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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 문인들이 머물고 지나친 그곳 ‘조선의 문화공간’

  •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shinby@snu.ac.kr

조선 문인들이 머물고 지나친 그곳 ‘조선의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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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끈 이어주는 옛글

이 책은 사라진 흔적을 되살려내고, 흩어진 기억을 끌어모아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을 한 명씩 불러낸다. 진경산수화를 그린 정선은 물론이거니와 송석원의 주인이던 장혼과 같은 중인들도 무대의 중심에 등장한다. 이들이 당시에 직접 창작한 시에는 그 시대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갖추어야 했던 필수교양, ‘문사철(文史哲)’이 들어 있다. 시에서, 편지에서, 그리고 기문(記文)에서 옛 선비들의 교양, 스승과 제자의 애틋함, 벗들의 우정이 아스라이 드러난다.

퇴계 이황과 같은 해(1501년)에 태어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을 이룬 남명 조식의 삶의 공간을 따라가보자. 삼가(합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김해-합천-지리산으로 옮기며 살아간 과정이 그가 지은 문학작품들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온몸에 찌든 사십년의 찌꺼기를 천말의 맑은 물로 다 씻어 없애리라. 그래도 흙먼지가 오장에 남았거든 곧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치리라’는 과격한 시의 배경이 되는 계곡, 남명이 그처럼 닮고자 했던 지리산의 풍광이 ‘천석들이 종을 보게나’로 시작하는 시와 지리산 유람록으로 와 닿게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저자의 전공이 한문학이어서 그런지 인물이 활동한 주요 문화공간을 표현하는 글은 대부분 시와 편지, 기문이다. 이들 인물에게 역사적 생기를 불어넣으려면 상소문과 같은 글을 인용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상소문은 한 인물의 현실인식과 그 대응 방법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조식의 경우 그의 삶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 것이 1555년에 올린 ‘단성현감 사직 상소문’이다. 책에서 일부 서술하고 있지만, ‘단성현감사직 상소문’을 직접 인용하여 명종을 고아로, 문정왕후를 과부로 비유하고 나라가 이미 망해가고 있다며 격렬하게 현실을 비판하던 조식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좋았을 듯하다.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인물과 삶의 공간을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크지만, 역사적 상황이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문장을 담았더라면 인물의 삶이 더욱 역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시기적으로 ‘조선시대’ 인물의 삶과 문화공간을 정리하다보니, 지역별로 그곳에 살았던 인물들의 흐름은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도 이러한 점을 우려했는지 “이 책은 문화유적지에 대한 현장답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옛글을 통하여 옛사람이 사랑한 땅과 삶에 대한 기억의 끈을 이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답사에 편리하게 지역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러나 열성적인 독자들은 누워서 책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현장에 가서 그들 삶의 자취를 흠뻑 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이 앞으로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답사 길잡이로 활용될 것을 감안하면, 지역별로 조선시대 인물들의 문화공간을 일람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푸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엄청난 노작이 탄생한 즈음에 하기엔 부적절한 언급 같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이 책이 지역별로도 묶여 조선시대 문화의 생생한 현장을 탐사할 답사 안내서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여유로운 시간에 한가로이 읽어도 좋지만, 선조들의 삶의 자취와 역동성이 배어있는 현장에서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증보판이 나온다면 인물의 연보와 주요 활동 공간을 간단한 도표로 정리해 싣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과 기록의 위대함

몇 가지 보태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들이 결코 이 책이 지닌 의미를 퇴색시킬 수는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조선시대를 장식했던 인물들의 삶의 공간을 대부분 추적하여, 이들이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다. 서경덕이나 이황의 대유학자로서의 모습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사랑했던 소박한 면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나아가 그 시대를 스케치해준다는 점에서 새삼 글과 기록의 위대함을 느낀다. 영상 매체가 없던 시대를 산 인물들의 삶의 터전, 그들이 남긴 글들은 조선의 중심이 다름 아닌 문화와 학문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조선시대 문화공간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여유와 풍취를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동아 200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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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shinb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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