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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송년회 강금실 외

잊지 못할 송년회 강금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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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 고문변호사

영혼의 강물로 흘러가버린 친구

잊지 못할 송년회 강금실 외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 향숙은 신촌로터리 신촌시장 안 골목에서 카페 ‘섬’을 꾸려 나갔다. 언제나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고 다소곳이 얼굴을 숙인 채, 몸체에 비해 가느다란 다리-그래서 종종 넘어지곤 했는데-를 가지런히 붙여 또박또박 걸으면서, 시장 안을 오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향숙은 시장 안 가게 아주머니들과 친하게 지내며 계를 들어 꾸준히 돈을 모으고 빚을 갚곤 했다. 그리고 장사를 하다가 뭐 안주거리라도 떨어지면 문을 열고 나가 옆집 가게에서 두부도 가져오고, 사과도 가져오곤 했다. 향숙의 ‘섬’은 안쪽에 대여섯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문 없는 구들방이 있고 테이블 대여섯 개가 놓인 오붓한 공간이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손님이 직접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를 꺼내고, 선반 위 소쿠리에 튀겨놓은 팝콘을 기본안주로 담아다가 먹고, 술값도 손님이 스스로 계산해 내고 가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손님들도-손님이라고 해봐야 다 향숙과 언니, 동생, 선배 해가며 친구동아리를 이루었는데-‘섬’의 그런 독특한 운영방식을 좋아하는 듯했다.

아주 오래되고 맛있고 허름한 음식점 주인은 대개 욕쟁이할머니로 퉁명하게 구는데, 향숙의 스타일도 좀 그러했다. 반가워도 얼굴 환하게 웃는 법 없고, 오는지 가는지 내버려두고, 과묵한 편이기도 하거니와, 정말 좋을 때는 눈만 쳐다보며 입을 살짝 벌린 채 얼굴이 떨리곤 했다. 안주는 정말로 먹음직하고 수북하게 내놓아 학생손님들에겐 그만이었다. 또 명절 때는 고향집에 못 간 학생손님들, 그러니까 동생들을 불러 밥도 해먹이곤 했다.



향숙의 성격은 우직하고 끈끈한 정은 있되 멋스럽거나 분위기 잡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섬’의 느낌도 여느 카페와는 달리 수더분하고 맥주박스들이 밖으로 다 나와 있어 구멍가게 같았다. 아, 또 한 가지. ‘섬’의 화장실. 깨끗하기는 한데, 좌변기가 아니어서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담아놓은 물을 손님이 직접 파란 바가지로 퍼서 씻어내려야 했다.

1990년대 내내 향숙은 ‘섬’에 있었다. 나는 일이 바빠지면서 향숙을 자주 못 봤으나, 해마다 12월31일 밤에는 꼭 ‘섬’에 갔다. 언제부터인가 따로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송년회를 같이 보낸다는 의식이 형성돼 그날이 되면 나는 아, ‘섬’에 가서 향숙을 봐야지 했고, 향숙도 나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만나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다. 마치 시집간 딸이 엄마 찾아온 듯, 내게 몸에 좋다며 호박즙이며 칡차며 싸줬다.

향숙과 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심전심 어딘가에서 깊이 만나고 있었다. 고단한 삶의 안타까움을 넘어 무던히 흐르는 영혼의 강물 같은 것이 두 사람 사이를 늘 촉촉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섬’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안식을 느꼈으나 ‘섬’ 주인인 향숙은 외로웠다. 그리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는 노랫말처럼 힘들었다. “빚만 다 갚으면, 곗돈 붓는 것만 끝나면 ‘섬’을 처분하고 조그만 밥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공기 맑은 산 부근에 가서. 그런 꿈을 나에게 이야기하면서 언제까지 얼마나 돈을 모으면 될까 손을 꼽으며 같이 계획을 세워보곤 했다. 그리고 향숙은 여렸다. ‘로망스’라는 프랑스 샹송이 향숙의 애창곡인데, 그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리고 그 떨림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금살금 스며 나와 향숙의 마음속 슬픔과 아픔을 처연하게 드러내곤 했다.

향숙은 세 해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큰 병이 걸린 것을 발견해 치료를 받은 후 ‘섬’을 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쉬라는 가족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장사를 계속하다 결국 못 버티고 쓰러졌다. 그의 고집은 결벽증에서 비롯됐다. 신세지는 것 불편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는 것 극도로 꺼리는 결벽증.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 동생을 붙잡고 곗돈을 타면 나에게 빌린 돈 꼭 갚으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것이 말하자면 향숙이 내게 남긴 유언이었다. 친구면 뭐하나. 가장 마음으로 깊고 가까운 친구였다고 말하면 뭐하나. 향숙이 가장 힘들 때, 아플 때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향숙의 꿈을 앞당겨 현실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더라면. 아니면, 향숙, 조금만 더 견디고 버텼어야지, 고집 부리지 말고. 너무 아프면 곁 사람에게 의지했어야지.

향숙은 죽음으로 비로소 ‘섬’을 떠났고, 나의 ‘섬’ 송년회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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