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의원은 행정고시에 합격, 19년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다. 고위 공무원 같지 않은 끼와 튀는 행보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유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성가(聲價)가 높던 경제전문가였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다 DJ 정권의 견제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2000년 정치판에 발을 담근다. 정 의원은 4·15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 서대문구에 출마했고, 유 의원은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로 말미암아 정계에 입문했다.
두 사람은 퍽 친하다. 17대 국회에서 친한 의원을 대보라면 서로의 이름을 들 정도다. “이 전 총재를 함께 모시면서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서로 인정하는 사이라고 했다.
대나무가 두 쪽 나듯…
최근엔 닮은 점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여론조사에서 1~3위권을 형성하는 유력 대선주자의 대표적 핵심 측근 의원이 됐다는 점이다. 유 의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원내 브레인으로 통한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전 시장에 의해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발탁된 바 있는 ‘이명박계 정책통’의 대명사다.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라는 공통의 신념으로 뭉쳤던 두 책사(策士)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대나무가 두 쪽 나듯 갈라져 상대를 향해 서로 창을 겨누는 모양새다.
유 의원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이렇게 평했다.
“승민이는 자기 장사를 안 한다. 경우에 어긋난 일도 절대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충성하면, 확실하게 한다. 우리끼리는 실력 있다는 것 서로 인정한다.”
이번에는 정 의원에 대한 유승민 의원의 평가다.
“이회창 캠프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렸다. 순수한 뜻을 가지고 온 사람이 몇이나 됐겠나. 하지만 정 의원은 돋보였다. ‘저 친구는 진심이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심 없이 일하더라.”
‘이회창’이라는 한뿌리를 가진 데다 사적으로, 업무적으로 동지였던 두 사람은 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을까. 그리고 이들의 선택 중 어느 쪽이 더 옳은 것일까.
2001년 11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정두언 당시 서울 서대문을 지구당 위원장을 이명박 의원이 방문한다. 단순한 문병은 아니었다. 이 의원은 다음해 서울시장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한 시간 동안이나 병실에 앉아 정 위원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명박 의원은 다음해 1월 정 위원장에게 “나 서울시장 나가는데 좀 도와주라”며 정식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 시장이 자신을 참모로 낙점한 이유에 대해 정 의원은 이렇게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