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위대 몰고 교도소 난입 시도한 임수경 어머니
- 감옥에서 환갑 맞은 장영자, 기고만장하더니 스님 돼
- 교도소 성추행? “인간을 절대 믿지 말라”
- ‘꽃뱀’의 무기는 미모가 아니다
- 한철 지내려 일부러 구속되는 노숙자와 외국인 노동자
- 외제 화장품, 메이커 속옷에 집착하는 재소자들
1977년 9급으로 교도관 생활을 시작한 후 전국의 교도소를 돌아다닌 그는 “30년 교도관 생활 중 공안사범이 많던 1970∼80년대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시국사범 혹은 공안사범이 하루도 안 빠지고 구속되어 들어오던 그 무렵, 다수인 그들이 소수인 교도관들을 압도하면서 ‘전쟁’ 같은 체험을 했다”는 것.
특히 1980∼87년에는 국가보안법, 반공법, 정치정화법, 사회보호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으로 검거된 공안사범이 1만2000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다 노동관계법 위반 등으로 검거된 숫자까지 포함하면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보다 2.5배나 많은 인사가 구속됐다.
“4.5평 공간에 21명까지 수용했습니다. 수용자가 너무 많아서 서로 발을 마주치게 두 줄로 눕혀 칼잠을 재웠어요. 용변을 보고 오면 자기 자리가 없어져버렸죠.”
운동권과의 전쟁
▼ 공안사범은 주로 대학생들이었는데 교도관을 특별히 힘들게 할 까닭이 있었나요.
“선동에 앞장섰거든요. 그들이 소리를 질러대면 일반 재소자들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어요. 교도관의 주업무인 교정, 교화엔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목청 높여 소리 지르고 단식투쟁을 하면 거기에만 매달려야 했으니까요. 단식을 하면 건강을 해치니 밥을 먹게끔 설득하는 것이 주임무였죠. 교도관이 방에 들어가서 같이 먹기도 했어요.”
▼ 여사동(女舍棟)에는 여대생들이 들어왔을 테니 다루기가 편했을 것 같은데요.
“더 극렬했어요. 오히려 남자 대학생들이 얌전했고, 여대생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칼로 손목을 긋는 건 흔한 일이었고요. 자해를 막으러 들어가면 온몸으로 저항했습니다. 교도관의 손목을 물어뜯기도 했고, 임신한 교도관의 배를 걷어차 유산시키기도 했어요. 그들에게야 눈에 보이는 적은 오직 우리뿐이었겠죠. 식기에다 온갖 오물을 담아놓았다가 교도관들이 지나가면 ‘독재정권의 똥개’라고 소리치면서 내던졌어요. 그래서 우의를 입고 점검을 다녀야 했죠.”
▼ 교도관들이 운동권 인사들을 보는 시각은 남다르겠군요.
“그 시절 우리가 그런 일을 겪은 줄 누가 알겠습니까. 시대의 비극이죠. 그들은 젊고 순수한 열정으로 나라를 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우리는 법을 집행하는 처지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시대가 바뀌어 그들이 영웅시되고 있는데, 착잡해요. 더러 그 사람들이 ‘감옥에서 고생했다’고 하면 직접 부딪쳤던 우리는 답답합니다.”
최 과장은 “부모가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투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1981년 수원교도소 근무 당시의 최효숙 서기관. 미용훈련을 받고 있는 여성 수용자와 청주여자교도소의 재소자 자녀를 위한 유아놀이방(맨위부터 차례로).
▼ 교도소 특성상 24시간 근무를 하겠죠?
“그렇습니다. 1990년 초반만 해도 여성 교도관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24시간 꼬박 근무하고 다음날 퇴근하는 2교대 체제였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교대’의 의미가 없을 때가 많았어요. 1977년, 첫 발령지인 성동구치소에 배치됐는데 그때 여성 재소자가 170여 명이고 여성 교도관 8∼9명이 교대로 근무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요즘 성동구치소에선 27명의 교도관이 130명의 재소자를 맡고 있어요.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진 거죠.”
교정조직 독립이 소원
▼ 교도관이라는 직업이 여성에겐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남자도 힘들죠. 징역살이와 다를 바 없거든요. 물론 여성, 특히 주부로선 참 힘든 직업입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집에 못 들어가잖아요. 아이들 키울 때 어려움이 많았죠. 주부 교도관을 위해서 교정시설마다 육아시설이 있어야 해요. 출근하면서 아이 맡기고 퇴근하면서 데려갈 수 있게. 지금은 청주여자교도소에만 있습니다.
임신했을 때는 정말 걱정스러웠어요. 태교(胎敎)가 마음에 걸린 거죠.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생각만 해도 시원찮을 터에, 사람 죽이고 도둑질한 사람들과 24시간 같이 지내니까요. 사명감이 없었으면 진작에 그만뒀을 겁니다. 하지만 태교에 신경 쓰는 후배들에겐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교도관으로 하루하루 충실하게 일하면 되지, 나쁜 짓 한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고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행히 요즘은 임신한 교도관을 배려해 재소자들과 접할 일이 적은 서무과나 총무과에 근무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도관의 급여는 어느 정도일까. 7급을 기준으로 수당을 합친 5년차 월 수령액이 200만원, 10년차가 250만원, 20년차가 320만원, 30년차도 보너스가 없으면 350만원 수준이다. 야근수당은 직급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월 50만원 수준이다. 2∼3일에 하루는 24시간 근무를 하는 직업치곤 박봉이다. 경찰직은 경찰청으로, 소방직은 소방청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교정직은 법무부 소속 일반 공무원이다. 다만 공안직군에 포함돼 일반 공무원보다 급여가 한 호봉 높게 책정되어 있다.
“우리는 제복을 입는 특수한 공무원인데도 일반직 공무원에 편입돼 있어 문제점이 많아요. 전문성을 보장받지 못하거든요. 평생 교정업무를 한다는 특수성을 인정받으면 좋겠어요. 교도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인식이 부족한 나머지 정부가 고위공무원단에 편입시킨 것 같아요. 4급 교도관은 소규모 교도소장을, 3급부터는 큰 단위의 교도소장을 하는데, 3급부터 고위공무원에 편입되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서도 올 수 있습니다. 물론 공모를 통해서 우리도 다른 부처로 갈 수 있고요. 인재풀을 넓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하겠다는 의도이겠지만 교도관들은 당혹해합니다. 우리는 다른 특수 행정을 맡고 있잖아요. 외청으로 독립하려고 꾸준히 시도해왔는데 일이 잘 안됩니다. 하루빨리 교정조직의 특성을 살려 독립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초고속 승진 거듭
현재 교정기관에 근무하는 전체 교도관 수는 1만3854명. 이 중 여성 교도관은 약 7.7%에 해당하는 1067명이다. 교도관은 제복 근무자와 사복 근무자로 구분된다. 재소자의 가석방과 분류심사를 담당하는 분류직과 교화를 책임지는 교화직은 사복을 입고,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직접 재소자를 관리하는 교도관은 제복을 입고 근무한다. 전국 47개 교도소, 구치소에서 제복근무를 하는 여성 교도관은 모두 834명. 여성 재소자 관리는 반드시 여성 교도관이 맡는다.
▼ 여성 범죄율과 여성 교도관수는 어느 정도 비례하겠군요.
“그렇겠지요. 현재로선 수용자를 100으로 봤을 때 여성이 10을 차지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불구속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소자 숫자가 많이 줄었어요. 몇 해 전만 해도 전국에 수용자가 7만여 명이었는데 요즘은 4만여 명입니다.”
▼ 과거에는 교도관을 ‘간수(看守)’라고 해서 백안시했는데, 교도관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중학교 재학 때 몸이 너무 약해서 태권도를 배웠지만 워낙 수줍음을 타서 활동적인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당에서 알게 된 분이 법무부 공무원 시험을 권유했어요. 스물셋에 첫 직장으로 교도소에 발령받은 겁니다.”
▼ 9급으로 들어와서 2년 만에 8급, 3년 만에 7급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셨군요.
“시험승진을 했죠. 요즘은 9급으로 들어와도 자동근속 승진 덕분에 7급으로 정년퇴직을 할 수 있지만, 과거엔 9급으로 정년퇴직하는 교도관이 태반이었어요. 여성들은 시험 칠 생각을 아예 안 했고. 저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가 불만스러웠어요. 또 여성에게 승진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들어온 지 2년 2개월이 됐을 때 7년 만에 8급 승진시험이 있었어요. 전국 응시자 중에 여성은 저뿐이었고 제일 신참이었죠. 1000여 명이 응시했는데 70명을 뽑았어요. 여자로선 처음으로 합격한 거죠. 7급까진 시험으로 승진했고 6급부터는 심사를 받았어요. 머리가 좋거나 관운(官運)이 좋았다기보단 ‘꼭 해내겠다’는 집중력 덕분인 것 같아요(웃음).”
최 과장은 법무부에서 부부 서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남편은 서울지방교정청 보안관리과장인 김재곤(金載坤·52) 서기관. 이 부부는 6급 승진에 이어 1997년에는 5급 교정관으로 함께 승진했다.
감옥을 흔히 ‘인생의 막장’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던전(dungeon·지하감옥)’ ‘덩힐(dunghill·똥덩어리)’ 등으로 표현된다. 범죄는 욕망에서 시작되고, 인간의 욕망은 똥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돈, 돈, 돈…
교도관은 법을 대신해 감옥의 문을 책임지는 집행관이다. 재소자들은 자신이 갇혀 있는 감방 문을 포함해 모두 5개의 철문 속에 갇혀 있다. 철문마다 자물쇠가 걸려 있다. 그 문을 교도관이 열어주지 않는 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다섯 개의 문을 열리게 하는 건 오직 시간뿐.
여성 범죄가 늘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높아지면서 공범과 종범(하수인)이 아니라 주범으로 구속되는 여성의 비율도 높아지는 추세. 범죄 추이로 보면 여성은 주로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인터넷 범죄와 신용카드로 인한 범죄, 각종 사기범, 가정폭력으로 인한 격정범 등으로 구속된다. 한 해에 전국 각 경찰서에 검거되는 범죄자는 230여만명이고 이 중 여성 범죄 비율은 10∼20% 수준이다. 최근 들어서는 도박, 간통, 풍속범죄 비중은 낮아진 데 비해 교통사고, 재산 관련 범죄와 강력범죄는 늘어났다고 한다. 경찰과 공무원 등을 상대로 한 무고(誣告) 혐의로 구속되는 여성도 많아졌다.
▼ 여성 재소자는 대개 어떤 환경에서 범죄에 연루됩니까.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가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성장과정이 중요해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면 윤리교육을 제대로 받았겠죠. 그런데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물욕뿐이라면 아무리 부자 남편을 만나도 결과는 마찬가지예요. 사치와 허영으로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겠죠. 또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자라면 타인을 정상적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가정다운 가정을 못 느껴본 사람은 가정을 우습게 압니다. 어머니가 흔들리지 않고 가정이 깨지지 않아야 사회 전체적으로 범죄가 줄어듭니다.”
성동구치소 문을 나서는 최효숙 총무과장.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을 다 눈을 찔러 실명시켜서 보험금을 타낸 여성이 붙들려 왔어요. 심지어 보험금 때문에 부모형제와 자매까지 해친 여성이 있습니다. 예전엔 애정관계 때문에 남편이나 애인을 살해했는데, 요즘은 돈 때문에 남편을 죽인대요. 단순히 경기침체 탓으로만 해석해선 안 됩니다. 황금만능주의 영향으로 정신병에 가까울 만큼 돈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립니다. 여성 범죄는 대부분 정신질환과 연관이 있습니다. 정상인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거죠. 이런 여성들은 치료가 필요해요. 교도소에 상담심리사가 많이 채용돼야 합니다.”
최근 교정기관에서 9급에 준하는 상담심리사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일하는 임상심리사가 되려면 범죄심리전문가 혹은 범죄심리사 자격증을 소지하거나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정신과 의사를 교도소에 배치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근무여건이 좋지 않다. 보수는 낮고 일은 고되어 사정이 여의치 않다.
최 과장은 “정신질환자를 상대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자기들끼리 상담을 하는 것처럼 교도관들도 일정기간이 되면 상담심리사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하루 종일 범죄자들과 생활하다보면 심성이 각박해질 뿐 아니라 심리적 압박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꽃뱀’의 ‘능력’
▼ 여성 범죄의 특징이라면.
“대부분 ‘암수형 범죄’죠. 꼭 남자가 관련돼 있어요. 사랑을 하면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가봐요. 은행원의 횡령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여성 범죄자의 특징 중 하나는 버려진다는 겁니다. 남자 재소자들은 대개 헌신적인 옥바라지를 받는데 여성은 남편은 물론 친정과도 단절됩니다. 그래도 자식들은 꼭 면회를 와요. 심지어 아버지를 살해한 엄마를 그리워하고 찾아와서 아픔을 나눠요.”
▼ 오랫동안 재소자들을 겪었는데, 공통된 문제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절약하는 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요즘은 영치금으로 어지간한 물품은 다 구입할 수 있는데, 의약품을 제외하고 하루 3만원으로 제한합니다. 밥도 1식3찬으로 괜찮게 나오죠. 자비로 다른 반찬을 구입해 먹을 수 있고요. 교도소에선 선호도를 조사해서 식품과 일용품 목록을 조정하는데, 구치소에서 파는 양말이며 속옷은 입지도 않아요. 여기까지 와서 브랜드에 집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 바깥에서 쓰던 외제 화장품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 요즘 교정시설이 좋아져서 노숙자 등이 일부러 들어오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교도관이 근무하는 복도와 사무실에는 라디에이터가 고작입니다. 몇 년 전까지도 연탄난로를 피웠어요. 요즘에는 감방에 심야 보일러를 돌려 절절 끓어요. 그런가 하면 재미있는 연속극을 녹화해서 보여주고 영화도 비디오로 틀어줍니다. 커피 녹차 쌍화차를 마실 수 있게끔 따뜻한 물을 필요할 때 언제라도 줘요. 일부 노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안 나가려고 발버둥을 쳐요. 더구나 기결수가 되면 외부로 통근하며 김치공장 같은 데서 하루 1만원 정도 벌 수도 있거든요.”
최 과장은 이른바 ‘꽃뱀’으로 구속되는 여성들 얘기도 들려줬다.
“요즘은 나이 많고 못생긴 꽃뱀이 많아요. 언젠가는 60대 여성이 잡혀 들어왔어요. 50대쯤으로 나이보다 젊어 보이긴 했지만 미모는 별로였어요. 통 꽃뱀이라고 믿기지 않았는데 조금 겪어보니 느끼겠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을 어찌나 잘 읽는지…. 또 감언이설이 대단했고요. 꽃뱀은 외모가 출중하기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긁어주는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더라고요. 조심해야 해요(웃음).”
▼ ‘큰손’도 많이 들어올 텐데,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화술이 뛰어나고 현시욕이 강하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끊임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하죠. 한마디로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1979년에 장영자씨가 어음사기사건으로 처음 구치소에 들어왔을 땐 정말 대단했어요. 그땐 사람을 사람으로 안 봤어요. 권력을 등에 업고 수천억을 주무르던 사람이라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죠. 하지만 조울증이 심했어요. 자신의 꿈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겁니다. ‘큰손’이 들어왔다고 소문이 나니까 어떡해서든 장씨에게 빌붙어보려고 수없이 접근했어요. 장씨를 처음부터 독거방에 수용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인생이 참 불쌍해요.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환갑을 구치소에서 맞았으니…. 20년 넘게 옥살이를 하고는 이제 스님이 된 거죠.”
“사람, 잘 안 변해요”
최 과장은 “그래도 여성 재소자가 남성 재소자보다 고분고분하지 않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교화엔 남녀가 따로 없어요. 30년 동안 서너 명이라도 교화했다고 자신하는 교도관이 드물 겁니다. 100명 중 한 명 성공할까 말까입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교도관의 노래에 ‘굽은 나무 펴기보다 더욱 어려운 일, 우리가 맡았다’라는 구절이 있겠습니까. 범죄는 순결과 비슷해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워요. 재범률이 안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교도관들이 보기엔 강력범죄가 오히려 교화가 잘 됩니다. 우발범이나 격정범을 순수하게 봐요. 어려운 건 사기범 경우예요. 초임 때는 재소자를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친해집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가까워집니다. 그러다 마음에 상처를 입죠. 출소한 뒤에 찾아오면 하룻밤 재워주곤 하거든요. 그랬더니 아침에 밥 차려놓고 출근한 사이에 돼지저금통에 있는 몇만원까지 훔쳐서 달아나더군요.”
교도소는 본능과 무의식이 판을 치는 곳이다. 교도관은 이곳에서 범죄자와 함께 생활한다. 어떻게 보면 교도관이야말로 사람을 다루는 탁월한 전문가일 수도 있다. 최 과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속성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뉘우치고 숙연해져요. 안에서는 제약도 있고 재판 중이라 뭘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죠. 교도관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뉘우치는 재소자죠. 그런데 사람은 절대 안 변합니다. ‘출소하면 식당 일을 해서라도 이 악물고 돈 벌겠다’는 다짐을 아무리 해도 결국 달라지지 않아요. ‘빚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일당 5만원을 주는 밭일거리를 소개해주면 안 갑니다. 전에 하던 일을 하러 다방으로, 술집으로 가요. 고급 승용차를 몰던 사람이 출소하면 렌트를 해서라도 고급차를 끌고 다니죠.”
▼ 바깥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도 있잖아요.
“밖에서 제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이곳에 들어오면 같아집니다. 자리와 환경이 사람을 만들어요. 야비하고 치사한 심성이 여기선 그대로 드러나요. 밖에서 유명한 ‘누구였다’고 하지만 싸울 때 보면 똑같습니다. 육두문자가 줄줄 나오지요. 잠재한 밑바닥이 다 드러나는 거죠.”
▼ 혼거방 안에서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가 펼쳐지겠군요.
“그렇죠. 인간은 어디서든 헤게모니를 쥐려는 본능이 있어요. 수용자들을 데리고 꽃동네에 간혹 갈 일이 있어요. 그곳 신부님 얘기로는 장애인들이 지내는 방에서는 장애가 좀 덜한 사람이 방장이 된답니다. 그나마 몸이 좀 성한 사람이 방장이 되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간섭하고 지배한다는 거예요.”
▼ 요즘은 기결수들에게 다양한 직업훈련을 시킨다면서요.
“교정시설은 가두는 곳이 아니라 치료하고 재활시키는 곳입니다. 결국엔 밖에 나가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와 격리되어선 안 됩니다. 세계 재소자 처우준칙에는 ‘교도소는 사회의 최저생활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최근 인권 보호의 목소리가 높아져서 빠른 속도로 개선된 거죠.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여성 재소자들은 미용, 재봉기술, 제빵 제과, 원예, 조리사 등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교육받을 수 있습니다. 중졸로 들어와서 학사학위를 받고 나가기도 해요.”
▼ 일각에서는 교정기관의 직업훈련이 ‘영리한 악마’를 양성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합니다.
“그런 면도 있어요. 사람이 변한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기 힘들어요. 어지간히 독하게 마음먹지 않고는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게 돼 있어요. 범죄는 자꾸 진화합니다. 절도범이 강도가 되는 거죠. 인성이 바뀌지 않으면 재활교육은 무기를 쥐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어요. 범죄는 반복할수록 악랄해지고 교활해집니다. 실제로 출소했다가 더 지능적인 범죄자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 과장은 “여성교도소가 몇 군데 더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이 확정된 여성들만 모여 생활하는 게 좋아요. 청주에 여자교도소가 있지만 부족합니다. 여성에게 맞는 직업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현재로선 전국 각 교도소에 소수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워요.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여성 재소자를 위해 따로 예산을 들여서 직업훈련장을 만들기가 힘들거든요. 청주여자교도소 외의 다른 지역에 수감된 여성들은 취사부와 청소부 일밖에 못하고 있습니다.”
▼ 강금실씨가 법무부 장관을 할 때 한번 추진해보지 그랬습니까.
“글쎄요. 강 장관께서 방문했을 때 교도관에게 ‘교육을 안 받고 싶은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묻더군요. 어이가 없었어요. 행형법 1조에 ‘교정기관은 건전한 국민정신을 함양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요. 이를 위해 각종 교육과 기술을 익히게 하는 건 당연해요. 교화하려면 교육은 필수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법 집행기관의 수장이라는 분이 그렇게 되물으니 할 말이 없었어요. ‘안 받고 싶어도 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성추행, 스스로 경계해야
▼ 임신해서 들어오는 재소자들은 어떻게 관리합니까.
“임산부들은 보건진료과에서 따로 관리해요. 청주여자교도소는 초음파 진료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국 각 교정시설마다 의사자격을 가진 의무과장과 의무관이 있어요. 규모 있는 교정시설에는 대개 의사가 3명, 공중보건의가 3명 있습니다. 임산부 재소자들에 대해서는 특히 신경을 씁니다. 수시로 건강체크를 하다가 출산 1개월 전에는 형집행정지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요. ‘도주의 우려’보다는 모성 보호가 우선이거든요. 출산을 하고 나면 남은 형을 살러 다시 들어옵니다. 모성이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교정시설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밖에서 키울 형편이 안 되면 데리고 올 수 있어요. 영치금이 없으면 국가에서 우유와 기저귀를 지원합니다. 아기가 있는 방은 수용인원을 줄여서 넓게 쓸 수 있게 합니다. 또 교도소 안에 놀이방을 만들어놨습니다. 현재는 청주여자교도소가 잘 되어 있습니다. 수용시설이지만 아이들이 보채지도, 아프지도 않고 잘 자라요.”
▼ 지난해 서울구치소의 남자 교도관이 여성 재소자를 성추행해 파문이 일었는데, 담과 담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여사동에서 남성 교도관을 만날 기회가 흔한가요.
“이젠 기회가 없어졌어요. 그 사건 이후에 확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이감되기 전에 분류심사를 받으러 여사동 바깥으로 나와야 했어요. 분류심사과는 수용사동 밖에 있거든요. 그 사건도 분류심사과에서 일어났어요. 남교도관과 여재소자가 1대 1로 만난 자리에서 벌어진 기막힌 일입니다. 사건 이후에 보안책을 마련했습니다. 여성 재소자들은 여성 상담심리사만 만나도록 했어요. 여성 재소자를 위해 변호인 접견실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단체로 이뤄진 ‘성폭력감시단’이 수시로 수용자들을 만나 사례를 파악해요. ‘교정시민 옴부즈만 제도(행정관찰전문인제도)’를 도입해 시민이 교정행정에 참여하도록 했고요. 변호사, 목사 등으로 구성된 ‘교정행정자문위원회’도 생겼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 형사1부는 여성 재소자 7명을 강제추행한 교도관 이모(57)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 수의(囚衣)를 입은 여성에게 성적 충동을 느낀 교도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남성 교도관들이 재소자들과 똑같이 격리되어 갇혀 있다보면 성적으로 억압되기 때문에 충동을 느낄 수 있어요. 솔직히 여성 교도관에게도 남성 재소자가 ‘남자’로 보이는 미묘한 때가 있어요. 반대로 남성 재소자가 여교도관을 여성으로 볼 수도 있고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특수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해야 해요. 사람을 인격적으로 믿어버리면 안 됩니다. 특히 남성의 성욕은 일정 단계에 다다르면 폭발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성 교도관들이 남성 교도관과 함께 근무할 때는 진한 화장을 하지 않고 치마도 입지 않죠.”
▼ 교도소에서는 수용자들이 먹는 밥에 ‘성욕 억제제를 넣는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말도 안 돼요. 취사부 일을 수용자들이 직접 하는데,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무작정 고소’가 재소자 인권?
▼ 선진국에서는 여성 교도관이 남자 교도소에서 근무하기도 하던데요.
“미국이 그렇습니다. 남사동에 여교도관이 들어가서 근무해요. 그러다보니 성추행 사건이 많아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업무상 남성 교도관이 여사동에 들어올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교도관이 순시할 때는 여교도관이 반드시 대동합니다. 여성 재소자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을 수 있고, 특히 여름에 잠잘 때는 보호해야 하거든요.”
미 법무부 통계조사국이 2700여 개 교정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 한 곳의 주교도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교도소에서 성추행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이 강화된 요즘 재소자들은 교정기관에서 작성하는 분야별 정보문서를 모두 열람할 수 있다. 이를테면 보건진료부에서 무슨 약을 구입했는지, 누구를 어떻게 치료했는지, 총무부에서 어떤 물품을 샀는지, 얼마에 사 왔는지 등 각 과의 진행사안에 대해 재소자들은 언제든지 공개를 요구해서 열람할 수 있다. 재소자 중에는 하루에 열 건 이상 정보공개를 신청하는가 하면, 교도관이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고소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소장이 접수되면 교도관 입회 없이 단독으로 수용자와 면담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위에 접수된 고소사건의 90% 이상은 ‘근거 없음’으로 결론난다. 이렇게 되면 사건을 조사한 인권위 직원까지 고소하는 재소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은 똑똑해지고 있는데, 교도관들은 너무 모른다”면서 이런 세태를 걱정한다.
“최근에 저도 고소를 당했어요. ‘농축산물 관리법 위반’과 ‘직무유기’가 이유였습니다. 닭고기 조리과정이 어떠어떠해서 문제가 있다, 왜 마가린을 팔아서 비만의 원인이 되는 트랜스지방을 섭취하게 하느냐는 게 고소 내용이었어요(웃음). 교도관들이 두 번 이상 인권위에 소환되면 위축되어 업무를 하게 돼요.”
▼ 인권위에 고소를 남발하는 재소자들은 어떤 유형인가요.
“존속상해로 들어온 40대 여성은 끊임없이 유해물질을 먹어대는 정신질환자였어요. 운동을 나가면 돌을 주워 먹거나 철사를 구해서 먹었어요. 수술을 여덟 차례 했을 정도입니다. 나중엔 손목을 끊는 자해까지 했어요. 그러고선 ‘손목 봉합수술이 잘못됐다’고 병원을 고소했어요. ‘보건진료부에서 치료를 제때 해주지 않는다’면서 직원도 고소했고요. 교도관을 60회 이상 고소한 재소자도 있습니다.”
▼ 인권위가 터무니없는 억지도 다 받아주나요.
“고소가 접수되면 무조건 조사합니다. 교도관은 한 달 이상 서류만 꾸미다 시간을 다 보내요. 그렇다고 재소자를 무고로 고소할 수 없어요. 무고죄가 성립되려면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고소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자주 들락거려 법을 잘 압니다. 인권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다수의 선한 사람을 돌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교도관들은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 심정이에요.”
어머니의 이름으로
▼ 사형제 존폐 논란은 어떻게 봅니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의 인권은 다 소중하죠. 하지만 재판관이 오죽하면 ‘사형’ 선고를 했겠어요. 과거 정권에서 ‘살인’에 가까운 사형을 했던 게 문제지, 요즘은 극히 제한적이잖아요. 가해자의 인권도 소중하지만 피해자측의 인권도 소중합니다. 사형은 예방효과가 반드시 있다고 봐요. 피해자를 대신해서 법이 집행하는 겁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생각해선 안 돼요.”
▼ 사형 폐지론자들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하자고 합니다. 무기수 중에는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하는 이도 많잖아요.
“그들에겐 희망이 있으니까요. 모범수가 되면 가석방으로 나갈 수 있거든요. 희망이 있어야 교화가 되는 것이지, 평생 감옥을 못 나간다고 하면 ‘배째라’식 생활을 하게 될 겁니다. 2004년에 대전교도소에 근무하다 무기수한테 맞아서 사망한 고(故) 김동민 교감을 기억하시죠? 무기수가 사람을 또 죽였는데도 무기징역을 받았어요. 그들이 뭐가 두렵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어요. 대책 없는 무기형은 무책임한 형벌입니다.”
최 과장은 30년간 옥살이 아닌 옥살이를 하면서 수많은 인간군상을 관찰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모든 것은 환경이 지배합니다. 모성(母性)이 범죄를 예방해요. 모성은 본능적으로 자식을 못 버리는데 환경에 쫓기다보면 모성까지 잃게 됩니다. ‘어떠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가’와 ‘어떤 환경에서 어머니로 살고 있는가’가 중요해요. 인간은 ‘어머니’로 시작해서 ‘어머니’로 귀결됩니다. 희생하고 정성을 쏟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 가난하더라도 자식을 생각하면 차마 나쁜 짓을 못하죠. ‘차마 어떻게’라는 마음이 생기게끔 어머니들이 잘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