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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고종황제 친위대에서 농사꾼까지, ‘일 포드’호 최초 승선자는 1089명

  • 김지현 재미 자유기고가 lia21c@hotmail.com

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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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찾아낸 멕시코 이민 1세대 신상명세서

1멕시코 초기 이민사회의 지도자로 활약한 김윤원씨. 그는 고종황제 친위대 고위 인사였다. 2 김윤원씨의 맏딸 은선씨의 27세 때 모습. 3 셋째딸 미선(91)씨가 남편 이데씨와 포즈를 취했다.

그러던 1910년경, 김씨는 멕시코 북부 소노라(Sonora) 지역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미국의 애리조나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엘 티그레(El Tigre) 석탄광산에 일자리를 잡았다. 국경지역으로 이주한 것은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1912년 어느 날 김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한인 전도사와 동행한 박모씨를 만나게 된다. 자녀 교육에 정성을 쏟던 그는 맏딸 은선이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에게 딸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LA에 도착한 뒤 6개월 동안 은선은 고아원에서 생활해야 했다. 은선은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온 박씨를 좋아하지 않았다. 은선은 박씨에게서 나쁜 인상을 받았다. 더욱이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던 은선은 점점 두려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는 고아원에서 은선을 데리고 나와 강제로 결혼해버렸다. 당시 은선은 12세였다. 1년 뒤 박씨와의 사이에서 첫딸 그레이스가 태어났다. 은선의 딸은 은선의 여동생보다 겨우 6개월 먼저 태어났다. 은선은 곧바로 또 임신한다.

한편 멕시코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씨는 크게 상심하고, 자신 때문에 딸이 그렇게 됐다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919년 이른 봄, 소노라 마을 중국인들의 구정잔치에 다녀온 김씨는 급성맹장염으로 급서하고 만다. 부인과 어린 자녀 7명이 남겨졌다.

남은 가족은 부인과 맏아들 미도(당시 10세, 라파엘), 둘째딸 화선(마누엘라), 셋째딸 미선(당시 5세, 줄리아), 둘째아들 완도(파블로), 셋째아들 영도(프란시스코), 갓 태어난 막내 문도(페드로), 그리고 미국에 있던 맏딸 은선(미국명 매리)이다.



미선씨는 “그 무렵 한밤중에 가끔 어머니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소노라 마을에는 제대로 된 의사가 없어 아버지가 숨지기 전 열흘 동안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만약 그때 아버지를 의사에게만 보였더라면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안타까워했다.

멕시코→미국→멕시코→미국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은선씨는 멕시코에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들 걱정이 앞섰다. 그는 가정부로 일하는 집 주인에게서 200달러를 빌렸다. 그러고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그 돈으로 가족들을 미국으로 밀입국시켰다. 그후 은선씨는 평소 총을 들이대며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폭력적인 남편 박씨와 이혼하고,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캘리포니아 다뉴바 농장에서 일하던 한 남자와 재혼하면서 이들 가족의 근거지도 캘리포니아 다뉴바 농장 인근으로 옮겨갔다. 계부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은선씨와 동생들은 공부 대신 돈을 벌기 위해 농장으로 내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은선씨의 전남편 박씨가 앙심을 품고 미 이민국에 은선씨 가족을 불법입국자로 신고한 것. 은선씨는 체포를 모면했으나 어머니와 동생들은 모두 체포돼 1922년 멕시코로 추방됐다. 미 이민국은 이들 가족을 멕시칼리라는 국경도시에 내려놓았다. 이민국에 신고한 박씨도 그들을 밀입국시킨 혐의로 체포돼 징역을 살았다.

멕시코 땅에 버려진 은선씨 가족은 앞길이 막막했다. 집은커녕 당장 끼니조차 해결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 한 멕시코인의 도움으로 중국식당에서 일하며 먹고 잘 수 있었다. 닭장 같은 움막에서생활했지만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미국 영주권자인 은선씨의 계부가 가족초청 수속을 밟아 이들은 추방당한 이듬해인 1923년에 다시 미국땅에 정식 입국한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이들은 오렌지 카운티의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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