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방폐장 유치로 뭇매 맞은 전 부안군수의 회한

새싹이 트는 땅 부안을 기억하십시오

  • 김종규 전 부안군수

    입력2006-12-15 18: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방폐장 유치로 뭇매 맞은 전 부안군수의 회한

    2003년 9월 부안 주민들이 핵폐기장 건설 반대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짙어진 바다 색깔이 그 맑고 고요함으로 인해 사람을 더욱 사색적으로 만드는 요즘 저는 변산 앞바다를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 때만 출렁일 뿐 얌전히 오가는 파도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섬에서 태어나 평생 바다를 가까이 두고 지내온 저에게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변산의 가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바다의 아량과 지혜와 덕을 배우고자 함도 있지만, 아직도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회한과 설움과 분노를 다스리고자 함이 더 솔직한 이유일 것입니다.

    ‘부안사태’, 벌써 3년3개월이 지났습니다

    혐오시설은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님비현상을 넘어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말라’는 바나나(BANANA·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현상이 일어나 모든 환경단체의 집합지가 되었던 부안. 그로 인해 연일 ‘죽음의 땅으로 바뀌어간다’는 저주 어린 연설과 전단이 난무했던 부안. 그리고 이젠 정부의 방치 속에 잊히고 있는 부안….



    깊이와 색깔을 알 수 없는 가을 바다처럼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없지만, 웃음이 가시고 말수가 적어지고 믿음이 줄어든 것은 부안사람들만이 느끼는 상처입니다. 아직도 부안에는 빨간 옥도정기가 발라졌던 생채기가 남아 있어 잔인하고 모질던 시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남시장의 역발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며칠 전 신문에 ‘하남시장의 역발상’이란 제목으로 하남시장이 ‘하남에 광역 폐기물 처리장과 화장장을 유치하는 대신 정부에 대해 전철 건설비와 지역개발비를 부담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하남시장은 과거 부안이 방폐장 유치 신청을 한 것을 보고 그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저는 하남시장의 결단을 말리고 싶었습니다. 외롭고 힘든 싸움이 벌어질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역발전이 먼저다”라고 외치겠지만 막상 그 일을 시작하면 넘어야 할 산이 부지기수로 닥쳐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남시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부안의 이웃인 군산을 보십시오. 군산은 경주에 방폐장을 뺏긴 후 주한미군 사격장인 직도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군산이 주한 미공군 사격장을 허가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했던가요? 군산은 ‘선(先) 추진, 후(後) 대화’라는 방침으로 별다른 갈등 없이 문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부안사태와 같은 일을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한다고 도입한 게 주민투표제인데, 주민투표제는 방폐장 유치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나 봅니다. 억울하고도 억울하지만 저는 군산을 향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정치인과 사회단체의 이기심

    두려운 것은 기업과 정치인, 그리고 사회단체의 이기심입니다. 이것이 사라진다면 주민들의 의식은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는 지역의 미래 비전과 조화를 이뤄 좀더 나은 도시를 만들게 할 수 있습니다.

    경주는 방폐장 유치에 성공했지만 한수원 본사 이전을 놓고, 한수원 노조와 경주시 사이, 그리고 경주 안에서의 지역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저로서는 부럽기도 한, 웃지못할 갈등입니다.

    하남시장이 광역 화장장 유치를 선언하자 그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은 “인구 13만의 하남에 광역 화장장이 유치되면, 과거의 벽제처럼 ‘하남=화장장’의 등식이 성립한다. 그로 인해 하남의 부동산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할 것이다”라며 주민을 선동했습니다.

    방폐장 유치로 뭇매 맞은 전 부안군수의 회한

    2003년 김종규 부안군수가 방폐장 유치 신청을 냈다가 주민들에게 폭행당하는 등 부안은 사상 유례없는 폭력사태를 겪었다.

    정치인은 표부터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자체장은 지역 발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기심은 사회단체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핵은 곧 죽음’이라고 외치던 사회단체들은 북핵 문제가 불거진 지금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 ‘핵은 곧 죽음’이라는 외침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것인가요?

    부안은 잊힌 땅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풀지 못하던 난제가 조금씩 풀리고 있습니다. 그 희망의 싹을 틔운 곳이 부안입니다. 그러한 부안을 위해 정부는 어떤 배려를 해주었습니까.

    수십 번에 걸쳐 건의와 설득을 하자 겨우 광복절에 부안사태 관련자 45명에 대한 사면조치를 했을 뿐입니다. 사면하는 것이 부안사태를 정리하는 전부입니까? 이 땅에 새싹을 틔우기 위해 피눈물 나는 고통과 상처를 받은 곳이 부안인데, 고통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핀 곳이 부안인데….

    부안의 재정자립도는 12%에 불과합니다. 65세가 넘는 노령층이 전 인구의 21%가 넘습니다. 이농(離農)현상으로 연 평균 2000여 명이 부안을 떠납니다. 부안의 젊은이들은 적(籍)만 부안에 두고 실제 생활은 대도시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안이 길고 거칠었던 싸움의 후유증으로 웃음과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때 정부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단체장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정부는, ‘그렇게 신청하도록 절차를 만든 것이 정부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양입니다.

    정부의 절차대로 하다가 부안은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것은 너희들의 싸움이었으니 너희들이 해결하라. 보상도 너희끼리 하라’고 합니다. 부안은 대한민국에 있는 도시가 아닙니까?

    부안은 바람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방폐장 유치로 뭇매 맞은 전 부안군수의 회한
    김종규

    1951년 부안 출생

    전주대 법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전주대 총학생회장, 전주대 객원교수, 부안사랑나눔회 회장, 부안군수 역임

    現 군산 호원대 겸임교수


    난제인 국책사업을 제일 먼저 과감하게 받아 안으려고 했던 부안을 기억해주십시오. 정부와 사회단체의 이기심에 의해 소외당하고 거짓에 눈 가려졌던 부안을 기억해주십시오. 그로 인한 상처가 남아 아직도 웃음을 머금지 못하는 부안을 기억해주십시오.

    그러나 부안은 우리의 큰 바람을 이루어지게 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고 싶다면 절대로 부안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안의 아픔이 치유되고 정부의 대안이 준비되는 그날까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