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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색 여행기 2題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아파트 한 채에 1000억원! 고향 떠난 부자들이 돌아온다!

  •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ecnms21@hanmail.net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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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생산하려면 노동의 고통을 먼저 지급해야 하고, 분배 과정에선 생산참여자들 사이에 나눔의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경제는 바꾸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비쳐지는 것이 당연했다. 계급혁명 사상과 국가관리 공산체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자유방임 사상은 1930년대 대공황과 함께 그리고 공산혁명 사상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남은 문제는 과학적으로 그것을 해체하는 일뿐이었다.

‘이건 쉬운 일이다. 기둥을 무너뜨리면 건물이 모두 무너지듯이, 과학적인 기초를 무너뜨리면 이것은 모두 무너진다.’ 사회주의를 형성한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초인 노동가치론을, 자본주의를 형성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초인 균형가격론을 과학적으로 해체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요구했고, 그 바람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렸다.

결론은 아주 쉽다. ‘그림으로 그린 파리채로는 날아가는 파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가치나 균형가격은 모두 ‘시간이 없는 2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흐르는 3차원’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경제현상을 절대로 포착할 수 없다. 사실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은 조우할 수 없다’는 발상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도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지 않았는가.

좌절의 연속, 그러나 희망이…



이 열쇠를 나는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찾아냈고, 1991년 ‘사상과 경제학의 위기’라는 책을 내놓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 책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줄 알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해체했다는데 어느 누가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그게 아니었다. 메아리조차 없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무를 해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니, 경제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일이 너무 다급했다.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 즐겁게 살자고 다짐까지 했다. 그러자면 경제학과는 인연을 끊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은 몰입을 요구했고, 그 몰입은 당면한 경제난을 외면하게 했던 것이다.

작심하고 또 작심했건만 그 뒤로도 경제학은 내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생활인으로 돌아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던 중, 뜬금없이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천동설이나 다름없는 현 경제학을 지동설로 전환할 만한 새로운 이론 틀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게 무슨 악연이란 말인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일을 또 해야 하다니. ‘그래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인생을 즐기는 일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그때는 가족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돈 버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던 이 일도 만만치 않았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거의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를 분발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내 글을 읽은 어느 독지가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줬고, 여기에 실린 글을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연구소까지 개설해줬다. 이제는 꼼짝없이 경제학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고, 제자들까지 생겨났다. 앞에서 언급한 두 책은 이렇게 탄생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참기 어려운 통증이 귀에서 느껴졌다. 비행기는 벌써 홍콩공항에 내리기 위해 강하 중이었다. 극심한 통증이 약이 된 것일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유람을 즐기겠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다. 이제는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서 백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 백지 위에 남은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홍콩을 유람하면서도 그곳 경제현상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외면하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너무 부러워 더욱 그랬을 것이다.

홍콩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로 우리나라보다 크게 높지는 않다(한국은 2005년 말 현재 1만7000달러).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훨씬 넘는 노르웨이나 룩셈부르크, 4만달러를 넘는 미국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나라는 먼 이웃으로 느껴지는 반면 홍콩은 가까운 이웃이 아닌가.

홍콩에 부는 부동산 투기 바람

홍콩 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연말에도 한 번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여행은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경제지표로만 들여다보는 중국 경제가 아니라 그 현장의 일부라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의 최근 경제번영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외국 자본의 유치, 이것을 이끌어낸 홍콩의 금융 중심가를 먼저 둘러봤다. 또 그 혜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입은 중국 본토의 선전(深玔)도 둘러봤다. 그 여행에서 중국 경제가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실감했고,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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