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한국 기(氣)학 박사 1호 김종업의 ‘골프와 道’ (下)

상상의 라운드로 감정 없애고 하단전 ‘거울’에 동작 비추라

  • 김종업 한국정신과학학회 총무이사 up4983@hanmail.net

    입력2006-09-14 15: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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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를 통해 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무엇보다 마음 비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집중을 통한 몰입으로 마음속에 자신의 샷을 세밀히 묘사한다. 이어 하단전에 평면으로 놓인 마음의 거울에 모든 동작을 비춰본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도 닦음의 반열에 올랐다 할 것이다.
    한국 기(氣)학 박사 1호 김종업의 ‘골프와  道’ (下)
    음양(陰陽)은 상호 대립하면서 조화하는 개념이다. 남과 여는 품성과 생리구조가 다르지만 하나로 합치면 가족이 되거나 인생을 완성하게 한다. 빛과 그림자도 구분해 볼 게 아니다. 좋음과 싫음, 하늘과 땅 등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서 음양의 보완관계를 이해하면 인생의 전부를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대립하는 것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라는 기본 명제를 음양관(觀)에서 바라보면 사람들과 다투거나 경쟁할 마음이 사라진다. 크게는 좌익과 우익의 사상적 대립,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대립, 세대·지역간 갈등 구조를 포용할 수 있고, 작게는 몸과 마음에 있는 긍정과 부정 등 이분법 논리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상호대립하면서 보완적인 관계, 즉 음양관을 잘 이해하면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신장의 물 기운과 심장의 불 기운은 분명 상극이지만 서로 조화하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유지하게 한다. 폐의 금(金) 기운과 간의 목(木) 기운도 서로 넘치면 억제하고 모자라면 보태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를 생리학적으로는 길항작용이라 한다.

    이 상극되는 요소의 부조화가 바로 질병(疾病)이다. 말이 나온 김에 질(疾)과 병(病)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외부의 조건이 내 몸과 맞지 않아 생기는 부조화는 화살을 맞은 느낌에 비유해 화살 시(矢)가 들어간 질(疾)이라 한다.

    반면 감정을 잘못 다스려 내부에서 생기는 부조화는 병(病)이라 한다. 따라서 치료도 질의 경우엔 약이나 침, 뜸 등 외부에서 보완하면 되지만 병의 경우는 내부의 자연치유력을 이용해 스스로 고칠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은 내부의 치유능력을 ‘정신적 항체’라고 표현했다. 이 정신적 항체를 개발하는 것이 도 닦음이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면 본래의 자리가 드러나 환하게 밝아지므로 모든 병은 치료가 된다는 뜻인데, 이것이 정신적 항체의 정체다.

    운동의 음양관적 법칙을 이해하면 골프의 원리를 쉽게 배울 수 있다. 고요함은 음이고 움직임은 양이며, 음은 저장이고 양은 뱉음이다. 인체의 근육 음양을 보면, 뻗는 근육은 양이고 당기는 근육은 음이다.

    어드레스는 음, 스윙은 양

    호흡에서도 들이쉬는 숨은 저장이므로 음이고 내쉬는 숨은 양이다. 운동신경이 발달했다는 것은 바로 이 호흡과 근육이 조화를 이룬 경우다. 이런 원리로 관찰하면 음적인 운동과 양적인 운동을 구분할 수 있다.

    테니스나 배드민턴, 축구, 배구 등 공을 가지고 내지르는 운동은 양이고, 유도나 레슬링, 씨름 등 당기는 운동은 음이다. 그래서 음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은 근육이 발달해 무게가 나가고, 양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은 몸이 가볍고 근육도 뭉쳐 있지 않다. 물론 개인의 체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골프를 보면 음양의 요소가 아주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어드레스는 철저한 고요함으로 음이고, 스윙은 원 운동으로 양이다. 허리를 꼬고 어깨를 비틀어 힘을 저장하는 것은 음이고, 힘차게 내지르는 동작은 양이다. 걸어가서 멈추고, 멈춘 후 걷고, 그린에서 집중하고, 집중 후 밀어넣기까지 음양, 양음이 순환하는 운동이다.

    문제는 호흡이다. 음양으로서 호흡은 저장과 배출의 들숨과 날숨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하는데, 골프장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즉, 스윙할 때 톱 동작까지 가는 데는 들숨으로 힘을 저장했다가 임팩트 순간에 숨을 순간적으로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분명 비거리가 좋아진다. 정확도만을 위해서는 들숨 후 호흡을 정지한 상태에서 임팩트와 피니시까지 마치고 날숨을 내쉬면 원하는 방향과 임팩트를 기대할 수 있다. 사격선수가 방아쇠를 당길 때나 양궁선수가 시위를 놓을 때까지 호흡을 멈추는 이치와 같다.

    혹시 단전호흡을 배우는 과정에 축기(蓄氣·기를 축적함)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골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스윙과 멈춤 호흡을 100번가량 하고 난 다음에 기를 모으면, 분명 이전보다 엄청나게 강한 기운을 느낄 것이다. 또한 하단전에 단(丹)이 형성되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음양의 호흡과 근육 원리는 퍼트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골프채가 신체의 일부분으로 느껴져야 공을 제대로 굴릴 수 있다. 감각이 고도로 발달하면 퍼트 때 공이 맞는 느낌이 손끝이 아니라 가슴의 울림으로 나타난다. 가슴에서 찌르르 하는 전기 충격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전해지면 그린에서의 거리, 방향 등을 감 잡을 수 있다.

    공을 눈으로 보지 말고 느낌으로 밀라는 퍼트의 교훈은 매우 중요하다. 도의 경지에 올라서야만 느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중심, 하단전

    우리는 지금까지 사람의 몸구조에 대해 생리학, 해부학적인 면에서 두뇌, 몸, 사지(四肢)로 3등분된 몸이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유기적 협조관계로 삶을 유지한다고 배워왔다. 뇌는 다시 대뇌, 소뇌, 간뇌로 나뉘어 각각의 역할을 다하고, 몸은 5장6부가 중심이 되고, 사지는 활동의 중추가 되어 생체 에너지를 발생한다고 말이다.

    수련의 관점에서 인체는 상초(머리), 중초(가슴), 하초(허리 이하)로 구분되는데 각각의 기능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 이를 요가에서는 샤크라, 한국과 중국에서는 단전이라 부른다. 또한 각 중심점의 연결통로를 경락이라 한다.

    상초는 뇌가 있는 머리부위로서 빛으로, 중초는 몸의 횡격막 위쪽으로서 소리로, 복부와 하체를 일컫는 하초는 파장으로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하초를 정(精), 중초를 기(氣), 상초를 신(神)이라 한다. 이를 촛불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양초 자체는 정, 양초 위의 불은 기, 불에서 나오는 빛은 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몸 자체와 가슴에서 나오는 에너지, 머릿속의 의식, 이 세 가지가 생명 활동을 총칭한다. 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효용성이 없다. 시체도 몸은 그대로 갖고 있다. 문제는 생명 에너지와 의식이 어떻게 몸을 주관하여 먹고, 자고, 똥 누고 생식활동을 하는가에 있다.

    좀 형이상학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게 아니다. 자동차도 차체가 있고 엔진이 있고 휘발유가 있다. 차체는 몸이요, 엔진은 5장6부, 휘발유는 음식이다. 휘발유를 태우는 산소는 호흡이고.

    이 모든 것이 다 갖춰져도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키를 꽂아 전기를 공급해줘야 비로소 움직인다. 이 전기가 인체에서는 하초의 파장, 즉 단전이다. 배터리는 자동차의 에너지 중심부이고 하단전은 생명 에너지의 중심이다.

    하단전은 음식과 호흡으로 들어온 모든 무형 에너지를 뽑아낸다. 땅의 기운(地氣)을 받아들이는 장소인 셈이다. 음식의 소화과정을 보면 대략 이해되는데,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위장으로 들어간다. 위장은 토(土), 즉 흙의 기운으로 모든 내용물을 삭인다. 마치 땅에서 거름으로 식물을 자라게 하듯이 위에서는 썩히는 게 주 임무다. 삭인 음식물은 소장에서야 비로소 필요한 영양분을 뽑아내는데, 소장이 있는 장소가 바로 아랫배, 하단전이다.

    하늘의 기운(天氣)은 호흡을 통해 신장으로 들어온다. 폐를 통해 들어온 산소는 피와 결합한다. 수련적 관점으로는 외부의 기운이 수분 형태로 폐에 들어와 신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땅의 기운인 영양분과 하늘의 기운인 호흡이 합쳐져 유형 에너지가 된 것이 피다.

    한국 기(氣)학 박사 1호 김종업의 ‘골프와  道’ (下)

    자신의 골프 동작이 아랫배의 거울에 그대로 비치는 단계에 이르면 가히 도의 경지에서 골프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7월30일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대회에서 미셸 위가 최종 4라운드에서 파 퍼트에 실패한 후 안타까워하는 모습.

    맷돌처럼 스윙하라

    하단전은 양대 기운을 모아 간으로 전해 피를 만들게 한다. 피가 심장으로 전달되고, 심장에서 온몸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순환적 의미는 자연의 오행순환과 같은 맥락이다. 즉 인간 활동의 중심점은 하단전이며, 하단전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다면 적어도 ‘몸’ 차원에서의 건강은 확실하게 지켜진다.

    하단전, 즉 하초가 운동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면 스윙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른바 맷돌이론과 자전의 원리다. 맷돌에는 인체의 구성이나 천체의 순환, 음양의 법칙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골프의 스윙 메커니즘과 딱 맞는다.

    맷돌은 아랫돌과 윗돌로 구성되며, 중앙에 구멍이 있고 끝에는 손잡이가 있다. 아랫돌은 땅의 논리요, 윗돌은 천체의 순환논리다. 하늘과 땅의 결합은 맷돌 중앙의 구멍이고 그 구멍을 통해 조화로운(사람의 의도에 맞는) 생산물을 얻는 것이다. 골프 스윙의 핵심은 하체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하고, 하단전을 중심 삼아 몸을 비틀며, 골프채를 인체의 부속품으로 만들어 원 운동을 하는 것이다.

    맷돌의 아랫돌이 움직이면 윗돌은 삐걱거린다. 힘만 들고 갈리지 않는다. 윗돌은 아랫돌의 고정을 전제로 돌아간다. 중앙의 구멍 축이 움직이지 않아야 외부 회전축이 일정하게 돌 수 있다. 중심축이 그 자리에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자전의 원리다.

    같은 이치로 스윙을 할 때 맷돌의 중앙 구멍 축에 해당하는 인체의 중심선이 흔들려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중심선이나 아래 축 고정을 위한 기초 훈련이 바로 하단전 강화다. 하단전 강화는 자세와 호흡, 동작 세 면으로 이뤄진다. 자세로는 기마자세, 호흡으로는 복식호흡, 동작으로는 하체운동이다.

    먼저 기마자세와 어드레스 자세를 비교해보자. 기마란 말 그대로 말을 탄 자세인데, 승마의 기본자세는 하체 중심을 아래로 쭉 내려 말등과의 간격을 없애고, 하체의 안쪽을 말 옆구리에 밀착시켜 흔들림을 방지하며, 발뒤꿈치를 앞꿈치보다 밑으로 더 내리되 힘의 중심은 발바닥 위쪽에 두는 것이다. 하체는 말과 한몸이 되도록 고정하고, 상체는 아주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해 말등의 흔들림이 고삐를 통해 재갈로 전해지지 않게 한다.

    이 자세에서 중요한 것이 인체의 중심점인데, 힘의 중심점뿐만 아니라 생각과 마음의 중심도 아래로 끌어내려야 한다. 태권도나 유도 등 무술의 기본자세가 기마자세인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태극권 동작을 보면 기초인 8식부터 고수급인 42식까지 모든 단계에서 기마자세가 나타난다. 물론 원 운동과 태극의 고요함을 응용한 것은 별개지만.

    하단전 축기와 중단전 열기

    골프의 어드레스도 동일한 원리다. 발바닥 힘의 중심점을 발바닥 위 용천혈에 두고, 무릎을 구부려 허벅지 안쪽에 생각과 마음을 두어 버틴 다음, 하단전 복부를 중심점으로 삼아 흔들림 없이 고정해야 한다. 백 스윙시는 중심을 고정해 아랫배의 한 점 자체가 자전한다는 느낌으로 하되, 골프채를 쥔 손은 되도록 중심에 가까워야 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

    물론 파워를 내려면 원 운동, 즉 공전 반경이 넓으면 좋지만 중심에서 멀어지면 궤도의 차이가 약간씩 난다. 승마할 때 상체를 부드럽게 해야 말이 신경질을 안 내듯, 스윙도 부드러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단전이 몸의 중심이라는 것은 체력과 생리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수련의 근본 자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단전이란 수련자가 기를 모으는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근육도 아니고 허리힘도 아닌, 형이상학적인 생각의 장소다.

    따라서 일반 수련원에서 강조하듯이 아랫배에 태극 문양이 생긴다, 복부가 팽팽하다는 것은 느낌만 그렇다는 것이지 기가 모인 상태를 뜻하진 않는다.

    고급수련자라면 수련원을 만들어 기를 상품화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중이떠중이 잡도사가 생계수단으로 신비주의를 적당히 뒤섞어 기 치료니 경락마사지니 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단전에 축기가 된 고수는 결코 남에게 장풍을 쓰거나 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 단지 병이 내상인 경우 환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자연치유력이란 인체의 근본 에너지인 마음으로 병을 고치는 것이다. 마음과 감정은 다르다. 감정은 육체와 동일한 에너지로서 욕망을, 마음은 본성이라는 근본 자리를 뜻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양심 등 아무런 소유욕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순수한 에너지를 뜻한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곳이 가슴이다. 중단전이라고도 하며 임맥이 흐르는 주요 통로다. 하단전은 뜨거운 기운이지만 중단전에서는 시원한 박하 향기가 난다. 대부분의 사람은 중단전이 막힌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막힘의 증세는 어깨가 결린다, 뒤통수가 묵직하다, 편두통이 온다 등 화병의 증세와 똑같다. 화병은 심장의 불기운이 가슴에서 막혀 하단전에 이르지 못하고 머리로 올라가는 것이다.

    중단전은 하단전에 기를 모으면 저절로 열린다. 그런데 거꾸로 하단전에 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중단전이 열려야 하므로 이 둘은 둘이면서 하나고 하나면서 둘인 관계다. 따라서 하단전 축기와 중단전 열기는 마음공부를 병행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음공부는 생각의 집중이나 즐거움만을 맛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원래의 자리를 ‘나’가 아닌 제3의 눈으로 객관적인 상태에서 봐야 한다. 감정을 차분히 바라보는 단계에서 시작해 부정적 감정을 씻는 단계를 거쳐 긍정적 감정을 살리는 단계, 좋고 싫다는 분별심 자체를 없애는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다.

    이동시 불필요한 말 삼가야

    이제 골프로 마음공부를 시작해보자. 먼저 샷 후의 감정을 바라본다. 멋있게 잘 날아가면 통쾌하고 가슴에 응어리진 묵은 기운이 확 뚫린다. 호쾌한 기분이 들 때 한숨을 깊게 들이쉰 후 ‘좋다’는 느낌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객관적으로 본다. ‘좋다’라는 감정도 몸에 뿌리를 둔 생각으로 근육을 이완시키기 때문에 마음공부에는 안 좋다.

    마찬가지로 OB(Out of Bounds)나 미스 샷이 나왔을 때 분하고 억울한 느낌이 들면 호흡을 아랫배까지 끌어내린 후 느낌을 바라보라. 그 느낌의 주체는 누구인지, 누가 싫다는 건지, 싫거나 억울한 감정을 느끼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를.

    또한 잘못 날아간 공, 예컨대 러프나 경사면에서의 공은 일단 가만히 주시하라.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가지 잡다한 원칙을 생각하거나 경험상의 습관대로 행동할 것이다. 이럴 때 하단전까지 숨을 끌어내린 후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끊어보라.

    ‘치기 어렵네’ ‘잘못 날아가면 어떻게 되나’ ‘에이, 돈 날아가게 생겼네’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면 절대 잘 칠 수 없다. 감정은 육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은 반드시 육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잘 치겠다는 욕심 또한 몸을 굳게 만들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심 타법’, 즉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치는 것이다.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라는 말은 마음자리를 비워놓으라는 얘기다.

    샷 이후 다음 공이 떨어진 자리까지 이동할 때는 말, 즉 이야기하는 것을 되도록 삼가야 한다. 사교가 아닌 수련을 목적으로 한다면.

    프랑스의 철학자 중에 상시라는 인물이 있다. 미래 인간행동의 가치를 ‘빨리빨리’에서 ‘천천히’로 바꿔야 한다는, 이른바 ‘느림의 미학’을 주창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철학에는 걸음걸이를 천천히 할수록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색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나태와는 구분되는, 걸음걸이로 행하는 수행의 방법론이다.

    통상 접대성 골프나 상관을 모시고 나오는 경우 이동하면서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사업 얘기, 정치 얘기 등 잡다한 인생살이 ‘말씀’이 오간다. 인간적인 친분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수련의 관점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뿐이다.

    말은 기의 외부적 방출이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생각을 정리해 가슴의 에너지를 입으로 내는 것인데, 이때 중단전에 그 영향이 미친다. 앞에서 언급했듯 기의 구체적 형태는 파장이다. 소리를 음파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기가 새나간다.

    게다가 좋은 말과 나쁜 말은 에너지 파장 면에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남에게 해를 입히는 소리는 먼저 내 가슴이 독(毒)으로 바뀌고 난 뒤 그 독이 탁한 기로 바뀌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말하자면 내가 먼저 10의 해를 본 후 상대에게 2~3의 독을 방출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율도 같은 원리다. 또 좋은 말이라도 마음의 근본 뜻과 다른 것이라면 가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머리의 분별력이 작용해 어떤 목적을 위해, 즉 아부를 한다든지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꾸며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동할 때는 되도록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수련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예 말없음을 원칙으로 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인당혈의 대폭발

    흔히 어프로치나 퍼트를 할 때 집중을 강조한다. 외부에서 어떠한 소리나 빛이 들어와도 통일된 정신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상단전의 활동, 즉 명상이나 뇌 수련을 할 때의 수련법이다.

    그러나 잘못된 집중은 고민이나 사색으로 바뀌어 중단전에 울이 맺히는 결과를 낳는다.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고민이 있는 사람은 밥맛이 없고 위에서 쓴물이 올라오며 가슴이 답답하다. ‘잘 안 되면 어쩌나’ ‘고민되는 거리인데…’ 따위의 부정적 집중은 순간적으로 기의 소통을 막아버린다. 나이 많은 사람이 퍼트하다 쓰러지는 경우다.

    두뇌는 아직까지 신비의 영역으로 불린다. 인체생리학 최후의 연구 분야로 하느님의 영역이라고도 한다. 뇌는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인체의 움직임을 주관하며 삶을 영위토록 하는 지휘부요, 사령관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뇌의 용량은 전체의 5%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마인드 컨트롤이니 뇌 호흡이니 하는 수련법은 나머지 95%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안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선과 명상이란 것도 실은 뇌의 기능을 깨우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련법의 본질은 뇌를 향한 ‘올바른 집중’이다. 하단전에 힘의 원천을 모으고, 마음을 바로 세운 상태에서 중단전에 집중하면 이마와 양 눈썹 사이, 인당혈이라는 곳에서 빅뱅(대폭발)이 일어난다. 머리 안쪽이 터질 듯이 아프다가 빛의 확산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집중은 동양의 ‘태극도설’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극’이란 말은 한 점을 뜻하는 것으로서 시간과 공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운동의 극은 고요함이고 고요함의 극은 움직임의 시작이다. 팽이가 가장 빨리 돌 때는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다.

    골프를 통한 집중의 원리도 같은 맥락이다. 공 자체를 하나의 점으로 보고 자기 자신도 동일한 점으로서 움직임 자체를 없애는, 철저한 고요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요함을 통한 집중은 호흡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상태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상태에 이르기 위한 연습을 무시하고 있다. ‘수련’이라는 말의 뜻은 ‘닦기 위해 연습한다’인데, ‘연습’은 ‘1000번 반복해 습관이 되게 함’을 뜻한다. 또한 ‘단련’의 ‘단’은 100번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연습장에서 스윙 한 번을 하더라도 집중을 통한 무아의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실전에서는 무념무상의 동작이 준비됐는지 아닌지로 어드레스 상태를 점검한다.

    경기가 끝난 후 음주가무로 뒤풀이를 할 게 아니라 경기 중 가장 잘된 샷과 가장 불만인 샷을 음미하라. 그것을 수련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면 이미 도 닦음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현묘한 도의 세계는 수단의 선택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세계다. 골프를 통해 느낌을 얻고, 그 느낌을 통해 도의 경지에 이르면, 아하, 그게 그 소리였구나 하고 이해가 될 것이다.

    골프는 도 닦음의 어미

    끝에서 바라본 중간의 세계는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래 세계와 같다. 이토록 쉽게 이를 수 있는 길을 그토록 어렵게 가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도의 경지란 어떠한 세계일까. 언어로 표시된 글공부로만 보면 노자(老子)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름 없음이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이 붙은 것이 모든 사물의 어미다.”

    “욕심이 없으면 조화의 현묘함을 보게 되고 욕심이 있으면 주변만 보게 된다.”

    “욕심의 있음과 없음은 같은 것임에도 사람이 생각하므로 이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만물은 스스로 자라남에 내가 그를 자라게 한다고 말함이 없고 열매를 맺어도 내 것이라고 소유함이 없다.”

    “성공하여 이루어도 거기에 기대지 않는다.”

    “마음을 텅 비게 하고 아랫배를 채우며, 뜻을 부드럽게 하여 뼈를 강화한다.”

    “사람들이 알음알이로 인해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며 욕심을 내지 않도록 한다.”

    “지혜롭다고 감히 말하는 자로 하여금 무엇을 하겠다고 하지 못하게 한다.”

    내용이 좀 추상적이고 현학적이지만 그럴듯하다. 서기전 2000년 이전의 말이지만 현대의 수련인에게도 매우 유용한 말이다.

    이를 골프에 적용해 말만 좀 바꾸면 이렇다.

    “골프를 하는 것 자체가 도의 시작이고 골프라는 이름은 이미 도 닦음의 어미다.”

    “골프를 잘함과 못함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한다 못한다의 생각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골프는 내가 하는 것이므로 잘못한 경우 핑계를 대지 말 것이며 잘한 경우에는 주변에 공을 돌린다.”

    “아무리 경기를 잘했더라도 다음에도 꼭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결과에 기대지 않는다.”

    “허리와 복부를 중심으로 삼아 힘을 쓰도록 하며 긴장을 풀어 근육이 굳게 하지 않는다.”

    “동반자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서로 욕심을 없애게끔 노력한다.”

    “골프철학이 없다고 감히 말하지 않으며 내가 잘한다고 감히 뽐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것은 내 얼굴을 깨끗이 해 남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얼굴이란 내 마음의 ‘얼’이 들락거리는 ‘굴’이므로 표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세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심(洗心)이다. 독실한 종교인이나 수행자의 얼굴은 씻지 않아도 환하게 빛을 발하며 보는 이에게 편안한 느낌을 안긴다. 세심의 수행을 생활에서 실천하기 때문에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골프채를 부릿단지 모시듯

    골프에 심취한 사람은 마음을 씻을 줄 아는 사람이다. 골프장에 가서 대자연과 호흡함으로써 느끼는 경지, 그 수준을 넘어서는 길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세심은 마음의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감정을 씻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의지로 해야 하는 일이며, 깊은 숨쉬기와 정성이 있어야 한다. 감정을 제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쉽게 말해 생각한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의식의 무화(無化) 작업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욕심에서 비롯됨을 전제로 한 얘기다. 욕심을 다스리는 매개체는 실로 다양하다.

    기독교는 신을 매개체로 삼는다. 수련자는 기를 매개체로 느낌을 얻는다. 과거 우리 선조는 활과 검을 매개체로 삼았다. 마음에 쌓인 티끌을 멀리 보낸다는 뜻으로 활을, 만물에 대한 의심을 끊는다는 뜻으로 검을 사용했다. 또 무당의 매개체는 대나무나 장군신, 점쟁이는 산통, 학자는 책이다.

    골프는 당연히 골프채와 자연을 매개체로 삼는다. 골프채를 통한 의식의 무화작업을 살펴보자. 참고로 이런 행위는 주술적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음을 씻어내는 방법론이므로 종교행위와는 무관함을 밝힌다.

    무화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정성이다.

    첫째는 골프백을 부릿단지 모시듯 잘 보관해야 한다. 그냥 구석에 놓아두어서는 안 되고 제단을 준비해 향을 피운다는 자세로 거실 벽면에 정갈하게 ‘모셔야’ 한다. 정갈하다는 것은 백과 채 모두 빛나게 닦아둔 상태를 말한다.

    골프 치러 갈 때는 먼저 채부터 정성스럽게 닦고 출발해야 한다. 주의할 것은 채를 닦되 마음을 닦는다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골프채의 먼지 묻은 곳에 물을 뿌릴 때는 가슴속 탁한 기운을 씻어낸다는, 닦아낼 때는 욕심을 제거한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일종의 정화작업인데, 이런 행위는 수련자가 기로써 뇌와 가슴을 씻어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수련자의 경우 별도의 도구 없이 손바닥, 즉 장심(掌心)으로 기를 방출해 씻어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두 번째 무화작업은 경기 전후 가만히 앉아 매 홀의 샷을 상상하는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에서 악천후 때 경기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권유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동작 하나하나를 슬로 모션 비디오를 보듯 마음의 눈으로 묘사해야 한다.

    상상은 몰입을 위한 주요 수단이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집중은 곧 정신통일이다. 정(精)과 신(神)의 통일, 쉽게 말해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하는 것인데, 생각이 미치는 곳에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원리다. 단학에서는 이를 심기혈정(心氣血精)으로 표현한다. ‘마음 가는 곳에 기가 모이고, 기는 피고 피는 에너지다. 고로 마음이 에너지의 근본이’라는 뜻일 게다.

    아랫배의 거울

    아무리 생각을 집중한다 해도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까지는 18홀 전체를 마음속에 그리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두 홀에서 끝날 수도 있고 전반 홀까지만 도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가능하면 모든 홀을 돌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주의할 점은 상상의 라운드에서는 잘못된 샷이 나오는 과정을 생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중에 어느 정도 숙달된 다음에는 별 문제 없지만 처음 시도하는 단계에서는 잘못된 샷은 부정적 에너지를 발산해 근육에 저장된다. 부정적 에너지는 호흡을 고르게 하지 못하거나 두뇌를 잡스러운 기운으로 채워 또 다른 몰입을 방해한다.

    어느 정도 숙달돼 상상으로 라운드를 끝내면 다음 단계는 관조, 즉 고요한 마음으로 내 동작을 살펴보는 것이다. 관조라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마음을 고요한 거울로 상상하고 그 거울이 아랫배 하단전에 평면으로 놓여 있다고 가정한다.

    소승불교의 마음 닦음은 무(無)가 만물의 시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반면 대승불교는 존재 자체를 진리로 보는 것이다. 즉 거울에 비친 모든 상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자신의 골프 동작이 아랫배의 거울에 그대로 비치는 단계에 이르면 가히 도의 경지에서 골프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기(氣)학 박사 1호 김종업의 ‘골프와  道’ (下)
    김종업

    1956년 출생

    육군사관학교 졸업, 대령 예편

    명지대 이학박사(氣學)

    명지대 교양 단전호흡 강사, 한국정신과학학회 총무이사

    단군 선도(仙道) 계승자로서 기명상 방법론 전파 저서 : ‘도인양생기공체조’ ‘도란도란 도이야기’


    가만히 생각해보라. 우리가 하루 중 몸에 투자하는 노력의 절반만큼이라도 마음에 투자하고 있는지. 마음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지.

    그런데 마음에 투자할 여유가 없는 사람도 골프를 하면 일주일에 한두 시간은 마음에 투자할 수 있다. 골프가 심신 수련을 하는 데는 가장 좋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통한 도의 성취는 그 세계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만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의 골프행위를 문제 삼는 것에 반대한다.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그들이 골프를 통해 마음을 닦고 도인이 된다면 나라가 잘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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