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미군 철수 외치는 전교조 통일觀, 사회를 더 보수적으로 만든다”
- “요즘 같아선 촌지 요구하는 선생이 차라리 낫다”
- 1990년대 후반 이후 ‘교육민주화’에서 ‘反신자유주의’로 목표 수정
- 교사 46.4% “신자유주의 잘 모른다”
- “천박한 평등주의 요구하며 교사 부담은 사사건건 거부”
- “전교조 활동가, 집행부 지침 없인 움직이지 않는다”
- 전교조 “5∼6년 뒤에는 우리의 가치가 옳다고 판명될 것”
그런데 교사와 학부모를 더욱 심란하게 만드는 건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전교조의 태도다. 17대 총선 당시 대통령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장혜옥 위원장에 대해 8월11일 벌금 100만원이 선고되자 전교조는 ‘이성 잃은 판결, 명백한 전교조 탄압’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지금 이 땅의 보수세력은 두 번의 대선에서 집권에 실패한 뒤 개혁·진보세력의 성장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차기 대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의 광범위한 결집과 개혁·진보세력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걸림돌이 될 만한 모든 세력·단체에 대해서는 그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전에 짓밟아두겠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을 동원한 개혁·진보세력 때리기에 집요함을 보이더니, 이제는 전교조 집행 간부들에 대하여 이성 잃은 판결을 강행한 것이다.”
언론의 불순한 의도?
전교조는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부산지부 조합원 20여 명이 북한역사책 ‘현대조선력사’의 일부분을 그대로 발췌한 자료집으로 세미나를 열었다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7월26일자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전교조측은 “부산지부 통일학교 자료집에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7·31 교육위원 선거 직전 양 신문사에서, 그것도 같은 날 10개월 전 일을 들춰내 전교조를 친북단체인 양 보도한 것은 교육위원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불순한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先軍정치를 이해하자’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은 문제가 된 자료에 대해 “2003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남북교사교류사업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고 온 교사들이 남한과 북한의 형편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를 궁금해하던 중 2005년 10월에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가 주관하여 소규모의 세미나를 열었다”며 ‘북한 자체의 역사 인식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 1983년 북한이 펴낸 ‘현대조선력사’를 활용했고, 세미나 자료에는 명기하지 않았지만 토론 당시에는 출처를 밝혔다”고 해명했다. 이 대변인은 이 자료가 “단순히 남북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고,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통일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 교과목과 무관하게 북한과 통일 문제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교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낼 수 없는 건 전교조의 통일 관련 자료들에서 나타나는 대북(對北) 인식이 그간 전교조가 보여온 우리 과거사에 대한 부정, 정권에 대한 불신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전교조의 한 지부에서 지난해 평양유적참관사업을 안내하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는 취지를 설명해놓은 대목을 보자.
‘북은 올해로 광복 60년을 맞이하는 동시에 선군(先軍)정치 10년이 되는 해이다. 북은 자연재해 및 미국의 봉쇄에 따른 외교적 고립으로 인한 식량위기 및 전쟁 위기를 선군정치를 통한 단결로 극복해왔다. 이번 참관사업은 문화예술공연 참관이긴 하지만 문화예술을 통하여 북의 선군정치의 역사, 매 시기에서 발휘하는 정치력, 또 나아가 경제, 문화, 통일 등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광범위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선군정치가 이끌어가는 북 사회가 일경 생경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북 사회의 근본 특성이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사회 전체를 실제로 움직여내는 사회적 동력의 근본임을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서 선군정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는 내용 자체를 갖고 친북 운운할 순 없다. 그러나 전교조가 북한 체제엔 참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고교 교감으로 정년퇴임한 이모씨(66)는 “애국조회는 식민지 잔재이고, 안보교육은 반통일교육이며, 국기에 대한 경례는 전체주의 속성이라고 하는 전교조가 북한의 정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하고, 굶주린 인민에게 눈감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 서울지부가 지난 3월, 홈페이지를 통해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만세’라는 제목의 북한 포스터를 학급 게시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전교조는 “선군정치 포스터는 현재 북한의 정치와 군사 체제를 상징하는 참고 자료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학부모들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주부 나모씨(43)는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잘못된 설명 한마디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되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며 “전교조에서 굳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오고, 학부모의 걱정을 사는 방법으로 통일 교육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폐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회사원 임모씨(45·남)는 “주류에서 벗어난 생각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태도도 공격적으로 변하는 청소년기의 특성을 생각하면 전교조 교사들의 편향된 역사관,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염려된다”고 말했다.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이며, 교육부 홈페이지 내 ‘인터넷평화학교’를 운영하는 잠실중 조정기 교사는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통일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전교조 교사들과 자주 접촉했다. 그러면서 만난 전교조 교사들의 통일관(觀)은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다소 과격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국민 중엔 대북지원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퍼주기식은 안 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대북지원을 아예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전교조 교사들은 대북지원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한다.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교조의 주장에 대의명분상 수긍할 부분이 있으나 지금 현실적으로 안 되는 부분을 무리하게 끌어당겨 추진하니 역효과가 난다. 통일교육은 앞서가면서도 중도적이어야 한다.”
실제로 전교조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한다. 전교조 대전지부 통일위원회를 예로 들면 “국보법 완전 폐지시켜 사회변혁에 이바지한다. 6·15 공동선언 기치를 드높여 통일원년, 주한미군 철수 원년을 만들어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의 대전환을 맞이한다. 통일일꾼의 사업과 체계, 방법과 운영의 대중적 혁신, 실천과 단결력 강화를 통한 대전통일위원회 강화한다” 등을 2005년 기조 및 사업목표로 정하고 있다.
조 교사는 전교조의 이러한 경솔함이 오히려 통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평소 국가 안보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북한 미사일 발사 같은 일이 벌어지면 위기의식을 느낀다. 사회가 보수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게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통일교육은 50점짜리 아이를 60점으로 끌어올리는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지나치면 오히려 통일교육 자체에 대한 반감을 불러온다. 전교조가 북한 책을 베껴서 통일교재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가 반미, 친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노한다. 전교조 교사들 스스로 자신들은 깨어 있고, 앞서 있다는 믿음이 가장 큰 문제다. 현실을 외면하면 대중이 전교조에 등 돌리고, 더 보수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김모 교사(27·여)의 경험은 최근 학부모들이 전교조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최근 들어 학부모와 면담할 때 ‘선생님도 전교조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그럼 가입할 생각이 있는 거냐? 전교조는 빨갱이다. 절대 가입할 생각 말라’고 훈계하기도 한다.”
1989년 5월14일 연세대에서 열린 전교조 발기인 대회. 정부의 탄압이 가혹했지만 교육 현장을 민주적으로 바꿔보겠다는 다짐으로 2만여 교사가 똘똘 뭉쳤다.
전교조는 학부모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보수언론이 학부모의 불안을 자극했다”고 탓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경자 사무국장의 의견은 다르다. 이 사무국장은 이번 전교조 통일교육 관련 사건이 “그동안 학부모들이 말없이 우려했던 일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집에 와서 뜬금없이 ‘조선일보’를 보지 말자, 미국은 나쁘다고 말할 때 이미 학부모들은 학교를 의심했다. 눈으로 보지 않았기에 속으로만 걱정했는데 전교조 교사들이 교실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부산지부 통일교육 자료집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도 전교조는 이미 여러 차례 계기수업으로 논란을 빚었다. 2002년 여중생(미선이 효순이) 미군장갑차 압사 사건과 관련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수업, 2003년 미국 이라크전 관련 반전평화 수업,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소추 관련 4·15 총선수업, 같은 해 6월 이라크전 한국군 파병 관련 반전평화 수업, 2005년 APEC 수업, 2006년 3월 비정규직 법안 관련 수업, 그리고 지난 5월 노동절 계기 노동인권 수업 등 사회적 이슈에 맞춰 수시로 계기수업안을 제시하고, 조합원들로 하여금 수업자료로 활용하도록 권장해왔다.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은 취임 직후인 올해 초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계기수업을 더 확대해야 한다. 더 다양하게,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기수업이 교사의 특정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장 위원장은 “전교조 창립 당시 우리를 의식화 교사라고 했지만 그때의 민주화 교육이 10년 지난 지금 옳았다고 판명됐다”며 “우린 몇 발짝 앞서서 가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가치가 5~6년 뒤에는 옳다고 판명될 것”이라고도 했다.
전교조 위원장의 이런 확신에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한다. 고3 수험생을 둔 박모씨(45·여)는 “엄마인 나도 아이에게 이게 옳다 저건 그르다 말하지 않는데, 중립을 지켜야 할 교사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하면서 그게 옳다고 확신할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몇 년 뒤면 자신이 옳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위원장의 태도에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말했다.
“문 닫아 걸고 교사 마음대로”
학부모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건 자녀가 학교에서 계기수업을 받았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전교조측은 계기수업 주간을 발표하고, 수업안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지만 수업권은 전적으로 교사에게 있다며 어느 학교에서 계기수업이 이뤄지는지 밝히지 않는다. 전교조 측은 “진행할지 말지, 한다면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할지는 전적으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판단할 문제”라며 “다만 그 수업을 공개할지 말지는 학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경자 사무국장은 “아이가 집에 와서 얘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학교에서 계기수업을 했는지 통 알 수 없다. 교실 문 닫아 걸고 교사 마음대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전교조가 계기수업을 한다고 할 때마다 내 아이가 집에 와서 이상한 얘기를 하지는 않는지 노심초사 귀 기울인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교사는 국민이 국가에 위임한 교육권을 수행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데도, 학부모들은 내 자식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불만이 있어도 아이에게 차가운 눈빛이라도 던질까 싶어 아무 말 못하고 가슴앓이하는 학부모들을 외면하고 무시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전교조 부산지부 홈페이지에 올려진 ‘반APEC 동영상 자료’를 처음 문제 삼은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김 의원은 “직접 부산으로 내려가 교육청 관계자들을 만나봤지만 실제 그 자료로 수업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 자료와 서울지부의 환경미화용 포스터가 문제로 불거지자 한나라당에 “그간 이뤄진 계기교육이란 이름의 편향교육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며 “필요하면 진상조사단과 신고센터도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상필 부산 학교운영위원회 협의회장은 “전교조가 수업에서까지 문제가 된 자료들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학부모들로서는 걱정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계기수업은 ‘교육부 타격용’?
그러나 전교조 조합원인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계기수업은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한다. 이 교사는 “계기수업의 이념적 편향성은 언론에서 침소봉대한 측면이 있다”며 계기수업이 “전교조 집행부의 교육부 타격용”이라고 털어놓았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교육부를 곤란하게 함으로써 교육부와의 협상에서 전교조 집행부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이런 견해에 대해 전교조측이 계기수업의 취지를 왜곡했다며 반발할 수 있겠지만, 전교조의 계기수업이 논란이 빚을 때마다 “교육부가 전교조에 끌려다닌다”며 여론의 지탄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계기수업 자체가 전교조와 생각이 안 맞는 건에 대해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매번 계기수업 때마다 전교조를 간수 못한다는 비난이 교육부에 쏟아지고, 결국 교육계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확대되는 점에서 엄청난 국력 낭비”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대학 교육대학원 교수는 “전교조가 교사의 자율적인 수업권을 들어 계기수업의 정당성을 얘기하지만 수업권은 사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데 전교조가 교사의 권리로 악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덧붙여 “수업권에 우선되어야 할 것이 학생의 학습권이고, 교장에겐 교사를 지도·감독할 권한이 있음에도 전교조가 권력화해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학부모와 교장단의 불만이 전교조를 단속 못하는 교육부로 쏠린다”고 분석했다.
전교조에 대한 색깔논쟁은 사실 전교조 창립 초기부터 있어왔다. 교직사회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걸핏하면 교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잡혀 들어갔다. 전교조 창립에 불을 지핀 1985년, ‘민중교육’ 사건으로 당시 국어교사였던 김진경씨(노무현 대통령 교육문화비서관 역임)가 해직과 옥고를 치른 것이 대표적이다. 1989년엔 전교조 설립을 주도한 혐의로 1500여 명의 교사가 해직되었다.
조합원 9만명, 현장엔 없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서슬이 퍼랬지만 전교조를 향한 국민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교육과 시민사회’ 윤지희 대표는 “정부가 전교조 교사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였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에겐 자신 혹은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전교조 교사가 1명이라도 있으면 그 자체가 위안이고 자부심이었다”고 기억한다. 전교조 가입 자체만으로도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시절, 자신의 안위보다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전교조가 도덕적인 집단이고, 전교조 교사들이 희생적으로 보였던 것. 전교조 교사들이 부르짖고 행동으로 실천한 ‘촌지거부운동’ ‘교원인사와 재정의 투명성 확보’ ‘학교현장의 민주화’는 학부모들로부터 환영받았다. 폐쇄적이고 관료적이던 교육행정에 대한 반감, 교육현장에 만연하던 전근대적인 비리를 전교조가 근절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국민에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전교조는 “현장에서 절실히 요구하는 바를 외면하는 관료화한 거대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윤지희 대표의 얘기다.
“조합원 수가 9만여 명에 이르는 지금, 각 학교에 전교조 분회가 조직되어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오히려 전교조로부터 아무런 긍정적 영향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과거 전교조 교사들이 보여준 참교육적 면모는 사라지고, 거대 조직 전교조만 접한다. 더군다나 몇 해 전부터 전교조에 대한 비판이 있어왔는데도 이에 귀기울이기는커녕 비판세력을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매도한다.”
‘좋은교사운동’ 송인수 대표 역시 “지금의 전교조는 실천은 없고 성명서만 남았다”며 “교원단체에 있어 실천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한다.
“실천과 정책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조직을 이끌어본 사람은 안다. 정책 하나만 고치면 그 많은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수월한가. 그러나 좋은 교육정책은 좋은 교육이 가능한 토대를 제공할 뿐, 좋은 교육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토대를 잘 만들어놓았는데 정작 교사가 변하지 않으면 그건 최악이다. 전교조로선 정책에 관심을 쏟는 것 이상으로 교사가 자기 쇄신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교조가 ‘변질’됐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원인을 ‘합법화’에서 찾는다. 여전히 참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전교조 조합원들이 분명히 있지만, 합법화 이후 조합원 숫자가 급격히 늘면서 조합원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조합원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것.
전교조 초대 부위원장을 역임한 이부영 서울경기기계공고 교사는 “1989년 전교협이 전교조로 전환할 당시 조합원들은 노동자이면서도 존경받고 싶어했다”고 말한다.
7월14일 교육부가 주관한 수준별 교육 공청회 때 전교조 조합원들이 단상을 점거해 파행이 빚어졌다.
“교사들 사이에 자기 정체성에 대한 토론이 많았다. 교사는 성직(聖職)이라는 의견에서부터 샐러리맨, 말단 공무원, 프티부르주아, 인텔리겐차까지 다양한 생각이 있었다. 그것을 ‘교육노동자’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임을 선언했음에도 ‘존경받는 교사’이고 싶었다. 어찌 보면 이중적일 수 있으나 교사들 스스로 ‘열정을 갖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할 때 존경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화했다. 초심은 교육을 잘 해보자는 것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 전교조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9만 조합원이 동일한 기대와 목적을 갖기는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전교조 조합원을 4가지 부류로 나눠 설명했다.
“진정으로 참교육을 실천하는 부류, 운동권 출신으로 교사가 되어 교사를 노동자로 규정하는 부류, 교직사회에서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조합비는 내지만 활동은 하지 않고 혜택만 누리려는 부류, 그리고 노조라는 우산 속으로 들어온 부적격 교사 부류. 어느 집단이나 그렇지만 이 마지막 부류가 문제를 일으키면 조직 전체의 문제로 비화하게 마련이고, 세 번째 부류는 되도록 침묵을 지킨다.”
조합원 구성이 이러한 변화를 겪음과 동시에 전교조는 1999년 교원노조법이 통과되면서 단체교섭체결권을 인정받았다. 전교협이라는 법외 단체로 열악한 교육 현실을 타개하는 데 한계를 절감하고 1989년 교육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다는 목적으로 노조 결성을 꾀했던 전교조로선 10년 만의 결실이다. 1999년 합법화 직후 “비합법 시대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표출되었던 상대적 과격성, 급진성 등을 말끔하게 걷어내고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유연하게 학생들과 동료들을 대할 것”이라고 한 김귀식 당시 전교조위원장의 선언은 합법화와 단체교섭체결권 확보에 대한 기대가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단체교섭체결권을 갖게 된 후 전교조는 오히려 참교육에서 멀어지고, 교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노조의 속성이 강해졌다. 투쟁 방식도 훨씬 조직적이고 강경해졌다. 전교조는 합법화 이후 제7차 교육과정,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교원평가, 사립학교법, 교장선출보직제,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등 교육정책의 핵심적인 사항에 대해 대정부 투쟁을 벌였다. 세 번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대중에게 전교조는 ‘도덕적이고 희생적인’ 교사 개인에서 성명서나 농성 등의 형태를 띠는 ‘집단’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연대 김대유 대표(서문여중 교사)는 “전교조가 학교 개혁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야 하는데도 합법화 이후 조합주의와 단체교섭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한다.
“전교조 활동가들이 관료주의에 젖었다. 집행부와 각 시도 지부는 단체교섭에 매달리고, 나머지 활동가는 그들이 내리는 공문만 받아 처리한다. 이제 전교조 활동가들은 중앙 집행부와 지부에서 내려오는 공문이 아니면 절대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교원노조법의 맹점
교원노조법은 노조위원장이 단체교섭안을 내면 교육부총리가 협상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도 단위 노조는 교육감과 교섭한다. 교섭 대상은 교원의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에 관한 사항과 그 노동조합의 활동 등에 관한 사항이다. 그러나 법령·예산·조례 등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은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자측에 성실이행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교원노조법 제6조 제1항).
흔히 전교조를 향해 “노조는 노조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노조라면 교사의 임금 인상이나 후생복지에 집중하고, 교육정책엔 관여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원노조법의 허점이 전교조가 교육정책의 발목을 잡을 여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원노조법은 교섭 대상에서 예산이나 법률과 관계된 부분을 강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육부총리가 임금이나 근무조건과 관련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전교조와 임금 교섭을 해놓고도 교육부는 기획예산처 등을 핑계로 교섭안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교조는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 등’으로 규정된 교섭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갖가지 요구 사항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대학 교육대학원 교수는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전교조는 교섭할 거리가 전혀 없기도 하고, 모든 걸 교섭 대상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학교에서 사라진 주번교사, 등하굣길 학생 지도, 방학 중 근무조와 수업지도안에 대한 교장 결재를 확인으로 바꾼 것 등이 모두 단체교섭의 결과다. 이 교수는 “교원노조법은 단위학교 차원에서 교섭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임금 외의 것들이 교섭 대상이 되고, 전교조 각 지회가 단위학교의 단체협약 이행 여부를 확인하면서 학교장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장의 말에는 그런 불만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교조 교사 비율이 높은 이웃 학교는 방학 중에 평교사가 한 번도 학교에 안 나온다. 나이든 교장, 교감 둘이서 학교를 지킨다. 우리 학교는 교장인 내가 직접 근무조를 짜서 명단을 교무실에 붙여놨다. 학생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학교에 나와 청소하면 그 대가로 봉사점수를 주기로 한 터였다. 그랬더니 전교조 교사가 ‘방학 중에 학교에 안 나오기로 교육청과 단체협약을 맺었다’며 그대로 이행하라고 반발하더라. 그래서 교육청에 알아보니 ‘학교 현실에 맡긴다’고 하기에 방학 중에도 하루 정도는 교사가 학교에 나오는 게 좋겠다는 뜻을 관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전교조 교사와 부딪치고 싶지 않아서 교장, 교감만 학교에 나온다. 사실 교사가 애교심 차원에서라도 하루 정도는 나올 수 있는 거 아닌가. 일본에 갔더니 방학 중에도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와 공부하고 있더라. 그게 다 교원평가제가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운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학교에 나오면 안 된다고 단체협약을 맺는다. 한숨이 나온다.”
전교조는 지난 7월14일 교육부가 주관한 수준별 교육 공청회 때 단상을 점거하며 진행을 방해했다. 수준별 수업이 학생들에게 점수에 의한 서열화를 강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인 단계형 수준별 수업이 일선에서 시행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단일 교과과정을 도입하되 수준별 보조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개선방안을 밝혔지만 전교조는 무조건 수준별 수업을 폐지하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날 이후 전교조를 향해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절차적 정당성과 대화의 자세를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과거 전교조 전임 활동가였던 박모 교사는 “전교조가 이렇듯 실력행사를 하는 것은 공청회 주제를 단체교섭 테이블로 끌어와 교육부와 단독으로 담판지으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공청회를 열면 교육부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전교조도 거기에 한 의견을 밝히는 것에 불과하지만 단체교섭을 하게 되면 전교조가 뜻한 바를 관철하거나 없던 일로 해버릴 수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모대학 교육대학원 교수는 전교조가 겉으론 학교민주화를 외치면서 교내에서는 전교조의 지위를 악용해 학교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교조 지부의 경우 단체교섭시 학교장이나 교육청 국장급을 상대하다보니 여기에 재미를 붙여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교사와 교장의 관계가 아니라 노조와 사용자의 관계로 풀려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것.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한재갑 대변인도 “전교조가 모든 학내 문제를 교장 및 교감 대 평교사의 이분법적 갈등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몇 해 전부터 전교조의 처신이 지나치다고 판단한 교장들이 학교운영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일선 학교 교장에겐 인사권이나 예산권, 교과과정 편성권이 없다. 그런데 학교장을 모든 학교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전교조 교사들의 불손한 태도에 불만이 쌓인 교장들이 ‘학교운영권이라도 갖고서 비난받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보다 더 강하게”
지난 6월 김진경 전 대통령 교육문화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의 전교조는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세력”이라고 말해 파장을 불렀다. 김씨는 “이런 식으로 하라고 전교조를 만든 게 아니었다”며 “전교조가 조합원인 교사 입장만 대변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라는 원군(援軍)과 떨어져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의 한계인 것 같다”고도 했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전 비서관의 전교조 비판은 전교조 초심론에 불을 지폈다.
전교조 차상철 수석부위원장은 그의 발언에 대해 “한때 동지였던 분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차 부위원장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담당했던 처지에서 전교조와 다른 시각을 얘기할 수는 있지만 초심을 운운하는 건 잘못됐다. 교육 공공성 강화야말로 전교조 초심의 핵심이다. 오히려 초심을 잃어버린 분이 초심을 지키며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다니…”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전교조를 향해 ‘교사가 아이들 가르치는 일보다 정치 투쟁에 더 열심이다’ ‘참교육을 버리고 철밥통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를 보인다’는 비난이 있어왔다. 2001년 성과급 차등지급 반대 투쟁, 2002~2003년 기초학력진단평가 반대 투쟁, 2003년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 투쟁, 2005년 교원평가 저지 투쟁 등으로 이어진 전교조의 집단 움직임에 대한 여론이 그러했다. 그리고 2006년 8월 현재 전교조는 ‘차등성과급 반납 투쟁’ 중이다. 전교조 홈페이지는 “12만 교사 반납투쟁으로 성과급제도 파탄내자” “지금보다 더 강하게”라는 문구가 빨간색과 파란색의 커다란 글씨로 강렬하게 씌어져 있다.
1980, 90년대 교육민주화가 전교조의 존재 목적이었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는 신자유주의 전면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전교조의 최대 목표가 됐다. 김진경씨와 달리 아직까지 전교조에 남아 있는 전교조 1세대들은 한결같이 전교조가 신자유주의 대세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전교조에 현재 상황은 굉장히 힘에 부친다. 교육시장 개방이나 교원평가제, 한번 잘못되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는 일들에 매달려야 하는 실정이다. 전교조의 ‘신자유주의 반대’가 교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면 좋겠다.”(이부영 전교조 초대 부위원장)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구석구석 침투했다. 신자유주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사회적으로 그에 대한 토론이나 합의가 전혀 없었다. 정부 주도의 신자유주의 담론만 있어왔다. 거기에 유일하게 문제를 제기해온 집단이 전교조다.”(송원재 전교조 초대 대변인)
전교조측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교육 분야에 신자유주의 흐름이 나타났으며, 김대중 정부 시절 교원정년 단축을 필두로 본격화했다고 진단한다. 차등성과급, 학교 다양화와 선택제, 교원정책 등이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미국의 수월성 개념을 그대로 도입했다는 것. 송원재 전 대변인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사회 약자에 대한 교육적 배려를 철회하고 강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몰아주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교육은 심화된 사회 양극화, 계층간 분리를 봉합하고 사회적 공동선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장치다. 사회적 약자라 해도 기본 교육에선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러한 원칙을 하나하나 파기하고 있다. 교원 수를 늘리지 않으며 인구 자연감소만 기다리고, 자립형사립고·공영형 혁신학교 등으로 입시 위주 경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정책은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복지를 줄이는 결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우산
그러나 서울대 이명현 교수(철학)는 “전교조가 신자유주의 반대를 구호로 내세우지만, 이론적으로 신자유주의 교육체제라는 게 없다”고 잘라 말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과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 교수는 전교조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시발점으로 지목한 5·31 교육개혁안을 만든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5·31 교육개혁안은 일본의 교육제도와 미국의 교육제도가 마구 섞여 누더기가 된 우리 교육제도를 개혁해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대응하려고 한 것”이라며 “전교조가 천박한 평등주의를 요구하면서 교사들에게 부담이 지워지는 것은 사사건건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수준별 교육만 해도 수준별 교과서가 먼저 제작된 다음, 학생들의 적성과 수준에 맞게 그룹을 나눠 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착되기까지는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전교조가 말하는 것처럼 우열을 가리거나 차별하는 게 아니라 맞춤식 교육을 하는 것이다. 자립형 사립고며 공영형 혁신학교 등으로 학교를 다양화해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넓히려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전교조가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만 하지 말고, 가난한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전교조가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획일적인 교육을 고집하지만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그런 식의 교육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운영에 필요한 브레인을 특별히 양성하는 철저한 엘리트 교육을 했다. 전교조 교사들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세계의 교육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전교조가 정부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반(反)신자유주의 명분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전교조가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반대’를 표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신자유주의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은 그리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정진상 교수팀이 ‘교사의 사회의식과 전교조’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와 사회복지를 위해 가능한 한 저지할 필요가 있나’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1055명)의 40%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46.4%가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아니다’ 13.7%).(‘교사의 사회의식과 전교조’(한울아카데미) 참고)
송원재 교사가 지적했듯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전교조야말로 반신자유주의에 매몰돼 정부의 교육정책을 모두 신자유주의로 환원시켜버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외침이 공감을 얻지 못해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전교조가 ‘수구(守舊)’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한다.
과거 전교조 결성에 가담했던 모 대학 교수는 “전교조가 정부의 모든 교육정책을 신자유주의로 환원시키는 바람에 교사들이 교직사회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외면하고 편하게 ‘신자유주의 반대’ 우산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고 짚었다.
‘좋은교사운동’ 송인수 대표는 “일부에서 전교조의 계기수업이나 공동수업을 들어 이념적으로 좌(左)편향됐다고 우려하지만, 진정 우려해야 할 점은 전교조가 교사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투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송 대표는 “교사 스스로 쇄신하지 않아도 문제 삼지 않는, 전문성을 향상시키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으로 아무것도 담보하지 않은 현 상황은 교사에게만 안전할 뿐”이라며 “전교조가 교원평가를 실시하면 신자유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는 것은 교조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편하려고만 한다”
전교조가 내세우는 교육공공성 강화, 사회 양극화와 계층간 불균형 해소, 학교 자치 실현 등은 분명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들이다. 문제는 전교조가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들에 반대로 일관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행태가, 안일주의 혹은 학생의 실력 향상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점이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몇 해 전 퇴직한 이모씨(51)는 얼마 전 지인들과 나눈 대화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요즘 같아선 촌지 요구하는 선생이 차라리 낫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수능 모의고사를 보자고 했는데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반대한 모양이다. 교장이 여러 번도 아니고 딱 한 번만 보자고, 학생과 학부모도 원하는 바라고 했는데도 극구 반대해 결국은 못 치렀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한 사람의 아들도 ‘모의고사를 한 번은 봐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데, 전교조가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은 무시하고 자기네만 옳다고 밀어붙이니 무조건 반대만 한다는 인상을 준다. 학부모들이 ‘촌지 받은 교사는 적어도 받은 만큼은 열심히 하지 않겠냐’며 ‘아무것도 안 하려는 전교조 교사보다 낫다’고 하니 씁쓸했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장도 전교조 교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모의고사를 치르지 못한 경험을 얘기하며 “전교조 담임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염려가 갈수록 커진다”고 전했다.
“학생에게 부담 준다는 이유를 들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모의고사 치르기를 원한다. 교사도 1년에 한번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수준을 가늠하고, 자신의 교수법을 점검해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데 죽기 살기로 반대한다. 그렇다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른 다음, 아이들이 왜 이 문제를 많이 틀렸을까 분석이라도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현실을 외면하고 그저 편하려고만 한다.”
경기도 부천의 중학교에 근무하는 김모 교사(28·여)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차등성과급 제도와 방과후학교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전교조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교조의 사회적 책임
“전교조의 정책이 아주 비합리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성과급 차등 지급의 경우 장기적으로 교직사회에 필요하다고 보지만, 지금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것은 교직 경력에 따라 나눠먹기 하는 것이니 사실상 의미가 없다. 방과후학교 또한 지금의 학교 현장에선 입시와 무관한 방과후학교를 할 여건이 안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전교조가 이에 반대하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꼭 투쟁의 성격을 띠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전교조의 과격한 방식은 교사가 보기에도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는 느낌보다 집단이기주의라는 인상이 강하다. 전교조가 대외 이미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전교조는 지금껏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 없다고 하지만 교사만큼 안정된 직업이 어디 있냐는 게 사람들 생각이고, 실제 교사들의 관심은 그 안정성을 지켜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자유교원조합 이평기 대표는 교직 사회에 부는 ‘웰빙 바람’이 교단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교직이 박봉이어도 아이들로부터 존경받고,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보람 있는 직업이었으나 지금의 현실은 그런 보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 학교는 의무적으로 다니고 사교육에 집중하는 아이들, 촌지와 체벌, 집단이기주의라는 표현으로 얼룩져 ‘철밥통’ ‘선생질’로 불리는 직업에 얼마나 애정을 가질 수 있겠냐는 얘기다. 아이들이 모두 학원으로 빠져나간 오후 4시 반, 교사는 퇴근 후 요가학원이나 수영장, 맛집을 찾아 자기위안을 하는 수밖에. 이 대표는 “전교조가 교직사회의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며 “능력 있는 교사를 대우해 교사 집단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합법화하기까지 10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전교조는 현재 합법화 공간 속에서 활동의 정당성을 평가받고 있다. 송원재 전 전교조 대변인은 “앞으로 전교조가 벌이는 활동은 공적인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사회적 책임을 더 크게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엔 군사정권에 저항했다는 자체로도 정당성이 부여됐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 교육권 확보, 교육 주체로서의 권리 확보를 위한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전교조에 애정을 갖고, 지금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많은 이가 공감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