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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

고성 오광대놀이 ‘농부 춤꾼’ 이윤석

“천한 민족은 신명을 아랫도리로 풀고 귀한 민족은 어깨 위로 끌어올리지”

  •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사진 정경택 기자

고성 오광대놀이 ‘농부 춤꾼’ 이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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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의사, ‘땐사’

경남 고성은 백년 전만 해도 인근의 통영이며 거제도까지 포괄하던 큰 군이었다. 최근엔 커져만 가는 인근의 마산, 진주, 삼천포를 당하지 못하고 단독 선거구도 못되는 작은 동네로 머물러 앉았지만, 고성 특유의 자존심과 미(美)는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보존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성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름다움을 여럿 발견했다. 우선 느긋한 시간 흐름이다. 자그만 읍엔 바빠서 돌아치는 사람이 별반 없다. “거 누구 좀 부르지!” 해서 전화만 하면 머잖아 벙싯 웃으며 그 ‘누가’ 문을 쓱 밀고 들어온다. 다음은 제각기 얼굴에 떠오르는 따스한 표정들이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수줍은 듯 혼자 씨익 웃는 웃음들, 그 귀한 표정이 오광대패 여럿의 얼굴에 공통으로 얹혀 있는 것을 나는 놀랍게 지켜봤다. 그건 제 잘남을 다툴 필요가 없는 농경 사회적 웃음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외경하는 이들의 순하고도 힘센 표정이다.

그 다음 내가 주목한 건 넉넉하고 푸진 인심이다. 칼국수를 만들었으니 먹고 가라, 옥수수를 쪄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 어제 갯가에서 잡은 바지락을 삶았으니 안 먹으면 큰일난다, 사방에서 다정하고 은근한 청들이 넘쳐난다. 사람살이란 대저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나눠 먹고 함께 웃고 서로 존재에 감사하는 공동체적 삶의 원형이 여기 그대로 보존돼 있구나! 마지막으로 가장 잊지 못할 건 그들의 입에서 연신 술술 흘러나오는 재담과 해학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세상에 ‘사’자 돌림이 세 가지가 있는 거는 아시죠?”(춤꾼)



“하하. 모르겠는데요.”(나)

“아, 그걸 몰라서야 쓰나요. 첫 번째가 판사 검사, 두 번째가 의사 약사, 세 번째가 뭐시냐 하면 바로 우리 같은 땐사(dancer)!”(춤꾼)

그 여유와 웃음과 인심과 해학 속에서 잉태된 것이 바로 오광대춤이다. 고성의 오광대는 한번도 명맥이 끊기지 않고 오롯하게 살아남았다. 이 또한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은 폐쇄적인 소읍이기에 가능한 일일 게다.

1960년대 초반, 일군의 민속학자들이 소문으로만 남은 오광대 탈놀이의 자취를 찾으러 마산과 통영 인근을 헤매던 중 우연히 고성에 들렀다. 동구나무 아래 모인 노인들에게 혹시 오광대란 말을 들어봤냐고 물었다. 촌로 몇이 손을 번쩍 들었다. 다름 아닌 고성 권번의 대접받는 춤 선생이던 김창후, 홍성락, 천세봉이었고 이들은 당연히 고성 오광대춤의 명인이었다. 당장 춤사위를 눈앞에 펼쳐 보여줬다.

자료조사를 통해 잊혀진 민속을 복원해야 했던 다른 무형문화재와 달리 고성오광대는 옛 형태가 몸에서 몸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있었으니 1964년 문화재법이 만들어지자마자 곧바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산대놀이, 야류(野遊), 오광대

그러면 춤은 왜 생겼나. 농사짓던 사람들이 어이 해 탈 쓰고 북 들고 장구 메고 춤꾼으로 나섰나. 춤꾼 이윤석의 삶을 말하기 전에 그의 삶 자체이기도 한 고성오광대의 유래와 특색부터 얘기하는 것이 순서겠다.

고성오광대는 가면극이다. 여느 탈춤처럼 탈을 쓴 채 춤을 추고 재담을 한다. 알다시피 전승되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황해도 전역에서 행해지는 가면극의 명칭은 그냥 탈춤이고, 지금은 봉산(중요무형문화재 17호) 강령(34호), 은율(61호), 세 곳만이 전승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는 산대놀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산대라고 하는 가설무대를 세워 놀음을 했던 모양으로 거기서 이름이 연유했으나, 요즘은 평지에서 공연해도 이름만은 산대놀이다. 지금 송파산대놀이(49호)와 양주별산대놀이(2호)가 남아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낙동강 서편 지역은 경상좌도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가면극을 아류(野遊)라 불렀다. 집에서 노는 게 아니라 들놀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인데 동래야류(18호)와 수영야류(43호)가 있다. 경상우도의 가면극이 바로 ‘오광대’로 고성(7호), 통영(6호), 가산(73호)에 그 형태가 남아 있다. 이밖에 탈춤, 야류, 산대놀이, 오광대와 흡사하나 다른 몇 가지 특징으로 구별되는 하회 별신굿(69호)과 강릉 관노놀이라는 가면극이 따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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