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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컨설턴트? 김재록의 마당발 인생 10년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이젠 세상이 두렵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로비스트? 컨설턴트? 김재록의 마당발 인생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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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건용은 회사 자문위원도 아닌데요.

“내 마음속의 자문위원입니다.”

▼ 정건용이 산은 총재 시절, 김재록씨를 불러서 ‘내 이름을 팔고 다니지 말라’고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있지요?

“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 총재에게 안 좋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해명하려고 만났습니다.”

▼ 김재록씨가 임병석 세븐마운틴그룹(현 C·그룹) 회장에게 ‘황영기(우리은행장)는 내가 행장 시켰다. 내가 아니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건 임병석의 일방적인 말일 겁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황영기씨가 행장이 될 무렵 저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로비스트와 컨설턴트의 차이

검찰은 이날 김씨에게 크라운제과, 사조산업, 세원텔레콤, 세븐마운틴그룹과 불법 계약을 맺은 것과 정건용 전 산은 총재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것을 추가 기소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기소한 부분에 대한 대응자료를 준비 중이라고 밝혀 공판은 또다시 연기됐다.

1시간30분 동안 수많은 말이 오고갔지만, 한 가지 머릿속에 오래 남는 게 있다. 판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한 김씨에게 그 뜻이 정확하게 뭐냐고 물었다. 이에 김씨는 “프로젝트가 실행 가능성이 있었다면 기억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건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패한 것은 잊고 싶었다는 뜻이었을까.

컨설팅 업계에서 로비스트와 컨설턴트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한다. 구별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도 컨설턴트들은 명확한 기준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로비스트는 혼자 뛰지만, 컨설턴트는 조직이 뛴다. 로비스트는 ‘손님’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지만, 컨설턴트는 ‘손님’과 ‘시장’이 동시에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 또한 로비스트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는 사람’이지만, 컨설턴트는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김씨가 법정에서 수차례 “실패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았다는, 따라서 자신은 로비스트가 아닌 컨설턴트였다는 점을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김재록씨는 당시 이한동 신한국당 고문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여행사를 전전하던 김씨는 운동권 출신 동생의 소개로 이 고문의 보좌관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 고문이 신한국당의 대권주자를 염두에 뒀으므로,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김씨의 인생에도 꽃이 피어날 터였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대권 후보로 이회창씨를 지목하자 이 고문은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다. 정권에 배신감을 느낀 탓인지, 이 고문은 이회창씨와 대권을 놓고 경쟁하던 김대중 후보 진영에 김씨를 소개했다. 1997년 대선 막바지에 김씨를 만난 김대중 후보는 간단한 면접 뒤 그를 “똑똑하다”며 칭찬했다고 한다.

김씨가 이제껏 거물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곁에서 배회한 것은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렇다 할 학벌이나 혈연도 없이 뭔가 일을 벌이자면 ‘배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1997년 12월 금융위기 전후로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가깝게 지낸 것이나, 그 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황영기 우리은행 회장과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사이”로 지낸 것도 이들의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절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과거를 숨길 수 있었다.

학벌, 인맥, 그리고 술

1997년 금융위기는 그에게 ‘기회’였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혼돈의 시대에 그는 ‘대통령 특보’라는 명함 한 장 들고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야당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을 때 ‘특보’ 직함은 썩 괜찮은 이력이었다. 사실 그는 1997년 대선 캠프에 뒤늦게 합류했고, 내부에서 반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특보 활동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김씨는 그 이력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1998년 3월 세동회계법인에 자리를 얻어 들어가면서 그의 ‘금융가 마당발 인생’은 시작된다. 하지만 입사 후 처음 3개월 동안 그는 금융업계의 생존원리를 깨닫고 좌절했다. 기업의 감사 프로젝트 하나 따내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몰랐던 것이다. 학벌은 물론 술과 로비로 다져진 ‘인맥’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구축했는지에 일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이런 시장에서 그는 애당초 발을 붙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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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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