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부터 지금까지 히말라야 고산지대인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보좌하고 있다는 청전 스님은 이력도 독특하다. 교육대학에 다니던 중 유신반대시위를 하다 자퇴했는가 하면, 신학대학에서 가톨릭 사제 수업을 받다 갑자기 불교에 귀의했다. 또한 혈혈단신 한국을 떠나 인도 히말라야 설산(雪山)으로 들어갔다. 청전 스님에 대한 호기심에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대개 책을 출간하면 저자가 사인회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하면서 책 홍보에 나서는 게 요즘 상식이건만, 이 스님은 히말라야 오지에서 도통 한국에 올 생각을 안 한단다. 스님이 한국에 오면 연락을 달라는 메모를 남긴 지 몇 달 후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 10월 말, 스님이 한국에 들어오긴 했는데 몸이 안 좋아 쉬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원기 회복하기를 기다렸다가 스님이 머무는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았다.
아침 7시,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이더니 오후 2시경 송광사 입구에 들어서자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175cm 정도의 키에 마른 체구였다. 몸무게가 최근 4kg 늘어 60kg이라고 했다. 20년 전에 유행했을 법한 크고 둥근 뿔테 안경을 썼는데 알이 무척 두꺼운 게 전형적인 교학승 스타일이었다. 그의 처소엔 이불 한 채와 앉은뱅이 책상, 그 위에 놓인 불서(佛書) 몇 권이 전부였다. 무소유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보통 3∼4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옵니다. 책 출간 때문에 2005년에 왔으니까, 이번엔 1년여 만에 다시 온 셈이네요.”
스님은 2005년에 티베트 불교의 최고 논서로 평가받는 ‘람림’을 완역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란 제목으로 펴냈다. 람림은 16세기 티베트 불교의 태두(泰斗)인 총카파가 지은 수행서다.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불리는 총카파는 좌탈입망(앉은 채로 열반)한 후 등신불이 됐는데, 중국 문화혁명 때 파괴됐다. 지금 티베트 망명정부에 몸의 일부가 남아 있다. 발심(發心)에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소개하는 ‘람림’은 미국에선 15명의 학자가 15년간 매달린 끝에 완역본이 나왔는데, 스님은 컴퓨터도 사용하지 않고 혼자 5년 만에 번역을 마쳤다. 달라이 라마가 자주 법문을 하던 내용이어서 번역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스님은 이번 방한이 별다른 목적 없이 쉬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를 만나려는 사람과 그를 부르는 곳이 줄을 이었다. 법회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꼭 가야 할 곳만 몇 군데 방문하고는 이내 이곳 송광사로 몸을 숨겼다. 송광사는 그가 머리를 깎은 곳이다.
부자 성직자와 가난한 신도
▼ 몇 년에 한 번씩 귀국하다보면 한국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실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낍니다. 올 때마다 거리 풍경이 달라져 길을 잃을 때가 많아요. 지하철은 언제 타도 적응이 안 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건 사람들이 점점 거칠어간다는 겁니다. 다들 찌들어 있어 편안한 얼굴을 보기 힘들어요.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 같아요. 인도나 티베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훈훈한 마음, 평화로운 얼굴이 드물어요. 인도에는 시민들에게 맑은 하늘의 별똥별을 보라며 델리 시(市) 전체의 전기를 잠시 꺼버릴 정도로 여유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