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은 물론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과연 북한의 미사일은 얼마나 큰 위력을 지녔기에 이렇듯 위기 국면을 초래하는 것일까. 북한이 한국군의 후방 작전지휘소나 공군기지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미사일 개수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실체에 접근해보았다.
최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맞서 헤즈볼라가 하루에 100기 이상의 단거리 미사일과 로켓포를 발사했다. 이렇게 한 달 넘게 엄청난 수의 미사일을 퍼부었지만 이스라엘군이 입은 타격은 미미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폭격기를 이용한 정밀타격으로 레바논의 각종 시설에 치명적 타격을 주고 수십배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주었다. 이렇듯 부정확한 미사일은 어디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민간인에게는 매우 큰 심리적 위협이지만, 실질적인 파괴력은 스마트 폭탄 등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의 미사일 능력과 발사 의도를 파악하는 데도 시사점을 준다. 즉 북한 미사일의 실질적인 파괴력을 이해하려면 사거리와 함께 정확도를 평가하는 작업이 필수다. 이 두 요소를 모두 고려할 때에만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의도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사거리 증대에 역점을 둔 반면 정확도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1960년대 단거리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FROG-5 및 FROG-7 생산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1976∼78년에는 사거리 600km의 중국 둥펑(DF)-61 미사일 개발사업에 참여했으나, 이 사업은 끝을 보지 못하고 중단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미사일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북한은 이집트에서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구입한 후 이를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역(逆)엔지니어링 방법으로 스커드 미사일의 제원을 파악해 자체생산하기 시작했고, 1984년 이 미사일(스커드 개량형 A)을 시험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1t 무게의 탄두를 장착한 채 280~300km를 날아갈 수 있었으나, 시험용으로만 생산됐을 뿐 실제로 배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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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 미사일의 중량을 줄이고 추진 엔진의 출력을 강화하는 등 개량작업을 계속해, 1985년부터 개량형 B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를 320~340km까지 늘렸지만,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정확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정확도를 측정하는 기준인 원형공산오차율(CEP)이 300km 사거리에서 450~1000m인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중반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그 대가로 미사일을 받기로 했다. 북한은 1986년에 본격적으로 개량형 B 생산을 시작해 이듬해 가을 이란에 100여 기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상과제, “사거리를 늘려라”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미사일 몸체를 키워서 엔진에 연료량을 더 많이 채우는 것이다. 똑같은 엔진을 쓰더라도 태울 연료가 많기 때문에 사거리가 늘어난다. 북한은 이 같은 방법으로 개량형 C를 제작했다. 이는 이 미사일의 지름이 0.88m로 개량형 B와 같은 반면, 길이는 12.55m로 개량형 B보다 1m 이상 길다는 점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이 미사일을 198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해 1990년 6월 첫 시험발사를 했다. 개량형 C는 600~700kg의 탄두를 장착하고 500~600km의 사거리를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제 스커드-B에 기초한 미사일 개발은 이로써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연료를 50% 이상 더 채우더라도 사거리는 10% 늘어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사일의 사거리를 더 늘리려면 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갖는 엔진을 새로 개발하거나, 개량형 B 미사일의 엔진 4개를 한데 묶어 추진체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북한은 후자의 방법으로 사거리 1000km의 ‘노동’ 미사일을 개발해 1993년 5월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당시 북한은 미사일 4기를 시험발사했는데, 이 중 1∼2기가 노동이고 나머지는 개량형 C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험 당시 미사일은 500km를 비행했으나, 미군 정보당국이 미사일의 크기와 형체를 토대로 추산한 최대 사거리는 1000km에 달한다. 노동 미사일도 기본적으로는 스커드 미사일과 같은 조종장치를 사용하므로 부정확하기는 마찬가지여서, 1000km의 사거리에 공산오차율이 2000~4000m일 것으로 추산된다.
미사일 사거리를 이보다 더 늘리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로켓의 몸체를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 중량을 줄이거나, 더욱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거나, 다단계 미사일을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합금기술만 있다면 가능하지만 사거리를 1300km까지밖에 늘리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고가 노트북 컴퓨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알루미늄-마그네슘은 생산이 쉽지 않을뿐더러 생산비용이 엄청나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북한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갈고 닦은 로켓엔진과는 전혀 다른 새 엔진을 개발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과 연구, 시험이 필요하다. 세 번째 방법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만 이미 성능이 검증된 엔진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북한이 1998년 8월에 시험발사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은 세 번째 방법을 택해 개발한 것이다. 대포동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아직 접하기가 어렵지만, 군사 관계자들은 최대 사거리가 2000km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1단계는 노동 미사일, 2단계에는 개량형 B, 3단계에 단거리 미사일을 사용하면 이 정도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노동과 개량형 두 미사일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대포동 1호는 이 두 미사일의 접목형일 가능성이 높다. 대포동의 길이가 노동과 스커드의 길이를 합친 것과 거의 같고, 지름은 노동과 같다는 점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1998년 8월의 시험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북한이 다단계 미사일을 개발한 경험이 없는데도 2단계 로켓을 건너뛰어 3단계 로켓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 로켓의 3단계 추진체에 고체연료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이 시험발사를 두고 북한은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 등의 정보기구들은 3단계 분리에 문제가 있어 인공위성 궤도 진입에는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양측 모두 북한이 적어도 2단계 로켓을 띄우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7월5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대포동 2호인지는 100% 명확하지 않다. 지금까지 대포동 2호에 대해 나온 평가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가정에 근거한 추정치다. 예를 들어 북한이 이러한 엔진을 개발해, 연료를 얼마를 주입하고, 탄두의 무게가 얼마라면 대포동 2호의 사거리가 얼마가 된다는 식이다. 대포동 1호는 북한이 1980년대부터 개발해온 스커드 미사일 엔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대포동 2호는 이와는 전혀 다르고 훨씬 강력한 엔진을 ‘가져야 한다’고 추정될 뿐이다. 그래야만 괌이나 알래스카까지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포동 2호는 대포동 1호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러한 엔진과 미사일을 북한이 개발했다는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개량형 A | 개량형 B | 개량형 C | 노동 | 대포동 1호 | 대포동 2호 | |
1차시험 | 1984년 | 1985년(?) | 1990년 | 1993년(?) | 1998년 | 2006년(?) |
길이(m) | 11.25 | 11.25 | 12.55 | 15.5 | 27(?) | ? |
지름(m) | 0.88 | 0.88 | 0.88 | 1.3 | 1.3(?) | |
사거리(km)/탄두(kg) | 300/985 | 340/985 | 500/700 | 1000/1000 | 2000/1000 | 4000(?)/1000 |
공산오차반경(m) | 1000 | 1500~2000 | 2000~4000 |
▼ 시뮬레이션 1 - 한국군 작전지휘소를 목표로 할 경우
이상에서 보았듯 북한은 지난 20여 년간 줄기차게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데 집착했다. 다시 말해 미사일의 정확도에는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잠시 미사일의 정확도가 갖는 중요성을 살펴보자. 이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의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북한이 남침을 시도할 경우 개전 초기에 미사일을 발사해, 한국의 작전지휘소나 군사력 집결지, 공군기지, 항만 등을 파괴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방이나 수도권은 휴전선에 집결해놓은 장사정포 화력으로 공격하고 후방에 있는 주요 군사시설은 미사일로 공격해 한국군의 방어능력을 교란하려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특히 북한이 한국군의 작전지휘본부를 타격하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군은 방어작전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또한 공군기지와 활주로가 파괴된다면 우월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전투기를 제대로 이륙시키지 못한 채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공항과 항만시설이 파괴되면 일본이나 괌, 하와이, 혹은 미국 본토에서 투입되는 지원병력과 군수물자의 보급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전쟁 초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이러한 전술적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북한의 남침능력 및 한국의 방어능력을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제부터 북한이 미사일로 한국군의 작전지휘소와 전투기 활주로 등의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몇 기의 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지 확률적으로 도출해보자. 이를 북한이 현재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사일 개수와 비교해보면, 한국군의 주요시설이 북한 미사일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앞서도 말했듯 북한은 탄도미사일 개발과정에서 정확도에 집중하지 않았다. 안정성이 높은 현대식 미사일의 공산오차율은 통상 사거리의 0.1%다. 그에 비해 스커드 개량형과 노동 미사일은 공산오차율이 사거리의 0.3%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오차율이 클수록 미사일은 정확도가 떨어지는데 ‘표2’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의 정확도를 급속도로 개선하는 데 성공해 공산오차율을 서구의 정밀 미사일 수준인 0.1%까지 줄였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했다.
북한이 이러한 미사일을 이용해 휴전선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한국군 공군기지 작전지휘소 한 곳을 타격하는 데 필요한 미사일 개수를 계산해보자. 계산을 위해 북한은 작전지휘소 전체 면적의 25%를 75%의 확신도를 갖고 파괴하려 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 작전지휘소를 타격하는 데 필요한 미사일 수를 계산하면 아래 ‘표 2’와 같은 결론이 나온다. 공산오차율이 0.15~0.3%인 미사일로 작전지휘소를 공격하려면 91~365기의 미사일이 필요하다. 0.3%에 가깝다는 데이터를 적용하면 300기 이상이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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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2006년 5월 발간한 ‘밀리터리 밸런스’를 통해, 북한이 현재 스커드 발사대 30기와 미사일 200기 이상, 노동 발사대 10기와 미사일 90기 이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한편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3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600기의 스커드와 200기의 노동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이하의 논의에서는 일단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기 위해 벨 사령관의 ‘보수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미사일 개수를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입하면, 현재 북한이 보유한 모든 미사일을 오로지 한국군 작전지휘소 선제공격용으로 발사할 경우 2곳 정도만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북한이 향후 정확도를 서구의 정밀 미사일의 수준(공산오차율 0.1%)으로 개량하는 데 성공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작전지휘소 한 곳을 파괴하는 데 40여 기의 미사일이 필요하므로, 총 20곳 정도를 타격할 수 있다. 비로소 군사적으로 의미 있는 위력을 지니게 된다.
북한이 생화학무기를 탄두에 장착한다면 작전지휘소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사린 신경가스를 탄두에 장착한다고 가정할 경우 공산오차 반경이 200m인 미사일 1발로도 작전지휘소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작전지휘소 부대원들이 공격을 감지하고 가스마스크를 착용한다면 인명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북한이 생화학무기로 공격하는 경우에도 한국군 작전지휘소의 방위작전 능력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 시뮬레이션 2 - 한국군 공군기지를 목표로 할 경우
북한이 미사일을 선제 발사함으로써 한국군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절단해 한미연합군의 방어능력을 저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도록 활주로를 끊는 것은 작전지휘소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활주로는 일부분이 손상되더라도 부분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해지려면 긴 활주로의 경우 중간중간 절단해 이륙에 필요한 활주거리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단순히 활주로의 한 곳을 절단할 확률만을 계산했다‘표 3’.
이 결과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북한이 미사일을 이용해 한국군 전투기가 이륙할 수 없을 정도로 활주로를 파괴하려면, 현재 알려진 공산오차율로는 최대 900기가 필요하다. 보유 중인 미사일을 모두 쏟아 부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미사일이 서구 수준의 정밀도를 갖도록 개량된 후에야 100여 기의 미사일로 활주로 하나를 무력화할 수 있게 된다. 활주로를 파괴하는 데는 탄두에 다수의 소형 자탄을 장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만, 북한이 이러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위협의 목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 미사일의 공산오차율이 높은 한 그 군사적 위협도는 높지 않다. 거꾸로 군사적 위협도를 높이려면 정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전역을 사거리에 넣을 수 있는 개량형 B를 개발한 이후에도 정확도 향상보다는 사거리 연장에만 집착해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국방정보국(DIA) 등 정보기관이 “북한의 미사일은 공격용이라기보다 ‘테러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테러용이라면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하겠다는 말이다. 북한은 과연 누구를, 왜 떨게 하려는 것일까.
공산오차율(%) | 탄두가 목표물 살상거리 내에서 폭발할 확률 | 탄두가 지휘소를 타격할 확률 | 지휘소 타격을 위해 필요한 미사일 수 |
0.1 | 0.041816 | 0.033453 | 41 |
0.15 | 0.018806 | 0.015045 | 91 |
0.2 | 0.010622 | 0.008498 | 162 |
0.3 | 0.004735 | 0.003788 | 365 |
공산 오차율 (%) | 탄두가 목표물 살상거리 내에서폭발할 확률 | 탄두가 활주로 일부에손상을 입힐 확률 | 활주로 일부에 손상을 입히기 위해 필요한 미사일 수 | 탄두가 활주로를 절단할 확률 | 활주로 절단을 위해필요한 미사일 수 |
0.1 | 0.205905 | 0.164724 | 8 | 0.013567 | 101 |
0.15 | 0.138094 | 0.110475 | 12 | 0.006102 | 226 |
0.2 | 0.103788 | 0.083031 | 16 | 0.003447 | 401 |
0.3 | 0.069296 | 0.055437 | 24 | 0.001537 | 901 |
북한 미사일의 유용성을 평가하려면 미사일 사거리가 갖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거리 2000km이면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포함해 일본 전역이 사정권 에 든다. 언론에서 추정하는 것과 같이 대포동 2호의 사거리가 4000~6000km이면 괌의 미 공군기지, 북태평양 미국령 시미아 섬에 있는 조기경보 레이더,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에 있는 미군기지 및 도시까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북한은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위기상황이 되면 미국과 일본을 ‘위협’할 수단을 보유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공격용으로는 큰 가치가 없는 미사일이라 해도, 후방의 경제중심지와 인구 밀집지대를 가격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물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하는 데에는 정확도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쿄가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자위대본부를 파괴하겠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 본토에 떨어질 수 있는 미사일이 있는지가 중요하지, 구태여 작전지휘소를 파괴하겠다고 할 필요가 없다.
결국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정에서 정확도보다 사거리에 집중하는 것은, ‘위협’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미국이 전쟁에서 자국민의 인명피해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피해자가 늘수록 전쟁을 그만두라는 여론이 높아져 전쟁을 포기해야 하는 정치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군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고도 베트남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1990년대 걸프전과 코소보전에서는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중폭격과 미사일 공격을 중심으로 작전을 구사했다.
미사일로 현지의 미군을 가격하거나 설상가상 장거리 미사일로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상대라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해진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한다 해도 전쟁을 ‘결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994년 미국이 핵 문제를 두고 북한과 대립했을 때 군사력 사용을 고려했음에도 끝내 포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은, 전력의 심각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쟁을 각오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으로 미사일을 이용한 후방 위협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로 서로 상대방의 도시를 ‘위협’하며 핵전쟁을 억제했던 것과 유사한 ‘전쟁 억제전략’인 셈이다.
근본적인 대응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맞서 미국은 주한미군 방어용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방어 시스템 구축에 분주하다. 알래스카에도 미사일 방어용으로 초정밀 레이더와 요격미사일이 배치됐고, 해상에서 미사일 발사를 탐지,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도 한국 근해에 배치돼 있다. 한국도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교체한다는 명분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 도입을 추진 중이고, 북한의 미사일 기지 공격이 가능한 정밀 미사일을 구매하겠다는 의욕도 밝힌 바 있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추진하는 ‘전역미사일방어’ 사업의 하나로 해상전역방어체제 개발에 2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고, 북한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흘렸다. 한반도 군비(軍備)경쟁의 핵심축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한·미·일의 방어전략 개발 경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이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응의 방향은 북한 미사일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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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등을 이용한 미사일 방어체제는 다수의 북한 미사일이 서울이나 도쿄처럼 면적이 넓은 대도시를 동시에 겨냥하는 경우에는 별다른 효과를 갖지 못한다. 선제공격의 경우는 북한이 이를 북침 준비로 규정하고 대응할 빌미를 줄뿐더러,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발사준비 태세를 강화하는 구실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정밀 미사일로 이라크군의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제로는 몇 기밖에 파괴하지 못했다.
군사적인 방어수단으로 북한의 미사일이 대도시 등 후방지역에 가하는 위협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사일을 방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사일의 ‘존재이유’를 선제공격하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 개발이나 도입을 중단하고 상호군축과정을 통해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안보위협과 의구심을 풀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당사국이 안고 있는 전쟁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이 미사일 위협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책이다.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상호군축을 목표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최근 출간된 ‘북한 군사문제의 재조명(한울아카데미)’에 실린 필자의 글 ‘동태적 군사력 비교 2 : 단순 워게임 사례’ 중 일부를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