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키운 명성은 주인을 잃은 채 한화로 넘어갔고, 한화콘도로 이름을 바꾼 뒤 오늘에 이른다.
김 회장은 17년2개월형을 선고받고, 9년7개월간 복역했다. 그는 재기하기 위해 감옥에서 새벽 3∼4시까지 책을 읽었고, 한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며 건강을 다졌다. 그가 감옥에서 읽었다는 책은 3000권. 감옥에서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두바이를 보라
1995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김 회장은 태백산 일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고,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놓기도 했다. 모두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한 번 날개가 꺾인 그에게 재기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인터뷰 제의를 한사코 거절한 것도 “뭔가 이뤄놓고 나서 말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의 관광레저산업을 이끌 미래 인재를 위해 조언해달라는 기자의 설득에 김 회장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최근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레저관광 산업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많지만 정부의 뚜렷한 방향 제시도 없고, 기업들도 엉거주춤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정부가 1970∼80년대에 유행한 국토 개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전자나 자동차, 철강산업은 세계 시장을 보고 경쟁했어요. 그러나 레저업계는 세계 시장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고, 수요마저 국내 시장으로 한정하고 있어요.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도 말이죠.
중동의 두바이를 보세요. 사막을 갖고 있어도 싱가포르 같은 관광물류 중심도시를 꿈꾸며 과감하게 투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20∼3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지금쯤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개발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문제지만, 현재 시중의 유동자금이 4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 돈을 부동산 개발로 끌어들이면 됩니다. 그러자면 부동산 투자의 개념을 바꿔야죠.
사실 땅이나 아파트를 사서 5년 이상 묵혀놓으면 몇 배가 오른다는 것이 부동산 투자의 전부였잖아요. 이젠 국내외 관광객이 즐길 만한 복합레저도시를 세우고, 여기에 투자할 수 있도록 400조원의 물꼬를 터주자는 거죠. 그렇게 하면 전자산업보다 더 많은 국부(國富)를 창출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결단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우린 그동안 머뭇거리기만 했어요.”
-관광레저도시로 개발하면 좋을 곳은 어디라고 봅니까.
“이미 조성돼 있는 곳이 많아요. 예를 들면 경기도 시화호를 중심으로 제부도와 대부도,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충남 서산간척지, 그리고 전북 새만금은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면 국부 창출에 기여할 수 있어요. 대부도와 제부도는 3000만평에 달하고, 서산간척지는 4650만평이나 됩니다. 새만금은 담수호를 빼고 8000만평을 만들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더 이상 갯벌을 막지 않아도 3000만평은 당장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과 인도가 부상하는 대륙시대에 서해안 일대의 개발은 꼭 필요해요.”
농토는 외국에서 구할 수도
-레저산업의 관점에서 중국의 부상(浮上)은 한국에 기회일 것 같습니다. 수많은 중국 관광객을 유인하려면 서해안 개발은 필수겠죠.
“중국의 발전 경로를 보면 1980년대 홍콩에서 1990년대는 푸둥, 2000년대는 산둥과 랴오둥반도, 보하이(渤海)만 쪽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이쪽과 마주보는 서해안 지역을 개발해야 합니다. 중국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죠.”
-새만금 간척지 개발의 경우 시민의 반대가 심합니다.
“나도 갯벌을 막는 것은 반대합니다. 1998년으로 기억하는데요. 새만금 간척지를 14km쯤 막았을 때 당시 진념 기획예산처 장관을 찾아갔어요. 진 장관은 내가 무슨 사업을 부탁하러 온 줄 알았지만, 나는 새만금 얘기를 꺼냈어요. 단도직입적으로 진 장관에게 ‘공사를 중단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진 장관이 ‘그럼 대안이 있습니까’라고 물어요. 그래서 ‘중단하면 대안이 있습니다. 군산 공업단지와 연계된 물류, 산업, 해양관광을 아우르는 복합도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그때 감사원도 농토로 만들려면 10조원 이상이 들어가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시점이었죠. 그랬더니 진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께 보고하겠다고 그러더군요. 결국 그 보고는 무산된 것 같아요.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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