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누군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기를.’ 그는 말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른다. 급하게 자기 규정하지 말고, 많은 것을 만나고 사랑하기를.’ |

‘모든 이름 속에는 그 이름을 가진 존재의 성품이 숨어 살고 있다.’
‘세상의 물이 모두 바다로 밀려들어온다 해도 바다는 넘치는 법이 없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은 흠이 아니라 매력이다.’
‘인생이든 상황이든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변화가 찾아온다.’
‘사랑 때문에 슬픔에 빠져도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이별은 눈으로 전해진다.’
‘오래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나에 맞게 변화시키려 해선 안 된다.’
‘이름은 그 존재의 숨결이다.’
이 글귀에서 눈길이 멈춘다. 노트는 흰 눈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 같은 글씨들로 어지러웠다. 노트를 덮었다. 창을 바라보면서 되도록 멀리 있는 것들을 보았다. 이런 시간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름들을 속으로 되뇌었다. 이름이 그 존재의 숨결이라니.
이름은 그 존재의 숨결
신경숙은 그동안 어쩌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숨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숨결의 들고남에 울고 웃고 외롭고 괴로웠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나 한 시간 정도 머물다가, 그 옆 건물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쪽에서 보는 풍경이 더 좋기 때문이다. 눈이 내려 평창동 산비탈의 위태로운 집들은 나를 향해 걸어오다 멈춘 사람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눈이 그치니, 집들이 좀더 가까이 있으려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 같았다.
둘이 마주 앉아 차를 주문했다. 오랜만이었지만 거리감이 없다. 그는 소설처럼 가깝게 있다. 우선 근황이 궁금했다. 이제 신년이니 자연스럽게 지난해 일로 말 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지난해에 두 편의 연재 글을 썼다. 신문 연재소설과 문예 월간지의 연재였다. ‘현대문학’ 연재는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발표되는 편지글이다. 일본 작가와 한국 작가가 서로 편지를 써서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소담한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