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통신물질로 알려진 페로몬의 실체를 연구하고 있다(왼쪽). 페로몬을 통해 여성의 월경주기가 비슷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숙사 여학생들의 월경주기 일치
인간은 주로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언어는 대체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한다. 그 때문에 후각은 상당히 퇴화했다. 음식 냄새, 뭔가가 타는 냄새, 유독한 냄새를 맡을 때처럼 생존이나 위생과 관련된 상황에선 후각을 많이 쓰지만, 의사소통의 도구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우리는 필요할 때 눈짓이나 혀를 차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나 의도적으로 어떤 냄새를 풍겨서 의사를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시각과 청각에 너무 의존하는 탓에 후각의 진짜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아닐까? 동물이 냄새나 페로몬(체외분비성 물질)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듯이, 우리에게도 후각이나 화학 감각이 중요한 의사소통 도구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화학물질이 콧속으로 들어와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다른 동물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냄새나 페로몬에 반응하듯이 인간도 의식하지 못한 채 어떤 통신물질에 반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 물질의 발신자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1971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생이던 마사 매클린톡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학생들의 월경주기가 동조현상을 보인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자료를 수집해보니 처음에는 제각기 다르던 생리일이 7개월이 지나자 33% 더 가까워졌다. 같은 방을 쓰지 않는 여성들에게선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와 딸, 자매, 레즈비언 커플 등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속설을 과학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녀는 그런 동조현상을 친구들이 서로 접촉하면서 페로몬이 전달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 연구 결과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페로몬은 개미나 나방 같은 곤충이나, 사향고향이 같은 동물에게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인간에게 페로몬이 있다니. 페로몬 하면 으레 성욕을 부추기는 미약(媚藥)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사기를 쳐서 한몫 볼 좋은 기회가 왔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페로몬인지는 몰라도 인간이 페로몬에 영향을 받는다면 성(性) 페로몬에도 영향을 받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말이다. 아무튼 월경주기 동조현상은 그 뒤로도 가끔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졌고, 통계적으로 그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논문도 있다. 전자 쪽이 좀더 많은 편이다.
‘화학통신물질’
페로몬은 동물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쓰이는 화학물질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물의 체외로 배출되어 같은 종(種)의 개체에게 전달되어 행동이나 발달 측면에서 특정한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다. 기능에 따라 성 페로몬, 집합 페로몬, 길잡이 페로몬으로 세분된다.
페로몬은 같은 종의 개체 사이에 의사를 전달하는 물질이기에 믿을 수 있다. 또 발신자와 수신자 양쪽에게 혜택을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페로몬이 주는 정보가 믿을 수 없고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수신자는 그것을 무시할 것이고, 발신자도 굳이 힘들여 그런 페로몬을 계속 분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하고 상호 혜택을 주는 페로몬만이 진화 과정에서 존속할 수 있다.