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1월8일 중간선거 결과 발표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경질을 발표했다.
다만 12월 회담을 통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일정부분 전환되고 있음은 분명하게 확인됐다고 말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의 의회 장악 이후 북핵 문제를 임기 안에 해결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핵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부시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의지가 어느 정도 확고한 것인지 현재로선 단언하기 어렵다. 그의 접근책은 북한의 ‘긍정적인 행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 미국이 보인 태도 변화의 핵심은 양자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직접 양자회담을 오랫동안 요구해 왔다. 북한은 “회담의 형식에 구애하지 않는다”며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에 참석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목표로 해왔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두 차례에 걸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 간의 직접 대화로 보인다.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이전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접촉을 여러 번 시도했다. 지난해 1월 도쿄에서 비정부기관 주최로 동북아안보회의가 열리고 6자회담 협상대표들이 모두 참석했을 때, 김 부상은 은근히 힐 차관보와 만나기를 바랐다. 이 기대가 무너진 후 평양은 힐 차관보를 평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 무렵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 9·19 공동성명 채택 무렵에 가해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동결을 비롯한 금융제재 해제를 미국측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평양에 가지 않았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할 얘기가 있으면 6자회담에 나오면 된다”는 자세를 고수했다. 지난해 7월 아세안포럼이 열렸을 당시 백남순 북한 외상은 라이스 국무장관과 양자회담하기를 기대했으나, 이것도 물론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다. 외교의 목표는 내용에 있고 형식은 내용을 뒷받침한다. 외교상의 형식은 국가 간 상호존중의 기준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이 직접 상대해주지 않는다는 데 모욕감을 가졌다. 부시 대통령은 일찍부터 클린턴 행정부가 추구한 양자회담 형식을 거부한 바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해봤지만 결국 북한에 속았기 때문에 양자회담은 효력이 없으며, 북핵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안보문제와 직결된 것이므로 다자적 접근이 옳다는 논리였다.
부시 행정부는 4차 6자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북미 간의 직접접촉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그러던 것이 비로소 변화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현재 북미 접촉의 형식상 수준이 ‘차관보 대 부상’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미 행정부 수뇌부가 6자 틀 안에서나마 미 협상대표로 하여금 북한측 상대방과 직접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분명 정책의 변화다.
특히 이번 6자회담 개최 직전부터 ‘미국이 북한에 크게 주고 크게 받으려 한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중간선거 직후인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한 자리에서 6·25전쟁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알리는 첫 신호로 해석됐다. 무엇보다 미국이 더 이상 (북한의) 정권교체나 무력침공을 시도할 수 없게 됐기에 협상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간선거가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사고방식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