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소학교 때는 꼬리빵즈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어요. 영화를 보러 친구들과 차를 타고 시내로 갈 때면 차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어요. 우리가 말을 하면 혹시 누군가 조선족인 줄 알고 꼬리빵즈라고 욕할까봐 두려웠던 거죠.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어요. 또 한족 부락을 지날 때는 마구 뛰어갔어요. 우리가 꼬리빵즈라는 걸 알면 돌멩이를 던지면서 ‘꼬리빵즈’라 소리치며 쫓아왔어요.”(김춘련, 선양시 조선족 사범대 교수)
“조선족은 누구나 한번쯤은 꼬리빵즈란 욕을 들어봤을 거예요. 일제치하에서는 나라를 잃고 남의 땅에 빌붙어 사는 신세라 그런 욕을 밥 먹듯 듣고 다녔다는 말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었어요. 이민 3세인 나도 어린 시절 늘 한족 아이들과 조선족 아이들이 패로 나뉘어 산둥빵즈, 꼬리빵즈 해가며 싸우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월의, 다롄(大連))
국력 따라 변하는 의미
중국인은 한민족이 이주하던 초기부터 조선족을 꼬리빵즈라 부르며 경멸하고 적대시했다. 일본의 만주 침략으로 일본인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중국인은 일제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 하물며 독립군까지 일본의 앞잡이로 여기던 상황이었다.
조선족은 한족한테 꼬리빵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이민족으로, 또 소수민족으로 겪어야 했던 수모는 조선족을 더욱 위축시켰다. 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은 치욕일 뿐 아니라 정체 모를 두려움의 원인이기도 했다. 꼬리빵즈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지 않고 대응해 같이 욕을 하다 보면 폭력적인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살았는데, 한족 아이들과 조선족 아이들이 늘 싸웠다. 조선족 아이들이 먼저 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들이 우리를 꼬리빵즈라 부르며 시비를 걸어오면 우리는 ‘산둥빵즈, 마이타이(더럽다)’라고 반격하곤 했다.”(조선족마당 닉네임 ‘춘’)
“꼬리빵즈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무척 나빴어요. 꼬리렌 하면 괜찮은데, 꼬리빵즈라고 하면 우리를 멸시해서 욕하는 말이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죠. 그렇게 부르면 쫓아가서 패줬어요. 대학에 다닐 때 한족들이 꼬리빵즈라고 할 때마다 대판 싸웠죠. 지금도 누가 날더러 꼬리빵즈라 하면 싸워요.”(조모씨, 선양시)
한족들이 꼬리빵즈라고 놀려댈 때마다 옌볜 지역에서는 “니 쌔쓰개 아이야(옌볜 방언, 너 미친놈 아니야?)” 라고 맞받아 쳤다. 또는 ‘중궈주(中國猪·중국돼지)’, ‘칭궈빵즈(淸國棒子·청나라빵즈)’라는 말로 분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에 청인이 ‘꼬리빵즈!’라고 하자 ‘똥되놈 새끼!’라고 응수하는 장면이 있다. ‘칭궈빵즈’라고 맞받는 것은 중국의 옛이름 청나라(淸國)가 ‘가난한 나라(窮國)’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조선족보다도 못사는 한족사람이라고 되받아치며 설움을 달랜 것이다.
꼬리빵즈의 애환을 담은 노래도 만들어졌다. 2002년 7월에 결성된 조선족 무명가수 ‘2mc’의 노래가 조선족 사이트를 타고 울려 퍼진 것이다. 다음은 노랫말의 일부이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 손목 잡고 / 두만강 건너실 때 겨울이었어 /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렸어 / 쌩쌩 차가운 칼바람 속에 강가의 / 어둠 속에 얼어붙은 나룻배 / 하얀 눈 위로 가지런히 찍혀지는 / 크고 작은 발자국 / 무서운 어둠을 가로 질렀어 / 한숨짓고 뒤돌아보며 눈물을 / 흘리셨어 그리고 힘내 걸으셨어 / 하지만 남겨둔 게 너무 많으셨어 / 그리고 꼬리빵즈 되셨어 / 만주땅에 꼬리빵즈 되셨어 / 세월이 흘러갔어 왔어 내가 왔어 /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 교포? 동포? 나는 차이나 메이드인 차이나”(‘MADE IN CHINA’)
최근에는 꼬리빵즈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이 작고 못사는, 중국의 속국에서 당당하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그 위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한족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선족뿐 아니라 중국 내 거주하는 한국인에게도 ‘한선족’ 또는 꼬리빵즈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됐다.
자랑스러운 이름 꼬리빵즈
한국에 유학 온 왕월(한족, 지린성 투먼시) 씨는 “조선족만 꼬리빵즈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한국인, 조선인(북한),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한국인 등 전세계의 모든 조선인을 꼬리빵즈라 부른다”고 말했다. 꼬리빵즈가 조선족과 한국인을 폭넓게 부르는 용어로 변하면서 원래 담고 있던 경멸의 의미가 희석된 것이다.
꼬리빵즈에는 분명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와 드높은 기상, 그리고 그 후예인 조선족과 한국인의 민족혼이 깃들어 있다. 동북공정, 고구려사 왜곡 등의 문제를 놓고 한중 간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는데, 꼬리빵즈의 어원 고찰은 중국인이 조선인의 뿌리를 고구려라고 인정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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