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3년 3월이다. 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어머니 고향이 함경북도 북청이라는 것말고는 북한과 어떤 인연도 없었다. 방북은 순전히 학문적 열정에서 비롯됐다. 로스앤젤레스의 고려서점에서 구입한 북한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그리고 북측 인사들을 만나면서 생긴 북한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그것도 여자 혼자서 가는 길이었지만 그는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 뒤 매년 봄·가을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북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 종교문화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다.
‘주체사상가’ 예수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북한 사회는 다른 종교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특히 기독교에 대한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죠. 북한에도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등이 있지만, 북에서 교회는 일종의 문화선전을 담당하고 복지물자를 조달하는 기관일 뿐이에요.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미 주체사상이 가장 감동적인 영성이요 종교이며 신앙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는 기독교인에다 미국의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음에도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예수도 주체사상가였다”며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만남을 시도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고유한 종교문화라면, 주체사상은 ‘수령 아버지’를 믿는 북한의 고유한 종교문화라고 한다. 게다가 기독교의 절대적 배타성에 비하면 주체사상의 유일사상 체계는 상대적으로 정도가 덜한 편이라고까지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북한 사회는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문화적 이질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는 편견 없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바라보면 이성이나 선악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종교적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체사상이 정치 이념을 넘어 하나의 국가종교로 정착되면서 창시자인 김일성 주석의 신격화가 진행됐어요. 종교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예수의 신격화 과정과 흡사한 종교 현상일 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예수 신격화는 정상이지만 주체사상의 김일성 신격화는 비정상이라는 선입관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요.”
또한 그는 “종교성(신격화)이란 늘 열광적인 추종자를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따라서 2004년 용천 폭발사고 때 김일성의 초상화를 꺼내오다 불길 속에서 숨진 여교사를 ‘이상하다’고만 할 수 없다고 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어간 기독교인이나 그 여교사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작고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애도한 것이나,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많은 군중이 울부짖으며 애도한 것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