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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봉투’에 판결 팔고, 차 할부금은 변호사가…

  • 신 평 경북대 교수·헌법학, 변호사 lawshin@knu.ac.kr

‘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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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대구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중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가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신평 경북대 법대 교수. 그가 로비가 횡행하는 사법부의 세태를 고발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원고를 ‘신동아’에 보내왔다. 신 교수의 판사 재임용 탈락은 당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국정감사로 이어진 바 있다. 그는 이후 변호사 생활과 농사를 병행하다 몇 년 전부터 대학 강단에서 헌법학을 강의하고 있다.

나도 판사 때 골프접대 받고 기생방 드나들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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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재판’ 막을 통제 시스템을 許하라!


‘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길었다. 수해를 입은 곳도 많다. 20년 가까이 경북 경주의 농촌에 살면서 논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지어봤다. 올해처럼 큰물이 지거나 태풍이 닥쳐 쓰러진 벼를 다시 일으키는 작업을 할라치면, 그 노역은 끔찍스러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진창에 빠진 두 다리를 어렵사리 옮겨가며 하는 작업은 도시인이 상상하기 힘든 중노동이다. 한 시간 꼬빡 해봐야 한두 평밖에는 벼를 묶어세우지 못한다. 진흙물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온몸을 덮는다.

올해는 장마만 길었던 게 아니다. ‘윤상림 게이트’가 터져 온갖 추문이 쏟아지더니 뒤이어 ‘김홍수 게이트’가 터졌다. 국민은 김씨가 로비 대상인 판사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술과 돈에 취해 있었다”고 한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판사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의 ‘착한’ 국민은 지긋지긋한 장맛비가 끝나 맑은 날이 찾아오면 쓰러진 벼를 일으켜세우며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청청한 하늘 아래 풍성한 계절의 회귀를 기다린다. 그때쯤이면 그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던 불쾌한 소식들은 망각의 조각으로 흩어질 터이다. 언론도 그저 그런 일과성 사건이 되어버린 ‘…게이트’라는 아이템을 재빨리 내던지고 대중의 눈을 끌 만한 사건으로 말을 옮겨탈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사법부의 부정에 분노하면서도 왜 이렇게 빨리 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부정이 생겨나는 근본원인을 작심하고 파헤쳐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부정에 대한 국민의 큰 오해 가운데 하나는 윤상림, 김홍수 같은 법조 로비스트들이 법의 심판을 받고 나면 사법부가 제자리를 찾아가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법 부정 혹은 사법 부패는 결코 일과성 현상이 아니다. 윤상림, 김홍수라는 인물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사법 부정은 한국의 사법부나 법조(사법부와 검찰, 변호사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통 ‘법조 삼륜’이라 부른다)에 내재한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또 바깥으로 터져 나오든 그렇지 않든 그 안에서는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 윤상림, 김홍수 게이트는 빙산의 일각이다.

‘사법 부정’에 대한 오해

우리나라에서 재판은 국민의 재산, 생명, 신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힘을 행사한다. 문제는 그런 재판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절한 제어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이 항상 올바르게 행해진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사법제도는 다른 나라 사법제도에 비해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법관이 자발적으로 올바른 재판을 하기를 막연히 기대하는 것말고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도록 강제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그나마 각종 법조비리 게이트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그간 꾸준히 진일보해온 덕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구속되는 일이 어찌 일어날 수 있었으랴! 국민 여론의 압력이 노도처럼 밀려들어 까딱 잘못하다간 큰일 날 듯하니 그를 구속시키고 국민들에게 사과도 하는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게이트들은 십중팔구 법조 내부에서 은폐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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