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만화가 허영만

“복어알 毒 찍어먹고, 소 몇 마리 토막 내가며 ‘식객(食客)’그렸죠”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사진 정경택 기자

    입력2005-07-2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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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객’ 51화 중 가장 애착 큰 건 ‘고추장 굴비’
    • 먹는 즐거움이 인생의 행복에서 2할5부
    • 나의 ‘베스트 5’ 음식점 : ‘어부가’ ‘봉산집’ ‘잡어와 묵은지’ ‘삼해’ ‘샤르르’
    • 부친 멸치어장 망해 미대 진학 포기, 3만원 들고 상경해 화실 직행
    • 만화는 ‘에듀테인먼트’…현장에 없는 이야기는 안 쓴다
    • “벤츠 타고 골프 치러 가니까 욕 안 먹으려고 기부하는 거죠”
    • 죽어서 고우영 화백처럼 다뤄졌으면 좋겠다
    만화가  허영만
    송홧가루가 날릴 무렵 서해의 황복이 알을 낳으러 누런 배때기를 불리며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강변에 소나무 한 그루만 서 있어도 강물이 누렇다. 임진강 송홧가루를 먹은 황복에서는 솔향기가 난다.

    복 요리사는 가끔 죽음과 맞바꾸는 맛의 도박을 즐긴다. 복어알은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맹독을 지니고 있다. 봄철 산란기 독성이 강할 때에는 복어 한 마리의 테트로도톡신으로 성인 수십명을 죽일 수 있다. 복어 알 먹기는 작둣날 위에서 즐기는 식도락이다. 삐끗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황복 요리사들 중에는 내성이 생겼다고 뻐기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매일 미량(微量)의 독을 먹더라도 면역 효과는 생기지 않는다. 다만 황복은 임진강을 거슬러오는 동안 먹이가 바뀌어 독성이 약해진다. 복어의 독은 무색·무미·무취다.

    복어회는 밑에 신문지를 깔면 글씨가 보일 정도로 얇게 저민다. 그렇게 얇은 회에 미나리 줄기를 넣고 말아서 소스에 찍어먹는다. 독은 무미·무취하지만 황복회는 ‘죽음과 맞바꾸는 맛’을 지녔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늦봄이면 복요리에 빠져 정사(政事)를 게을리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식객(食客)’의 만화가 허영만(許英萬·57)은 파주로 황복 취재를 갔다가 복어알을 맛보았다.



    “황복알을 젓가락으로 살짝 찍어먹었는데도 뒷목이 빳빳해지며 손끝이 짜릿짜릿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 번 찍어먹자 요리사가 복어알 접시를 치웠어요. 별맛은 없었죠.”

    허 화백의 치열한 취재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식객’은 대충 자료 보고 베끼는 요리 만화가 아니라 현장을 발로 뛰어 관찰한 한국 음식문화의 대하(大河) 다큐멘터리다. ‘식객’은 동아일보에 3년을 넘겨 연재되고 있다. 김영사에서 9권의 책으로 묶여 출판됐는데, 50만권이 팔렸다.

    허 화백은 일본만화 ‘맛의 달인’ ‘명가의 술’ ‘초밥왕’이 판을 칠 때 김치 얘기를 만화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김치 한 가지를 소재로 하면 이야기가 밋밋할 것 같아 음식의 폭을 넓혔다. 음식에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이호준씨(‘식객’ 취재담당)와 함께 3년 동안 준비작업을 했다.

    “계절별로, 지역별로 음식이 다양하니까 한두 달 취재해서 되는 게 아니죠. 1년을 뛰어다녔는데도 모자라 보충하다보니 3년이 지났어요.”

    허 화백 화실에서는 대모산이 바라다보인다. 강남 수서의 분당 가는 길옆으로 비닐하우스 밭이 너르게 펼쳐져 있다. 허 화백이 아침을 먹으러 간 사이에 ‘식객’의 산실을 둘러보았다. 책상 주위에는 음식사진과 자료, 메모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메모지에 6월 어느 날의 일기가 적혀 있었다. 달필이다.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아무도 없는 부엌에 불을 켜고 그동안 밀렸던 영어 공부를 한 시간 했다. 위스키를 마시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잊지 않기 위해 이 한 장의 일기를 쓴다. 또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술자리를 피해야겠다.’

    절제력이 강한 노력가임을 보여주는 글이다.

    ‘홍어좆’이 만만한 까닭

    허 화백은 ‘식객’ 51화 중에서 ‘고구마’와 ‘육개장’ 편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다고 소개했다. 스스로는 ‘고추장 굴비’에 애착을 보인다. 필자는 ‘죽음과 맞바꾸는 맛’(황복)과 홍어 이야기에 끌렸다.

    허 화백은 전남 여수 출신이다. 흑산도와 먼 거리가 아닌데도 여수 앞바다에서는 홍어가 나지 않고 가오리만 잡힌다. 홍어와 가오리는 사촌이지만 맛과 가격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홍어는 흔히 삭혀서(발효시켜서) 먹는 것으로 알지만 생으로 먹는 홍어가 훨씬 맛있습니다.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날걸로 먹어요. 옛날에는 얼음이 없으니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목선에 싣고 오는 동안 발효가 돼서 목포에서는 반쯤 숙성한 것을 먹고,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 나주에서는 완전 숙성한 것을 먹었죠.”

    우리 속담에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는 말이 있다. 홍어는 암컷이 수컷보다 맛있고 값도 비싸다. 상인들이 수컷을 암컷처럼 보이게 하려고 홍어 꼬리 양쪽으로 난 수컷 성기를 떼어버린다.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처럼 ‘식객’에는 음식과 관련한 상식과 정보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김영삼 정부를 상징하는 생선이 멸치라면 김대중 정부는 홍어다. 정가 근처에서 얼씬거린 사람치고 명절 때 김영삼 대통령이 보낸 멸치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김홍일 의원이 얼음상자에 담아 공수(空輸)해온 흑산도 생홍어를 맛본 사람이라면 권력과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다고 할 만하다.

    홍어는 서해산, 중국산도 있고, 칠레산도 많아 전문가가 아니면 제 값에 제대로 된 홍어를 먹기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 정치인들이 홍어를 싸들고 영국을 방문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목포 동명동 어시장에서 홍어를 사던 정치인이 셈을 치르고 포장을 하는 주인에게 ‘영국에 계신 김대중 선생님께 들고 갈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아 진작에 선생님 디릴 꺼라고 말해불제’라며 안에 들어가 다른 것을 들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 뒤로 목포에서는 주인이 신통치 않은 홍어를 내놓으면 손님이 ‘아, 선생님 디릴 껀디’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식객’의 ‘쇠고기 전쟁’ 편은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철저한 현장 취재로 그려낸 ‘비육우’ 편은 축산물 등급 판정소에서 홍보자료로 활용한다. 김영사에서 출판된 식객 3권(쇠고기 전쟁)은 요리학교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허 화백은 상계동 참누렁소 집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 식당 지하에는 도축장에서 가져온 대분할 쇠고기에서 뼈와 살을 분리해내는 공장이 있다. 주인은 이호준씨와 허 화백이 만화 그리다 막히면 밤에도 오고 새벽에도 찾아왔다고 말한다.

    “분해하면서 소 부위를 하나하나 보여줬죠. 이건 사태, 이건 등심 하고 보여주는데 사진을 찍어 와서 현상해보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현상한 사진을 들고 가 일일이 고기 부위를 다시 확인하는 거지요. 석 달을 못살게 굴었어요. 그런데도 주인은 귀찮다는 얘기 안 하고 ‘소 한 마리 더 잡을까’ 하면서 일일이 설명해줬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조선시대에는 소 잡는 사람들이 대물림하는 천민이었죠. 백정(白丁)이라고….

    “동네에서도 못 살고 떨어져 살았잖아요. 그런 풍습이 광복 후까지 남아 푸줏간 주인은 딸 혼사가 힘들었죠. ‘식객’에 그 이야기가 조금 나옵니다. 마장동에만 도축장이 있는 게 아니고 가락동에도 하나 있어요. 거기서 일하는 분들은 가족에게도 직업을 숨기죠.

    거기는 대통령이 가도 안 보여줘요. 대통령 오면 카메라가 따라다닐 거 아니에요. 가락동 도축장에 있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도축장에 들어가봤죠. 카메라는 못 들고 들어가요. 카메라 플래시가 탁 터졌다 하면 공정이 올 스톱되고 그 카메라를 찾을 때까지 가동을 안 한다는 거예요.

    기계는 운반하는 데 쓰일 뿐 잡아서 내장 꺼내고 목 자르고 반 토막 내는 일은 전부 수작업으로 하죠. 소는 총으로 쏴 잡아요. 파이프같이 생긴 총인데 머리에다 대고 빵 쏘면 소가 딱 넘어져요. 돼지는 전기 쇼크로 잡지요. 그때 도축장 갔다온 뒤로 당분간 고기를 못 먹을 거라고 걱정했는데 한 닷새 지나니 고기가 목에 넘어가더라고요.”

    -허 화백이 잘 가는 단골집은 독자에게 맛집 정보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음식점을 잘 알고 있을 걸로 알아요. 심지어 큰아들도 ‘아버지 오늘 회사에서 회식이 있는데 어디가 좋은지 알려주세요’ 하고 물어요. 그러니 음식점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여기저기 다녀보죠. 소개해주려면 많이 알아야 하니까.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음식이 맛있으면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 들거든요.”

    메뉴 없는 음식점

    -허 화백이 꼽는 베스트 파이브 식당을 알고 싶습니다. 독자한테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아 묻는 겁니다.

    “광화문에 ‘어부가’라고 있어요. 일식도 하고 한식도 하죠. 그 집 과메기가 맛있어요.”

    필자도 몇 번 가본 적 있다. 포항에서 올라온 고래 고기수육도 판다.

    “삼각지 ‘봉산집’ 차돌배기가 맛있어요.”

    -혹시 오명철(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씨 한테 소개받지 않았나요?

    “맞아요. 오 부국장하고 같이 갔어요.”

    오 부국장은 문화부장 시절 ‘식객’을 동아일보 지면에 끌어들였다. 삼각지 차돌배기집은 필자가 먼저 알고 오 부국장에게 소개해준 집인데 허 화백까지 데려간 모양이다. 차돌배기는 보통 집과 같으나 달래무침과 어우러져 특유의 맛을 낸다.

    “서초동 교대 앞에 ‘잡어와 묵은지’라는 집이 있어요. 횟집인데 회를 묵은지(김치)에 곁들여 먹어요. 그 집 자주 갑니다. 삼성동에서 여수 음식 하는 ‘삼해’라는 음식점도 단골집입니다. ‘샤르르 샤브샤브’라는 체인점도 괜찮아요. 광화문에도 있고 역삼동에도 있죠.”

    허 화백은 최근에 흥미로운 음식점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소피스텔 호텔 길 건너에 ‘전원’이라는 조그만 음식점이 있어요. 그 집은 메뉴가 없고 그날그날 자기네들이 알아서 음식을 해줍니다. 그게 재미있잖아요. 전화해서 저녁때 예약 좀 하자고 했더니 ‘우리 집에 와봤냐’고 물어요. 그래서 ‘안 가봤는데 그전부터 가보고 싶었다’고 했죠. 그랬더니 ‘미안하지만 못 받겠다’는 거야. 황당하잖아요. ‘아니, 처음부터 단골인 사람이 어디 있냐, 왜 못 받는다는 거냐’고 따졌죠. ‘나중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안 받는다’는 거예요. ‘일단 점심 때 와서 한번 먹어보고 괜찮으면 예약을 하라’고 하대요. 점심이 1인당 2만원인데 괜찮더라고요. 저녁은 7만원, 10만원짜리가 있대요. 술값은 따로고요. 4인상이면 40만원이죠. 비싸니까 되게 궁금해요. 다음달 동아일보 원고료 나오면 한번 가보려고 해요.

    실제로 음식점을 순례하다보면 신문 방송에 나온 집이라고 간판에 크게 써놓은 집도 있지만 매스컴을 피하는 집도 있어요. 그 이상 손님이 오면 받을 수 없어 단골손님들이 불평한다는 거지요.”

    -손님이 늘었다고 음식점을 키우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식객’에 나오더군요.

    “가게가 커지면 맛 단속을 못하는 거예요. 레시피(recipe·조리법)에 따라 재료의 양을 재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손 감각으로 주물럭거리며 음식을 만드는데 열 명 오던 것이 100명이 오면 감당을 못하죠. 그래서 망하는 겁니다.”

    -부인께서 미식가 남편의 입맛을 맞추자면 꽤 힘들겠어요.

    “내가 우리 집사람한테 맞췄습니다. 집사람은 고향이 경기도 여주입니다. 생선요리는 잘 몰랐죠. 같이 살면서 생선요리를 많이 접했어요. 우리집에서는 식구들이 유일하게 함께 모이는 아침 시간에 음식을 제대로 해먹어요. 점심은 나가서 먹고, 저녁은 각자 먹고 들어오니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을 잘 먹어야 하루의 출발이 상쾌하죠. 둘째애(딸)가 우리 집처럼 아침을 근사하게 먹는 집은 없다고 하더군요.”

    만화가  허영만

    인터뷰 시작부터 함께한 하얀색 맹도견 라브라도 리트리버. 영국산이라 ‘윈스턴 처칠’이라 이름붙였단다.

    허 화백은 깡마른 편이다. 신장 175cm에 체중이 67kg이다.

    “전에는 많이 먹었어요. 옛날에 만화계 사람들 회식하면 허영만 앞에 앉지 말라는 말이 있었어요. 쓸어먹으니까. 체질적으로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 쪄요.”

    -인생에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잖아요. 돈 버는 즐거움, 출세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즐거움, 섹스 하는 즐거움…. 허 화백의 삶에서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요. 계량화(計量化)는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감으로 잡는다면….

    “식욕, 성욕, 물욕, 명예욕 중에서 두 가지만 다룰 줄 알아도 도사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어려운 거죠. 얼마 전에 귀국한 김우중씨 기사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점심 먹으러 가서 항상 자장면 같은 빨리 나오는 음식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분에게 식사는 일할 에너지를 보충하는 칼로리원(源)일 뿐이지요. 그분이 돌아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이제는 설렁탕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 생각과 반대예요. 음식을 대충 때우면 막 짜증이 나요. 그럴 수밖에 없죠. 라면도 제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음식을 시켰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을 때는 정말 짜증나요. 잘 먹으면 기분이 좋아 일도 잘되죠. 좋은 음식을 먹으면 다음 끼 먹을 때까지 입에 향이 남아 있어요. 먹는 즐거움이 인생의 행복에서 한 2할5부는 차지할 것 같습니다.”

    -먹는 즐거움이 2할5부라면 나머지 7할5부는 뭔가요?

    “제 경우에는 성취욕이 크다고 봐요. 캐나다에 이민 간 친구가 만날 골프 쳐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성취감이 없는 삶이 과연 사람 사는 걸까요?”

    -만화가의 성취욕은 어떤 데서 생기나요.

    “열심히 그려서 반응이 좋으면 성취감이 들죠. 반응이 없으면 영 김새지요. 논설위원도 사설이나 칼럼 쓰고 그런 기분 안 느끼나요?”

    필자가 “마찬가지”라고 맞장구 치자 그는 “집에서 부인네도 정성스럽게 밥해서 식구들이 맛있게 먹으면 비슷한 성취감을 맛볼 거예요”라고 말했다.

    초청한 음식점엔 안 간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주민의 수익을 향상시키는 토속 음식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안동 간고등어, 고창 복분자주, 포항 과메기, 순창 고추장, 영덕 대게, 영광 굴비, 흑산도 홍어, 파주 황복….

    -정장식 포항시장이 과메기를 잘 소개해줘 고맙다고 준 감사패가 화실에 있군요. 지방자치단체나 음식점에서 ‘식객’에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하는가요?

    “부탁 받고 그린 적은 없습니다. 그런 데는 안 갑니다. 초청할 때는 계산이 깔려 있고, 가면 끌려다니게 되죠. 과메기를 다뤘더니 포항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겨울철만 되면 담당 공무원들이 전국적으로 과메기 홍보하러 돌아다니는데 동아일보에 나와 홍보가 잘 됐노라고. 그런데 패만 보내주고 과메기는 안 보내주더군요.”

    -‘요리하는 남자’ 편도 있던데요. 요리는 할 줄 압니까.

    “우리 세대는 부엌에 들어가면 할머니나 어머니한테 혼났잖아요. 요즘 맞벌이 부부는 가사를 반분하더라고요. 저는 생선회는 잘 떠요. 낚시를 많이 다녀서.”

    -‘식객’은 언제까지 연재할 계획입니까.

    “동아일보에서 안 잘리면 3년은 더 연재하려고 합니다. 1년에 단행본 3권 분량이 나오니까 한 20권 만들 수 있겠지요. ‘맛의 달인’이라는 일본 요리만화는 100권이 넘었죠.”

    쇼이스트가 허 화백과 계약을 맺고 ‘식객’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든다. ‘식객’은 영화 한 편에 담기에는 에피소드가 방대한 작품이다. ‘대장금’ 같은 드라마라면 다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원작료를 얼마나 받았냐고 묻자 대답을 피했다. 원작료는 적지만 흥행수익에서 일정 비율을 더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허 화백의 작품 중에서 ‘비트’ ‘48+1’이 영화로, ‘망치’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수서역과 지하로 통하는 현대벤처빌의 ‘식객’ 산실에는 허 화백을 포함해 7명이 근무한다. 허 화백이 그림의 선을 그리면 색칠하고 배경그림을 그려넣는 직원이 4명, 비서 1명에 취재담당 직원 1명이다.

    -일곱 식구가 먹고 살자면 부지런히 벌어야 겠군요.

    “직원 월급과 화실운영비 외에 취재비도 들어갑니다. 처음 원고료 1500만원 받을 때는 화실 운영이 안 돼 벌어놓은 돈 까먹고 살았죠. 지금은 동아일보에서 월 2000만원, 파란닷컴에서 1000만원을 받아 그럭저럭 꾸려갑니다.”

    원고료 수입 외에 단행본이 50만권 팔렸으니 인세로 3억원 넘게 들어왔을 테고 영화 원작료 수입도 짭짤했을 것이다.

    -‘식객’의 독자층은 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독자 폭이 꽤 넓어요. 일곱 살짜리 유치원생, 초등학생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지난번에 에로틱하게 꿈꾸는 장면을 잠깐 집어넣었더니 주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렇게 그리면 애들이 어떻게 만화를 보냐는 거였지요. 그래서 ‘이건 애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는 아니지만 애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게 표현하겠다’ 하고 넘어갔죠.”

    ‘식객’은 본래 권문세가에 기식(寄食)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만화에서는 ‘맛을 찾아다니는 협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식객’의 캐릭터는 ‘진수’와 ‘성찬’이다. 진수는 잡지사의 맛집 담당 기자. 성찬은 채소 생선 건어물 같은 음식재료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상인. 한때는 고급 요릿집 ‘운암정’의 숙수(熟手) 자리를 다투던 최고의 요리사였다. 진수와 성찬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육체적 접촉은 별로 없다.

    지난 6월10일자(601회) ‘정어리쌈’ 최종회에서 처음으로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자들은 ‘만화도 쿨한 분위기로 키스 신을 묘사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을 것 같다. 젊은 남녀가 3년 만나는 동안 키스를 한 번만 했으니 감질난다고 하자 허 화백은 “우리 안 보는 사이에 많이 했겠죠”라고 응수했다.

    “그전에 ‘빙어’ 편에서 얼음판 깨뜨려 둘이 낚시할 때 키스를 시키려고 했지요. 한 회 연재분이 4페이지 분량이잖아요. 페이지 여분이 없었어요. 키스하는 것 때문에 한 회를 늘리면 4페이지가 키스로 침범벅이 돼야 할 판이지요. 그래서 못하고 그냥 넘어갔죠. 그래서 ‘정어리쌈’ 편을 기다렸다가 방파제에서 키스를 시킨 겁니다.”

    -그 이상은 진전되지 않나요.

    “독자들 상상에 맡겨야죠. 어린이 독자층 때문에 노골적인 섹스 장면은 넣을 수 없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요즘 그거 굉장히 인기더만” 하며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 ‘조철봉이 땀 흘릴 때만 읽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오후 4, 5시 되면 나른해지죠. 그럴 때 삽화에 땀 흘리는 장면이 나오면 읽는 거지요.”

    -1999년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 보호와 유해간행물 심의’주제 공청회에서 “나이 쉰이 넘도록 성인만화 한번 못 그려봤다. 죽기 전에 제대로 된 성인만화 한번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던데요.

    “그전에는 아동만화, 청소년만화만 있고 성인만화는 거의 없었어요. 도서잡지윤리위원회에서 툭 하면 자르니까 제대로 그릴 수가 없었죠. 권투 시합을 세 쪽 이상 그리면 폭력물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에 세 쪽 그리고, 다른 장면 한 쪽 집어넣고, 다시 권투 장면으로 넘어와야 했죠. 그런 웃기는 때도 있었어요. 심의에 눌려 사고의 폭이 제한받고 머리가 점점 딱딱해졌죠. 후배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형님 여기는 심의가 없어요’라고 편지를 보냈어요. 위트 섞인 고급 성인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얘기였죠. 육감적인 만화는 잘 그리지도 못하지만 그리고 싶지도 않아요.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까.”

    30년 동안 12만쪽 그려



    그는 초등학교 때 교사이던 누나가 들고 온 ‘학원’ 잡지에서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놓은 만화와 첫 대면을 했다. 김용환(1912∼98)의 ‘코주부 삼국지’였다. 전쟁 직후 일본 만화를 번역한 것이 대부분일 때 김용환의 코주부는 거의 유일한 순수 국산 만화였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 광화문갤러리에서 코주부 김용환전(展)이 열렸다. 만화와 첫 인연을 맺어준 사부인지라 허 화백은 이 전시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초등학생 때 가방에 늘 만화책을 넣어 다니고 이웃 만화방의 단골손님이 됐다. 학교에서는 쓱쓱 만화를 그려서 급우들한테 회람을 시켰다. 그림을 잘 그려 교실 환경미화를 도맡았다.

    “아버지의 멸치어장이 망하는 바람에 미대 진학을 포기했어요. 김홍조 옹은 멸치어장으로 돈 벌어 김영삼 대통령을 만들었다지만 우리 아버지는 어장이 망해 저를 만화가로 만들었죠. 4년 정도 흉어가 들어 망했어요. 아랫녘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바다 사업하고 여자 밑에는 배가 일곱 척 들어가도 돛대 끝이 안 보인다’는 거죠. 육지에서 공장이 망하면 땅이라도 남지만 바다에서 망하면 흔적도 없어요.”

    배가 가라앉아도 돛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바다가 깊은 것은 알겠는데 여자가 그렇게 깊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마 주색에 빠지면 재산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뜻일 터다.

    “고등학교부터 광주에서 유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포기하고 여수고에 들어갔죠. 8남매 중 셋째였거든요. 대학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더라고요. 미대 입시 공부하던 친구들하고 같이 지냈어요. 그 친구들이 입시 공부할 때 저는 만화만 그렸어요.”

    여수고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가 챙겨준 3만원을 들고 상경했다. 행당동 박문윤 화백 화실에서 1년간 공부하고 이향원 화백 문하로 옮겨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 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돼 데뷔했다. 당시 대학 나와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보다 월급을 세 배나 더 받았다.

    허 화백은 30여 년 만화인생에서 만화를 몇 권이나 그렸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살기 위해 부지런히 그려야 했거든요. 하도 오래돼서 뭘 그렸는지도 가물가물해요. 옛날에는 원고를 돌려주지 않았어요. 책으로 남아 있는 만화도 친구들이 놀러왔다가 집어가버리는 바람에 없어진 것이 많아요. 제가 크게 아픈 적 없고 쉰 적이 없으니 30년 동안 한 12만쪽은 그렸을 것 같아요. 책으로 몇 권 분량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만화책은 60쪽짜리도 있고, 200쪽을 넘는 경우도 있으니까.”

    만화는 대부분 대본소에서 빌려주는 형태로 보급된다. 1970∼80년대에는 컴퓨터 게임이 없었을 때라 대본소가 잘 됐다. 전국에 대본소가 5000∼6000개 있었다. 한 대본소에서 같은 만화를 2∼3권씩 사갔다.

    “과거에는 경기가 나쁘면 오히려 만화방이 잘됐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경기가 나쁘면 집에 앉아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리고 움직이려고 하질 않아요. 인터넷에서 공짜로 보는데 익숙해 인터넷 만화는 크게 돈벌이가 되지 않아요.”

    재밌는 진단이다. 컴퓨터 때문에 불경기가 심해진다는 경제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긴 만화만 힘든 게 아니라 종이매체가 다 힘들다.

    1970년대엔 만화계도 유신

    만화가  허영만

    허영만 화백은 체력 관리를 위해 양재천에서 규칙적으로 자전거를 탄다.

    옛날에는 만화와 만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다. 만화책은 공부에 방해되거나 청소년 유해(有害) 도서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노트에 만화를 그리면 부모나 교사한테 혼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화 자체로 어엿한 문화이고 뛰어난 교육 수단이다.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의 대표주자가 만화다. 이원복 교수가 그린 ‘먼 나라 이웃나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훌륭한 교과서다. 가나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로마 신화’(만화)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만화산업은 굴뚝산업보다 돈벌이가 잘되는 성장산업이다. 만화영화 ‘라이언 킹’ 한 편의 수익이 국산 자동차 150만대 판매수익과 같다는 분석도 있지 않은가.

    “그전에는 책상 앞에서 머리 짜내 써내는 스토리 위주의 만화였지만 지금은 추세가 달라졌죠. 스토리도 현장에 없는 얘기를 끄집어내서는 안 되는 거죠. 소비자들이 정보가 다양한 만화를 선택하죠. ‘식객’도 에듀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 만화에는 그런 것이 많습니다.”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가슴 아픈 때가 있었습니까.

    “예비군 훈련장에서 땡볕에 앉아 서로 뭐하냐고 물어보잖아요, 낯선 사람들끼리. 만화 그린다는 얘기를 내 입으로도 하기 어려워 그냥 ‘그림 그려요’ 하고 넘어갔지요. 그런데 다시 ‘무슨 그림요?’ 하고 캐묻는 사람이 있으면 ‘만화 그린다’고 실토했지요. 그러면 제 얼굴을 한 번 더 봐요. 흔한 직업이 아니니까.

    해마다 5월 어린이날이면 어린이회관에서 만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량만화 화형식’을 했어요. 우리로서는 김새는 일이었죠. 4∼5월만 되면 심의가 강화됐지요. 그때 ‘각시탈’이라는 제 만화가 히트했어요. 일제 강점기에 탈 쓰고 일본 헌병들하고 싸우는 내용입니다. ‘각시탈’이 히트하니까 너도나도 탈 쓰고 나왔어요. 도서잡지윤리위원회 심의실에서 부르더니 ‘당신 때문에 전부 탈을 쓰고 나오니까 당신부터 그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는 탈을 못 그렸어요. 1970년대 말 이야기죠.”

    -유신 때였군요.

    “만화계도 유신이었죠. 그러다가 제가 한동안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패널로 자주 ‘팔려’ 나갔어요. 만화계 선배들이 좋아했어요. 이제 사회에서 우리를 조금 ‘묵어(알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여튼 만화가를 저급 창작가로 취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어요. 일본에서는 유명 만화가가 죽자 종합일간지 톱기사로 나온 적도 있어요. 그래도 고우영 선생 별세 기사는, 톱으론 안 나왔지만 꽤 크게 실렸더라고요. 방송에도 나오고. 내가 애들과 밥 먹다가 ‘야, 내가 죽어 고우영 선생처럼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만큼 위상이 달라졌죠.”

    “남들이 쉬는 덕분에 中原 차지”

    1970년부터 1980년까지는 고우영과 이상무씨의 만화가 인기 절정이었다. 고 화백이 그린 ‘수호지’ ‘금병매’ ‘가루지기’ 같은 만화는 스포츠 신문의 지가를 높였다. 1983년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가 나왔다. 30권으로 완결될 때까지 100만권이 팔렸다. 영화로 만들어져 4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저는 1등은 못 해봤어요. 다행히 지금은 제 또래 사람들이 다 연재 안 하고 쉬니까 혼자서 중원(中原)을 차지하고 있죠(웃음).”

    -고우영씨 만화의 애독자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더군요.

    “그 양반은 중학생 때 만화가로 데뷔했어요. 저는 어려서 고 화백이 그린 ‘짱구박사’를 봤죠. 고 선생하고 저하고는 15년 골프 친구예요. 매주 금요일에 만났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프셔서 뜸했죠. 지난 3월, ‘치료 대충 끝나면 골프 한번 치자’고 했는데 그 약속 못 지키고 가셨죠. 요즘 67세면 단명이죠.”

    -벤츠 SP 타고 골프 치러 다니면 주위 눈치가 보이지 않습니까.

    “눈치 보일 때 있죠. 그러나 집과 화실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가 자동차입니다. 안전 문제도 있고…. 골프는 요즘 다 치는데요. 옛날에는 눈치 보였죠. 우리 집 지으면서 잠깐 아파트에 세들어 있었는데 집 주인이 나가라고 했어요. 남의 집 세들어 사는 사람이 중형차 타고, 골프 치러 다니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지요.”

    허 화백은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기부 활동을 한다. 부천 만화축제에서 받은 상금 300만원을 노숙자를 위해 내놓았고, 대한민국 만화대상 상금 1000만원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1000만원, 2000만원씩 여러 차례 내놓았다. 그는 기부의 동기를 짧게 설명했다.

    “벤츠 타고 골프 치고 다니니까 욕 안 먹으려고 기부하는 거죠.”

    -한때는 야구, 권투 만화를 주로 그렸는데 1990년대 이후에는 스포츠 만화를 잘 안 그리더군요.

    “그전에는 심의 때문에 스포츠 만화밖에 그릴 게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달라지고 좋아하는 운동이 바뀌잖아요. 야구장에 발길이 안 가더라고요. 권투 구경을 좋아했는데 요즘엔 별 재미없어요. 한번 지나가니까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요.”

    -일본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리는 만화도 있고 종종 표절 시비도 나오잖아요. 허 화백 만화 중에도 ‘오늘은 마요일’ ‘미스터 Q’ 같은 작품은 일본 만화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오던데요.

    “일본 만화가 우리 만화에 영향을 크게 줄 수밖에 없었죠.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 만화가 들어오기 시작해 사실 뿌리를 구분하기 힘들죠. 두 나라가 만화 그리는 스타일도 비슷하고요. 외국에는 디테일하게 연출까지 해가면서 그리는 만화가 없어요. 대부분 미국 만화식으로 글이 많은 이야기 만화죠.”

    -일본 만화를 세계적으로 알아준다지요?

    “그럼요.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 가서 보니까 이탈리아 만화시장의 50% 이상이 번역한 일본 만화였어요. 미국에도 일본 만화가 많이 들어가 있고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에도 어마어마하게 유통되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정식으로 로열티 주고 찍어낸 거보다 해적판이 더 많죠. 그게 단속이 안 된대요. 전세계적으로 일본 만화가 퍼져 있다고 봐야죠.”

    -우리 만화는 수출이 안 되나요?

    “간혹 외국에서 번역 출판해도 몇 천부에 불과해요. ‘식객’도 일본에서 번역판이 나왔는데 잘 안 팔립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라”

    허 화백은 ‘부자(富者) 사전’이라는 만화를 펴내 대박을 터뜨렸다. 한상복씨의 베스트셀러 ‘한국의 부자들’이 원작이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부자들의 에피소드와 스스로 돈 번 아이디어를 첨가했다.

    “인세가 너무 많이 들어와 돈 세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한상복씨 책이 60만부 팔렸는데 만화로 만들어도 10만부 팔리는 것을 보면 편하게 읽으려는 독자층이 있다는 거죠.”

    -부자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까.

    “부자는 절대 허투루 돈을 안 써요. 버는 거보다 적게 쓰면 누구나 부자가 돼요. 우리 집 사람이 백화점에서 50% 세일하니까 가자고 그러면 제가 ‘어이 그거 안 사면 그만큼 더 싸’라고 말하죠.”

    -부자는 짜다는 건가요.

    “짜다기보다 꼭 쓸 때만 써요. 여유가 있건 없건 무조건 수입액의 반을 저축하는 사람도 있죠. 한달에 300만원 받는 사람이 150만원 저축해보세요. 공과금 떼고 세금 떼면 100만원도 안 남을 거 아니에요. 그거 가지고 사는 거죠. 그렇게 10년을 견디면 5년치 봉급이 그대로 모이죠. 이게 종자돈이 되죠. 10년 동안 다 쓴 사람과 그때부터 차이가 벌어지죠.”

    -재산은 얼마나 모았습니까.

    “그냥 만화 안 그려도 먹고 살 정도 돼요. 예전에는 돈 버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관광, 등산 다니는 데 돈을 퍽퍽 써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많이 벌려고 하지 말고 적게 쓰라’고 하셨죠. 돈을 물쓰듯하다가 그 돈을 보충하자면 힘이 들고 건강이 축나고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거죠. 그런데 황 위원은 아까부터 내 돈벌이에 관심이 많군요(웃음).”

    -독자는 유명 만화가라면 어느 정도 부자일까 하고 궁금하겠지요.

    “영화 한 편 계약하면 수억원 받는 줄 알잖아요. 그런데 원작료로 수억원 받는 건 드물어요. ‘식객’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여 있더라며 큰돈 벌었겠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죠. 사실 원고료와 인세 받아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이번 강남 파동에서 입증됐듯이 돈은 부동산으로 벌어야 하는데, 저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족족 실패했습니다.

    돈은 절대 쫓아간다고 모이는 게 아니에요. 돈은 기다려야 합니다. 돈 쫓아다니는 사람은 밥은 먹고 살겠지만 큰 부자는 못 돼요. 하우스에서 밤새 도박하면 하우스 주인만 돈 벌지요. 쫓아다니면서 증권 팔았다 샀다 하는 사람들은 증권회사 수수료 수입만 불려주는 거죠. 이번에도 주식 투자자 시합에서 50대, 60대가 제일 수익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안 팔고 기다리니까요.

    돈 쫓아다닐 시간에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게 곧 돈 버는 일인 거 같아요. 사람 덜 추잡해지고.”

    에베레스트 정복 나설 예정

    허 화백은 산악인 박영석씨와 6대륙의 최고봉을 거의 다 가봤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963m), 인도네시아 칼스텐츠(4884m), 러시아 옐부르즈(5633m), 히말라야 산맥의 K2(8611m)에 가봤다. 내년에도 박영석 원정대를 따라 두 달 동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복에 나설 예정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는 전문 산악인들만 가고 허 화백은 베이스캠프에 있다가 오는 거겠죠?

    “이번에는 저도 본격적으로 올라가 보려고 합니다. 각자 마음속에 정상이 있는 거죠. 에베레스트 정상은 8848m이지만 내 정상은 7000m가 될 수도 있고, 6000m가 될 수도 있죠. 가다가 힘에 부쳐서 내려오면 그게 곧 내 정상 아니겠습니까. 제 체력으로 6000m까지는 견딜 만 해요.

    K2 베이스캠프에서 술 마시고 혼난 경험이 있죠. 일단 해발 2500m가 넘는 곳에선 술 마시지 말아야 해요. 박영석 대장이 자기 계산으로 ‘괜찮다’고 해서 마셨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비상 헬리콥터를 한번 부르는데 850만원 들어요. 죽게 생겨 헬리콥터를 불렀는데 날씨가 나빠 헬리콥터가 못 오고. 5일 동안 걸어서 내려갔죠. 나중에는 말 타고 내려왔어요.”

    -등산 만화도 그려볼 건가요.

    “‘뻥’을 많이 쳐야 하는데 알수록 못 치겠어요. 영화 ‘버티컬 리미트’에서는 달려서 절벽 사이를 날아가 반대쪽 절벽 위로 팍 뛰어서 올라가거든. 실제로 8000m 넘어가면 베테랑 산악인도 가쁜 숨을 내쉬며 한 걸음씩 겨우 내디뎌요. 열 발짝 떼고 쉬지요.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뛰어다녀요? K2 베이스캠프에서 ‘버티컬 리미트’를 봤거든요. 모두 SF라고 했어요. 뻥튀기가 심해서.”

    그의 책상 옆에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부쳐온 책 네 상자가 아직 뜯지 않은 채로 놓여 있었다. 한 상자에 20권 가량이 들어 있으니 한꺼번에 80권을 주문한 것이다. 상자를 열어보니 음식, 여행, 풍속, 그림에 관한 책이 많았다. 그는 신문 기사나 광고를 보고 사고 싶은 책 기사를 오려두었다가 한꺼번에 주문한다.

    “처음부터 읽다가 재미없으면 던져버리죠. 소설은 요즘 거의 안 읽어요. 나도 얘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지만 답답하더라고요. 수가 보여요. 독자한테 수가 노출되면 재미없지요. 우리 영화를 볼 때도 제일 궁금한 게 결말입니다. 놀랍게 뒤집히는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가 ‘살인의 추억’입니다. 조그만 여자애가 며칠 전 살인현장에 왔다간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한방 맞은 것 같았어요. 그렇게 쫓아다니던 범인이 왔다간 거죠.”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의 전기입니다. 어떤 책의 부록이었는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인디언 멸망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디언을 몰살하고 건국한 미국 사람들이 정의의 사도인 양 남의 나라에 펑펑 폭탄 때리는 것을 보면….”

    ‘식객’을 읽다보면 정호승, 송수권 시인의 시가 자주 등장한다.

    “시를 인용하면 시인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문인협회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출판물에 시를 전문(全文) 인용하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거였지요. 김영사에서 ‘식객’에 인용된 시 한 편당 5만원씩 냈습니다. 인터넷에서 내 만화를 마음대로 퍼다 공짜로 쓰는데 이것도 안 돼요. 로열티를 내야지요. 남의 집에 있는 장롱을 들고 가는 거나 같아요. 인터넷에서도 로열티제를 적용해 제동을 걸어야 해요.”

    부인 이명자씨는 숙명여대 성악과를 나와 잠깐 중고교 음악교사를 했다. 한 동네에서 살다 우연히 사귀게 돼 7년 동안 연애했다.

    “기껏 딸 공부시켜놨더니 이상한 놈이 와서 끌고 간다고 처가의 반대가 심했죠. 특히 장모님이 나를 싫어했어요. 결혼하고 나서는 어쩔 수 없었을 테고. 몇 년 전에 장모님이 ‘결혼 전에 괄시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더군요. 지금 이 양반이 여든넷입니다.”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장남은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IBM에 다닌다. 딸은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딸이 대학입시 공부할 때 대학교 못 가면 만화 그리라고 말했다가 집사람한테 혼났어요. 큰놈이나 작은놈이나 어릴 때부터 내가 작업하는 것을 봐서 만화를 잘 그려요. 그런데 만화 그리겠다는 얘기는 안 하더라고요. 신세대가 보기에 갑갑하지요. 만날 책상에 앉아서…. 이것도 3D 업종이에요.”

    “애들은 만화 안 한대요”

    만화가  허영만

    서재에서 필자와 함께.

    -30년 만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1970년대 아내와 데이트할 때는 수입이 좋아서 저를 재벌집 아들로 오해할 정도였죠. 친구들은 찻값도 없어 ‘재건 데이트’라고 해서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났죠. 나는 다방에서 만나고 밥 사먹고 만날 영화구경 가고 택시 타고 돌아다녔죠. 하지만 1980년 전후 3∼4년 동안 만화시장이 너무 죽어버려 직업을 바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소재에 대한 제약이 심했죠. 제 책이 히트 작가만큼 팔렸는데 원고료가 안 올라요. 안 올려줘도 어디 갈 데가 없으니까 계속 붙들고 있어야 했죠. 만화가 비전이 전혀 없어 보여 과연 여기 있어야 하는 건가, 옮겨가야 하는 건가 고민했어요. 그때 만화가들이 애니메이션 쪽으로 많이 옮겨갔어요. 저도 그때 만화영화를 1년 해봤지만 적성에 안 맞아 그만뒀죠.”

    허씨는 부친이 일제 강점기에 순사(경찰)를 했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아버지에게 왜 하필 일제 경찰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이놈아, 세상에 먹고 살 게 없어서 취직하려고 순사 시험을 봤더니 합격했다”고 대답하더란다. 인근 해역 섬사람들이 아버지 송덕비를 세워놓은 것을 보면 악질 순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허 화백이 태어난 다음해인 1948년 여순반란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는 여수 순천을 장악한 반란군을 진압하러 가고 가족은 광양 외가로 피신했다. 군인 경찰관 가족과 우익 인사는 남로당 반란군의 타깃이었다. 허 화백의 아버지는 전투를 치르다 반란군 감옥에 갇혔다. 백두산 호랑이(김종원)가 여수 쪽에 상륙해 반란군이 도망가면서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무차별 사살했다. 그러나 허 화백의 아버지는 밖에서 총을 난사할 때 감방 벽에 바짝 붙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후배들 작품 중에 재밌게 읽는 만화는 어떤 겁니까.

    “윤태호 만화를 재미있게 봅니다. 윤태호는 우리 화실에 있다가 독립했죠. 그리고 양영순 만화도 좋아합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장봉군 만평도 재밌어요. 나는 장봉군 팬입니다. 그림도 좋고.”

    하얀색 맹도견 라브라도 리트리버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무척 순했다. 낯선 사람에게도 앞발을 들고 안겼다. 영국산이어서 이름을 ‘윈스턴 처칠’이라고 지었단다. 간단한 명령어는 알아듣는다. 처칠 이야기를 하다가 보신탕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보신탕은 중요한 음식이고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식객’에 보신탕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데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려 고민하고 있어요.”

    ‘아버지와 아들’ 편에서 보신탕집 부자(父子)의 갈등을 다루었는데 하필 보신탕집이냐고 항의가 만만찮았다고 한다. 그는 처칠에게 “개고기 이야기하는데 너는 왜 꼬리를 흔드냐” 하고 핀잔을 준다.

    얼마 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필립 보링이라는 칼럼니스트가 아시아인의 음식에 관한 글을 실었다. 삽화가 눈길을 끌어 읽었다. 중국 가정에서 개와 노는 어린이에게 엄마가 “너 왜 음식 갖고 장난치니?” 하고 꾸짖는 그림이었다.

    이 칼럼에서 보링은 인간의 충성스러운 친구인 개를 먹는 것은 문화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상한’ 동물인 사슴과 말, 그리고 쟁기를 끄는 소에게 하지 않는 특별한 보호조치를 개에게만 하는 것을 합리화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 남부에서 살아 있는 원숭이의 골을 먹는 식문화에 대해 서구인들은 ‘인도적인 죽이기’를 요구하지만 과연 새장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은 인도적으로 살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모든 나라의 음식에는 문화적·종교적인 습관과 편견이 존재한다.

    허 화백은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항의 때문에 본격 보신탕 편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도 문화적 편견의 소산일 수 있다. 산 개와 죽은 개를 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호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신탕 이야기 그리고파

    사진을 찍느라 휴일에 나와 수고한 정경택 차장이 허 화백 만화의 질감과 음영이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허 화백은 실제로 수많은 음식과 요리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그 사진을 보고 만화를 그린다.

    “사후(死後)에 어떤 작품이 대표작으로 남을 것 같냐”고 묻자 ‘각시탈’ ‘망치’ ‘오 한강’ ‘사랑해’ ‘식객’을 꼽았다.

    화실 벽에는 ‘固定觀念脫出!’(고정관념탈출)이라는 자필 한자 글씨가 걸려 있었다.

    “제가 본래 고리타분한 까닭에 만화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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