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J씨는 앞이마 양쪽에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다. 그러다 얼마 전 정말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다. 여자도 싫지 않았는지 몇 번 데이트에 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머리를 치료하면 결혼하겠다는 것. 그녀를 놓치기 싫었던 J씨는 용기를 내 피부과를 찾았다.
대머리를 의학 용어로는 안드로겐성 탈모증, 즉 ‘남성형 탈모’라고 부른다. 남성형 탈모는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독특한 형태로 점점 빠지는 현상. 탈모증 가운데 가장 흔하다.
남성형 탈모가 생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유전적 요인과 남성호르몬이 그것이다.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은 부신피질과 성선(性腺)에서 합성, 분비된다. 그중 가장 강력하고 대표적인 것이 ‘테스토스테론’이고, 그보다 더 농도가 짙은 게 ‘디하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다. 테스토스테론이 모발의 모낭(머리털이 자라는 곳) 안에 존재하는 ‘5알파-환원효소’와 결합해 DHT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DHT가 앞이마나 정수리 탈모를 유발한다.
그러나 아무리 DHT가 분비된다 하더라도 무조건 탈모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DHT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환경이 바로 유전적 요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경우에 대머리가 되는 것이다. 고환을 없앤 내시나 ‘파리넬리’에게 대머리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갈머리’ 없는 사람, ‘주변머리’ 없는 사람
남성형 탈모증이 처음 나타나는 시기는 사춘기다. 유전적 요인을 가진 사람이 사춘기 때 남성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면 모낭에 영향을 끼쳐 모발이 점차 가늘어지고 쉽게 빠진다. 이때는 앞머리와 윗머리, 정수리 부위의 모낭에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옆머리와 뒷머리의 모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탈모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앞머리와 윗머리, 정수리 부위의 머리카락은 빠지지만, 옆머리와 뒷머리는 잘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남성형 탈모증의 유형은 몇 가지로 나뉜다. 이른바 ‘주변머리’가 없는 M자형은 이마 양쪽부터 시작해 점점 안쪽으로 탈모가 진행된다. 이마부터 넓어지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인 브루스 윌리스가 대표적인 M자형이다.
레닌이나 고르바초프 같은 ‘소갈머리’ 없는 O자형도 있다. 이 경우는 정수리부터 모발이 빠지기 시작한다. 알파벳 모양 그대로인 것이다. 또한 앞머리선은 그대로 있으면서 앞머리부터 정수리에 걸쳐 점차 모발이 가늘어지고 빠지는 경우도 있다.
머리가 빠지는 데 그치지 않고 피지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비듬이 많이 생길 수도 있다. 남성형 탈모증은 대개 30세 전후에 시작되지만 10대 초반이나 20대 초반에도 시작된다. 최근엔 사춘기가 빨라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탈모 시기가 더 앞당겨지는 추세다.
남성형 탈모증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에 따라 진행 속도와 양상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심하지 않은 상태로 오래 가기도 하고, 몇 달 만에 빠르게 진행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