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당의 차이는 ‘형식’의 차이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태도는 내용상 변한 것이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도 북한이 핵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먼저 완전히 포기할 경우’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른바 ‘북한의 선(先) 핵 포기’ 원칙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의 변화는 적대적 수사에서 긍정적 수사로 전환하면서 협상의 의지를 보인 것일 뿐, 이제까지 발표된 미국 정책의 기본 틀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공식적인 정책목표로 발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미국의 한반도정책 결정과정에 대해서는 상자기사 참조).
그렇다면 앞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펼쳐질 것이며, 북핵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까. 앞서 살펴본 징후를 종합하면 워싱턴은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는, 즉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혼용하는 접근책을 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간에도 미국은 외교적 해결원칙을 밝혀온 바 있지만, 그 진의를 의심할 만한 여러 징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먼저 부시 대통령 자신을 지목할 수 있다. 북한 체제와 김정일을 싫어하는 미국인이 많지만 부시 대통령처럼 공개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낸 사람은 많지 않다.
구체적인 변화의 압력은 중간선거로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으로부터 오고 있다. 민주당은 그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왔다. 클린턴 임기 중에는 북한이 플루토늄을 더 생산하지도 않았고 핵 실험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미국을 속인 것이 아니며, 제네바 협정을 파기한 것은 부시 행정부”라고 공격하기까지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간선거 무렵 “북한과 진지한 협상을 하면 1년 내에 핵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방지하지 못한 부시에게 대북정책 실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이 지난 6년 동안 북한과 진지하게 양자회담을 했더라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거나 최소한 악화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양자회담은 리처드 루거, 조지프 바이든 같은 여야 상원의원들과 제임스 베이커, 제임스 켈리와 같은 전직 국무성 관리들도 지지한 바 있다. 구체적인 결론은 없었지만, 2004년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후보는 양자론과 다자론을 놓고 토론을 벌인 적도 있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양자회담을 지지하는 민주당은 우선 의회의 정부 감시기능(Oversight Role) 강화를 통해 부시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가령 청문회, 입법조치 및 예산 심의과정에서 대정부 정책질의를 활발히 진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국의 정책에 변화가 생긴다 해도, 이는 내용보다는 형식의 변화일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 순서에서 미국이 신축성을 보일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뿐, 북한의 검증 가능한 핵 폐기를 강력히 추구하는 워싱턴의 기본 노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민주·공화 양당의 시각이 똑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까지 부시 행정부가 거부해오던 양자회담이 6자 구도 내에서 이미 시작됐으므로, 양자회담은 향후 협상의 심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6자회담과 별도로 현재보다 높은 급의 북미 접촉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다자구도를 선호하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차관보보다 높은 급의 미국 관리가 북한과 때때로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요지의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바 있다.
정권교체와 강경파
궁극적으로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식 가치관으로 볼 때 김정일 위원장은 폭군이고 나쁜 행동을 반복하고 있으므로 용서하기 어려운 상대다. 그러나 그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정권교체를 위해 구체적이며 포괄적인 정책을 추구한 흔적은 없다. 북한인권법, 금융제재, 정보감시 체계강화 등과 함께, 최근의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도 북한에 타격을 줄 수는 있지만 정권교체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들은 아니다.
물론 북한을 공격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는 경우에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국방부에서는 공격작전 계획을 수립해놓아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남한에서 북침을 하는 시나리오는 북한이 남침을 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봐야 하지만, 북핵 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제한공격은 비상대비책으로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 미군 전략사령부와 특전사령부에서 개념계획 8022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군대는 항상 가상적인,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응 준비태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강경파들은 아직도 북한 정권교체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중간선거 패배 이후 이제는 그나마도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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