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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직 교수 제자의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부실한 통계와 일부 근대적 요소만으로 침소봉대”

  • 허수열 충남대 교수·경제학 syhuh@cnu.ac.kr

안병직 교수 제자의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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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계속 증가하려면 증가하는 인구가 먹고 입을 물자가 필요하다. 물자공급이 충분치 못하다면 인구는 다시 줄어들게 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동시에 1인당 GDP가 증가하려면, 생산이 인구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산업혁명이나 근대 농업혁명 같은 획기적인 생산기술의 변화가 따라야 하는데, 그런 생산기술의 혁신은 근대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또 이런 생산기술의 획기적인 변화는 정치·경제·사회적 제도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쿠즈네츠는 1인당 GDP와 같은 양적인 지표로 언제 근대가 시작됐는지 설명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질적인 변화도 그려졌을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쿠즈네츠의 근대적 경제성장이 일제 강점기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일제 강점기에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1인당 GDP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조선에 살던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소득격차는 확대됐지만 1인당 GDP가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에, 증가한 소득을 일본인이 독차지할 수는 없었다. 조선인도 그 성장의 과실 일부를 차지함으로써 1인당 GDP와 1인당 소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됐음을 의미하므로 종래의 주류적 견해인 ‘수탈론’을 근본부터 뒤엎는다.

과연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 같은 주장이 타당한가. 쿠즈네츠적인 개념으로 조선 경제의 변화를 살펴보려면, 먼저 조선의 1인당 GDP를 알아야 할 것이고, 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GDP와 인구를 알아야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최대 업적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GDP를 새롭게 추계한 데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김낙년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부, 이하 ‘한국의 경제성장’)가 그것이다(이 책은 지난해 낙성대경제연구소가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프로젝트의 성과물로 내놓은 것이다-편집자). 이 추계는 종전에 널리 사용되던 미조구치 히데유키(溝口敏行)의 추계보다 여러모로 개선된 것임에 틀림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여러 주장은 거의 대부분 이 추계를 토대로 한다.



식민지시대 통계의 문제점

그렇다면 이 추계는 믿을 만한가. 이 추계 작업에 참가하지 않았고 또 그 추계과정을 세부적으로 밝혀놓지 않은 현 상태에서 이 추계의 타당성 여부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두 가지 문제점만으로도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은 타당성을 잃는다. 하나는 이 추계 중 1911~17년 시기는 조선총독부의 잘못된 통계를 충분히 수정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41~45년 시기를 다루지 않은 것이다.

우선 1910~17년의 조선총독부 통계가 가진 문제부터 알아보자. 이 시기 조선총독부 통계가 믿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김낙년도 “농림수산업, 광공업 같은 재화의 산출액 통계는 대체로 1911년 조사되기 시작하여 1940년에 이르고 있지만, 통계조사의 정도(精度)는 초기로 거슬러 갈수록 떨어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1910년대에는 조사되지 않았거나 그 커버리지(coverage)가 낮은 품목이 적지 않다. 이를 그대로 두면 1910년대 성장률이 과대평가 된다”고 지적했다(‘한국의 경제성장’ 277쪽).

안병직 교수 제자의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그림1〉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의 경지면적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에서 작성

1910년대 초의 조선총독부 통계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한 나라의 기본적인 통계 중 하나는 경지 면적이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의 경지면적 자료를 그래프로 그리면 ‘그림1’과 같다. 1918년을 경계로 변화추세가 확연히 달라진다. 경지면적은 개간이나 간척에 의해 늘어날 수 있는데, 그것이 1910~18년의 8년간 82% 증가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1918년은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해였다는 점에서 1918년 이전의 경지면적 증가는 통계의 부정확성에서 오는 것이다.

경지에 대한 통계가 이러한데 그 경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 통계가 올바를 수 없다. 토지조사사업은 토지에 대한 측량뿐 아니라 그 토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토지의 비옥도를 알아야 차등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조사사업이 진행되면서 농업생산에 대한 통계도 경지통계와 마찬가지로 정확해졌다. 요컨대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는 1918년 이전의 생산통계는 매우 부정확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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