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막강 ‘토종 로펌’ 김&장

  • 정효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wiseweb@donga.com

    입력2006-09-06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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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강 ‘토종 로펌’ 김&장

    김&장을 이끌어가는 삼두마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무, 장수길, 이재후 변호사.

    “정말 우리는 억울합니다.”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김·장의 쟁쟁한 변호사들이 처음 보는 기자에게 대뜸 ‘억울하다’는 말부터 쏟아냈다. ‘헐값’ 매각 논란에 휘말린 외환은행 매입과 재매각 당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를 대리했다는 이유로 각계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의 수사 과정에 김·장이 자주 오르내리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제기되는 김·장에 대한 비판 여론은 어느 정도 자초한 면이 있다. 경위야 어떻든 국내 1위의 로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논란거리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따가운 눈총을 받는 부분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대형 사건에서 투기 의혹이 제기됐던 외국자본과 비리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측을 대리한 사례가 많다는 점. 또 몇몇 사건에서 이해가 상충하는 소송 양측을 모두 대리했던 사실도 도마에 올랐다. 법조계 안팎에서 김·장이 대형 사건을 싹쓸이한다는 지적과 함께 ‘1등 로펌이 돈벌이만 되면 뭐든지 한다는 거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간 김·장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공개적인 반박이나 변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김·장측은 “하고 싶은 말이 왜 없겠나. 다만 그 과정에 자칫 고객의 비밀이 누설될 경우 우리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신뢰를 잃을 수 있어 침묵했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김·장은 그간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대중 앞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잘못 알려진 점이나 오해를 바로잡고 김·장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 직접 설명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로펌 수임액 40% 차지

    김·장은 종종 삼성과 비교된다. 겉으로 비치는 이미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 부분 겹치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사건을 싹쓸이하는 김·장을 보면 국내 부동의 1위 기업인 삼성이 과거 중소기업이 먹고살아야 할 분야까지 손을 뻗치며 성장지상주의로 치닫던 때를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각계의 내로라하는 인재를 영입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시키는 것도 닮은꼴이다. 물론 김·장측은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매출 규모나 업종을 감안할 때 삼성과 같은 대기업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김·장 앞에는 늘 ‘국내 최대’ ‘국내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국내 변호사만 260여 명에 외국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까지 합치면 4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포진해 있다. 여기에 재정경제부,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정부 부처 고위간부 출신 고문도 상당수에 달한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씨와 최근 교체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도 한때 김·장 고문으로 활동했다. 한승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원봉희 전 재경부 금융총괄국장, 한택수 재경원 국고국장, 전홍렬 전 금감원 부원장, 김병일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등 경제부처 고위직 인사가 김·장을 거쳐갔거나 지금도 몸담고 있다. 경제부처 국장급 간부 출신도 다수 영입됐다.

    수입 면에서도 업계 최고다. 연봉 6억원 이상의 고액 변호사(사내 변호사 제외, 변리사 포함) 10명 중 8명은 김·장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업계 2~3위인 법무법인 광장보다 12배나 많은 수치다.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 소득 6억960만원 이상 변호사 150명 중 114명이 김·장 소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장 소속 변호사 2명 중 1명꼴이다.

    김·장의 수임액은 전체 로펌 수임액의 40%를 차지한다. 단순 매출액만 따질 경우 2위 그룹인 광장, 태평양, 세종의 4배가량에 달한다. 판사나 검사 등 이른바 전관 출신 변호사도 다른 로펌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 6년간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전관 출신 변호사 258명 중 45명이 김·장으로 향했다. 검사 16명, 판사 29명이다.

    이런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김·장이 규모나 급여 수준에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나름대로 최고라고 자부하는 현직 판사나 검사의 상당수가 한번쯤 김·장에서 일해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고액 연봉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김·장에서 일한 경험이 나중에 독립했을 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한 덕이다.

    철저한 성과급제

    김·장은 공개 채용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인재를 뽑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사법연수원 졸업생을 뽑는 경우엔 개인의 실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각계 유력 인사의 자제를 채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해외 대학 출신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연수원 졸업생도 영입 1순위라는 게 한 법조계 인사의 전언이다. 내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미리 국제적 감각이 있는 변호사를 충원한다는 뜻에서 매년 사시 기수별로 해외 대학 출신 한두 명씩을 영입하고 있다는 것.

    한 예로 사법시험 44회 합격자 중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출신의 모 변호사는 김·장이 끈질긴 구애(求愛) 끝에 영입에 성공했다. 또한 사시 39회로 5개 국어에 능통한 한 여성 판사도 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김·장에서 시작한 초임 변호사 중 상당수는 2,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로펌으로 옮기거나 개업한다고 한다. 한 법조계 인사는 “워낙 업무량이 많고 철저히 성과급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애당초 초임 변호사들이 오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며 “김·장에서 근무한 경력을 토대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변호사가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장에 채용됐으나 다른 로펌을 선택한 한 초임 변호사는 “김·장을 비롯해 상위 5개 로펌의 연봉 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팀워크를 중시하는 김·장의 경우 자문 분야에는 도움이 되지만 송무(訟務) 능력을 원하는 나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법조계 최고 인재들 속속 합류

    김·장이 국내 최대, 최고의 로펌으로 성장한 데는 무엇보다도 인재에 대한 투자가 한몫했다. 소속 변호사의 자기계발을 위해 외국 유학이나 연수제도를 도입한 것도 국내에선 김·장이 처음이다. 인재에 대한 이런 예우는 각 분야의 최고 인재가 김·장을 찾게 만드는 흡인력인 듯싶다.

    통상 국제거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유학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김·장은 7년 이상 변호사 실무 경험을 철저히 쌓게 한 후에 연수를 보낸다. 미국으로 연수를 가는 경우 로스쿨이나 법학석사 학위 과정을 이수한 후 현지 대형 로펌에서 일정기간 실무를 다뤄보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른 국가로 연수를 가더라도 ‘일정 기간 교육 + 실무 수습’이라는 프로그램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 위주로 이뤄졌던 해외 연수는 영국, 일본, 독일, 중국 등으로 점차 다변화되고 있으며 어디로 갈지는 변호사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같은 내부 교육과 해외 연수 프로그램 연계는 개개 변호사의 역량을 강화해 김·장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졌다는 게 자체 평가다.

    지금은 이런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 대형 로펌 사이에선 일반화돼 있지만, 1980년대 김·장이 처음 시도할 때만 해도 워낙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모험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과감한 투자가 김·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우수한 인재가 김·장으로 몰리게 하는 기반이 됐다는 점은 다른 로펌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해외 연수를 다녀온 김·장 소속 변호사들은 “선진 법률체계와 최신 법률시장 동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 같다”며 “재충전의 기회가 됐을 뿐 아니라 미국 변호사 자격이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연수 과정에서 외국 판례나 논문뿐 아니라 외국 법조인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도 해외 연수의 장점으로 꼽았다.

    막강 ‘토종 로펌’ 김&장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세양빌딩에 위치한 김&장 법률사무소 입구. 대부분의 국내 로펌이 법무법인 형태인 것과 달리 독립된 변호사들의 연합체인 조합 형태를 취하고 있다.

    김·장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것은 이처럼 각 분야의 최고 인력으로 꾸려진 팀 구성과 원활한 팀플레이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김·장은 초기부터 팀플레이를 강조해왔다.

    통상적인 사건의 경우 외국 유학을 마친 7년차 이상의 중견 변호사,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5년차 미만의 주니어 변호사, 외국 변호사가 한 팀을 이룬다. 여기에 회계사, 변리사, 경제부처 출신 고문이 참여하고 규모가 큰 사건에는 20~30명의 변호사가 한꺼번에 투입되기도 한다.

    사건별로 새롭게 팀이 꾸려지면 선배 변호사가 지휘하게 되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은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철저한 토론을 거쳐 이뤄진다. 사건의 핵심을 짚고 업무 진행 방향을 정하는 것은 선배이지만, 관련 법령을 연구하고 국내외 사례를 찾아 분석하는 것은 후배 변호사들 몫이라는 것.

    이 같은 업무 처리 방식은 일반 기업에서 보고 결재 과정에 내용이 바뀌거나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신속성과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김·장측의 설명이다. 또한 선배 변호사들이 토론 과정에서 후배들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한편, 신중한 결론 도출로 한두 명의 변호사가 진행하는 것에 비해 시행착오를 사전에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팀플레이와 함께 신입 변호사 영입, 이해충돌 여부, 공익활동 등에 관한 사항들을 담당하는 개별 운영회도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치열한 내부 경쟁

    김·장은 업계 최고 인재들이 모여 있는데다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보니 분위기가 삭막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 같은 평가를 의식한 듯 김·장에는 마라톤, 축구, 등산, 영화, 음악 동호회 등 다양한 소모임이 결성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김·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는 그룹별로 야유회를 여는 등 유대를 강화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김·장의 4년차 변호사는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내부 경쟁이 치열하고 분위기도 냉랭할 것으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막상 한 식구가 되고 보니 선배들의 진심어린 배려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장은 1972년 김영무(金永珷·64) 변호사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장수길(張秀吉·64) 변호사와 함께 설립한 법률회사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당시 김 변호사는 앞으로 외국과의 거래에서 국제거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한국에도 로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가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계기는 대학 동기인 장수길 변호사가 사법파동으로 판사를 그만두면서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한국 법률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

    고등고시 사법과 최연소(21세) 합격자인 장 변호사는 서울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신민당사 농성사건’을 맡아 대학생 10여 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군사정권하에서 도저히 하기 어려운 이 일로 장 변호사는 결국 이듬해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법복을 벗은 그는 김영무 변호사와 함께 김·장 법률회사를 세웠다.

    그야말로 ‘벤처회사’로 출발한 김·장은 법조계 최고 인재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1976년엔 사시 16회 차석 합격자로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한 정계성 변호사가 연수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김·장에 직행했다. 정 변호사는 김·장의 장수길 변호사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1971년 ‘신민당사 농성사건’ 관련자로 재판에 회부됐다가 장수길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받은 학생 중 한 명이다. 정 변호사의 김·장 직행은 이후 연수원 출신 우수 인재가 재조(在曹)를 거치지 않고 김·장으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1979년에는 서울대 법대 수석 합격자인 이재후(李載厚·66) 대법원 재판연구관이 합류했다. 현재 김영무, 장수길 변호사와 함께 김·장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 이재후 변호사는 “길게 보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 국제적으로 유능한 변호사로 키우는 데 역점을 둬왔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1974년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자인 정경택 변호사와 1975년 서울대 전체 수석 졸업 및 1977년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의 기록을 가진 신희택 변호사가 각각 연수원 졸업 후 군복무(군법무관)를 마치고 곧바로 김·장에 합류했다.

    이후 김·장에는 ‘수석 졸업’ ‘수석 합격’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변호사를 손에 꼽을 정도로 ‘최고’소리를 듣는 변호사가 몰려들었다. 전문성과 다양성도 강화됐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도현수·이동환·강명수 변호사, 기계설계학과를 나온 김원 변호사, 전자공학과 출신의 김의석·우성엽·김삼범 변호사, 물리학을 전공한 이시열 변호사 등이 대표적인 인재다. 또한 의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원복 변호사나 약대를 나온 이진영 변호사 등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변호사가 속속 김·장으로 몰려들었다.

    시민공익법률상담소를 만들어 법률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던 서민을 위해 일했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한때 김·장 멤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배후 조종자로 체포돼 1년6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했으나 다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6년여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1980년 수배 해제로 복권한 조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에 재입학, 1982년 졸업 후 김·장에서 활동하다 1984년 독립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으로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를 지낸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인권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박인제 변호사, 참여연대에서 활약한 김주영 변호사도 한때는 김·장 소속이었다.

    법조와 검찰 고위직 출신 중 현재 김·장에 몸담고 있는 변호사로는 이임수 전 대법관,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 윤동민 전 검사장, 이정수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꼽을 수 있다. 하나같이 재조 시절 명성을 떨치던 인물들이다.

    우수 인력 확보에 박차를 가한 김·장은 1980년대 후반까지 국내 변호사 50여 명과 외국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전문 인력 20여 명을 확보한다. 이후 주로 국제관계 사건에서 국내 기업을 대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외화 금융계약 서류양식 최초 국산화

    1990년대 중반, 김·장은 그간 국제관계 사건에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사건 전문 로펌의 자리를 굳혔다. 변호사 숫자만 3000명을 웃도는 미국, 영국의 대형 법률사무소와 견줄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 김·장은 그동안 외국의 대형 로펌에 의존해온 각종 외화 금융계약 서류양식을 처음으로 국산화했다. 김·장 소속 변호사들은 각종 계약 서류를 우리 실정에 맞게 개발한 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국내 법률사무소들은 국내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다룰 때도 홍콩 등지의 외국 대형 로펌에 거액을 지급하고 주요 계약서를 만들어야 했다고 한다. 김·장이 개발한 각종 계약 서류는 현재 모든 국내 법률사무소에서 활용되고 있다. 김·장은 이 같은 우수인력 확보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근 수년째 아시아 최우수, 국내 최우수 로펌에 선정되고 있다.

    한편으로 법조계 안팎에선 김·장이 소액의 민사나 형사사건까지 독식하면서 법률시장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들린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개업한 한 변호사는 “대형 마트가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의 손님까지 빼앗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장의 한 변호사는 “우리처럼 기업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로펌과 개업 변호사의 역할은 다르다”며 “우리가 개인간 민사소송이나 형사사건까지 수임한다는 건 낭설”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의 말대로 김·장의 주 영역은 국제통상업무, 기업 인수합병(M·A), 금융과 증권 관련 업무, 지적재산권, 공정거래 등이다. 그런데도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 비자금 사건에서 나타났듯 기업 총수 관련 사건 등 ‘액수’가 크거나 국민의 관심이 큰 사건을 상당수 수임하면서 세간에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는 게 중론이다.

    막강 ‘토종 로펌’ 김&장

    4월19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론스타 기자회견장에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오른쪽에서는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잣대와는 별개로 김·장이 그간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기능은 그것대로 인정하는 것이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각계 최고 인력이 모인 김·장이 국가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외국인 투자가 경제발전의 핵심 요소인 한국에서 김·장은 30여 년간 국내 기업의 외자유치 사업 참여를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초석을 제공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다국적기업의 투자와 기업 활동에 법적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노릇을 했다는 것.

    김·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의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코앞에 닥친 환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장 소속 변호사들은 당시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했던 남미의 사례를 비롯해 채무연장 방식과 범위 등 발생 가능한 거의 모든 사태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재경원 간부들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은행 대표자들을 일일이 만나 우리 정부의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 외국차관 도입에 도움

    1970년대 한국경제의 성장에 발판이 된 것은 외국 차관이었다. 당시 김·장은 국내 은행과 기업이 외국은행에서 차관을 도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업무를 수행했다. 김·장 창립자인 김영무 변호사는 1970년대 후반 정계성 변호사와 함께 호남정유와 대한항공이 각각 2억달러와 5억달러의 차관을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큰 액수다.

    1980년대 초반에는 미국 최대 통신회사이던 AT·T와 한국 LG의 광(光)통신사업 합작투자 건에 대한 법률자문을 맡았다. 한국통신, 한국전력, 포항제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주택은행, 국민은행 등 국내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증권 발행 과정에는 거의 예외없이 김·장이 참여했다.

    그러나 최근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 등을 거치면서 국민의 시선이 싸늘해지자 업계 ‘최고’로서 국가경제 성장에도 나름대로 기여했다고 자부해온 김·장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비판의 정도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1등에 대한 막연한 질시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고객의 신뢰가 생명인 법률서비스 제공자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대형 외국로펌에 맞설 경쟁력을 갖추는 데 전력을 기울여도 부족할 판에 국내의 비판 여론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먼저, 외국기업을 대리해 그들이 국내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나는 이른바 ‘먹튀’를 도왔다는 비판이 있다. 미국계 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과 재매각 과정에서 김·장이 법률자문을 맡은 것이 도화선이 된 듯하다. “국내 1등 로펌이 외국계 펀드의 ‘먹튀’를 도와야 했느냐”는 지적에는 부도덕한 외국자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배어 있다.

    이에 대해 김·장 소속의 한 중견 변호사는 “법률과 국민정서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 같다”며 “이는 단순히 정서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법률적인 면에서 볼 때 비록 외국기업이라고 해도 국내에서 기업 활동을 할 경우 헌법상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부정적인 국민정서나 여론 때문에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할 경우 국가 신인도를 높이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게 김·장측의 해명이다. 국민적 비판을 받는 외국 자본이나 기업의 법률 자문을 김·장이 거절하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그들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제기한다.

    “외국 대형 로펌에 사건 뺏기란 말인가?”

    그렇지만 법조계 일부에선 “한국을 대표하는 로펌이 국민 정서나 여론을 도외시한 채 헌법적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주장을 편다. 이에 대해 김·장측은 “1등 로펌이라 안 된다면 과연 어느 수준의 로펌이 그런 사건을 맡아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지 되묻고 싶다”고 반박한다.

    개인 변호사 업계에서도 통상적인 사건 수임과 관련해 똑같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살인이나 반국가적 행위를 한 자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 외국의 대형 로펌에 사건을 뺏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장에 대한 비판의 또 다른 축에는 경제부처나 금융기관 고위직 출신 인사의 대거 영입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고문’이라는 직책을 지닌 이들의 역할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중견 변호사는 “변호사도 아닌 전직 고위 관료를 영입해 고액의 연봉을 주며 어디에 활용하겠나. 결국 대(對)정부 로비 창구 노릇을 하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과거 김·장 고문이었거나 지금도 몸담고 있는 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 중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 당시 이 전 부총리가 김·장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6월15일 이 전 부총리의 은행 거래 명세를 조사하기 위해 외환은행 서울 한남동지점을 압수수색했다.

    일각에선 이 전 부총리뿐 아니라 론스타의 법률대리를 맡았던 김·장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특히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 이른바 ‘이헌재 사단’으로 불리는 전직 경제부처 고위 간부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의혹의 시선이 증폭됐다.

    그러나 김·장측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재매각 과정에 우리는 단순히 국내법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맡았을 뿐”이라며 “이 전 부총리도 그 과정에 전혀 기여한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건 관련자들이 이 전 부총리와 학맥이나 인맥으로 얽혀 있어 그 불똥이 김·장까지 튀고 있다는 주장이다. 얼마 전까지 경제부총리이던 한덕수씨와 전홍열 금감원 부원장도 김·장의 고문이었고, 이주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서영택 전 건설부 장관은 고문으로 재직중이다.

    김·장이 외부의 비판에도 정부 부처 고위 관료 출신을 계속 영입하는 이유는 뭘까. 김·장측은 토마스 허바드 전 주한미국대사가 미국의 한 로펌에 고문으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변호사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확보해야 외국 로펌에 맞설 수 있다는 것. 변호사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전문 영역에서 이들의 자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설명이다.

    김·장측은 이미 로펌에서 회계사나 변리사, 언론인 등을 영입해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된 점을 강조하며 정부 관료 출신을 영입하는 것도 같은 관점에서 봐주기를 원한다. 실제로 최근 로펌을 찾는 고객은 단순히 사건 소송만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 법률서비스’를 요구하는 추세다. 김·장측은 “김·장 소속 고문들은 변호사가 모르는 전문지식과 해당 분야의 실무 경험을 제공한다”며 “고객도 한층 나은 법률서비스를 제공받게 되므로 만족스러워 한다”고 주장했다.

    쌍방 대리, 법적으론 문제없지만…

    ‘쌍방 대리’ 논란도 김·장을 옭아매고 있다. 대형 사건 소송에서 쌍방을 모두 대리해 막대한 매출을 올렸다는 게 비판의 요지. 진로와 골드만삭스, SK와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 사건에서 김·장은 양측을 모두 대리했다. 김·장측은 “두 사건 다 대한변호사협회나 검찰 조사를 통해 문제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쌍방 대리’는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쌍방 대리’ 논란은 소송의 원고와 피고를 동시에 대리할 수 없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이는 고객에 대한 충실 의무를 보장하고 변호사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이를 지나치게 엄격히 제한할 경우, 역으로 법률 소비자의 변호사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유럽 일부 국가에선 이 같은 변호사의 ‘이익 충돌’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김·장의 영업 형태도 논란거리다. 대부분의 국내 대형 로펌이 법무법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과 달리 김·장은 아직까지 조합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쌍방 대리’를 가능하게 하고 세금을 줄이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소속 변호사가 각자 사업자 등록을 한 개인연합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장의 김모 변호사가 국내에서 월급이 가장 많은 사람으로 나타났는데, 월 소득이 무려 47억5367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김·장의 사업자등록증이 김 변호사 명의로 돼 있어 발생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규모 비해 수임 많지 않다”

    김·장측은 “조합 형태이긴 하지만 하나의 사업자로 등록된 단일 사업장”이라며 “로펌 명의로 사건을 수임하고 담당 변호사에게 업무를 분배해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법상 법무법인의 부담세액은 법인세, 구성원 변호사의 근로소득세와 배당소득세 등을 합한 것이다.

    김·장측은 소속 변호사들의 개별 사업소득세를 합치면 법무법인 형태로 운영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다. 김·장 소속 중견 변호사는 “조합 형태가 의사 결정에 효율적이고 사적 자치의 원칙에도 맞는다고 본다”며 “세계적으로도 법무법인 형태의 로펌이 점차 법무조합 형태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로펌의 대형화와 전문화에 적합해 미국, 영국 등지에서도 대부분 조합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법무법인 형태의 일부 로펌이 최근 법무조합으로 조직 변경을 시도했다가 세금 문제 등으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로펌이 그동안 구성원 변호사에게 법인 이익을 배당해왔지만 제대로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아 기존 법무법인을 청산할 경우 누적된 소득세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 곤혹스러운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장에 대한 비판거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싹쓸이와 고액 수임료 논란이다. 2003년 현대 비자금 사건과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이어 2005년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최근의 현대기아차 그룹 비자금 사건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총수와 관련된 대형 사건은 대부분 김·장이 수임했다. 항간에는 이들 대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수임료를 받았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러나 김·장측은 “언론이 주목한 사건이 많아 부풀려진 면이 있다”며 “회사 규모를 감안하면 수임 건수가 많다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만 260명이 넘기 때문에 중소 로펌보다 수임 건수가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사건 수를 소속 변호사 수로 나눌 경우 그다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수임료만 해도, 여러 명의 변호사와 회계사 등이 팀을 이뤄 사건을 처리하기 때문에 법원이나 검찰의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에 비하면 낮은 편이라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개인 변호사나 중소 법률사무소와 달리 김·장은 외국처럼 변호사가 실제로 업무 수행에 투입한 시간에 비례해 수임료를 받는다. 이 때문에 턱없이 과다한 수임료를 받기 힘든 구조라는 게 김·장측의 반박이다.

    ‘싹쓸이’와 경쟁력

    국내 최고의 위치를 고수해온 김·장은 당장 내년에 닥칠지 모르는 법률시장 개방이라는 파도에 직면해 있다. 시장 개방을 한 독일의 경우 영미계 대형 로펌의 진출로 자국 내 상위 10대 로펌 중 2개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최근 영미계 로펌의 파상 공세로 국내 로펌이 상당히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법률시장이 개방될 경우 이들 영미 국가 로펌에 맞설 수 있는 국내 로펌은 극소수일 것으로 보인다. 김·장이 최근 몇 년 사이 각계 최고 전문 인력을 싹쓸이하다시피 영입하는 것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둔 대비책으로 볼 수 있다. 대형화와 전문화를 통해 시장 개방의 파고를 넘겠다는 전략이다. 김·장이 이미 확보한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률시장이 개방될 경우 외국계 의뢰인이 많은 김·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부 로펌은 외국 대형 로펌과의 합병이나 제휴를 구상하고 있다. 김·장 소속 한 시니어 변호사는 “외뢰인들이 일시적으로 외국계 로펌으로 몰릴 수도 있지만, 결국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로펌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하튼 법률시장 개방은 김·장이 30여 년 동안 지켜온 국내 업계 1위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법률시장 개방을 전후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로스쿨에서 본격적으로 법조인을 배출하면 김·장은 안팎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김·장이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무료법률 상담 등 그동안 꾸준히 해오던 공익활동에 더욱 충실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국계 대형 로펌에 맞서 ‘토종 로펌 1위’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대국민 서비스 이미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위상과 영향력에 걸맞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김·장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비판론을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최고 로펌으로 거듭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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