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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도 머리 숙인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주역 남이흥

“조선은 충의의 나라라더니 내 오늘 그 참모습을 보았다”

  • 남균우 교육학 박사

적장도 머리 숙인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주역 남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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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도 머리 숙인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주역  남이흥

충남 당진 충장사에 소장된 남이흥의 공신도상(功臣圖像).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괄은 평양을 피해 황주 방면으로 전진했다. 이 사실을 안 장만은 남이흥에게 휘하에서 가장 날쌔고 용맹스러운 군사 1800명을 선발해 추격부대를 편성하라고 지시했다. 벌써 해가 저물었지만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반란군의 뒤를 치려 한 것이다. 남이흥이 이끄는 추격군이 황주 신교에 다다르자 반군은 이들을 발견하고 대항했다. 남이흥은 전선을 마주한 반군에게 항복하라고 호령했다.

추상 같은 호령에 반란군 무리 중 허전 송립 등이 마병 1200명을 이끌고 투항했다. 이들은 일찍부터 이괄이 심복으로 삼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선봉장들이었다. 그러나 일찍이 남이흥이 만주에 있을 때 의식주의 은혜를 입은 바 있는 이들은 남이흥의 넓은 아량과 고매한 인품에 감복한 터다.

무악재의 최후 결전

남이흥이 이끄는 관군은 반란군을 추격해 평산 경계에 이르렀다. 밤이 깊어지자 남이흥은 결사대를 조직해 적진 깊숙이 쳐들어갔다. 이들은 삽시간에 적진을 격파하고 퇴로를 끊었다. 당황한 반란군의 형세는 약화되었으나 이내 평산 동남쪽 25리 지점인 저탄으로 진출했다. 저탄은 군사적 요충지로 예성강 도하(渡河)지점이었으므로 관군은 이미 이 여울목 건너편 기슭에 제2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방어사 이중돈과 이덕부가 이끄는 관군부대는, 그러나 태백산성으로부터 별다른 정보가 없었던 까닭에 방심하여 전투태세를 풀고 있었다. 이를 틈탄 반란군이 기습에 성공함으로써 관군은 처참한 살육전 끝에 전멸당하고 말았다.

강을 건너 진을 친 반란군은 관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자 장수 여덟 명의 머리를 베었다며 남이흥이 이끄는 추격부대에 보냈다. 관군의 투지와 사기는 금세 꺾였다. 이렇게 되자 남이흥은 크게 웃으면서 “그 여덟 장수는 평소에 내가 알던 사람들이다. 보내온 수급(首級)은 그들과 다르다. 죽은 졸병의 머리를 걸어놓고 나를 속이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남이흥은 반란군이 임진강을 건너면 서울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니 결사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인조는 이미 공주로 파천(播遷)한 상황이었다. 도원수 장만은 “서울이 격파되었으니 싸울 곳이 없다. 임금의 수레를 따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남이흥은 그 명령을 좇지 못하겠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이 무렵 반군은 개성을 넘어 남진했다. 죽음을 결의한 장만과 남이흥은 추격군을 이끌고 혜음령(지금의 광탄 용미리)에 도착했다. 벽제역을 굽어보는 고개 마루턱에서 병사들을 정지시킨 이들은 작전회의를 열었다. 도원수 장만이 입을 열었다.

“지금쯤 이괄군은 서울에 입성했을 것이오. 도성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소. 첫째, 반군이 도성을 장악한 지가 얼마 안 되므로 주민들이 아직 적도(賊徒)들을 따르지 않을 거요. 그러나 하루 이틀 지체하면 관망하던 무리가 역모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협조할 것이 분명하오. 따라서 우리 병력만으로 조속히 공격할 필요가 있소. 그러나 이 방법은 세가 불리한 아군으로서는 소수 병력으로 결전해야 하는 일인 만큼 위험할 뿐만 아니라 희생이 적지 않을 것이오.

둘째는 지구전인데, 경기관찰사 이서의 부대를 독촉해 도성 동쪽의 도포를 봉쇄하고 서울 이남의 관군부대를 불러올려 도성 남쪽 통로를 차단한 다음 우리 부대는 북방퇴로를 차단하여 적의 군량로를 끊어놓고, 각 도의 지방군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협동작전으로 공격하는 것이오.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하겠소?”

성미가 급한 정충신이 첫 번째 안을 찬성하고 나섰다. 남이흥 이하 여러 장수도 이에 동조했다. 정충신은 유효걸 이희건 김경운 최응일 신경원이 이끄는 부대와 함께 무악재 마루턱을 먼저 점령하고, 남이흥과 변흡의 부대도 어둠을 무릅쓰고 달려가 안산에 진출했다. 이확은 100명 포수로 편성한 별동대를 거느리고 치마바위 계곡에 잠복해 창의문 통로를 차단했다. 경기관찰사 이서와 황해관찰사 임서는 낙산에 진출해 협공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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