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호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공론장이 되기를 ‘인권평론’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평화연구 kwkoo@kyungnam.ac.kr

    입력2007-02-1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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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공론장이 되기를 ‘인권평론’

    ‘인권평론’ 한국인권재단, 한길사/336쪽/1만2000원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진보의 화두였다. 한국 현대사는 인권운동의 역사로 재구성될 수 있을 정도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한국 인권운동가들의 투쟁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인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를 보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인권 현장을 이론적으로 받쳐주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학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권법 강좌를 개설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이 운동의 현장이었지만, 강의실은 현장과 유리된 그들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일 게다.

    여기에 더해 회색적 지식인들은 모든 이론을 회색으로 만드는 일에 충실히 복무해왔다. 인권투쟁이 활발하던 그 시절 우리에게는 전쟁터만 있었을 뿐, 이성적 토론을 위한 공론장은 없었다. 현장과 거리를 두고 반성적으로 사유(思惟)할 여유가 없었고, 그러한 반성조차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길 때가 있었다. 반성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는 참혹하다. 한마디로 놀라운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점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인권의 시각으로 사회를 조망”하고자 하는 ‘인권평론’의 창간은 정말로 반길 만한 사건이다.

    생활세계 인권에 대한 탐색

    그런데 창간사가 좀 수상쩍다. 제목이 ‘세계 사회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며’이다. 이제 한국 사회가 아니라 세계 사회의 인권을 언급할 때가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적 시각에서 한국의 인권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일까. 아무래도 후자인 듯하다. “우리가 그 일원인 아시아 그리고 세계 사회가 권리의 이름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창간사의 다짐에서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읽을 수 있다. 실린 글들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의 인권에 관한 논의보다 인권개념의 확장을 모색하는 3부와 지구촌 인권을 다룬 4부에 눈길이 더 간다. 이제 우리가 더는 인권과 관련해 후진국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다. 잘 들여다보면 다루지 못한 인권의 사각지대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술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지만 왜 창간호가 이렇게 구성됐나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창간사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그러나 모범적인 인권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FTA와 미군기지 이전 등으로 사회적 약자층은 또다시 인권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다민족문화 경험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 침해도 묵과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국가기관의 고문이나 가혹행위 등 후진국형 인권 침해 행위는 줄었지만 성별, 나이, 학력, 장애, 국적, 성적 지향, 종교, 지역, 전과 등을 이유로 한 각종 차별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 책에서는 생활세계의 인권이 중요하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중요하다는 선언만 있을 뿐, 진지한 탐색은 없다. 현장의 목소리를 체로 거르는 글들이 없다는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 논의를 총괄하는 자리인 창간호 기획좌담에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이제 진부해진 것일까. 아니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라 회피한 것일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인권’을 다룬 3부와 4부로 넘어가면 인권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왜 필요한지를 경험하게 된다. 다만 정보혁명과 생명공학의 시대에 인권 논의의 패러다임이 과학적 진보에서 과학의 위험으로, 연구의 자유에서 연구의 윤리로 전환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과학과 인권’을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

    3부와 4부에 실린 글들은, 우리 이웃인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과 두 국가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끔 한다. ‘세계화시대의 기업활동과 인권’과 ‘투자법규의 신헌정체제’는 한미 FTA와 인권의 관계를, ‘국제적 인권으로서의 평화권에 대한 고찰’은 한반도문제와 인권의 관계를, ‘테러와의 전쟁과 인권’과 ‘콜래트럴 이미지: 아태지역에서의 대테러 조치가 초래한 인권 침해’는 미국의 인권정책 및 북한인권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세계화시대의 FTA는 헌법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NAFTA 이후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공영역의 축소 및 국민이 공공영역을 결정할 권리를 상실해가는 과정은 FTA를 신헌정체제(new constitutionalism)로 부르는 것이 과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미 FTA 협상에서 국내협상, 즉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은 정치적·시민적 권리의 심각한 침해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전체적으로 국익이 증대될 수 있다면 한미 FTA로 인한 국내 소수집단의 손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개발독재 시기의 정치로 복귀하는 것이고, 사회적 권리의 심각한 침해를 낳을 수 있다.

    둘째, 인권의 하나로 평화권을 설정하는 것은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더불어 한반도 특수적 시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정전(停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 주민에게 평화권은 다른 어떤 권리보다 절실하다. 평화권은, 발전권이나 환경권과 같은 집단적 권리로 자유, 평등, 박애 가운데 박애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특히 국제관계를 무정부상태로 가정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이론이 내포한 불가피한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도 평화권의 설정은 국제관계의 패권적 질서를 민주적 질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평화권을 쟁취하는 과정과 방법이다. 9·11 이후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세계시민의 평화권을 위협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대응이 또 다른 힘의 정치를 통해 전쟁의 부재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때, 평화권은 냉전시대 핵억제에 의한 공포의 균형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가 “그 목적이 타국의 영토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침해에 있지 않고 또한 방어수단을 활용할 때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만 충족시킨다면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비롯한 국제법에 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다. 평화권이 연대의 권리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의 길을 통해 획득되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아시아 차원의 지역인권협약을 만드는 작업은 평화권을 확보하는 정당한 경로일 수 있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

    셋째, 미국의 관타나모 기지에 대한 유엔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대한 분석과 테러와의 전쟁이 초래한 인권 침해에 대한 분석은, 미국 인권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두 글을 통해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세계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역설적 현상을 보게 된다. 관타나모 기지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야기한 인권 침해는 미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미국은 한때 ‘깡패국가’로 규정했던 파키스탄과 군사적·경제적 협력을 하고 있고, 동티모르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한 인도네시아군과도 협력을 시도하고 있으며, 심각한 인권 침해국의 하나로 선정된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늘리고 있다.

    물론 미국의 인권정책이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에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기획좌담의 참석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은 “눈앞에 드러난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의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실상을 짚”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북한인권의 실상은 물론 개입의 철학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라며, ‘인권평론’이 그러한 공론장을 제공해야 한다.

    ‘인권평론’이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를,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현장을 지구의 중심으로 만드는 매체이기를, 생활세계의 인권은 물론 국제사회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해 지구시민사회의 연대를 만들어간다는 사회운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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