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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차기 일본 총리 물망, 아베 신조 관방장관

근친혼 불사하는 순혈 우익가문 귀공자, 한·중에 ‘비호감’, 脫亞入歐 고수할 듯

  •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정치 khyang@mail.skhu.ac.kr

차기 일본 총리 물망, 아베 신조 관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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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일본 총리 물망, 아베 신조 관방장관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선친인 아베 신타로 전 일본 외상.

사토 노부히코의 아들(松介)이 낳은 딸 히로코(寬子)는 사촌인 사토 에이사쿠 총리와 근친혼을 했다. 사토 노부히코의 딸 사와는 자신의 아들 히로시(寬)를 요시다 총리의 딸과 혼인시켜 사돈을 맺었다. 사토 노부히코의 또 다른 딸 모요는 사토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남편(秀助) 사이에 10자녀를 뒀는데, 이 가운데 사토와 기시가 총리가 됐다. 기시는 부친의 바람대로 기시 집안에 다시 데릴사위로 들어가 큰아버지의 딸인 사촌여동생과 근친혼을 했다. 여기서 난 딸 요코가 아베 신타로 전 외상과 결혼해 낳은 둘째아들이 바로 아베 신조다.

따라서 아베 신조는 4대에 걸쳐서 세 명의 총리, 두 명의 외상 등 5명의 거물정치가, 다수의 전현직 국회의원과 친인척 관계이다. 특히 아베 신조의 외가는 일본 최고의 정치 명문가라 할 수 있어 당연히 그에게는 외가가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외가에 한국계 피 섞였다?

앞서 언급했듯 아베 신조의 외조부는 사촌과의 근친혼을 통해 아베의 어머니를 낳았다. 아베 신조는 근친혼을 통해 태어난 자손이다. 일본 민주당 총재를 지낸 간 나오토(菅直人)도 사촌여동생과 결혼했다. 일본에서 근친혼은 일왕 가문을 포함해 드물지 않지만, 아베 외가에선 유독 눈에 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일본 왕실이 백제계 사람들과 혼맥으로 맺어져 있어 한국에 애정을 느낀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동아일보 김충식 논설위원의 저서 ‘슬픈 열도’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사토 전 총리가 도공(陶工) 심수관씨를 만나 “당신네가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자 심씨는 “400년쯤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사토 전 총리는 “우리 선조도 조선에서 건너와 야마구치(山口)에 정착했다”고 답했다는 것. 사토 가문에 한국계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 사토 가문의 피를 받은 아베 신조도 한국과 인연이 전혀 없다고 하긴 어렵다.



아베 신조는 도쿄도 무사시노(武藏野)시에 있는 세이케이(成蹊)대 정치학부를 졸업했다. 정치명문가인 하토야마 집안은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도쿄대 법학부에 입학시켰다. 그외 일본의 상당수 유력 정치가도 세칭 명문대 학벌을 지니고 있다. 일본 정치 엘리트 사이에서 아베의 학벌은 상당히 뒤처지는 게 사실이다. 일본 명문가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이들 가문은 초등학교만 입학하면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는 코스로, 명문 게이오(慶應)대나 릿쿄(立敎)대에 자제들을 보낸다. 그래서 아베가 학벌 문제로 열등감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베는 대학졸업 후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에서 2년간 유학했는데, 여기서도 공부보다는 여러 경험을 쌓으며 외국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비서관이던 32세 때 모리나가(森永)제과 사장의 딸이자 명문 성심여학원 영문과를 나온 일곱 살 연하의 아키에(昭惠)와 결혼했다.

미치코(美智子) 왕비의 대학 후배인 아키에는 올해 45세로, 덴쓰(電通)광고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한때 라디오 DJ로도 활동하는 등 밝고 활달한 성격이다. 이 때문에 아베의 대중적 인기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인은 韓流 즐기는 스포츠우먼

아베는 술이 약한 편이다. 그러나 부인 아키에는 주량도 꽤 될 뿐 아니라 스키, 테니스, 골프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우먼이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 강사를 집에 불러 한국어를 공부했을 만큼 ‘한류(韓流) 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에가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는 흥미롭다. 아베가 2002년 북한을 방문한 뒤 아키에는 일본 정치인의 성패에 한국, 한반도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감지하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베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주요 이슈로 부각시켰는데, 이는 아베를 거물 정치인으로 급성장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현재 아키에의 한국어 실력은, 한나라당 모 의원이 “남편이 총리가 되면 한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일본 영부인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독신인 고이즈미 총리가 재직한 지난 5년5개월간 일본의 퍼스트레이디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베는 고베(神戶)제강에서 약 3년 반 근무한 뒤 1982년 부친인 아베 신타로 외상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중의원에 당선된 것은 39세 되던 1993년. 그 뒤 정치인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2000년 7월 모리(森喜朗) 내각에서 관방 부장관, 2002년 10월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 부장관, 2003년 9월 자민당 3역인 간사장에 올랐다. 간사장은 자민당 운영 및 선거시 자금과 유세지원을 총괄하는 요직으로 영향력이 큰 자리다. 이후 2004년 자민당 개혁추진본부장, 2005년 10월 제3차 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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