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박근혜·이명박의 복심(腹心), 유승민 vs 정두언

유(劉) “이명박은 정계개편 계략에 말려들지 말라”
정(鄭) “박근혜 경선 불참 가능성이 더 걱정”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입력2006-09-06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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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요즘 말을 아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정책 투어에 나섰다. 둘 다 대선 정국의 중심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그들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정두언 의원을 통해 두 대선주자의 속내를 읽어봤다.
    박근혜·이명박의 복심(腹心), 유승민 vs 정두언
    한나라당 유승민(劉承旼) 정두언(鄭斗彦) 의원은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연배가 비슷하다. 정 의원은 1957년생, 유 의원은 1958년생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서울대 경제학과(유 의원)와 무역학과(정 의원)를 다녔다. 정치 입문의 시기와 계기도 유사하다.

    정 의원은 행정고시에 합격, 19년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다. 고위 공무원 같지 않은 끼와 튀는 행보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유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성가(聲價)가 높던 경제전문가였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다 DJ 정권의 견제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2000년 정치판에 발을 담근다. 정 의원은 4·15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 서대문구에 출마했고, 유 의원은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로 말미암아 정계에 입문했다.

    두 사람은 퍽 친하다. 17대 국회에서 친한 의원을 대보라면 서로의 이름을 들 정도다. “이 전 총재를 함께 모시면서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서로 인정하는 사이라고 했다.

    대나무가 두 쪽 나듯…



    최근엔 닮은 점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여론조사에서 1~3위권을 형성하는 유력 대선주자의 대표적 핵심 측근 의원이 됐다는 점이다. 유 의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원내 브레인으로 통한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전 시장에 의해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발탁된 바 있는 ‘이명박계 정책통’의 대명사다.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라는 공통의 신념으로 뭉쳤던 두 책사(策士)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대나무가 두 쪽 나듯 갈라져 상대를 향해 서로 창을 겨누는 모양새다.

    유 의원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이렇게 평했다.

    “승민이는 자기 장사를 안 한다. 경우에 어긋난 일도 절대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충성하면, 확실하게 한다. 우리끼리는 실력 있다는 것 서로 인정한다.”

    이번에는 정 의원에 대한 유승민 의원의 평가다.

    “이회창 캠프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렸다. 순수한 뜻을 가지고 온 사람이 몇이나 됐겠나. 하지만 정 의원은 돋보였다. ‘저 친구는 진심이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심 없이 일하더라.”

    ‘이회창’이라는 한뿌리를 가진 데다 사적으로, 업무적으로 동지였던 두 사람은 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을까. 그리고 이들의 선택 중 어느 쪽이 더 옳은 것일까.

    2001년 11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정두언 당시 서울 서대문을 지구당 위원장을 이명박 의원이 방문한다. 단순한 문병은 아니었다. 이 의원은 다음해 서울시장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한 시간 동안이나 병실에 앉아 정 위원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명박 의원은 다음해 1월 정 위원장에게 “나 서울시장 나가는데 좀 도와주라”며 정식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 시장이 자신을 참모로 낙점한 이유에 대해 정 의원은 이렇게 해석한다.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 경선전에서 홍사덕 의원이 앞서 있던 형국이었다. 홍 의원은 진영 당시 서울 용산지구당 위원장을 참모 격으로 데리고 있었다. 진 위원장은 이회창 총재 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이심(李心)’이 홍 의원에게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아마 이명박 의원이 나를 찾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를 데려다놓고 ‘정두언도 이 총재 측근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 요량이었던 듯하다. 당시 서울시 원외 위원장 중 비교적 소장파로 분류되는 상당수 인사가 홍사덕 의원 쪽에 가 있었다. 이 의원이 나를 데려오는 것은 서울 소장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었다. 내가 쓰임새가 많았던 셈이다.”

    “도와달라”며 내미는 손

    정 의원은 이 의원측의 이런 의도를 알면서도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주변 사람들은 이 선택을 처음엔 반대했다고 한다. 본인도 사실 마뜩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명박 의원이 경선에서 이길 것 같지 않았다. 이 의원의 첫인상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한동안 하루 24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이 의원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운 편인데, 그 사람의 거대한 용량이 느껴졌다. 매일 감동하다시피 했다.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1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유승민 의원에게 대표 비서실장직을 제의했다. 3년 전 서울시장후보 경선을 앞둔 이명박 의원이 정두언 위원장을 잡으려고 한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는 시각도 있다.

    유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이회창 후보의 대내외 참모조직 및 전문가 자문그룹의 운영에 관여해왔다. 이런 인연으로 대선 이후에도 경제계, 학계 등 각계에 포진해 있는 ‘친(親)이회창계 외부 인재 풀(pool)’과 유대가 있다. 또한 박 대표로선 대표로 재임하는 동안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에 구심점을 확보하는 일이 긴요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쓰임새 많은 유 의원은 박 대표의 부탁을 거절했다. 몇 차례 제의와 고사(固辭)가 오갔다고 한다. 다음은 유 의원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내가 모셔본 사람은 이회창 총재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도 부담이었지만, 비록 당의 공식직함이긴 해도 특정 대선주자의 비서실장으로 들어가면 정치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사실 그때는 박근혜 대표를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른 당직을 맡기면 하겠노라고 몇 번을 뺐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비서실장직을 맡은 후로는 몰랐던 박 대표의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단점도 보였지만 장점이 더 많았다. 비서실장 10개월이 끝난 뒤엔 내 입으로 ‘난 박 대표에게 줄 섰다’고 떠들고 다닐 정도가 됐다.”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 중 측근이던 유승민 의원은 그렇게 해서 박근혜 대표의 측근이 된다. 만약 이명박 전 시장이 유승민 의원에게, 박근혜 전 대표가 정두언 의원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면 유-정 두 의원의 위치는 서로 바뀌었을까.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다.

    정치권에서 ‘이합집산’은 다반사이지만, 이명박-정두언, 박근혜-유승민의 관계는 ‘우연’과 ‘필연’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자연스럽게 굳어져 현재로선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내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전이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양자 구도로 전개된다면 유-정 두 의원은 양 진영의 핵심 참모로서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할 판이다. 두 의원은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두 의원은 언변도 거침없다.

    “박근혜는 올드패션 됐다”

    그러나 지금 두 의원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만난다. 민감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두 의원을 각각 따로 만나, 최근 박근혜-이명박 진영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면화한 계기가 된 7·11 전당대회, 대선후보 경선의 룰, 대권주자에 대한 평가, 대선구도의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해 물었다. 말을 아끼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보다는 오히려 이들 두 의원이 양 진영의 솔직한 생각을 들려줄 적임자로 보였다.

    두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여진(餘震)을 일으키고 있는 전당대회 갈등에 대해 팽팽히 맞섰다. ‘어느 쪽이 먼저 전당대회에 개입했는지’에 대한 정두언 의원의 주장을 먼저 들어보자.

    “이명박 전 시장은 전당대회에 관여하지 않았다. 강재섭 후보가 대표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이 전 시장에게 했다. 이 전 시장 처지에선 지금은 여의도에서 멀면 멀수록 좋다. 일찍 발을 담그면 좋을 게 없다. ‘아무나 돼도 좋으니 관여하지 말라’고 이 시장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이 전 시장이 ‘개혁적이고 야성이 강한 인물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고 인터뷰를 했더라. 깜짝 놀랐다. 이 전 시장에게 왜 그런 인터뷰를 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내 추측인데, 이재오 후보가 요구한 것 같았다. 이 전 시장으로선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의원이 도와달라고 했는데 안 도와준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 전 시장도 ‘이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박근혜·이명박의 복심(腹心), 유승민 vs 정두언

    7월11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한나라당에선 내년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재오 후보는 박 전 대표도 중립을 지킨다고 하니 이 전 시장만 도와주면 될 것으로 생각한 듯하지만, 그게 그렇게 되나. 박 전 대표 쪽을 자극했고 반(反)이재오 라인이 형성됐다. 박창달 전 의원도 빌미를 제공했다. 쓸데없이 합동연설회에 박수꾼을 버스로 동원해 다른 후보들을 자극했다. 이재오 후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고, 이는 전략 부재의 결과였다.”

    정 의원의 얘기를 요약하면, 정작 이 전 시장은 ‘개혁적 후보’라는 말 한마디만 했을 뿐 실제로 전당대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건에 대해 유승민 의원의 해석은 전혀 달랐다.

    “이 전 시장 스스로가 라디오, 신문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이재오 후보를 지지했다. 박창달 전 의원이 전국을 돌면서 노골적으로 이재오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 박 전 의원이 이명박 전 시장 캠프에서 일하면서 대구·경북 조직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 상황이 종합적으로 박 전 대표에게 보고됐고, 박 전 대표가 ‘이런 불공정 경선으로 이재오 후보가 대표가 되면 과연 공정하게 당 관리를 하겠느냐’는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대표 경선이 실시된 전당대회장에서 주최측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박근혜 대표의 모습만 집중적으로 비췄다. 그러다 우리가 항의하니까 이명박 전 시장과 손학규 전 지사도 비추더라. 이런 게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7·11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의 지원을 받은 강재섭 후보가 이 전 시장의 지원을 받은 이재오 후보를 꺾은 것을 두고 대권 경선전 1라운드에서 박 대표가 승리한 것이란 해석이 당 안팎에서 나왔다. 그러나 정 의원은 “7·11 전당대회 결과는 장기적으로 이 시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당대회 결과 박 대표쪽은 수구, 반개혁, 올드패션으로 비쳐졌다. 반면 이 전 시장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쪽, 개혁적으로 비쳐졌다. 당내 개혁을 대변하는 소장파들이 이 시장 쪽인 점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이명박은 스펙트럼 넓어 불안”

    이번엔 다시 유승민 의원의 반박이다.

    “대권 주자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해보면 이 전 시장이 더 개혁적이라고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박 전 대표는 보수적인 이미지로 일반 대중에게 비친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이 과연 개혁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청계천 복원과 버스노선 변경을 해내는 ‘추진력’을 높게 평가받는 것이지, 개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 사실 이 전 시장은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좌에서 우까지 모든 게 가능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예측 가능하다. 우파적 개혁엔 박 전 대표가 더 적합하다.”

    두 의원의 견해 차이는 대선주자로서의 자질론으로 이어졌다. 두 의원은 상대의 약점을 비교적 정확히 짚고 있었고, 냉정하게 표현할 줄도 알았다.

    정두언 의원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같이 앉아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일단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내 “하지만 콘텐츠가 부족하다. 그건 누구나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반전시켰다. 그의 이런 평가는 “박 전 대표보다 이 전 시장이 본선 경쟁력을 더 갖췄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지지율과 본선에서의 경쟁력은 다르다. 국민이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여론조사 가상대결 결과가 말해준다.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고건 전 총리와의 1대 1 대결에서 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고 전 총리를 이겨본 적이 없다.”

    黨心, 박근혜에게 기울었다?

    유승민 의원은 “이 전 시장의 능력에 탄복한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누구보다 성공했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그에 따른 독선과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지도자는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후보의 자질이고 본선 경쟁력이다. 신뢰와 안정감에서 박 전 대표가 훨씬 앞선다. 도덕성 얘기는 하지 않겠다.”

    정두언 의원에게 이 시장의 약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 관리를 안 하고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이해가 된다”고 했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니 사람 관리할 시간이 없다. 사람 관리 잘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것 봤나. 이 전 시장은 자신감이 넘쳐 겸손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남은 기간 중 풀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라는 점은 인정한다.”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약점은 일상적인 일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것에 있다. 사람들은 대개 결혼하고, 애도 키워보고, 조직의 쓴맛도 보고 인사 좌천도 당해보고, 도덕적으로 나쁜 짓도 좀 해보는데, 박 전 대표는 이런 일을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정부패를 모르고 사심이 없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서민의 삶을 고민하는 마음의 진정성은 누구 못지않다. 인격, 도덕성, 국가관, 헌신하는 자세, 이런 것이 너무나 반듯하다.”

    현 시점의 각종 대권주자 여론조사를 보는 두 의원의 시각도 엇갈렸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지지도 곡선은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하면서 교차를 거듭해왔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런 패턴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5·31 지방선거 완승의 특수(特需)를 누린 박 전 대표가 청계천 복원 특수가 잦아든 이명박 전 시장을 앞서다, 친박 성향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새 지도부 출범 이후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다시 추월하는 모양새다.

    주목할 대목은 한나라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지난 전당대회 당시 대표최고위원에 출마한 후보들은 대의원을 상대로 자신의 지지도를 알아보면서 비공식적으로 대권주자에 대한 지지율 조사도 병행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도가 이 전 시장을 6대 3으로 크게 앞섰다. 전당대회 결과에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됐다.

    정 의원은 이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전당대회를 즈음한 시기는 박 전 대표의 절정기였다. 박 전 대표는 2년3개월 동안 대표직에 있었다. 지방선거 직전에는 테러사건도 있었고, 결국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최고 절정기에 그 정도라면…. 전당대회 이후 순위가 바뀐 것으로 안다. 이명박 전 시장이 의원, 원외 위원장,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설득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후보 경선 때가 되면 본선 경쟁력이 훨씬 중요한 기준이 된다.”

    유 의원도 “현재의 여론조사 지지도는 의미 있는 숫자는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해석은 정 의원과 판이했다.

    “지금이야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2강 구도지만 바뀔 것이다. 살아남을 대선주자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해 보인다. 무슨 일이 어떤 식으로 터져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과장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누가 누구보다 강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의미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내년까지 살아남느냐’이다. 그러나 지지도 조사를 들여다보면 박 대표는 확실한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취약한 여성, 젊은층, 블루칼라, 농민 서민층에서 지지가 두텁다. 이 전 시장은 고소득, 화이트칼라, 50대 이상에서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역적으로도 박 전 대표는 충청과 호남에서 강세다. 다시 말해 박 전 대표가 대선후보가 되면 이 전 시장의 지지층은 박 전 대표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이 더 높다.”

    “바꾸자고 하면 실수하는 것”

    대권후보를 뽑는 경선 방식의 변경 여부는 한나라당의 시한폭탄이다. 한나라당이 현재 채택하고 있는 경선 방식은 대의원 20%, 당원 30%, 국민참여경선 30%, 여론조사 20%를 반영해 결정하는 것이다. 즉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이 반반씩 반영된다.

    이 같은 방식은 2005년 홍준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가 만든 것이다. 당시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만큼 예민한 문제다. 한나라당 경선 구도가 깨진다면 경선 방식이 그 촉매 구실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전당대회 직후 그 전조가 보였다. 정두언 의원은 “현재의 경선 방식은 민심을 더 반영하는 쪽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100%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대권후보를 뽑는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를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은 “그런 얘기를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경선 방식은 이 전 시장과 가까운 홍준표 의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바꾸자고 주장하면 이 전 시장 쪽이 실수하는 것이다. 50대 50이 유리한지 100대 0이 유리한지 아무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진통 끝에 방식을 확정한 지 몇 달이나 됐나. 전당대회 전에는 없던 얘기가 전대 후에 나오니…. 당헌당규를 우습게 아는 처사다.”

    “경선은 처음이자 끝”

    정 의원 역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에선 한나라당 경선 방식보다 훨씬 더 외부 개방적인 경선안(案) 도입이 논의될 조짐이다. 이 같은 외부 환경 변화는 이 전 시장측에 유리한 국면이다.

    “검토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이 전 시장 생각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내 개인적 생각이다. 다시 검토해야 하고 ‘시대 흐름에 맞나 안 맞나’를 따져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바꾸냐’고 하는데, 경선은 여러 번 하는 게 아니다. 처음이자 끝일 수 있다. ‘전당대회 결과 당은 박 전 대표가 우세하니 밖의 비율을 더 높이자’는 주장이 틀린 얘기는 아니지 않나.”

    경선 방식 변경을 둘러싼 박-이 진영간 논란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폭발할 경우 이는 한나라당을 충격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대선구도에도 근본적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현 선거법상 정당 경선에 참여한 뒤 그 결과에 불복해 대선에 출마하는 방법은 없다.

    이와 관련, 이 전 시장이 결국 한나라당 경선에 불참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이 전 시장은 나이 문제 등으로 이번이 대권 도전의 마지막 기회이고, 현재 당내 대의원 지지에선 박 전 대표에게 밀리고 있다는 게 이 시나리오의 근거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경선불참 우려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직설적으로 맞받아쳤다.

    “이 전 시장의 경선불참을 걱정한다고? 우리는 오히려 박 전 대표의 경선불참 가능성을 더 걱정한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를 월등히 앞섰다.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지면 경선이 되겠냐고 오히려 우리 쪽에서 걱정을 했다.

    최근의 추세로 봐서 경선 불성립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고 본다.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을 앞서기도 하니 말이다. 박 전 대표는 일단 지지도에서 우세하니 경선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지지도는 점점 내려갈 될 것이다. 지금처럼 박 전 대표의 지지도가 급락하지 않고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게 오히려 경선을 무사히 치를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의 경선불참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고 일축했다.

    “뭘 계산하여 따지는 일은 박 전 대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당원이나 국민이 더 잘 안다. 그런 일은 오히려 이 전 시장 쪽이 가깝지 않나. 시중에 별별 루머가 나도는데, 이명박 전 시장이나 손학규 전 지사는 정계개편의 대상이 되거나 여권의 계략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10여 개의 ‘재료’ 더 있다”

    두 진영에 남은 기간은 이제 10개월여. 유 의원은 “박 전 대표는 국가적 이슈에 대해 명쾌하게 소신을 밝힐 계획이다.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장직에서 퇴임한 이후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의원은 “이 전 시장의 능력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전 시장을 인정하고 있다. 더 이상 뭘 보여준다는 건 우스운 얘기다. 그러나 이 전 시장측은 언론에 대서특필될 수 있는 10여 개의 재료를 더 준비해놓고 있다”고 했다.

    유-정 의원은 대선주자의 측근으로 통하고 있기에 불편한 점도 있다고 한다. 정 의원은 “내가 무슨 얘기만 하면 이 전 시장과 관련지어 회자된다. 할말이 있어도 제대로 못하는 게 답답하다. 이 전 시장의 측근이라는 타이틀만 없다면 당에 대해 할말이 진짜 많다”고 했다. 유 의원은 “나는 내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내년에 정권 교체를 못하면 그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져야 한다. 깨끗이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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