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지도자 양성하는 ‘의사결정 사관학교’ 생긴다
- 중국인은 달 점령, 유럽인은 화성 점령 계획
- 미래의 부(富)는 ‘평판 자산(Reputation Capital)’에 달렸다
- 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으로 인간이 永生을?
- “로봇은 우리 대를 이을 자식”
- 미래를 알고 싶다고? 그럼 ‘푸투라마’를 봐!
올 최대 참가그룹은 한국대표단
내가 해마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가장 앞서 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창조적인 친구를 사귀고 이들과 함께 미래사회 변화상을 예상해보는 것은 때론 짜릿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과 짝을 지어 공동 발표를 하고, 각국의 대표단을 섞어 한 분야의 결론을 내놓기도 한다. 사흘 동안 각종 회의실을 찾아다닌 참가자들은 마지막 프로페셔널 모임에서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를 만들기 위해 전략을 세운다. 이들은 미래의 ‘먹을거리’를 빨리 찾아 투자해야 훗날 로열티를 받아 거부(巨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한국은 지금 급격한 변화 탓에 미래를 탐구하려는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대기업 연구소들이 미래팀을 신설하는가 하면, 정부에서도 미래사회를 그려보려는 위원회를 신설하고 있다. 이런 관심이 반영된 때문인지, 세계미래회의 팀 맥 회장은 개회 인사에서 “올해의 최대 참가그룹은 한국대표단”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한국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교육인적자원부, 건설교통부, 청소년위원회 소속 공무원들과 SK, KT 같은 대기업 미래전략팀 직원들을 포함해 45명이 참가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기를 끈 토론 주제는 ‘21세기의 새로운 리더십’에 관한 것이었다. 모두가 똑똑한 시대에는 개인의 힘이 강해져 어디서든 한두 사람의 의견만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미래사회는 소수의 리더가 아닌 다수의 집단 리더십을 갈망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은 그룹의 참여를 통해 이뤄진다.
‘CIA 2020’ 보고서를 쓴 데드 고든 박사는 미국이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구축한 비결이 웨스트포인트(美 육군사관학교)의 창립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이제 새로운 의사결정 능력을 배우기 위해 세계 최대의 리더십 사관학교를 창립해야 한다”며 “미래의 리더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의사결정 사관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고든 박사는 사회과학분야에서 ‘의사결정학(Decision Science)’이라는 학문이 등장해야 하며, 이를 응용해 활용하는 나라가 미래의 부국(富國)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사결정학이 생긴다면 그 교과 과정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건, 사고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 위험과 보상의 수용과 균형, 경험과 논리의 차이, 다양한 미래현상에 대한 실험 및 훈련 등으로 꾸며질 것이다. 또 인간 사고(思考)의 모순을 이해하는 수업이나 도덕적인 용기, 그리고 미래의 윤리에 대해 배울 수도 있다.
와이너 에드리치브라운사(社)의 사장이며 미래학자인 에디 와이너의 견해에 따르면 의사결정능력은 국가적 비상사태를 예방할 수 있게 한다. 그는 “9·11테러, 쓰나미, 엔론의 파산 등은 많은 사람이 예측했고, 심지어 국가에 미치는 영향까지 모의실험을 한 것”이라며 “그러나 정부나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이를 무시했거나, 예측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화를 입은 경우”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보 수집이 아니라 최고 결정권자의 결정 능력이다.
누가 지구를 다스릴 것인가
퀸보그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의 족 매클랜 교수는 “미래사회의 의사결정은 집단참여 형태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보면 한두 사람의 잘못된 의사결정 때문에 회사가 망하고, 문명과 국가가 사라졌다. 이렇듯 실패한 회사와 국가의 지도자는 사회변화를 눈치채지 못했거나, 사회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로 이들은 변화의 명백한 증거를 거부하기도 했다. 미래사회에서 지도자는 의사결정능력을 기르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에서 ‘인간은 그룹으로서 더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향후 현명한 집단의사결정 기법이나 집단정보학 같은 학문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리더십 공부는 이쯤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보자. 사회기술연구소 톰 콩고 소장이 발표하는 회의실. 그는 “지구촌은 고령화, 가족구조의 변화, 인구의 증가 및 감소, 이동성 향상, 도시화, 여성의 파워 증대를 경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보았지만, 이제는 사회의 변화 그 자체가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회변화, 구매력의 변화, 수요와 공급의 변화, 기업행태의 변화, 삶의 변화를 연구하는 산업이 머지않아 뜰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엔 ‘워싱턴포스트’ 조엘 가로 편집국장의 연설장으로 가보자. 그는 “5년 뒤 인류는 정보화시대와 작별하고 후기정보화시대, 즉 의식기술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은 환경을 응용한 농경혁명을 일으켰고, 도시건설 등 문명을 일궜으며 이제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첨단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앞으로 부각될 연구는 인간의 마음, 기억, 인격 등을 탐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법한 회의실로 옮겨가 보자. 이른바 화성점령계획(Terra Forming Mars). 유럽화성학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화성에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고, 그곳을 날아다닐 기계를 개발하고,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결성했다고 한다. 지금은 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단계.
이들에 따르면 우선 수소, 질소, 산소를 화성에 뿌리거나 제조해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 다음 산소, 수소, 질소 등을 조합해 다양한 생명체나 물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적용한다. 이들의 주장을 듣고 보니 중국이 2015년까지 달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기억났다. 중국인이 달나라를 가겠다니, 유럽인은 좀더 원대한 목표를 세운 것일까.
토론장은 각국의 국익을 논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국경 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자는 회의실로 가보자. 토론자들은 미국,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러시아, 노르웨이 등이 북극과 연결돼 있는데, 거대한 얼음 때문에 현재의 국경이 모호하게 그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음이 녹으면서 어디까지를 자국 영토로 삼을 것인지 따지게 되고, 심지어 국지적 분쟁이나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아직 동토(凍土)가 녹지 않아 관심이 적을 때, 국제법상 규정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유엔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조약이 많아 머지 않은 때 심각한 국제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몇 년 전 위성궤도, 즉 공중에 대한 국가간의 영토 개념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된 적이 있다.
세계미래회의 국제대회장 곳곳에서 미래학 관련 서적이나 보고서를 접할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MB2020 보고서다. 보고서의 제목은 ‘글로벌 혁신 아웃룩 2.0’. 4개 대륙에서 진행된 15개의 심포지엄과 세미나, 33개국 248명의 CEO, 정부 고위관리, NGO 리더, 벤처캐피탈과 기업 컨설턴트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지구촌을 바꿀 3대 요소를 도출했다. 3대 요소는 미래의 기업, 교통 그리고 환경이다.
대기업, 다국적기업은 소멸?
미래의 기업은 어떤 형태일까. 보고서는 산업시대에 태어난 대기업, 다국적기업 등이 소멸하고 개인이 스스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기업처럼 활동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에 따라 고용형태, 취업, 일터 등의 개념이 급변한다. 현재의 개인은 더욱 큰 권력을 희망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룹을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과거의 네트워크는 주로 회사 내 동료들끼리, 혹은 학연이나 지연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지금의 네트워크는 개인의 관심사별로 결성된다. 통신의 발달 덕분에 네트워크는 사람과 장소, 아이디어를 종래와 다른 형태로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를 변화시킨다. 육체적, 지리적 한계 없이 자유롭게 만나고 서로 의견이 맞으면 이를 실현할 기구나 조직을 만든다. 이에 따르면 미래사회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열정’과 ‘관심’이다.
세계미래회의 행사장 곳곳에서 이 같은 소규모 회의가 열린다. 참석자들은 청중이자 발제자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의 최대 화제는 아인슈타인의 후예로 불리는 어빈 라즐로가 참석한 것이었다. 그는 시스템 이론의 창시자이며, 로마클럽의 창립회원이다. 소르본 대학은 그의 능력에 걸맞은 학위를 줄 수 없어 4개 분야의 명예박사학위를 주기도 했다. 그는 10년 전 로마클럽이 첨단과학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곳으로 변질되자 이에 반대하며 ‘부다페스트 클럽’을 창설했다. 이곳에서 예술과 인류애, 과학기술이 균형을 이루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74권의 책을 펴냈으며, 현재 이탈리아에서 미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래는 예측하기 힘든 대상이다. 일종의 카오스 같은 것인데, 카오스이론은 불확실한 것들이 어떤 형태를 만들면서 바탕에 깔리고, 그 위에서 또 예측이 불가능한 어떤 아름다운 형태를 엮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제시한 ‘카오스 정점’이란 지구가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그뒤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고, 기술로 진화한 인간이 등장한다. 더 책임감 있고, 더 평화로우며, 더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라즐로는 이제 카오스 이론이 실현돼 인류가 새로운 문명을 맞이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컴퓨터는 2010년에 우리 몸속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미래의 지구촌 주민들은 지구 문명을 걱정하고, 국경을 초월한 국제기구를 갈망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라즐로는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 미래를 조종하고 싶은 욕망, 지식을 스스로 창조하고 전파하고 싶은 욕망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컴퓨터는 몸속으로 들어간다
라즐로만큼이나 이목을 끈 인사는 폐회 연설을 맡은 레이 쿠즈웨일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에디슨 이후의 최대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쿠즈웨일 테크놀로지사의 회장이며, 음성인식기술, 시각장애인용 소리 인식기, 최초의 통역기기 등 수십종의 신제품을 발명한 바 있다.
쿠즈웨일은 “인간은 기계나 로봇과 융합해 ‘퓨전 신체’를 갖게 되고, 미세한 나노봇(‘나노’와 ‘로봇’의 합성어)이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 병을 치료해 인간은 조만간 영생(永生)을 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로봇이 인간의 후예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러나 그 로봇은 우리의 자식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가 로봇으로 서서히 융합되어간다고 본다.
그는 폐회 연설에서 ‘GNR’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소개했다. 유전학(Genetics)의 G, 나노과학(Nanotechnology)의 N, 로봇공학(Robotics)의 R을 합한 용어로 그는 이 세 분야가 미래사회의 ‘먹을거리’라고 강조했다. 이 3대 기술이 인간에게 가져다줄 부(富)와 평안은 막대하다. 다양한 병, 가난, 환경오염, 죽음까지도 향후 30년 뒤엔 극복할지 모른다. 그는 “2030년, 그러니까 불과 24년 뒤 인간의 수명은 무제한이 될 수 있다”며 “그때까지만 살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다. 아, 이 얘기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래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격찬한 ‘싱귤래리티가 근처에 있다(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을 쓴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싱귤래리티는 공상과학소설가 베너 빈지가 처음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 1960∼70년대의 많은 과학자가 이를 차용하기도 했다.
기술의 수준이 어느 순간 급상승해 ‘싱귤래리티 정점’을 통과하면 블랙홀 단계로 넘어간다. 블랙홀 뒤에 무엇이 나오는지,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인간은 모른다.
쿠즈웨일은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빨라 조만간 변화의 정점에 다다를 것이고 그때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내다봤다.
시선을 끈 것은 쿠즈웨일이 과거 자신의 주장에 사사건건 반대했던 빌 조이와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빌 조이는 인터넷을 만든 사람이다. 선 마이크로 컴퓨터의 칩을 만들어 컴퓨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고안한 기술자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쿠즈웨일이 기술발전에 따른 위험성을 간과하고 너무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며 비난한 바 있다.
빌 조이는 “현재 컴퓨터는 스스로를 디자인하며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컴퓨터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제 몫을 한다는 얘기다. 컴퓨터의 진화가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빌 조이는 그렇지 않다고 경고한다.
그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컴퓨터가 일한다면 앞으로 인간은 컴퓨터를 조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컴퓨터의 작동을 멈출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 분야나 국가안보에 적용하던 프로그램이 인간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면 인류는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이것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컴퓨터 ‘할’이 보여준 모습이다. 빌 조이는 지금 인류는 그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지만, 어느 한 순간 컴퓨터나 로봇 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빌 조이는 “미래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렇듯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만나 공동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하니 대회 참석자들은 비상한 관심으로 이들의 입을 쳐다보았다. 내가 보기에 쿠즈웨일은 빌 조이와 만나면서 조금은 현실적으로 견해를 수정한 것 같다.
원시시대로, 유목민으로…
쿠즈웨일은 정보화 소프트웨어가 지구촌 경제를 부양할 주요 동인이며, 인간두뇌보다 향상된 인공지능은 스스로 지능을 높이면서 인간의 두뇌와 융합된다고 예측했다. 이때가 되면 가상현실과 현실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스며들게 된다. 아직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물체의 순간이동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린다 그로프 교수의 얘기를 꺼낼 차례다. 그는 미래학을 가르치는데, 원래 전공은 인간의 진화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통합미래예측’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소개했다.
그가 빌 조이와 함께 제안한 이 방법의 핵심은 미래사회예측에 인간을 들여오자는 것. 지금까지의 미래예측은 기술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계를 이해하고, 기계를 작동하고, 기계에 모든 것을 내주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예측해야 미래사회를 제대로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를 발명했지만, 이제는 기계에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다. 기계를 멈추지 않기 위해 인간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기계가 인간을 조종하는 꼴이다. 기계가 인간을 이끌면 결국 인간은 기계의 종속물로 남는다. 미래사회에서는 인간이 기계를 멈추고, 기계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향후 미래예측은 도시, 인간, 삶, 사랑이란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
예컨대 도시의 미래를 예상할 때, 지금까지는 자동차의 발전 방향에만 초점을 맞춰 도로를 설계했다. 그러나 미래사회의 인간은 자동차를 타고 싶은 욕망보다 걸어서 어떤 지점을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도시는 인간이 많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미래예측은 인구의 증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이미 인구 감소가 본격화했고, 2050년이면 대부분의 국가가 인구 감소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미래예측은 인류가 다시 원시사회로, 유목민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감안해야 한다.
수명 다한 민주주의
그로프 교수와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 월트 트루엇 앤더슨 회장은 공동으로 “종래의 민주주의는 수명을 다했다”며 “21세기 새로운 사회에 적합한 신(新)민주주의를 개발해 독재국가에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종래의 민주주의는 시민을 무시한 제도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의견수렴이 쉬워지면서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제시하는 민주주의로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이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단기적인 정책을 내놓고, 문제를 단순하게 보며, 유연하지 않고 견고한 의견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멸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앞으로는 전자민주주의가 본격화하고 여론조사기법의 발달로 주민의견이 손쉽게 수렴되기 때문에 정당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특히 글로벌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각국의 정부를 통합해 재구성하는 것인데, 이에 따라 유엔도 새로운 모델이 고안돼야 한다. 세계무역기구, 국제금융기구, 세계은행, G8 등 지구촌의 기구가 통합된 정부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빗 피어스 스나이더는 스나이더패밀리 엔터프라이즈연구소 소장이며 ‘더 퓨처리스트’(세계미래회의에서 펴내는 잡지)의 편집인으로 활약하는 미래학자다. 그는 “미래사회는 자동화, 기계화, 정보화, 주문생산으로 인해 숙련공이 대량으로 해직될 것”이라며 “동시에 자유무역협정, 신지구촌 경제사회의 출현 등으로 지구촌의 노동시장은 하나로 통합되는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구촌 노동시장에선 전문직들의 견고한 협력체계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있는 노동력만 팔리게 된다. 이는 지구촌의 또 다른 문명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노동력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보기술을 이용하고, 사회경제 환경 바이오 의학 등의 분야에서 공동작업하게 된다.
또 노동자 색인, 검색 시스템이 등장해 노동자의 소재가 파악되며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오픈소스 시스템이 탄생할 것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가 생겨난다.
영국 멀로니 마인드연구소 카렌 멀로니 소장은 “미래는 여성의 힘이 증대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미래사회는 농경시대나 산업시대처럼 남성의 강력한 근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이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옮겨가 서비스업이 발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감성이나 부드러움, 영적인 터치, 센스 등이 중요하다. 다양한 서비스산업에서 여성이 경쟁력을 갖고 두각을 나타낼 것이란 예측이다.
영적인 터치, 부드러움, 센스
이미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 부를 누리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성이 거대한 구매세력으로 등장해 자동차산업의 경우 이미 여성이 선호하는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금융업도 여성을 위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정부부처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성조직이 활성화하고 있다.
미래사회 리더의 조건은 국민과 지역사회 주민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개별주의, 이기주의를 극복할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 타인의 영혼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사람이 리더로 부각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묻고 지구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을 이끌고 이 땅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갈 사람으로는 여성이 적합하다는 얘기다.
방송통신의 변화를 보자. ‘다빈치 인스티튜트’ 토마스 프레이 소장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만들어준 정보를 얻기보다 정보를 스스로 생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는 4980만개의 개인 블로그와 2만2467개의 팟캐스트(인터넷 개인 방송국)가 활동하고 있다. 개인은 앞으로 기자가 쓴 기사를 읽기보다는 스스로 기사를 생산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개인이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 성공한 위키피디아를 보자. 직원은 단 두 명뿐이지만, 3만6000명의 무료지원자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미래사회는 제품이 아닌 경험을 팔며, 무엇을 소유했는지 따지지 않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묻는다. 제품보다 경험이 더 비싼 가치를 지니면서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팔아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데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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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 도서관이나 식당 등이 문화센터로 변한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한데 묶어주고 쉬게 해주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장터가 될 것이다. 퓨처와 드라마의 합성어인 ‘푸투라마(Futurama)’는 미래경험을 미리 하도록 도와주는 미래의 방송이다.
멀티미디어는 지구촌을 무대로 방송, 취재할 것이다. 내로 캐스팅, 즉 개별화된 방송끼리 연합하면서 시청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멀티미디어는 미디어 컴퓨팅, 대화 모델링, 스마트 태그, 제스처 모델링, 음성 인식, 리얼타임 메시징 등으로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