 이 문중을 알아야만 조선 사회의 혼맥과 학맥, 그리고 당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