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노숙을 하며 불우한 삶을 살아가는 소외된 인물들의 원초적인 사랑을 다룬다. 산다는 게 어떤 것이고, 사랑의 정체란 무엇인가. ‘사랑’ 하면 선남선녀의 것만을 떠올리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무리의 사랑은 의미 없는 날갯짓에 불과한 것일까.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고뇌가 있어야 비로소 사랑을 삶의 큰 테두리 안으로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퐁네프’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지만 사실 프랑스 파리의 센 강 양편을 이어주는 9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다리다. 이를 배경으로 불우한 두 남녀의 애절하면서도 야릇한 원초적인 사랑과 절대 고독이 충격적으로 펼쳐진다.
‘인간 소외’는 현대 사회학에서 깊이 있게 다루는 주제로 주요 대학 입시에 논제로 출제되고 있다. 또한 급증하는 자살 등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관련된 여러 논제와 아울러 언급되는 단골 메뉴다.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8번 2악장. 암울한 느낌을 주는 첼로음을 따라 자동차가 푸른 형광빛 터널로 미끄러진다. 자동차가 터널을 빠져나간 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네온사인으로 번쩍이지만 공허하다. 다큐멘터리처럼 롱테이크 방식으로 구성한 이 장면은 지치고 상처받은 소외된 영혼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화려한 도시 한가운데, 남자 주인공 알렉스(드니 라방 분)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도로 위를 걷다가 차에 치여 쓰러져 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여자 주인공 미셸(줄리엣 비노쉬 분)이 낡은 캔버스를 들고 걸어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다.
퐁네프, 그들의 보금자리
알렉스는 병원에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자신의 보금자리인 퐁네프로 온다. 그곳에는 ‘퐁네프의 보수 공사를 위해 다리를 폐쇄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식처다. 알렉스는 거리의 곡예사다. 그와 함께 다리에서 생활하는 늙은 한스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방황하고 있다.
알렉스가 누워 자던 자리에 미셸이 이불에 비닐까지 덮고 자고 있다. 알렉스는 미셸의 소지품에서 미셸의 애인 줄리앙의 존재와 미셸이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확인한다. 미셸은 사랑을 잃고 시력까지 점차 희미해지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거리를 헤매는 화가다.
한스는 미셸을 깨워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며 쫓아버린다. 미셸을 뒤따라가는 알렉스. 알렉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 쓰러지는 미셸. 알렉스는 미셸을 다시 퐁네프로 데려온다. 알렉스가 한스에게 “며칠만이라도 여기에 있게 하자”고 사정하자 “내 눈앞에는 얼씬거리게 하지 마라”며 허락한다.
알렉스는 시장에서 훔친 생선으로 회를 쳐 미셸에게 준다. 이때 카메라는 죽은 물고기의 눈을 비추며 멀어가는 미셸의 눈을 연상하게 한다. 알렉스는 또 라디오를 주워 미셸에게 선물로 준다. 미셸 앞에서 곡예를 하며 입에서 불을 내뿜는 알렉스. 휘발유를 머금은 알렉스의 얼굴과 그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휘발유 줄기가 불길로 변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영화에서 불은 미셸에게 직접 고백할 용기가 없는 알렉스의 강렬한 사랑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러나 시력을 잃어가 괴로운 미셸은 이런 알렉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