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1월27일 신임 차관급 내정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변양균 정책실장, 남인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노 대통령, 한진호 국정원 2차장, 서훈 국정원 3차장, 이수혁 국정원 1차장.
이미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컨소시엄 준비단계에 이르렀다는 계획을 두고, 이 사업가는 사뭇 다른 뉘앙스의 말을 덧붙였다. 사업을 책임진 북측 실력자가, 남측이 이 사업에 자본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평양을 드나들며 이 실력자측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이 인물은 남측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설득도 이어졌다.
같은 사업 아이템을 갖고 타진해온 것은 이 사람만이 아니었다. 당시 한 통일부 관계자도 유사한 내용을 들고 온 사업가를 만났다고 말했다. 청와대, 여당 주변에도 유사한 접촉이 있었다. 그해 가을 무렵 이 통일부 관계자는 정보 루트를 통해 그 타당성을 검증했으나 결론은 “신뢰하기 어렵다”였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남북정상회담을 걸고 비즈니스를 상의하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자신이 북한의 누구와 선이 있는데, 이러저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해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줄 수 있다는 식이었다. ‘당신과 내가 정상회담 성사의 막후채널 노릇을 하면 나라를 위해서도 큰 영광 아니냐’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안보부처 핵심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정상회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원칙을 숙지하고 있던 이들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겠지만, 모두 다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자리를 떠나면서 후임자에게 그런 이야기에 혹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정치권을 달구는 화두로 떠올랐다. 여권과 정부 관계자들의 잇따른 발언과 언론보도로 분위기는 한껏 들뜨고, 야당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취임 이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청와대의 의중이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져 나온다.
과연 남북정상회담은 추진되고 있는가. 추진된다면 어떤 경로로 어떤 사람들을 통해 어떤 수준까지 논의된 것일까. 그간에는 어떤 접촉이 있었고 어떤 결과물이 있었나. 최근 일련의 흐름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전현직 관계 당국자들과 대통령 측근, 정보기관 주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따라가보자.
세 가지 경로
남북이 정상회담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채널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우선 공식-공개 채널. 언론에 보도되는 남북간 협상장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내용 자체는 공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의제가 있었다는 것은 공개되게 마련이다. 2005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제의한 경우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