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브로커 김홍수 연루 기업’ 고발 진정서

”판사·검사 로비용 자금 총 20억원” ”로비 성공하면 3.7배 배당 준다며 모금”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09-06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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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자 : “소송 로비에 20억 필요하다고 해”
    • 검찰 : “해당 기업, 김홍수 통해 판사에 로비”
    • 해당 기업 : “법조인에게 로비한 적 없다”
    ‘브로커 김홍수 연루 기업’ 고발 진정서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로비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관행 전 부장판사, 김영광 전 검사, 민오기 총경(왼쪽부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는 8월9일 조관행(趙寬行·50)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차관급 고위법관 출신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1951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조 전 부장판사는 경기도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을 둘러싼 민사소송(골프장 사업계획 승인권 양수도 계약 무효확인 소송)에 개입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부장판사는 2003년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를 통해 이 골프장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주)S사의 관계자인 최모씨측으로부터 “승소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15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S사측은 2005년 7월 서울고법의 항소심에서 승소했으며 2006년 6월 대법원에서도 승소했다. 해당 골프장 운영 사업권과 관련하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S사측은 대법원 판결 직후 골프장 소유주인 ‘피고’ (주)대지개발측으로부터 370억원을 받고 사업권을 넘겼다.

    검찰이 확보한 관련자 진술에 따르면 조 전 부장판사는 김홍수씨의 소개로 최모씨를 모 호텔에서 만났으며, 최씨는 금품이 담긴 케이크 상자를 조 전 부장판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씨가 신용카드로 케이크 구매 대금을 결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김홍수씨는 2001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조 전 부장판사에게 12차례에 걸쳐 2200만원의 용돈과 고가의 가구를 줬으며, 조 전 부장판사의 도움으로 양평 TPC 골프장 소송 승소 이외에도 부동산가처분신청 해제, 보석 허가, 영업정지처분 행정소송 승소를 이끌어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 밖에 김홍수씨는 김영광(金榮光·42) 전 검사와 민오기(閔伍其·51) 총경에게도 각각 본인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혐의 처리와 청부 수사를 부탁하며 1000만원과 3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검사와 민 총경도 구속됐다. 김홍수씨가 법조인들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로비를 했다는 추가 의혹이 나오고 있어,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은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전주(錢主)가 ‘추가 의혹’ 제기

    이런 가운데 “양평 TPC 골프장 소송 건과 관련해 판사·검사를 대상으로 한 S사의 로비자금이 더 있었으며 총 20억원에 달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검찰에 제출한 ‘수사촉구 진정서’를 통해 이같이 밝힌 증언자는, S사측에 법조 로비 자금 용도로 20억원을 대줬다는 전주(錢主)였다.

    양평 TPC 골프장 소송건과 관련, 법조인 대상 로비가 사건화된 것은 조관행 전 부장판사의 1500만원 수수뿐이다. 그러나 이 투자자에 따르면 법조 로비용 자금은 그 10배가 넘게 책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로비용 자금을 직접 제공했다는 당사자의 증언인데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것 외에도 법조 로비가 더 있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투자자인 (주)I사의 이모 대표이사는 8월8일 서울중앙지검에 S사의 양평 TPC 골프장 소송사건과 관련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골프장 관련 법조로비사건과 관련해 조관행 전 부장판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이다.

    ‘신동아’가 최근 입수한 이 진정서에서 이 대표는 “2006년 1월25일 S사측 관계자인 A씨와 브로커로 추정되는 B씨가 내 사무실로 찾아와 양평 TPC 골프장 소송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소송에서 승소해 골프장 사업권을 받을 수 있도록 20억원을 투자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내가 ‘왜 20억원을 대야 하는가’라고 묻자 A씨와 B씨는 ‘그 정도의 돈이 있어야 법관과 검찰 등에 로비를 해 (TPC 골프장의 실제 주인인) 문병욱 회장을 구속시키고, 재판에서도 승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당일 20억원을 지급했다”고 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A씨측은 이 대표이사에게 “재판 승소시 투자금액(20억원)에 따른 ‘이익 배당금’으로 70억원을 2006년 7월31일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와 A씨측은 ‘20억원 제공 및 그에 따르는 재판 승소 이후의 반대급부 70억원 제공’을 약정해 C법무법인에서 공증을 받았다고 한다. A씨는 S사를 실질적으로 대표 했으며, 브로커 김홍수씨를 통해 조관행 전 부장판사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최모씨와도 잘 아는 사이로 알려졌다.

    진정서에 따르면, 로비자금을 댔다는 이 대표가 이처럼 ‘추가 법조로비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수사를 촉구한 것은, S사가 재판에 승소했음에도 A씨와 B씨가 승소에 따른 이익 배당금은 물론 ‘원금’에 해당되는 로비자금 20억원도 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뒤 골프장측에 사업권을 넘겨주고 대신 370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당초 약속한 70억원을 지급하지 않고 잠적했다는 것. 이 대표는 진정서를 통해 “진정 내용을 수사해달라”고 촉구했으며 서울지검은 현재 이 대표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 로비에 투자하세요”

    진정서 내용만으로는 이 대표가 제공한 20억원이 A씨나 브로커 등을 통해 법조인 로비에 실제로 사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법조인 로비’에 투자를 하고 반대급부로 3.75배의 ‘로비 성공 배당금’을 지급받는 이렇듯 기묘한 ‘투자계약’이 실제로 맺어져 20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건네졌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의 건전한 법 상식에 충격을 주는 일이다. 사법기관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사안으로도 비쳐질 수 있다.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그간 숱한 논란과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인이던 문병욱 썬앤문 회장이 소송당사자(피고측)가 되어 주목을 끌었고, 이 골프장을 담보로 한 금융기관의 잇따른 대출과 관련해 특혜의혹이 일었다.

    분쟁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양평 TPC 골프장 부지는 계몽사 자회사인 영아트개발 소유였다. 영아트개발이 부도가 나자 이 회사에 259억원을 대출해준 동원파이낸스는 이 부지를 1999년 4월 경매에 넘겼다.

    S사는 195억원에 이 골프장 부지를 낙찰했다. S사는 경매와는 별도로, 골프장 사업계획승인권 등을 200억원에 매수하기로 영아트개발과 계약했다. 그러나 이후 S사는 자금이 모자라자 동원파이낸스에 175억5000만원의 대출을 요청했다. 그때 S사는 동원파이낸스에, S사와 대지개발이 맺은 ‘골프장 사업계획승인권 양수도 계약서’를 제출했다. 대지개발은 동원파이낸스가 설립한 회사였다. S사가 잔금 납입지연에 따른 이자 등 35억원을 납입하고 동원파이낸스측으로부터 175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골프장 부지를 모두 넘겨받으면 사업계획승인권 양수도 계약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S사는 35억원을 마련하지 못했고, 대지개발은 동원파이낸스로부터 이 골프장을 225억원에 재낙찰했다. 이와 함께 대지개발은 썬앤문그룹으로 넘어갔다. 사업계획승인권의 명의도 대지개발로 넘어갔다. 결국 골프장 부지를 낙찰하지 못한 채 사업계획승인권만 잃게 된 S사는 대지개발을 상대로 사업계획승인권 양수도계약이 무효라며 2001년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선 패소했다.

    법률까지 바꾼 치열한 소송

    양평 TPC 골프장의 법적 분쟁은 골프장 부지와 골프장 사업권이 분리될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촉발됐다. 썬앤문측은 경매 등을 통해 골프장 부지를 인수한 측은 골프장에 부여된 인허가권도 자동적으로 땅과 함께 인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골프장은 일반적인 시골의 임야에 비해 평당 가격이 훨씬 더 비싼데, 이는 골프장 영업을 할 수 있는 사업권이 골프장 부지에 포함되어 있다 보니 토지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S사측은 “당시 양평 TPC 골프장의 경우엔 골프장 부지와 사업계획 승인권이 분명하게 구분된 별도의 재산이었다”고 주장했다. 양평 TPC 골프장에서 발생한 논란은 사업권 인허가 담당 행정기관에 대한 특혜 의혹으로 이어졌다. 치열하게 전개된 소송은 2003년 5월 관련 법규까지 바꿔놓았다. 골프장 부지를 인수하면 부동산뿐 아니라 해당 사업권까지 모두 인수하는 것으로 법률로 명문화된 것. 그러나 S사와 대지개발 사이의 분쟁은 법 개정 이전에 발생한 일이므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사업계획승인권 양수도 계약은 S사가 동원파이낸스로부터 경락잔금 175억5000만원을 대출받을 경우 그 대출금을 담보하기 위한 담보계약설정 계약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데, 그 후 S사에 대한 대출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양수도 계약은 무효”라고 밝혔다.

    ‘브로커 김홍수 연루 기업’ 고발 진정서

    (주)Ⅰ사 이모 대표이사가 8월8일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

    ‘골프장 부지’와 ‘골프장 사업권’이 구분될 수 있는가의 논란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골프장 부지를 경락받은 자가 사업계획승인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별도의 양도계약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03년 5월 개정 이전의 구(舊)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의 취지에 따라 그렇게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썬앤문 관계자는 “같은 소송에 대해 1심 법원은 썬앤문의 손을 들어줬다. 전례가 없던 분쟁이었고,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에 고법이나 대법원이 썬앤문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더라도 이 역시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썬앤문의 한 전직 관계자는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일 때 S사측에 150억~200억원을 줘 사업권을 넘겨받고 소송을 취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썬앤문측도 재판에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사는 대법원에서 승소한 뒤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 행사 문제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또한 S사 관계자인 A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인이던 썬앤문 그룹 문병욱 회장의 불법 의혹을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후 썬앤문그룹측은 A씨에게 370억원을 주고 사업권을 돌려받았으며 A씨는 문 회장을 상대로 한 검찰 진정을 취하했다.

    “단순한 사업권 교환대가”

    그런데 여기서 A씨의 정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A씨가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는 “문병욱 회장이 양평 TPC 골프장 회원권 판매 수익 800억원 등 회사 돈을 횡령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양평 TPC 골프장을 소유·운영하는 대지개발은 문 회장의 동생이 대표이사로 있으며, 문 회장이 실질적 오너인 회사로 알려져 있다.

    A씨의 이 같은 고발은 언론에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문 회장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의원에게 1억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바 있다.

    S사가 고법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낸 뒤 ‘S사와 A씨측은 대통령 측근 기업인으로부터 부당하게 골프장 사업권을 빼앗긴 선의의 피해자’라는 동정여론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S사측도 이런 여론을 소송에 활용해온 측면이 있다. S사측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자사의 인터넷 사이트나 언론 접촉 등을 통해 썬앤문측의 비리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S사는 신문광고 등을 통해 “양평 TPC 골프장은 사업권 분쟁 중에 있으므로 썬앤문측이 골프장 회원권을 판매하는 것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A씨와 S사측이 썬앤문에 대해 제기한 의혹 중엔 사실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A씨가 썬앤문측을 압박하기 위해 검찰에 진정을 했고, 이후 A씨가 썬앤문측으로부터 370억원을 받고 진정을 취하했기 때문에 A씨의 진정 내용이 썬앤문측에 일부 먹혀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올 수는 있다. 이에 대해 썬앤문측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370억원은 큰돈이다. 그것도 모두 현찰로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1금융권에선 대출이 안 된다고 하여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 여러 곳에서 골프장 부지를 담보로 해 대출을 받았다. 370억원은 우리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제2금융권에서 바로 A씨 쪽으로 갔다.

    회사엔 재정적 압박이 됐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라도 사업권을 가져 오지 않을 경우 골프장 사업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힘들었다. 회원들이 동요할 우려도 있었다. 370억원은 사업권에 대한 대가일 뿐이며, 그런 합의 과정에서 진정이 취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검찰은 A씨의 진정 취하에 관계없이 A씨의 진정내용을 계속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썬앤문측은 “썬앤문의 전직 임원이 상당한 분량의 회사 자료를 들고 나갔는데, 이 사건이 A씨의 검찰 진정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썬앤문측은 “골프장 회원권을 팔아서 들어온 800억원은 대출 상환 등 회사 영업에 사용됐다. 문 회장의 회사 자금 횡령 의혹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깨끗하게 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검찰은 이 회사의 전직 임원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억+ 용처 밝혀야”

    그러나 그동안 ‘공익적 제보자’ 역할을 해온 A씨와 S사측에 대해서도 법조비리사건 이후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신동아’ 취재 결과 A씨가 20억원의 법조 로비용 자금을 유치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A씨가 관여하는 S사측이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 소송과 관련해 브로커 김홍수씨를 고용, 조관행 전 부장판사에게 금품로비를 했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된 데 이어 현재로선 A씨 본인 역시 법조 로비 의혹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상대편을 향해 지속적으로 비리의혹을 제기하더니 재판에서 승소한 뒤로는 거꾸로 자신과 관련된 묵은 의혹들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는 셈이다.

    A씨가 썬앤문측과 골프장 사업권 문제를 합의했다지만 이후에도 A씨와 관련된 새로운 법적 논란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 소송 사건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조모씨(48)는 지난 5월 A씨측에 15억원의 투자금을 제공했다. A씨가 “15억원을 투자하면 골프장 사업권 재판에서 S사가 승소할 경우 55억원의 배당금을 주겠다”고 해서 조씨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 이는 A씨에게 20억원의 투자금을 건넨 이 대표의 경우와 비슷한 유형의 계약이다.

    A씨는 조씨에게 “55억원 대신 골프장 사업권을 450억원에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도 있다”는 취지로 제의해 이 옵션 역시 계약서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 대표가 검찰에 낸 진정서에 따르면 A씨는 이 대표에게도 “투자 배당금 70억원을 받는 대신”이라며 똑같은 제의를 해 계약서에 포함됐다.

    그러나 S사가 승소한 이후 조씨 역시 이 대표처럼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조씨는 지난 8월4일 서울중앙지법에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썬앤문 관계자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 “370억원을 A씨에게 지급해 골프장 사업권 문제를 말끔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사업권과 관련해 송사에 휘말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L씨도 지난 7월20일 수원지법 여주지원에 “S사측으로부터 못 받은 돈이 있다”면서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받아들여졌다. 썬앤문 관계자는 “이날 여주지원 판사 앞에서 A씨에게 370억원을 지급하고 사업권과 관련해 합의결정을 받아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불과 1시간 뒤 이 법원으로 L씨의 가처분 신청이 또 들어왔다”며 허탈해했다.

    썬앤문측은 “조씨의 가처분 신청 건과 이 대표의 20억원 검찰 진정 건의 경우 A씨와 맺은 계약의 내용이 거의 똑같다. 따라서 이 대표도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내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골프장 사업권과 관련해 조씨, L씨, 이 대표 건 등 3건의 송사에 휘말린 셈”이라고 했다. 또한 “이들의 사업권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A씨측은 우리에게 사업권을 이미 처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업권을 행사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지만 여러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7월20일 370억원을 썬앤문측으로부터 전액 현금으로 받았다. 썬앤문 전직 관계자는 “처음엔 100억원은 현금으로 주되 나머지는 수표로 하자고 제의했으나 A씨가 현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여 그렇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판사 앞에서 A씨에게 370억원 전액이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A씨측과 썬앤문측은 지난 7년여에 걸쳐 재판을 끌어오면서 숱하게 말 바꾸기 의혹, 위조 의혹 공방을 벌이며 불신을 쌓아온 터라 이처럼 판사가 지켜보는 앞에서 현금과 사업권 양도를 동시에 맞교환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썬앤문측은 “A씨는 S사 대표이사로부터 ‘대표이사 인감 및 S사측의 모든 권리를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받아와서 우리와 사업권 인수인도 계약을 했다. A씨가 골프장 사업권과 관련해 S사를 실질적으로 대표했다는 것은 중재를 한 판사도 인정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 브로커 김홍수를 통해 법조 로비에 나선 S사측 인사는 최모씨였다. 그러나 이 사건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씨 역시 S사의 주인이 아닌 고용인에 불과했으며 S사는 실질적으로 A씨를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최씨와 A씨는 친한 사이였다”고 말했다.

    A씨가 투자받았다는 20억원을 실제로 법조 로비에 사용했는지는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A씨가 비슷한 계약조건으로 조모씨로부터 받았다는 15억원 등 다른 자금도 용처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승소의 대가로 취득한 370억원이 S사 내부에서 어떻게 배분됐는지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370억원 받아간 뒤 연락 두절

    그런데 A씨는 370억원을 받은 뒤 20여 일이 지난 8월14일 현재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전화를 하면 ‘해외 로밍’ 메시지가 떴다. 최근 A씨의 설명을 듣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로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이번엔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이 사건의 한 관계자는 “A씨는 가족이 모두 해외에 있고 일본에 집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A씨가 계속 나타나지 않을 경우 법조 로비 의혹 규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A씨뿐 아니라 S사의 다른 관계자도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S사의 경우 A씨가 370억원을 받은 지 3일 뒤인 7월23일 기존의 대표이사와 등기이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골프장 사업권 소송 진행 당시의 멤버들은 승소 뒤 S사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셈이다. S사에선 원래 J씨가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J씨는 최근 사망했으며 그 뒤 J씨와 친분이 있는 A씨가 S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S사의 정 모 전 감사는 “나는 S사가 법조 로비를 한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S사의 지분 구조는 외부에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S사측의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A씨와 S사가 법조 로비에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A씨가 해외에서 안 돌아올 것이라는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다. A씨는 요즘 개인적인 일로 바빠 연락이 안 될 뿐이다. 조만간 정상적인 활동을 할 것이다. A씨나 S사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A씨는 인품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로비를 시도할 사람이 아니다.

    “골프장 소송에 로비 없었다”

    골프장 사업권 소송에서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의 판결은 법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썬앤문측이 370억원에 사업권을 회수한 것은 비싼 가격이 아니다. 법관을 상대로 한 로비는 없었으며, 이런 로비가 작용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것이 아니다. A씨 명의의 투자 약정 계약이 있었고 이와 관련해 검찰에 진정서가 제출됐다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어서 다른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진정서 내용이 다 사실이라고 볼 수도 없다.”

    S사에 승소판결을 낸 서울고등법원은 “판결은 정당했으며 판결 과정에서 조관행 전 부장판사 등 외부로부터 어떠한 로비가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수씨는 법조인 대상 로비 의혹과 관련, 조관행 전 부장판사의 구속을 즈음해선 기존 진술을 모두 번복했다.

    조 전 부장판사도 김홍수씨로부터 금품을 받고 사건과 관련된 청탁을 들어줬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조 전 부장판사는 양평 TPC 골프장 사업권 소송 사건에 개입해 돈을 받았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검찰은 ‘내가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도록 물었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김홍수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김영광 전 검사는 대체로 시인한 반면 민오기 총경은 부인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선, 법조 로비는 실체가 없으며 S사나 A씨가 법조 로비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에는 지금도 ‘양평 TPC 골프장의 비리를 고발합니다’라는 S사 명의의 사이트가 유령처럼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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