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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북한 핵심 관료가 육필로 쓴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숙청 2만5000명, 무자비한 고문과 처형으로 얼룩진 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의 진상

전 북한 핵심 관료가 육필로 쓴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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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의 발단, 간첩혐의로 공개처형된 농업담당비서
  • ‘간첩색출’ 명목으로 설치된 ‘사회안전성 심화조’ 8000명
  • “큰일 한번 해보라”…숙청작업의 실질적 지휘자 장성택
  • 고문으로 죽은 중앙당 책임비서, 미쳐버린 평안남도 당책임자
  • 국가안전보위부와 보위사령부의 ‘심화조 견제작전’ 모의
  • 김정일에게 제출된 최고권력기관 간의 도청 테이프
  • 심화조 급습한 중앙당·보위부·무력부·검찰소 연합검열단
  • 순식간의 반전…사회안전성 몰락, 처형된 심화조 지도부
전 북한 핵심 관료가 육필로 쓴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절대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피를 부른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내부 구성원의 자발적 동의에 근거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은 가혹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김정일 위원장은 당과 군, 관료조직에 대한 절대적인 장악력을 확보해갔다. 그 과정에서 친(親)김일성 성향으로 분류된 적잖은 수의 북한 인사가 숙청되거나 제거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동아’ 2005년 8월호는 북한 핵심권력기관에서 일하다 탈북해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전직 관료의 수기를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독점 게재한 바 있다. 이번에 ‘신동아’가 입수한 수기는 시간상 그 다음에 해당하는 것으로,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무렵 북한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는 이른바 ‘심화조 사건’의 전모를 생생하게 전한다.

‘심화조 사건’이란 1990년대 후반 권력 공고화 과정에서 빚어진 대규모 숙청작업으로, 그간 탈북인사들을 중심으로 사건의 존재가 전해진 바 있다. 그러나 그 발단과 흐름, 반전과 결말이 구체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기에 따르면 1997년 8월 전 노동당 당중앙위 농업담당비서 서관히가 6·25전쟁 당시 미국 간첩으로 포섭됐다는 혐의를 받고 평양에서 공개처형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이후 사회안전성이 국가안전보위부 등을 누르고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과거 경력을 샅샅이 뒤지는 작업을 가속화한 사회안전성은 전국 수백개 하부조직에 8000명의 인원으로 이뤄진 ‘심화조’라는 조직을 건설해 연일 6·25전쟁 당시의 간첩사건을 조작해내며 옛 인사들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이 수기에선 당중앙위 간부, 평안남도 당책임자 등 고위급 인사들을 잇따라 제거한 심화조의 사실상 지휘자로,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지목하고 있다. 무자비한 심문과 고문을 이용한 조사방식으로 심화조가 1997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숙청한 인사와 그 가족이 모두 2만5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심화조의 활동이 도를 넘자 2000년 초에 또 다른 권력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 등이 이를 견제하고 나서고,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김정일 위원장이 심화조에 대한 소탕작업을 지시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는 것이다.



북한 권력전환기의 상황과 분위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수기의 전문을 게재한다. 독자에게 생소한 북한식 표현은 일부 수정했으나, 글의 흐름이나 구성, 문장 내용은 되도록 원문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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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이후의 북한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김정일의 끊임없는 군 현지시찰이 실은 이 산, 저 산 숨어다니는 산악 도피행각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굶어죽은 북한 주민이 300만명을 넘는다는 것, 셋째는 김일성 사후 진행된 김정일의 권력장악 음모 ‘심화조 사건’의 내용이다.

첫째와 둘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북한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심화조 사건’에 대해서는 국제사회는 물론 남한에서도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게 내겐 충격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상황에 견주어도 좋을 만큼 북한 사람 누구에게나 아직도 그 공포가 생생한 유례없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 권력기관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이 사건의 전모를 기록해두려 한다.

첫 번째 사업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사망에 대해 많은 이가 의문을 갖던 1994년 7월, ‘신(神)’을 잃은 슬픔으로 대성통곡하던 북한 주민들과 달리 평양 권력층에선 슬픔을 넘어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 옆에서 부자간의 권력충돌과 긴장을 지켜본 몇 사람에 불과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옛말이 있듯 김정일의 눈에는 그 수가 몇백, 몇천으로 보일 만큼 두려웠을 것이다. 독재자에게도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상 1994년까지 김정일의 권력은 지금처럼 완벽하지 못했다. 김일성과 그 측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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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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