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설적으로, 그에게 제기되어온 의혹들을 통해 원희룡 의원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반전을 즐기는’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접근법인 것 같다.
1. 배신을 밥먹듯 한다?
2004년 2월8일 원희룡 의원은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 있었다. 한나라당 수도권 초·재선 의원 20여 명이 점심을 겸해 2시간째 마라톤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이윽고 원 의원이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앞에 섰다.
“최병렬 대표의 퇴진을 공식 요구키로 했습니다.”
기자들이 되물었다.
“퇴진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한치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타협은 없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한국 정당사(政黨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2004년 한나라당 소장파 쿠데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반란군의 한가운데에 원희룡 의원이 있었다.
불과 수개월 전 그는 최병렬 대표 체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었다. 당 기획위원장으로서 그는 최 대표의 개혁성을 보완했다. 그는 최 대표 체제를 옹립한 ‘공신’이기도 했다.
이회창, 최병렬, 박근혜와의 불화
“최 대표는 정통 보수지만 다원성을 존중하고 있고 합리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원 의원은 이렇게 최 대표를 치켜세웠다. 그런 그가 얼마 안 가 반최(反崔)의 선봉에 섬으로써 자신의 선택을 되물린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04년 7월19일, 원 의원은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대의원들의 환호 속에서 박근혜 대표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를 비롯한 소장파 의원들은 최병렬을 내쫓은 뒤 박근혜 의원을 한나라당의 임시 대표로 추대했다. 그해 4월 한나라당은 박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렀다.
이어 7월에 열린 정기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박 대표와 원 의원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면서 대표최고위원과 2등 최고위원직을 맡는다. 원 의원은 당시만 하더라도 박 대표 체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는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박 대표를 잘 보좌해 대권(大權) 재창출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인사말도 했다.
하지만 그해 겨울을 지내고 맞은 2005년 봄, 원 의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박 대표에게 등을 돌렸다. 국가보안법 개폐논쟁, 4대 입법 국면, 7월 조기전당대회 논란 등을 거치며 둘은 갈라섰다.
남을 비판하는 데 신중한 박 대표지만 원 의원에게만은 예외였다. 지난해 4·30 재보선에서 완승을 거둔 직후 박 대표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당원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데 인터넷 게임이나 하고 당에 악영향 끼칠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며 원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해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