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원자력시설과 공존공영하는 지혜를 익히다

  • 최승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전문위원 sjchoe@knef.or.kr

    입력2006-12-15 1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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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 가장 열악한 빈촌을 벗어나기 위한 지역 주민의 선택이 지역의 미래를 바꾸었다. 로카쇼무라는 더 이상 인구가 줄지 않는다. 농업도 산업도 뿌리를 내리기 힘들던 척박한 땅이 쓸모 있는 땅으로 바뀌기까지의 ‘인간 선택’ 과정을 추적한다.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인 일본은 현재 53기(基)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총 발전량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 대국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시설, 핵연료 제조시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 그리고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등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모든 시설과 기술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로카쇼무라(六ケ所村)는 우라늄 농축시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 저준위폐기물 매설센터, 고준위폐기물 저장관리센터 등 일본 최대 규모의 핵연료 사이클 시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로카쇼무라는 일본 본섬인 혼슈(本州) 최북단에 위치한 작은 촌(村)으로, 도쿄에서 북쪽으로 700㎞쯤 떨어져 있다.

    산업 발달 꿈 접은 척박한 땅

    아오모리(靑森)공항에서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두 시간가량 들어가면 태평양을 끼고 있는 로카쇼무라가 나온다. 오징어, 조개 등 해산물이 풍부하고 사과와 마늘, 참마 등을 재배하는 전형적인 반농반어(半農半漁) 마을로, 핵연료 사이클 시설은 마을로부터 버스로 불과 10분 남짓 걸리는 곳에 있다.

    로카쇼무라가 속해 있는 아오모리현은 기후 조건상 원래부터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가난한 농촌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오모리현 주민 1인당 소득은 전국 평균을 훨씬 밑도는 수준이었다. 로카쇼무라는 아오모리현 내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서 주민소득이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아오모리현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1971년 현과 정부 그리고 민간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대규모 석유 콤비나트를 유치하기 위한 무쓰오가와라개발 주식회사를 설립해, 약 170만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1973년에 불어닥친 석유파동으로 계획을 대폭 축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아오모리현은 이곳에 다른 산업시설을 유치키로 하고 각계와 접촉하던 중 1984년에 원자력 관련단지를 조성키로 결정했다.

    1984년 4월 일본 정부와 아오모리현은 석유비축시설 잔여 토지를 포함한 여유분 토지에 대하여 일본 9개 전력회사 연합체인 일본전기사업연합회에 부지 사용을 권고하였다. 이에 대해 연합회는 넓은 부지, 견고한 지반, 해상수송물량 하역을 위한 항구 조건 등을 갖춘 무쓰오가와라 공업개발지역의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에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시설, 우라늄 농축시설, 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등을 갖춘 원자력 종합관리시설을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1985년 4월에는 사업자와 아오모리현 및 로카쇼무라 간에 ‘시설입지협력기본협정’이 체결되고, 지질조사 및 사업허가 과정을 거쳐 건설에 착수하였다. 당시 주민의 대부분은 1차산업 종사자들로서, 원자력시설 유치가 지역진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유치를 찬성했다.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스와니’로 불리는 로카쇼무라의 문화교류 플라자.

    시설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원자연료대책협의회’를 구성하고 주민연구회 결성, 국내외 관련시설 견학, 앙케트 조사 등을 통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에 대한 주민의 이해를 넓혀 나갔다. 이후 내각의 승인을 거쳐 1991년 11월 과기청으로부터 방사성폐기물 1차분 20만 드럼을 저장할 저장소 건설허가를 얻어 1992년 12월부터 운영을 개시하였다.

    특별법 통한 지원 이행

    이러한 일련의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 반대여론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도입한 특별법 같은 대규모 지원 정책이다. 일본 정부는 ‘전원(電源) 3법’이라는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 1988년부터 2005년까지 로카쇼무라, 인접 지자체, 아오모리현 등에 총 423억엔(약 4200억원)의 특별 교부금을 지급했다. 우리 정부가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에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은 이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일본 농촌이 그러했듯이 이곳도 인구가 줄고 주민 고령화 문제가 심각했다. 1980년 1인당 소득을 비교해보면 로카쇼무라가 89만엔, 아오모리현이 122만엔, 일본 전체가 170만엔이었다. 이곳은 일본 평균 소득의 절반 수준인, 아오모리현 가운데서도 가장 못사는 마을에 속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등 원자력시설을 유치하면서 로카쇼무라의 1인당 연간 주민소득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2000년 말 기준 320만엔에 달했다. 이는 아오모리현의 252만엔보다 훨씬 높고 일본 전체 평균 299만엔보다 높은 것이었다. 마을의 산업구조도 크게 변했다. 1985년 1차산업 41%, 2차산업 22%, 3차산업 37%의 구성비를 보이던 것이 2000년에는 1차 14%, 2차 45%, 3차 41%로 바뀌었다. 반농반어의 1차산업 중심에서 2차·3차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세금납부로 지방재정에 대한 기여도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

    로카쇼무라에서는 더이상 인구가 감소하거나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 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청·장년층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로카쇼무라 성인 남자들은 농한기인 겨울철이 다가오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으레 대도시로 떠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로카쇼무라에는 농한기에 대도시 취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업유치로 인해 취업기회가 많아졌고, 각종 지원사업 시행으로 소득을 올릴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달라진 삶의 질

    로카쇼무라에서는 참마, 감자, 무, 당근이 많이 재배되고 있고 매일 생산되고 있는 우유는 물론 치즈, 아이스크림, 요구르트도 호평을 얻고 있다. 원자력 시설이 있음에도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오징어, 연어, 대구와 전복, 다시마를 가공한 특산품은 인기가 대단히 높다.

    시설 유치에 따른 지원금과 경제적 효과로 지역주민 생활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지원된 교부금으로 도로망 등 사회간접시설이 확충되고 지역 도서관을 비롯해 노인복지센터, 장애인 편의시설, 첨단 콘서트홀, 축구장, 야구장, 테니스장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섰다.

    장서 3만권을 갖춘 도서관과 공연장 등이 들어선 문화교류 플라자는 ‘스와니(Swanee)’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로카쇼무라는 원래 백조(Swan)를 비롯한 희귀 철새의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라 그와 같은 애칭이 붙었다.

    로카쇼무라의 방대한 핵연료 사이클 단지에는 우라늄 농축공장, 재처리시설 등이 몰려 있지만 주민들은 평온하게 일상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주민뿐만 아니라 일본 환경단체도 시설 유치 반대에 가세했다. 일본 환경단체들은 주민들에게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에 반대하지 않으면 이 지방 농수산물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위협까지 했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인 일본에서 처음 건설되는 시설인데다 당시는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 여파로 원자력 시설에 대해 특히 민감할 때였다.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노인복지센터인 특별양호노인 홈 본텐쇼에서 벌어진 크리스마스 파티.

    처음엔 반대 의견이 거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로카쇼무라 주민들은 환경단체 주장에 점차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지역 관계자와 주민들이 유럽 선진국의 관리시설을 시찰하면서 안전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설 유치로 인한 막대한 지원금과 경제적 효과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 사업자는 원자력시설의 안전운영을 바라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펼쳐 나갔다. 일례가 농작물과 어패류를 대상으로 한 방사능 함유량 검사 수치를 주기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오징어, 당근, 참마 등이 다른 지역으로 거부감 없이 팔려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원전시설 기업들의 입주로 취업 기회가 증가하면서 방문객과 관광객이 증가하고 이것은 지역상품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피해국으로서 원자력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드셀 법도 하건만 일본인의 인식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1966년 도카이(東海)원전이 가동에 들어간 이래 일본에선 현재 53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으며 원전이 일본에서 생산되는 전체 전력의 35%를 충당한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1970년대 닥쳤던 석유파동 이후 원자력을 석유의 대체에너지원으로 적극 추진해온 결과다.

    하지만 일본도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심각한 고비를 피할 수 없었다. 요즘도 반대 움직임이 있지만 그 활동수준이 미미하다. 반대자들은 주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고 이들은 재처리사업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가 방폐장 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동안 일본은 그 단계를 벗어나 재처리시설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재처리시설은 2007년 8월 상업 가동을 목표로 현재 막바지 시(試)운전 중이다.

    공존공영의 길로

    이곳 원전시설 관계자들은 “이곳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2000여 명에 이르는 직원이 마을 사택에서 거주하려 하겠느냐”고 말한다. 로카쇼무라에 인접한 무쓰(陸奧) 지역에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추가로 들어설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최승진

    1953년 서울 출생

    한양대 원자력공학과·언론정보대학원 졸업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홍보사업부장, 교육사업실장, 미디어실장 등 역임

    논문 : ‘원자력 문제에 대한 과학 기자들의 인식 연구’ 등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은 국가가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겠다고 하는 한 꼭 필요한 시설이다. 따라서 국가가 책임을 지고 법률로 안전성 확보에 대한 보증을 확인해주어야 한다. 철저한 정보공개와 주민이해 증진을 통해 방사성폐기물 시설이 지역발전과 모두의 공존공영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사업자를 믿고 원자력 시설을 유치하여 고질적인 가난을 벗어난 로카쇼무라 주민의 지혜와 노력은 이제 막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방폐장 유치한 일본 로카쇼무라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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